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경기는 잊을 수 없는 역사로 남게 됐다. ⓒ수원삼성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오늘은 2018년 12월 7일이다. 딱 10년 전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불과 며칠 전 일도 기억나지 않는데 10년 전 오늘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어제(6일) 당사자들에게 물었다. “혹시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하나 같이 한 동안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저와 관련된 일인가요? 전혀 모르겠네요.” 10년 전 이 순간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10년 전 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가 곧바로 반응이 돌아왔다. “아, 벌써 그게 10년 전 일인가요? 이쯤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10년 전 일을 기억해 내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10년 전 오늘은 K리그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챔피언결정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 경기가 열린 날이었다. 수원삼성과 FC서울의 가장 치열하고도 뜨거웠던 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이 열린 날이 바로 2008년 12월 7일, 그러니까 오늘로부터 딱 10년 전 일이다. 거짓말 같은 눈이 내린 그 잊을 수 없는 경기가 열린지도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경기에 나섰던 이들을 취재해 보니 이들은 여전히 그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10년 전 오늘 있었던 그 영화 같은 시절로 안내한다.

기성용은 19살의 나이로 이 경기를 경험했다. ⓒ비바 K리그 방송화면 캡처

최고의 선수들과 최고의 감독들, 그리고 라이벌전

수원삼성은 2008년 정규리그 1위를 확정지었다. 17승 3무 6패 승점 54점을 기록했다. 2위인 FC서울도 승점은 수원과 같았다. 하지만 골득실에서 1위와 2위가 가려졌다. 수원은 득실차가 +22점이었고 서울은 +19였다. K리그 최대 라이벌 두 팀은 수준 높은 경기력으로 당시 K리그를 지배했다. 수원에는 에두를 비롯해 송종국, 조원희, 마토, 곽희주, 이정수, 김대의, 이운재 등이 포진해 있었고 서울에는 데얀과 아디를 비롯해 정조국, 김진규, 김은중 등이 뛰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0대의 두 선수가 날이 갈수록 좋은 기량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 둘은 바로 이청용과 기성용이었다.

양 팀 모두 지금 봐도 입이 쩍 벌어질 법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수원의 에두와 서울의 데얀은 나란히 15골을 뽑아내며 펄펄 날고 있었고 정조국(8골)과 이청용(6골), 서동현(13골), 신영록(7골) 등도 맹위를 떨쳤다. 수원은 정규리그 1위로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고 2위를 기록한 서울은 플레이오프에서 120분간 연장 혈투 끝에 울산현대를 4-2로 제압하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K리그에서 최대 라이벌로 꼽히는 이 두 팀이 챔피언결정전에서 격돌하는 최고의 시나리오가 완성된 것이다. 그렇게 두고두고 회자될 최고의 순간은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경기 전부터 양 팀 감독은 설전을 펼쳤다. 수원 차범근 감독은 “리그 1위가 진정한 1위다. 챔피언결정전은 또 다른 대회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서울 세뇰 귀네슈 감독이 발끈했다. 울산을 꺾은 뒤 기자들이 수원 얘기를 집중적으로 물어보자 이런 말을 건넸다. “울산에 승리한 따끈따끈한 이야기를 놔두고 왜 수원에 대해서 물어보느냐. 진정한 챔피언은 챔피언결정전이 끝난 뒤 가려질 것이다.” 귀네슈 감독은 그러면서 “정규리그 1위가 진짜 1위라면 우리도 리그 1위를 위해 일찍부터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차 감독의 논리라면 지난해 1위는 포항 스틸러스가 아닌 정규리그 1위 성남 일화였다”고 맞받아쳤다.

