상주 윤빛가람, “아시안컵 이란전 골? ‘뽀록’이었다”

[스포츠니어스|서귀포=조성룡 기자] 군인이자 축구선수.

두 개의 신분을 가진 독특한 사람들이 K리그에 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군경 팀 선수들 이야기다. 상주상무와 아산무궁화의 선수들은 병역 의무를 이행하면서도 동시에 프로축구 선수라는 ‘이중 신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과의 대화는 때로 이리저리 주제가 극명하게 달라질 때가 있다. 한창 군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축구 이야기를 하게 된다. 사뭇 다른 분위기인 두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하는 것은 때로는 이질적이면서 묘하게 흥미롭다. 상주의 상병 윤빛가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는 군대와 축구, 그리고 옌벤 이야기까지 꺼냈다. <스포츠니어스>는 서귀포에서 윤빛가람을 만났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부대를 뒤로 하고 전지훈련을 나왔다. 비시즌 동안 총 좀 쐈는가?
사격은 시즌 중에 주로 나간다. 지난해 두 번 나간 것 같다. 대신 제식훈련이나 정신교육을 부대에서 집중적으로 많이 받았다. 정신교육을 받을 때는 전쟁 영상을 많이 보여주고 간첩 침투 작전도 보여준다. 제식은 하라는 대로 한다. 그렇게 잘하지는 않는데 또 그렇게 못하지도 않는다. 딱 중간 정도 하는 것 같다. 휴가도 좀 나갔고. 이제는 전지훈련에 전념해야지.

얼마 전에 최전방 체험을 했다고 들었다.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6사단에서 GOP 체험을 하고 왔다. 생각보다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엄청 춥다고 해서 약간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더라. 요즘 최전방 부대 보급품이 참 좋더라. 내가 체험한 날이 비교적 따뜻한 날이었다고는 하지만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잘 챙겨 입으니까 춥다는 생각은 별로 안했다.

오히려 시간이 잘 가지 않는다는 점이 힘들었다. 경계 근무를 할 때도 쉴 때도 초소에 있어야 하더라. 생각보다 근무하는 시간이 애초에 길었던 것도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버텨냈다. 특히 나와 함께 전우 두 명이 함께 투입 됐는데 한 명은 상병이었지만 다른 한 명은 이등병이었다. 이등병을 보니 괜히 안쓰럽더라. ‘너는 언제 전역하니’란 생각이 절로 들더라.

계속해서 적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투입 전에 얘기를 들은 것이 있다. 저 앞에서 귀순자가 걸어오면 휴가를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 문득 적진을 바라보니 ‘저기서 귀순자가 걸어오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 신기할 것 같았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저 곳에서 귀순자가 올 수 있다니. 만약에 저기서 귀순자가 온다면 ‘나는 상병이니 괜찮지만 이등병은 내 휴가 주고싶다’란 생각을 했다.

철원이 춥지 않다는 사람은 처음 봤다. 옌벤에서 뛰다 와서 그런 것 아닌가.
글쎄… 그럴 수도 있다. 옌벤에 비해서는 철원이 춥지는 않다. 거기 안가본 사람은 추위를 논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내가 옌벤에서 돌아온 다음 우리나라에서 제일 따뜻한 동네인 제주도에서 뛰다가 입대하지 않았는가. 군 보급품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군인 월급이 올랐다던데 그래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건가.
내가 상병인데 36만원 정도 받는다. 예전에는 엄청 적게 받았다고 들었다. 병장이 10만원 받을 때도 있었다고 들었다. 많이 오르긴 했다. 게다가 요즘은 군인들에게 적금도 들어준다. 2년 만기 적금인데 어마어마한 돈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묻어놓으면 그래도 제법 많은 돈을 수령한다고 들었다. 요즘 군대 좋긴 좋아졌다.

군 생활을 하면서 김승대에게 고마웠을 것 같다. “조언을 많이 해줬다”고 본인이 그러더라.
옌벤으로 이적을 했을 때 내가 먼저 팀에 합류했고 김승대가 3주 늦게 도착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서 육군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오느라 늦었다. 그 때는 내가 좀 많이 놀렸다. 머리 빡빡 깎고 팀에 합류해서 어리바리 하고 있으니 많이 웃으면서 놀렸다. 그러면서도 물어봤다. 군 생활에 대해서.

