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곽힘찬 기자] 이제 K리그는 어느덧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어느 선수에겐 이제 시작일 뿐이다. 장결희. 우리는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FC바르셀로나 유스’, ‘바르셀로나 트리오 중 한 명’. 하지만 이는 모두 과거일 뿐이다. 장결희는 이제 포항 스틸러스에 녹아들기 위해 홀로 담금질에 한창이다.
초등학교 3학년 동네에서 축구를 하다 우연히 숭곡초등학교 감독의 눈에 띄어 축구 선수의 꿈을 키운 장결희는 화랑대기에서의 활약으로 포항제철중학교에 스카우트 됐고 1학년 2학기를 앞두고 2011년 유럽 무대로 진출했다. 잔뜩 꿈에 부푼 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명문 FC바르셀로나 13세 이하(U-13) 유스팀의 일원이 되었지만 시련이 더 많았다. 바르셀로나가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징계를 받으며 경기에 뛸 수 없었다. 결국 그리스 리그로 눈을 돌려 또 다른 도전을 시도했지만 그마저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돌고 돌아 어린 시절 몸 담았던 포항으로 다시 돌아왔다.
올해 정식 선수등록이 불가능한 탓에 내년부터 K리그에 뛸 수 있는 장결희는 자신의 첫 프로 데뷔의 꿈을 이루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포항으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장결희는 유럽에서의 경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2019년을 앞둔 지금 새로운 도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장결희의 각오가 궁금했다.
지난 22일 구단 숙소인 포항 송라 클럽하우스에서 장결희를 만나볼 수 있었다. 포항 스틸러스의 지역 밀착 활동 중 하나인 ‘스쿨어택’에 다녀온 장결희의 얼굴은 무척 밝았다. 포항 선수들 사이에서 전혀 어색함을 찾아볼 수 없었던 장결희는 이제 유소년 티를 벗고 어엿한 성인 선수로 성장해있었다.
“포항은 ‘집’과 같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사실 장결희는 포항제철중 1학년 1학기만 보내고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떠났기 때문에 포항의 기억은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9월 포항에 합류한 장결희는 포항을 두고 “집에 돌아온 느낌이다”라고 표현했다.
“다시 돌아오니까 뭔가 아늑하다. 그래도 몇 개월 동안 있었던 팀이라 집에 온 기분이다. 아는 형들도 있어서 좀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는 장결희는 자신의 적응을 도와준 선수로 이진현, 김로만 등을 포함한 여러 선수들을 꼽았다. 특히 이진현은 장결희와 마찬가지로 유럽 무대인 오스트리아 빈에서 뛰다 포항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장결희의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포항으로 돌아왔지만 선수 등록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장결희는 경기에 나설 수 없었다. R리그 역시 뛸 수 없다. R리그 출전 선수 기준이 대한축구협회 등록 선수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테스트 선수로도 뛰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떻게 보면 성장하는데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경기 감각 문제 등을 비롯한 모든 것을 감수하고 온 것이다. 하지만 장결희는 “당장 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새로운 도전이라 생각하고 여기에 왔다”면서 “일단 동계 훈련 준비를 잘해서 무조건 K리그에 데뷔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장결희에게 포항 복귀는 크게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다. K리그 복귀 시 포항과 먼저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우선협상권’이라는 조항이 없었지만 장결희는 망설임 없이 포항을 선택했다. 장결희는 “일단 포항과 스타일이 잘 맞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포항은 ‘집’과 같다. 포항 측에서도 나를 원했고 나도 포항으로 가고 싶었다. 아무래도 더 친근하니 망설임 없이 포항을 선택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미치도록 뛰고 싶었다. 그래서 그리스로 갔다”
포항으로 돌아오기까지 정말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바르셀로나가 FIFA로부터 징계를 받으면서 3년간 공식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지난 2015년 칠레에서 열린 U-17 월드컵 대회 직전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했다. 장결희는 “미국 전지훈련 일정을 소화하고 대회가 열리는 칠레까지 갔지만 국내에서 훈련 도중 다친 발목 부상이 악화되면서 결국 돌아와야 했다”고 밝혔다. “그때는 정말 많이 힘들고 아쉬웠다. 부상은 뭐... 어쩔 수 없었으니까 그저 꾹 참고 훈련하면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는 장결희의 말에선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바르셀로나에서 3년 동안 공식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장결희는 정말 미치도록 뛰고 싶었다. 그리고 항상 간절히 바랐던 프로 데뷔의 꿈도 이루고 싶었다. 결국 그렇게 장결희는 바르셀로나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향한 곳이 그리스 1부 수페르리가의 아스테라스 트리폴리스FC였다.