기성용은 19살의 나이로 이 경기를 경험했다. ⓒ비바 K리그 방송화면 캡처

전운이 감도는 경기장, 뜨거운 응원 열기

프로축구연맹은 2008년 12월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챔피언결정전 1차전 주심을 독일 출신 피터 시펠에게 맡겼다. 국제축구연맹(FIFA) 국제심판인 시펠은 1996년부터 독일프로축구 분데스리가 2부리그 주심으로 활동했고 2000년 이후 1부리그 주심으로 활약 중이었다. 또한 유럽축구연맹(UEFA) 주관 클럽대항전 12경기와 국가대항전(A매치) 3경기 주심으로 나선 경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연맹은 서울과 수원의 빅매치를 앞두고 독일 심판까지 섭외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1차전 경기 당일에는 평소 경기보다 훨씬 많은 안전 요원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배치되는 등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1차전 경기가 시작되자 수원 팬들이 깜짝 놀랄 만한 응원전을 펼쳤다. 평소 홈 경기 때는 미리 경기장에 들어가 카드섹션을 준비하는 건 일반적인 일이지만 원정경기는 다르다. 미리 원정 서포터스 운영진에게 카드섹션을 준비하기 위해 경기장을 개방해 주는 구단은 없다. 그런데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할 무렵 수원의 원정 서포터스석에서 기가 막힌 문구의 카드섹션이 시작됐다. 파란색 배경에 노란색 글씨로 ‘축구수도 수원’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미리 준비할 시간이 전혀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원정을 마치 홈 분위기로 만들어 버렸다.

서포터스 운영진이 미리 경기장 좌석 배치도를 입수해 좌석별로 종이를 나눠주며 발로 뛴 결과였다. 이미 홈 경기장에서 변환 카드섹션까지 성공하는 등 노하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홈팀 서울 서포터스는 수백 개의 깃발을 동원해 응원을 시작했다. 우승을 상징하는 별(★)을 검정 빨강 노란색의 깃발로 표현했다. 1차전부터 열띤 응원전이 펼쳐졌고 경기는 팽팽하게 흘러갔다. 전반 21분 서울 아디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후반 34분 수원 곽희주가 동점골을 뽑아내면서 1차전은 1-1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이날 경기장에는 무려 39,011명의 관중이 들어찼다. K리그 챔피언결정전 역대 최다 관중이었다. 서울과 수원이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났으니 관심은 폭발했다.

기성용은 19살의 나이로 이 경기를 경험했다. ⓒ비바 K리그 방송화면 캡처

10년 전 오늘을 기억하는 선수들

당시 1차전에서 서울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한 최원권 현 대구FC 코치는 이 경기에 대한 아쉬움을 이렇게 털어놨다. “1차전에서 이겼어야 했어요. 이길 수 있는 경기를 1-1로 비기고 2차전 원정경기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때 (기)성용이가 심한 몸살에 걸려 컨디션이 최악이었고 (이)을용이 형도 몸이 좋지 않았어요. 썩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경기에도 집중을 완벽히 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1차전을 이기고 갈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2차전까지도 1차전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 채 경기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면서 최원권 코치는 당시 수비진의 정확한 포메이션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제가 오른쪽에 섰고 아마 중앙 수비로는 (김)진규와 (김)치곤이가 섰을 겁니다.” 10년이 된 경기였지만 마치 어제 있었던 경기처럼 그는 생생히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1차전을 치른 다음 날 작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 구단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FC서울 2008 K-리그 챔피언(FC서울 K-LEAGUE CHAMPIONS)’이라는 문구와 함께 경기 전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모여 선전을 다짐하는 사진이 내걸린 것이다. 이제 막 1차전이 끝난 상황에서 등장한 홈페이지 문구가 모두가 어리둥절해 했다. 알고 보니 다가올 챔피언결정전 2차전을 앞두고 우승할 경우에 대비해 준비해 놓은 화면이 시스템상의 실수로 노출된 것이었다. 이 화면은 무려 20여분 동안 홈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리고 이러 해프닝이 있은 뒤 경기장을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옮겨 치른 2차전은 K리그 역사상 잊을 수 없는 명승부, 명장면으로 꼽히고 있다. 1차전을 비긴 두 팀은 이렇게 오늘로부터 딱 10년 전인 2008년 12월 7일 2차전에서 격돌했다.

