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FC 크루 유다영

[스포츠니어스 | 대구=곽힘찬 기자]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드라마가 또 있을까.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더욱이 기업구단이 아닌 시·도민구단이 이뤄낸 것이었기에 감동은 더했다. 대구가 우승을 확정짓던 그날, 경기장을 찾았던 대구 시민들은 모두 하나가 됐다. 살을 에는 칼바람이 몰아치는 매우 추운 날씨였지만 18,000명이 넘는 대구 시민들은 함께 차가웠던 경기장을 녹였다. 이날만큼은 ‘축구는 대구’였고 ‘대구는 축구의 도시’였다.

대구FC는 지난 8일 KEB하나은행 2018 FA컵 결승 2차전에서 울산 현대를 3-0으로 격파하고 ‘창단 첫 우승’을 거뒀다. 사상 첫 메이저 우승컵을 차지한 대구는 내년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직행을 확정짓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FA컵 결승 2차전은 역사적인 대구 스타디움의 마지막 경기였다. FA컵 우승은 대구가 그동안 정들었던 홈구장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큰 선물이었다.

대구 스타디움과 동행한 16년.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대구가 FA컵 우승을 확정지은 직후 한 대구 팬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대구 스타디움. 너와 함께 한 16년은 정말 즐거웠다. 슬픈 일도 있었고 기쁜 일도 있었다. 이제 정들었던 너를 떠나보내려고 한다.”

① 대구FC의 창단, 역사의 시작

그 16년 동안 어떤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FA컵 우승을 차지한 2018년 12월 8일에서 16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보자. 1997년 착공해 2001년에 완공한 대구 스타디움은 그해 5월 20일 성남일화와 브라질 구단 산투스의 개장 경기를 시작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개장 경기가 열리던 날 대통령 후보들을 비롯한 수많은 관중들이 운집하며 대구 스타디움의 개장을 축하했다. 그리고 대구 스타디움은 2001년 5월 30일 개막된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프랑스,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미국(조별예선), 한국-터키(3, 4위전)의 경기를 치르며 대구 시민들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기 시작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은 대구 스타디움에서 미국과 1-1 무승부를 거뒀다. ⓒ SBS뉴스 캡쳐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이후 한국 전역은 축구 열기 속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2003년 3월 19일, 축구 붐에 힘입어 한국 최초로 시민구단의 개념을 도입한 대구FC가 창단식을 거행하면서 ‘대구 시민들의 구단’이 탄생했다. 2003년 3월 23일 수원 삼성과의 홈경기를 시작으로 K리그에 모습을 내민 대구는 그해 4월 2일 안양LG전에서 터진 오주포의 득점으로 1-1 무승부를 거두며 창단 첫 득점 및 승점을 기록했고 이어진 4월 27일 부산전에서는 윤주일과 홍순학의 연속골로 창단 첫 승리를 거두는 기쁨을 누렸다.

팬들의 기억 속에 있는 대구의 창단 초 모습은 어땠을까. 공격축구를 지향했던 대구는 ‘K리그의 로맨티시스트’였다. 초대 사령탑을 맡았던 박종환 감독을 시작으로 2007년 변병주 감독이 취임한 이후에는 그 강도가 더욱 세졌다. 2008년 대구의 성적은 11위에 그쳤지만 수원 삼성과 함께 46골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했고 무승부는 딱 두 번에 그쳤다. 그렇게 대구는 K리그에 적응하고 있었다.

② 뼈아픈 강등, 슬펐던 2부에서의 기억

어쩌면 대구를 응원하는 팬들이 생각하는 가장 슬픈 기억이 아닐까 싶다. 2013년 K리그 클래식 최종라운드 경남FC와의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거두며 강등을 확정짓고 말았다. 처절하게 생존 경쟁을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대구가 2부리그 강등을 확정짓자 많은 대구 팬들이 눈물을 흘렸고 떠나갔다. 당시 백종철 전 감독은 “구단이나 대구시에서 확실하게 지원을 해줬지만 내가 부족했다”고 말하며 강등의 모든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대구 스타디움은 그렇게 2부리그 대구FC의 홈구장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팬들이 떠나간 2014년의 대구 스타디움은 썰렁했다. 6만 명이 넘는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대구 스타디움엔 평균 관중 966명이 들어왔다. 한 대구 팬은 “이때만 하더라도 대구FC가 해체될 것 같아서 너무 걱정스러웠다. 내가 사는 곳을 대표하는 구단인데 2부리그 강등에 사람들의 관심이 뚝 끊겨 너무 안타까웠다”라며 회상했다.

2015년은 그야말로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2015년 9월 23일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상주 상무전에서 대구는 조나탄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상주 상무를 5-1로 격파하고 1위로 올라섰지만 막판 뒷심이 부족했다. 시즌 막판 1승 2무 3패로 부진하며 K리그 챌린지 우승, K리그 클래식 다이렉트 승격을 모두 놓치고 말았다. 이어진 준플레이오프에서 수원FC에 1-2로 패배하며 K리그 챌린지에서 한 시즌을 더 보내야 했다.

