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축구협회 제공

[스포츠니어스|남해=조성룡 기자] 수원삼성 이임생 감독은 배를 깎고 또 깎았다.

수원은 현재 경상남도 남해에서 전지훈련을 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새로 부임한 이임생 감독은 벌써부터 전술 훈련과 옥석 가리기에 열중이다. 이와 함께 한 가지 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선수단과 소통하는 것이었다.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수들과 마음이 통해야 한다. 이 감독에게는 나름 시급한 과제일 수 있다.

특히 어린 선수들의 마음을 여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염기훈, 데얀 등 고참 선수들은 마음을 터놓는 것이 비교적 어렵지 않다. 그들 또한 오래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은 다르다. 아직까지 감독이라는 존재는 그들에게 무섭다. 게다가 그들의 감독은 왕년에 수비수로 이름 좀 날렸던 이임생이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이 감독을 무섭거나 무뚝뚝한 감독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 이는 어린 선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감독은 고민했다. 올 시즌 수원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고참들의 활약도 중요하지만 어린 선수들의 발굴 또한 필수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을 열어야 했다. 벽을 허물어야 했다. 어린 선수들이 무엇보다 자신감을 갖고 마음껏 자신의 모습을 보일 줄 알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독과 마음을 열고 소통을 해야 했다. 생각하던 이 감독은 스태프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배를 사다주게. 좀 많이."

무뚝뚝한 줄 알았던 이임생 감독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 수원삼성 제공

어느 날부터 이 감독은 훈련이 끝나고 어린 선수들을 한 명씩 방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잠깐 내 방으로 와. 이야기 좀 하자." 팀에서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하던 자신에게 무려 '감독님'이 개인 면담을 하자고 방으로 부르다니. 어린 선수들은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선수 생활을 비추어 봤을 때 감독이 이렇게 부르는 경우는 대부분 하나였다. '혼날 각오 하고 가야겠다.'

그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이 감독의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 감독이 웃으면서 그들을 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손에는 칼이 있었고 다른 손에는 배가 들려 있었다. 그는 열심히 배를 깎고 있었다. 당황한 선수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 때 이 감독이 말했다. "여기 와서 앉아. 배 좀 먹어봐. 맛있어." 어리둥절한 선수들은 감독이 손수 깎아주는 배를 먹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이 감독이 농담을 던졌다. "감독이 깎아주는 배 먹기 힘들잖아. 앉아서 같이 배 먹자."

그렇게 이 감독은 자신이 손수 깎은 배를 먹으면서 선수들과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선수들도 함께 방 안에서 단둘이 배를 먹으며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 감독은 대부분의 어린 선수들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먼저 온 선수가 배를 남기고 떠나면 남은 배는 몰래 다른 곳에 숨기고 새로운 배를 꺼내들어 그들을 위해 정성껏 깎았다. 그렇게 이 감독은 수도 없이 배를 깎았다.

과연 효과는 있었을까? 나름대로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이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내 얼굴만 봐도 웃는다"면서 "그 친구들이 내 아들과 비슷한 또래다. 아들을 대하는 마음으로 다가갔더니 선수들이 가끔 내게 장난도 친다. 자신감을 많이 주려고 한다"라고 소개했다. 이제는 오히려 웃는 선수들을 보며 이 감독이 되묻는다. "너네 내 얼굴이 그렇게도 웃기니?"

이제 어린 선수들이 가지고 있던 마음의 벽은 허물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신감을 갖고 그라운드 안에서 마음껏 뛰놀게 해야 하는 것이 다음 미션이다. 그들이 무사히 수원의 1군 스쿼드에 녹아든다면 이 감독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을 것이다. 과연 올 시즌이 시작됐을 때 손이 아프게 배를 깎던 이 감독의 정성은 빛을 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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