당시 1차전과 2차전 모두 풀타임을 소화한 조원희에게 물었다. 어제(6일) 밤 인터뷰를 통해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하니 한 동안 답이 없다가 뭔가 떠올랐는지 그가 씩 웃었다. “12월 7일이죠? 무슨 날이지? 아, 그날이네요. 맞죠? 눈 오던 바로 그 날.” 맞다고 하니 “어떻게 그 날을 기억하고 있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조원희는 그러더니 “벌써 그게 10년이나 됐네요”라며 생생한 그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조원희는 당시 이야기를 들려줬다. “저는 그때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섰는데 상대팀의 한 선수와 유독 자주 충돌했습니다. 19세의 기성용이었죠. 공격형 미드필더 (기)성용이를 제가 막아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어요. 포메이션상 많이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2차전 후반전에는 측면에서 서로 몸싸움을 한 번 붙기도 했어요. 이젠 다 추억이죠.”

무서운 10대 이청용과 기성용, 그리고 관록의 수원

당시 서울에는 한국 축구의 기둥이 될 것이라는 10대의 기성용과 이청용이 있었다. 도봉중학교를 중퇴하고 2004년 서울 유니폼을 입은 이청용은 2006년 K리그 4경기에 출전한 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2007년 18세의 나이로 23경기에 나서 3골 6도움을 기록했던 이청용은 2008년에는 25경기 출장 6골 6도움으로 서울의 주전으로 도약했다. 2006년 서울에 입단한 기성용도 2007년 22경기에 출장하며 주전으로 낙점된 후 2008년에는 27경기에 나서 4골 2도움을 뽑아내는 등 서울의 핵심 선수가 됐다. 이 무서운 10대들은 서울이 좋은 성적을 내는데 일등공신이었다. 수원에서도 이 두 선수를 막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 했다. 수원은 기성용을 막기 위해 중원에 조원희와 송종국을 배치했고 이청용의 공격을 무력화하기 위해 김대의를 측면 수비로 돌리는 전술을 썼다.

2차전 경기가 열렸던 날은 강추위로 세상이 꽁꽁 얼었을 때였다. 하지만 무려 41,044명의 관중이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1차전에 세웠던 K리그 챔피언결정전 최다 관중 기록을 다시 한 번 깨는 경기였다. 챔피언결정전에 대한 팬들의 열기는 경기 시작 전부터 뜨거웠다. 수원행 좌석버스를 타는 사당역 정류장에는 경기 시작 두 시간여 전인 12시 이전부터 수십 미터의 줄이 늘어섰다. 경기가 열리는 수원월드컵경기장에는 평소보다 두 배 많은 매표소가 설치되기도 했다. 경기 시작 1시간 전부터 좌석을 가득 메운 서포터스가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응원가를 부르며 챔피언결정전이라는 축제를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연맹은 1차전에 이어 2차전에도 독일 출신 심판에게 휘슬을 맡겼다. 2차전 주심은 펠릭스 브리히였다. 브리히 주심은 이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는 물론 2014 브라질월드컵과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도 참가했다. 그 유명한 슈테판 키슬링의 ‘유령골’ 오심을 저질렀던 이가 바로 브리히 주심이었다. 골대를 벗어난 키슬링의 슈팅을 골로 인정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2018 러시아월드컵 스위스와 세르비아의 경기에서도 논란이 될 법한 오심을 내린 적도 있다. 지난 9월에는 부심과 대화를 나눈 이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퇴장 명령을 내린 주심이기도 하다. 어찌됐던 연맹은 이런 논란이 있기 전 브리히 주심을 초청해 K리그 챔피언결정전을 맡겼다.