고작 4주 해놓고서는 한 1년 9개월 한 것처럼 얘기하더라. “한 번 가보라”면서 “김치가 고기로 보인다”라는 이야기를 해주더라. 뭐 어느 정도 도움은 됐지만 어떻게 현역과 ‘4주’가 같겠는가. 이야기 들어보니 병역 혜택을 받은 선수들은 육군훈련소에서 4급 판정 받아 사회복무요원 하는 친구들과 같이 훈련 받는다더라. 훈련이 다르지 않는가. 현역 자부심은 확실하다.

그나저나 옌벤이 요즘 힘들다는 소식이 있다.
나도 들었다. 싸이버지식정보방(싸지방)이나 휴가 나와서 옌벤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사실상 지금 신분은 옌벤이기 때문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하던데 아직까지는 내가 군인 신분이니 정확히 아는 것은 없다.

옌벤 질문을 하니 그곳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 옌벤에 가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이 관중들의 열정이었다. 대단하다. 어느 경기를 가도 관중들도 많이 온다. 요즘 들어서 생각하는 것은 중국 리그의 수준이 많이 올라왔다는 것이다. 경쟁력도 좋고.

한국에서는 옌벤 사람들이 ‘못산다’는 이미지가 있다. 내가 볼 때는 아니다. 돌아다니다 보면 외제차도 굉장히 많고 잘 사는 사람도 정말 많다. 솔직히 중국 동포라고 하면 위험하다 이런 이미지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도 않다. 사람들도 좋고 의리 있다. 작은 도시라서 똘똘 뭉치는 느낌이 있다. 중국 동포들의 자부심이 있는 곳이다.

나는 옌벤에서 잘 지냈던 것 같다. 언어도 우리 말을 하면 되니 상관이 없었다. 내가 조금 힘들었던 것은 사투리 뿐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정말 사투리가 심한 동료는 알아듣기 힘들더라. 한 2주 정도는 고생했다. 그런데 2주가 지나니 소통이 된다. 팀 내에 있는 중국 한족 선수들과는 동포 선수들이 통역을 해주니까 또 의사소통에 큰 문제는 없었다.

가끔은 옌벤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그리울 때도 있다. 정말 축구 열정이 대단하다. 홈 경기 끝나고 시내 나오면 옌벤 유니폼 입은 팬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양꼬치 구워먹고 있다. 그 양꼬치도 진짜 맛있다. 한국에서도 옌벤 가기 직전에 양꼬치 먹으면서 “야 이거 진짜 맛있다”라고 생각했는데 옌벤에 가니 거기가 원조더라. 팬들의 함성과 양꼬치 때문에 옌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정신 차리자. 우리 지금 옌벤이 아니라 제주도에 와있다.
제주도도 오랜만에 오니까 정말 좋은 것 같다. 입대 전까지 몸담았던 곳이라 굉장히 익숙하다. 맛있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지리를 잘 안다. 특히 서귀포는 더욱 잘 안다. 제주 클럽하우스가 서귀포에 있으니 맛집이나 경치 좋은 카페 등은 잘 안다. 하지만 군인 신분에 쉽게 나갈 수 있는가. 그냥 부대를 떠나서 이렇게 바깥 공기 쐬면서 훈련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다.

요즘 아시안컵이 화제 아닌가. 아시안컵 하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이란과의 맞대결이다. 그리고 윤빛가람은 (2011년 아시안컵) 이란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주인공이다. 이란을 어떻게 하면 쉽게 이기나?
그 골, 사실 ‘뽀록’이다.

무슨 소리인가. FIFA에서도 ‘아시안컵 잊을 수 없는 장면’ 1위로 꼽은 골인데.
운이 좋았다. 그 경기를 내가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솔직히 골 넣은 순간만 잘했다. 나머지 경기력은 내가 생각해도 좋지 않다. 사람들은 골이 인상 깊었으니 그 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였다.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
맞다. 경기할 때 나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할 때가 많다. 다른 사람이 “잘했다”라고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돌아보면 아쉬움 남는 경기가 많다. 항상 경기를 끝내고 나면 후회를 한다. ‘이럴 때는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저기서는 좀 더 할 수 있는데 왜 못했을까’ 스스로 자책을 많이 한다.