③ 3년의 기다림, 1부리그 복귀

대구에 2015년은 너무나 아쉬운 해였다. 승격을 코앞에서 놓치고 말았고 대구의 공격을 이끌었던 조나탄을 떠나보냈다. 하지만 대구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승격을 위한 준비에 나섰다. 박한빈, 김대원, 김우석, 홍승현, 홍정운 등과 신인 자유 계약을 맺었고 정우재, 파울로, 세징야 등을 영입했다.

대구는 2016년 3월 26일 대전 시티즌 원정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정말 오랜만에 개막전 승리를 따냈다. 새로 영입된 세징야와 파울로의 조합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면서 승격 후보로서의 자격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즌 초부터 선두권을 형성하던 대구는 중반부터 서서히 부진하며 결국 이영진 감독을 경질하고 손현준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승격시키는 강수를 뒀다.

결과적으로 이는 신의 한 수였다. 2016년 10월 30일 대전 시티즌과의 홈경기에서 후반 34분에 터진 세징야의 결승골에 힘입어 그토록 염원하던 K리그 클래식 승격을 이뤄냈다. 다득점에 밀려 2위를 차지했지만 시즌 중 안산의 연고이전 및 구단 재창단 문제가 겹치면서 K리그 클래식 직행에 성공했다. 승격을 확정짓던 당시 경기장을 방문했던 팬들은 선수들과 함께 어울려 기쁨을 만끽했다. 3년 만에 대구 스타디움이 다시 1부리그 대구FC의 홈구장이 되던 순간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은 대구 스타디움에서 미국과 1-1 무승부를 거뒀다. ⓒ SBS뉴스 캡쳐

④ 대구의 1부리그 잔류, 안드레의 등장

그 어떤 시즌도 대구에 편안한 시즌은 없었다. 2016년 K리그 클래식 승격을 이뤄냈지만 계속 가시밭길을 걸었다. 2017년 5월 22일, 대구의 승격을 이뤄냈던 손현준 전 감독이 성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당시 대구는 5월 울산 현대전을 시작으로 20일 제주 유나이티드전까지 4연패에 빠지면서 최하위 인천 유나이티드에 승점 1점 앞선 11위로 강등권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뒤를 이어 대구의 지휘봉을 잡은 안드레 감독 대행은 성공적으로 팀을 이끌었다. 주니오-에반드로-세징야를 앞세운 대구는 2017년 10월 28일 포항 스틸러스 원정에서 2-1로 승리하며 잔류를 확정지었다. K리그가 승강제를 도입한 이래 2015년 광주FC와 2016년 상주 상무에 이어 2017년 강원FC와 대구가 세 번째로 승격팀이 잔류에 성공하는 기쁨을 맛봤다. 그렇게 팀을 구해낸 안드레 감독 대행은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며 대구의 제 10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놀라운 후반기 반전, 대구가 만든 2018년 드라마

2018년은 대구에 있어서 의미 있는 해였다. 10년 넘게 대구FC의 홈구장을 책임졌던 대구 스타디움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새롭게 짓고 있는 축구전용구장 ‘포레스트 아레나(가칭)’로 옮기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구는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시즌을 앞두고 ‘상위 스플릿 진출’을 목표로 세웠다. FA컵 우승이 아니었다. 그저 ‘상위 스플릿 진출’을 대구 스타디움에게 마지막 선물로 주고 싶었다.

시작부터 어긋났다. 포항과의 원정 개막전에서 0-3으로 패했고, 이후 수원과의 홈 개막전에서 0-2로 패했다. 7라운드에서야 강원을 2-1로 격파하며 첫 승을 신고했지만 부진을 거듭했다. 전반기 대구의 성적은 1승 4무 9패. 상위 스플릿은커녕 강등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2018년 4월 11일 울산 현대와의 홈경기를 시작으로 4월 28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까지 4경기 연속 세 자릿수 관중 동원에 그치며 대구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새 홈구장 이전을 앞두고 있었지만 대구가 부진을 거듭하면서 팬들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하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을 기점으로 반전의 드라마가 써지기 시작했다. 대구는 ‘조현우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018년 7월 8일 FC서울과의 2-2 무승부를 시작으로 하위 스플릿 라운드까지 포함해 리그에서 총 13승 4무 7패를 기록하며 잔류를 확정지었다. 월드컵 휴식기에서 에드가, 츠바사, 조세 등을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시켰고 김대원, 정승원을 비롯한 젊은 선수들을 대거 등용하며 대구는 역대 최고 순위와 타이인 7위를 기록했다. 비록 상위 스플릿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강등권에서 헤매던 시즌 초와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환골탈태한 모습이었다.