기성용은 19살의 나이로 이 경기를 경험했다. ⓒ비바 K리그 방송화면 캡처

역사에 남을 2차전 명승부

경기 시작을 앞두고 수원 서포터스는 차범근 감독과 수원의 우승을 체스판에 비유한 대형 현수막을 펼치며 수원 선수들에게 기를 불어넣었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홈팬들은 수원의 상징인 파란색 카드를 들고 응원에 힘을 보탰다. 원정에 나선 서울 서포터스는 1차전 선보였던 깃발 퍼포먼스를 재현하며 응원전에 맞불을 놓았다. 이렇게 한 겨울 추위를 녹이는 뜨거운 한판 경기가 시작됐다. K리그 최고의 라이벌 두 팀이 K리그 우승을 놓고 펼치는 최후의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수원이 전반 11분 에두의 첫 골로 앞서 나갔다. 에두는 상대 수비가 클리어링 실수를 하자 이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슈팅을 날려 수원에 첫 골을 선사했다.

이때 수비 실수를 한 게 바로 최원권 코치였다. 최원권 코치는 아직도 이 순간을 아쉬워했다. “수원의 프리킥 때 제가 벽을 섰었는데 튕겨 나온 공을 걷어내려다 실수를 해 그 공이 짧게 떨어졌어요. 그걸 그대로 에두가 차 넣은 거죠. 에두가 머리도 좋고 뛰기도 많이 뛰고 기술까지 갖춰 수비수 입장에서는 막는 게 대단히 까다로웠어요. 10년 전 젊은 에두는 지금의 에두와는 또 달랐죠.” 최원권 코치는 그러면서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축구는 늘 전쟁이지만 슈퍼매치는 더 심했고 특히나 그날 경기는 잊을 수 없을 만큼 전투적인 분위기였어요. 사실 수원에서 뛰는 선수들도 다 친구들이거나 선후배들이어서 가까운 사이인데 그냥 막 들이받아 버렸죠. 당시에 VAR이 있나요 뭐가 있나요. 수비 입장에서는 상대를 괴롭혀야했고 우리 공격도 마찬가지도 상대 수비에 많이 당했죠.”

거친 경기는 수원이 앞서 나가며 어렵지 않은 승리로 가는 듯했다. 하지만 서울은 전반 25분 만에 동점에 성공했다. 이청용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정조국이 침착하게 성공시킨 것이다. 정조국은 골을 넣은 뒤 수원 서포터스석 앞에서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며 “조용히 하라”는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정조국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한테는 굉장히 아쉬운 경기로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그 감정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땐 정말 모든 게 좋았거든요. 귀네슈 감독님부터 팀 분위기와 선수 구성 모두 훌륭했습니다. 굉장히 기대로 많이 하고 열심히 준비한 경기였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굉장히 아쉬웠죠.”