그러다보니 후회하지 않으려고 더욱 노력하는 것은 있다. 경기 전에도 걱정이 많은 편이다. 강팀과 붙기 전에는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내가 좀 풀어줘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한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경기 전에 고민을 하다가도 막상 그라운드에 들어가면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경기를 한다. 그리고 끝나고 나서 다시 또 후회한다. 일종의 승부욕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지난 시즌 승강 플레이오프의 문턱까지 갔다왔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기는 더욱 많았을 것 같다.
맞다. 사실 좀 여유가 있을 때 2승, 아니 1승 정도만 했어도 힘든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 같다. 항상 1점 1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경기를 할 때마다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하니 강등권까지 가더라. 내 경기력에 만족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막상 FC서울과의 스플릿 라운드 최종전에서는 걱정하면서 스트레스 받지는 않았다. 경기 전 미팅을 하면서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우리가 잃을 것은 없다. 서울은 지키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져도 내려가고 비겨도 내려간다. 겁 먹지 말고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하자.” 그렇게 하다보니 운 좋게 골도 넣었고 잔류도 했다. 잔류도 하니 포상 휴가도 받았다.

‘유망주’ 소리 듣던 윤빛가람이 벌써 고참이 됐다.
사실 내가 올해로 서른 살이 됐다. 지난해 12월 31일이 되니 마음이 싱숭생숭 하더라. 20대 때 뭔가 많이 한 것 같은데 막상 이대로 끝난다니 허무했다. 시간이 빨리 갔던 것 같다. 전역 날만 생각하면 유독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데 지나온 날을 생각하면 참 빨리 흘러간다.

아무래도 과거를 돌아보면 처음 프로에 입성했을 때가 생각난다. 21세에 경남FC에 입단하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무언가 프로 선수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기도 했고 많은 것을 이룬 시기이기도 했다. 상도 받고 국가대표팀에도 합류했다. 생각하면 재밌었다. 어린 나이에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했다.

물론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 때는 어렸고 신인이었다. 경기 한 번 뛰게 해주면 그 자리 꿰차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뛰었던 것 같다. 겁도 없이 막 뛰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다. 하루 이틀 나이를 먹다보니 뛰면서 여유를 찾게 되더라. ‘베테랑’이라는 말을 괜히 하는 것이 아니더라. 지금 돌아보면 그 때의 나는 당돌했다.

이제 30대가 되니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시기라고 할까? 은퇴도 생각해야 하고 그 이후에는 뭘 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큰 변수가 없다면 결혼을 하겠지? 누군가를 만나면서 인생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계획한 것은 아니고 막연하게 생각한 것이다. 그저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일어나봐야 아는 일이겠지만.

어릴 때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재현하고 싶은 욕심도 있을 것 같다.
욕심은 당연히 있다. K리그에서 매년 꾸준히 뛰려고 노력한다. 뛸 때마다 잘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사실 은퇴하기 전까지 연말 시상식에 한 번은 더 가보고 싶다. 상을 받아보고 싶다. 내가 상복에 꽤 오랜 기간 동안 없었다. 국가대표에 대한 욕심도 있고.

욕심 많고 만족 모르는 윤빛가람은 올 한 해도 열심히 할 것 같다.
지난 시즌의 교훈을 거울 삼아서 더욱 열심히 하려고 한다. 초반부터 승점 바짝 벌어놓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올 시즌 목표가 잔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중위권 언저리에서 상위 스플릿 진입 경쟁을 할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상주 선수들을 보면 그렇다. 이 선수들이 있으면 그 정도 성적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곧 입대할 진성욱, 이찬동, 류승우가 당신을 보면 든든하겠다.
제주에서 같이 뛰었던 선수들 말인가? 처음에는 잘해주고 그런 것 없다. 군기 바짝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내가 나서서 군기 잡을 것도 없다. 처음에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만 하면 된다. 그러다가 적응 하면 친하게 잘해주고. 군 생활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 친구들 생각하니 내가 상주 전입 왔을 때 생각난다. 그 때가 2월 초였다. 당시 나를 돌아보니 그 친구들 고생 많이 할 것 같다. 이런 기분은 김승대가 절대 모르겠지.

윤빛가람은 욕심이 많다. 그래서 만족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욕심의 방향이다. 다른 사람을 향한 욕심은 피해를 주지만 자신을 채찍질 하기 위한 욕심은 부족한 법이 없을 것이다. 윤빛가람은 자기 자신을 향한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올 시즌 그의 욕심은 상주를 그가 바라는 중위권으로 끌어 올릴 수 있을까. 그리고 윤빛가람은 조금씩 자신이 생각해도 만족한 경기가 늘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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