프리시즌 기간 장결희는 1군 소속으로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상대팀은 그리스 최고 명문 클럽인 올림피아코스FC. 이 경기에서 오른쪽 윙어로 출전해 후반 30분을 소화했다. 아직까지도 그 경기에 출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는 장결희는 “확실히 올림피아코스는 명문답게 플레이가 좀 더 정교하고 기술적으로 뛰어났다.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밝혔다. 기자가 슬쩍 “지금 올림피아코스에는 야야 투레가 뛰고 있다”고 말해주자 장결희는 “만약 내가 지금까지 계속 아스테라스에 있었다면 야야 투레와 맞대결을 펼칠 수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꽤 아쉽다”며 웃었다.
당시 만 20세가 되지 않았던 장결희는 아스테라스 U-20 팀에서 꾸준히 경기를 뛰며 감각을 끌어올렸다. 흐름은 매우 좋았다. 2017년 9월 3일 지안니나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의 시발점 역할을 했고, 일주일 후 펼쳐졌던 라미나와의 경기에서는 PK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그렇게 장결희는 자신의 장점인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드리블 기술을 앞세워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그리스 리그에 각인시키고 있었다.
“정말 데뷔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루하루를 보내며 1군 승격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장결희의 발목을 잡았다. 에이전트와의 문제였다. 장결희는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에이전트와 문제가 좀 있었다. 그러한 외적인 부분들 때문에 더 이상 뛸 수 없었다”고 밝혔다. 홀로 그리스에서 생활했던 장결희는 어디 가서 토로할 곳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참았을 뿐이다. 장결희는 “그때 그런 것들을 언론에 얘기하면 핑계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뛰지 못했기에 장결희의 아쉬움은 더 컸다. “정말 데뷔할 줄 알았다”는 장결희는 “아무래도 스페인보다 그리스에서 데뷔하기가 좀 더 수월했기 때문에 정말 아쉽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그리스 때가 좀 더 미련이 남는다. 프로 데뷔를 꼭 외국에서 해보고 싶었는데...”라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유럽 생활은 값진 경험. 후회는 없다”
일부 팬들은 장결희의 K리그 진출을 두고 ‘실패’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럽으로 날아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그리스의 아스테라스에서 뛰며 국내 축구팬들에게 많은 기대감을 안겨 주었지만 결국 1군 데뷔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결희는 이 또한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실패? 물론 프로 데뷔는 하지 못했지만 전혀 실패가 아니었다. 유럽 생활은 모두 나에게 있어 값진 경험이었다”고 강조한 장결희는 “그리스에서 혼자 생활했다. 나 혼자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배웠고 시련이 닥쳐왔을 때 견뎌내는 법도 배웠다”고 말했다.