기성용은 19살의 나이로 이 경기를 경험했다. ⓒ비바 K리그 방송화면 캡처

거짓말처럼 내리기 시작한 눈, 빅버드의 축제

그런 말이 나올 법한 경기 결과였다. 수원은 전반 36분 에두가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송종국이 키커로 나서 김호준이 공을 막아내자 이를 차 넣어 또 다시 앞서 나갔다. 당시 송종국은 골을 넣은 뒤 동료들 앞에서 볼링공을 굴리는 세리머니를 했고 동료들은 이 공에 맞아 쓰러지는 시늉을 하는 유쾌한 세리머니를 했다. 수원 서동현은 이 순간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는 일명 아데바요르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불과 이 경기가 열리기 두 달 전 이운재를 상대로 골을 넣은 기성용이 했던 바로 그 세리머니였다. 기성용에게 한 방 먹은 수원이 전하는 복수였다. 그리고 두 팀의 경기는 후반 들어서도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며 스코어 변동 없이 2-1로 계속 이어졌다. 수원 팬들은 우승을 앞두고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에서 응원을 이어갔고 서울 팬들은 초조하게 이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후반 종료 직전 드라마 같은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하늘에서 눈이 쏟아졌다. 수원월드컵경기장 하늘 위로는 하얀 눈이 흩날렸다. 마치 챔피언결정전의 분위기를 더하기 위해 누군가 뿌려 놓은 것 같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기는 수원의 2-1 승리로 끝이 났다. 1승 1무로 우승을 확정지은 수원 선수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환호했고 서울 선수들은 고개를 떨군 채 한 동안 그라운드를 빠져 나가지 못했다. 승자와 패자를 떠나 두 라이벌 팀이 K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나 명승부를 펼쳤고 마지막에는 명장면까지 연출되며 지금도 이 경기는 회자되고 있다. 딱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경기에 대한 인상은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렇게 수원은 2004년 우승 이후 4년 만에 라이벌 서울을 제압하며 통산 네 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서울은 우승은 놓쳤어도 무서운 10대들을 앞세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공격에서 수비로 보직을 바꿔 팀 우승에 기여한 김대의 현 수원FC 감독에게 당시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마치 어제 일처럼 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때 우리팀이 자신감이 넘쳤어요. 차범근 감독님이 (이)청용이를 맨투맨으로 맡으라고 해 제가 수비로 내려갔었거든요. 제가 오른쪽 측면에 섰고 마토하고 (곽)희주가 중앙에 있었고 왼쪽은 (이)정수가 섰어요. 원정 1차전에서 비기고 홈으로 와서 우리가 유리하다는 생각을 했죠. 안방에서 우승을 확정할 수 있겠다는 각본이 써져 있었잖아요. 그때 서울에 기성용과 이청용 등은 어린 선수였음에도 눈에 띄는 기량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했어요. 하지만 워낙 우리 팀 분위기가 좋아 결과가 잘못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기성용은 19살의 나이로 이 경기를 경험했다. ⓒ비바 K리그 방송화면 캡처

누구에겐 축복의 눈, 누구에겐 최악의 눈

이 경기는 라이벌전과 챔피언결정전이라는 점도 중요했지만 가장 회자되는 건 역시나 날씨 때문이었다. 후반 종료 직전 극적으로 내린 눈은 이 경기의 풍경을 더더욱 동화처럼 만들었다. 당시 현장에서 눈을 맞으며 우승을 경험한 조원희에게는 더더욱 특별한 날이었다. “날씨까지 그림 같은 장면을 연출해줬죠. 지금도 눈이 오면 그때 이야기를 항상 해요. 얼마 전에도 눈이 왔을 때 가족들과 동료들에게 10년 전 그날 이야기를 했습니다. 눈이 오면 2008년이 딱 떠올라요. 그런 날이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싶죠. 선수로서 리그 우승을 누구나 다 경험해 볼 수는 없는데 저한테는 그런 동화 같은 우승이 너무 감사한 일이죠. 축구를 오래 해왔지만 가장 뜻 깊었던 경기가 언제냐고 물으면 저는 바로 10년 전 그 경기를 꼽아요. 행복의 가치를 따졌을 때 저에게는 제 가족 만큼이나 행복을 준 경기였어요.”

김대의 감독에게도 이 날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저도 가끔 그 경기 영상을 찾아봐요. 특히나 경기 종료 직전 눈이 내리던 순간은 이 경기의 하이라이트였죠. 우리의 우승을 축복하는 눈 같았거든요. ‘아 하늘도 우리를 축하해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장면 때문에 수원삼성 응원가도 생겼잖아요.” 수원서포터스의 응원가 가사 중에는 이런 게 있다. “나의 마음에 환희를 또 한 번 더. 하얗게 눈이 내리던 그날처럼. 나의 마음에 소원을 또 한 번 더. 저 하늘 끝으로 날 데려가. La Banda와 저 바다를 넘어 여행을 떠나자.” 여기에서 ‘하얗게 눈이 내리던 그날처럼’은 딱 10년 전이었던 2008년 12월 7일에 있었던 그 경기를 뜻한다. 이 경기의 눈이 내리던 그 풍경은 K리그 역사에 남았다.