드라마의 연장선 FA컵 우승, 완벽했던 마지막 선물

잔류만 하더라도 대구는 최하위에서 7위까지 급상승한 성적으로 대구 스타디움에 마지막 선물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대구 스타디움에게 고작 ‘잔류’라는 선물은 작별 인사로 적절하지 않았다. 더 큰 선물을 원했던 것일까. 대구FC는 대구 스타디움에서 FA컵 경기가 있을 때마다 화끈한 공격력을 과시하며 연전연승을 내달렸다. 2018년 7월 25일 용인대학교를 4-1로 격파했고 8월 8일에는 양평FC를 8-0으로 대파하며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 이후 원정에서도 목포시청 축구단, 전남 드래곤즈를 연이어 이기며 사상 첫 FA컵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대구 스타디움은 조용하게 대구 선수들을 계속 응원해왔었던 것일까. 대구는 홈에서 열린 FA컵 결승 2차전에서 울산을 상대로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3-0으로 승리, 창단 16년 만에 FA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꿈만 같던 ACL 진출을 확정지었다. 올 시즌 울산을 상대로 3전 전패 무득점 6실점을 기록하고 있었던 대구는 가장 중요한 FA컵 결승전에서 울산을 홈, 원정에서 모두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더욱이 김도훈 감독이 울산에 부임한 이후 첫 승리를 이뤄냈던 터라 기쁨은 두 배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은 대구 스타디움에서 미국과 1-1 무승부를 거뒀다. ⓒ SBS뉴스 캡쳐

대구 스타디움은 그제야 만족했다. FA컵 결승 2차전이 열리던 그날 대구엔 뼛속까지 파고드는 찬바람이 몰아쳤지만 대구 스타디움은 대구 선수들과 팬들을 따뜻하게 안아줬다. 작별의 인사였을까. 바람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FA컵 우승 시상식이 끝난 이후 대구 스타디움은 18,000명이 넘는 대구 시민들을 그라운드로 초대하며 안녕을 고했다. 감격스러웠던 FA컵 우승은 대구FC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드라마의 연장선이자 대구 스타디움을 향한 완벽했던 마지막 선물이었다.

Good Bye Daegu Stadium

대구는 전반기 1승 4무 9패 8득점 26실점이라는 처참한 기록을 세웠지만 후반기 드라마와 같은 반전을 이뤄내며 FA컵 포함 19승 4무 7패 60득점 34실점이라는 놀라운 상승세를 보여줬다. 대구FC와 대구 팬들은 정들었던 대구 스타디움을 위해 마지막 선물과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대구 스타디움이 오히려 대구FC와 대구 팬들에게 선물을 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대구가 강등권에서 헤매고 있을 때 조용히 지켜보며 대구 선수들에게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힘을 주었고 많은 팬들이 발걸음을 돌렸을 때도 묵묵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대구 스타디움을 찾아오는 팬들을 반갑게 맞아줬다.

어떤 구단이든 홈구장은 그 구단의 심장과도 같다. 홈구장은 구단의 역사와 추억이 깃든 곳이다. 그 추억이 강등의 아픔이든, 승격의 기쁨이든,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하던 순간이든 홈구장은 팬들과 선수단이 흘린 슬픔과 기쁨의 눈물이 교차하는 곳이다. FA컵 우승을 지켜본 대구 팬은 “대구가 1부리그 승격에 실패했을 때, 승격에 성공했을 때, K리그1에 잔류했을 때, 사상 첫 FA컵 우승을 차지했을 때 모두 대구 스타디움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추억을 남긴 대구 스타디움을 떠나려고 하니 아쉬운 감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구 팬들은 정들었던 대구 스타디움을 두고 떠나기가 망설여진다.

하지만 이젠 떠날 때다. 지금 당장은 대구 스타디움을 떠나지만 대구의 역사가 멈춘 것은 아니다. 내년 시즌 ACL 경기를 시작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대구는 대구 스타디움과의 추억을 뒤로한 채 새 홈구장인 ‘포레스트 아레나’로 옮겨 새로운 역사를 쓸 준비를 하려고 한다. 과거의 인연이 떠나가면 새로운 인연이 다가오는 법이다. 대구는 이제 대구 스타디움과의 추억을 뒤로한 채 포레스트 아레나와 새로운 인연을 맺는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은 대구 스타디움에서 미국과 1-1 무승부를 거뒀다. ⓒ SBS뉴스 캡쳐

5,740일 드라마의 마침표

정말 길고 긴 드라마였다. 세상에 어떤 드라마도 이보다 길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준 574명의 선수들이 16년 동안 대구 스타디움에서 총 261경기를 치르며 91승 81무 89패, 366득점 341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대구 스타디움을 찾은 2,048,539명의 대구 시민들이 5,740일 동안 대구 스타디움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많은 추억을 남겼다.

2003년 3월 23일을 시작으로 대구 스타디움과 함께 각본을 쓰고 연출한 대구의 드라마는 2018년 12월 8일, 마침내 그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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