유럽 무대 두 곳을 경험한다는 것은 베테랑 선수들도 쉽게 겪지 못한 일들이다. 하지만 장결희는 20살이 채 되기도 전에 모두 견뎌냈다. 어떻게 보면 힘든 시기의 경험을 긍정적인 요소로 바꾼 것이다. 장결희는 “지금까지의 축구인생을 되돌아보면 후회스러운 일은 전혀 없었다. 모두 내가 성장하는데 있어 피가 되고 살이 됐다”고 강조했다. 외부적인 시련들은 장결희를 그렇게 한 층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바로잡습니다] 장결희는 ‘공격수’ 이기에 바로잡습니다
무거운 내용의 인터뷰가 계속되자 기자는 이 분위기를 풀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장결희에게 과거 N사가 서비스했던 게임 ‘피파온라인3’를 언급했다. 한때 피파온라인3에 ‘얼티밋 타이거 시즌'으로 장결희 카드가 등장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카드를 보면 주요 포지션에 풀백이 포함되어 있고 보유 칭호에 ‘완벽한 수비수’, ‘통곡의 벽’, ‘진공청소기’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장결희는 관련 사진을 보면서 “어, 이건 아닌데”라며 웃었다. 기자가 “나도 사실 그 게임을 할 때 장결희 카드를 풀백으로 썼다. 수비 잘하던데 수비수 아닌가?”라고 묻자 장결희는 “난 절대 수비수가 아닌 공격수다. 사람들 인식에는 내가 수비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늘 측면 공격을 봐왔고 그리스에서도 줄곧 공격수로 뛰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몇 개월 수비수로 뛰었을 때 기사가 한번 그렇게 나서 굳어진 것 같다”고 밝혔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FIFA 징계가 막 풀렸을 때였다. 오랫동안 기다린 장결희는 이제 공격수로서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고 싶던 참이었다. 하지만 감독이 수비수로 뛰어보라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했다. 장결희는 “이제 주 포지션에서 뛰나 싶었는데 감독님이 갑자기 풀백으로 한번 서보라고 하셨다.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뛰어보니까 전혀 맞지 않는 포지션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장결희는 연령별 대표팀에서도 풀백으로 뛴 적이 있다. 하지만 장결희에게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포지션은 측면 공격수였다. 현재 포항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최순호 감독 역시 “장결희는 수비수가 아닌 공격수다”라고 설명하며 내년 시즌을 앞두고 장결희를 공격자원으로 분류했다.
장결희는 다시 강조했다. “아직 오해를 하고 계신 팬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수비수가 아닌 공격수다. 내년 시즌 K리그에서 공격수로 뛰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무기는 젊음. 먼저 포항의 장결희가 되겠다”
유럽 무대에서 아쉬운 시간을 보내고 K리그로 왔지만 장결희는 전혀 조급해하지 않는다. 이제 21살이다. 지금까지 보낸 시간보다 앞으로 보내야 할 시간이 더 많다. 장결희는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는 ‘젊음’이 아닐까 싶다. 아직 어린 나이인 만큼 나에게 기회가 더 많이 주어져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장결희에게 2019년은 매우 중요한 해다. 그토록 원했던 프로 데뷔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유럽 진출. 장결희는 “K리그에서 잘해서 다시 유럽으로 나갈 것이다. 아무래도 유럽에서 프로 데뷔를 못했기 때문에 미련이 있다. 일본, 중국이 아닌 반드시 유럽에서 다시 도전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의지를 드러냈다.
이제 당장 3년이라는 시간동안 포항과 함께 해야 한다. 장결희는 ‘집’과 같은 포항으로 돌아온 만큼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무엇보다 팀에 가장 도움이 되고 싶은 선수가 되고 싶다. 내년에 포항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장결희는 내년 시즌 목표를 “10골”로 잡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데뷔만을 먼저 생각하고 싶다는 장결희의 말에선 그가 얼마나 경기를 뛰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1군에서 활약할 기회를 찾아 스페인과 그리스를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장결희. 그간 많은 고난과 시련들이 장결희를 괴롭혔다. 정말 뛰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외부적인 요소들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많은 언론들과 팬들은 그를 두고 ‘실패’한 선수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들이 오히려 장결희를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 장결희’로 불렸지만 이제부터 ‘포항의 장결희’로 각인되고 싶은 장결희는 내년을 위해 지금도 홀로 땀을 흘리고 있다. 유럽에서 K리그로 돌아오기까지 정말 최선을 다했다. 이제 이런 장결희를 그저 묵묵하게 지켜보며 조용히 응원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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