하지만 이날 우승을 놓친 입장에서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서울에서 뛴 최원권 코치는 10년 전 눈 이야기가 나오자 솔직하게 말했다. “아주 기분이 더러웠어요. 그렇게 더러운 기분이 또 있었을까요. 그냥 잊고 싶고 지우고 싶은 순간이죠. 프로의 세계에서 우승이 아니면 기억하지 않잖아요. 수원한테 아주 좋은 추억거리만 만들어준 경기였죠. 지금도 서동현이 이런 애들이 가끔 그걸로 놀려요. 걔가 깐족대는 걸로 아주 유명한데 제주에 있을 때도 그렇고 태국에 가서도 가끔 연락을 해 ‘눈 내리는 그날 기억 안 나느냐’고 해요. 기분이 되게 좋지 않은데 눈치 없이 늘 그래요. 그걸 어떻게 잊나요. 평생 못 잊죠.” 최원권 코치의 말에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멋진 순간 상대팀의 우승을 바라봐야 하는 기분은 10년 넘게 한으로 남은 듯했다. 거기에 서동현은 자꾸 기름까지 붓고 있다.

기성용은 19살의 나이로 이 경기를 경험했다. ⓒ비바 K리그 방송화면 캡처

10년 전 오늘을 추억하며

2차전에서 동점골을 기록했던 서울 정조국에게도 이 눈은 더더욱 패배를 아쉽게 만들었다. “경기가 끝날 때 쯤 눈이 내리는데 마음이 착잡하더라고요. ‘이 눈이 우리가 우승했으면 우리는 축복해주는 눈이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굉장히 컸어요.” 하지만 정조국은 그러면서도 이 멋진 경기의 일원이었다는 것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그래도 그 자리에서 함께 명경기를 연출할 수 있었던 것에 굉장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역사에 남을 경기에 함께여서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원권 코치도 명승부를 추억하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그때가 성용이와 청용이가 경기에 나서기 시작한지 아마 2년째 되는 시즌이었을 겁니다. 아마 경력이 1년 정도만 더 됐어도 상황이 확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물론 스포츠에 만약이란 건 없지만 그만큼 미련이 남는 경기라 이런 생각도 해보네요.”

조원희는 행복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어린 친구들한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저도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저도 그땐 어렸는데 당시에는 그게 얼마나 간절한지, 챔피언결정전까지 가는 게 얼마나 힘들고 소중한 경험인지 잘 몰랐어요. 저한테는 이제 그런 상황이 또 생길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능성이 낮잖아요.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죠. 젊은 선수들이 지금 이 순간이 훗날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느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2차전 전반전은 기억이 거의 없어요. 정신 없이 뛰었거든요. 제 기억 속에는 눈이 내리던 순간부터만 남아있어요.”

김대의 감독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죠? 근데 수원삼성은 그 10년 동안 리그에서 우승을 한 번도 하지 못했네요. 마지막 우승을 한지도 벌써 10년이 됐어요. 시간 참 빨라요.” 어제 저녁 대화를 나눈 조원희는 10년 전 이야기를 하다가 감상에 젖었다. “그러니까 10년 전 오늘(경기가 있기 전날)까지도 기억납니다. 선수들하고 미팅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어요. 오늘 밤은 딱 10년 전 오늘을 기억하며 그때의 감정으로 빠져보고 싶어요. 그리고 2008년 12월 7일로부터 딱 10년이 되는 순간에는 경기장에서 느꼈던 그 감정을 하루 종일 느껴보겠습니다. 오후 2시 경기였을 겁니다. 10년 전 경기가 시작된 오후 2시가 되면 딱 10년 전 그 감정이 더 살아날 것 같아요. 오늘도 눈이 올까요?” 조원희는 당시 경기 킥오프 시간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이 경기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아직도 선명한 기억이다. 또한 이 경기를 놓친 이들에게도 명승부와 명장면은 전설처럼 내려져 오고 있다. 그림과도 같았던 그 날을 기억하며 오늘은 하루 종일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을 것만 같다. 조원희의 말처럼 오늘도 눈이 올까. 10년 전인 2008년 12월 7일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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