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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이기흥 회장이 고개를 숙이며 '쇄신'을 외쳤다. 그러나 이사회가 끝나고는 취재진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대본만 읽고 봍은 불을 끄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2)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사실이 8일 알려진 뒤, 스포츠계에선 ‘미투’가 확산하고 있다. 9일에는 빙상계에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고, 14일에는 전 여자유도 선수 신유용(24)이 실명과 얼굴까지 공개하며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알렸다. 심석희와 신유용 모두 미성년인 고교생 때부터 수년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혀, 한국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줬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 아테네홀에서 열린 제22차 대한체육회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문화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체육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독립, 외부, 민간 주도의 성촉력 실태조사 실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퇴’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 회장은 "한국 체육에 아낌없는 지원과 격려를 보낸 국민과 정부, 기업, 체육인들에게도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라고 했으나 이 회장의 사과는 피해 선수들을 향하지 않았다. 체육계의 수장이자 대표로서 피해 선수들을 향해 ‘위로’의 말을 전한다면서 슬쩍 뒤로 빠졌다.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듯 제 3자의 입장을 취했다. 이기흥 회장의 사과 대상에 피해 선수들은 포함되어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2016년 10월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이기흥 회장은 2년 넘게 한국 체육을 이끌어 왔다. 재임 기간 수많은 폭력·성폭력 사건이 터졌어도 매번 “재발 방지”만 외쳤다. 대한체육회가 내놓은 이번 대책에 ▲성폭력 조사 및 교육을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 실시 ▲홈페이지·보도자료 등을 통해 처벌·징계내역 공시 의무화 ▲주요 사각지대 CCTV 보강과 남·여 라커룸 관리 및 비상벨 설치 등이 있다. 지난 9일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발표 내용과 대동소이한 내용이며 과거 체육계 성폭행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나왔던 이야기들이다.

그가 밝힌 '성폭력 가해자 영구제명 및 국내·외 취업 원천 차단'을 제외하면 대책 내용은 구체적이지도 않다. 그는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구조적 개선 방안 확충 ▲성폭력 조사 및 교육을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 실시 ▲선수 육성 시스템의 근본적 개선방안 마련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그가 생각하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구조적 개선은 무엇인지, 성폭력 조사와 교육만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할 생각인지, 상담센터는 독립적으로 구축하지 않을 것인지, 개선한다는 육성 시스템의 근본은 무엇인지 전혀 밝혀진 게 없다.

이 회장은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대한 광범위하고도 철저한 심층 조사를 실시해 엄중하게 그 책임을 묻겠다. 관리·감독의 최고 책임자로서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고 정상화시키겠다”고 밝혔다. 지도자들의 부당 행위에 대해 뿌리를 뽑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이사회가 끝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인 채로 자리를 떠났다.

같은 말만 녹음기 틀 듯 반복하는 것 자체가 실행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철저히 쇄신하겠다.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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