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퀸컵? 즐거운 축구 수학여행이었다”

K리그 퀸컵
K리그 퀸컵은 축구 축제였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포천=김현회 기자] 지난 24일 저녁 포천 베어스타운 리조트에 여대생들이 전세 버스를 타고 몰려 들었다. 다들 트레이닝복을 입고 얼굴은 추위 때문에 빨갛게 상기돼 있었지만 그래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들은 이날 오전부터 경기도 포천축구공원에서 열린 2018 K리그 퀸컵(K-Win컵)에 참가한 학생들이었다. 아마추어 축구를 즐기는 여대생들을 위한 대회였다. 총 15개 학교 16개 팀이 참가해 살아남은 8개 팀은 이렇게 다음 날 8강 토너먼트를 앞두고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저녁 식사 후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

축구 축제, 그리고 20대 대학생들의 공감
축구 대회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소셜 네트워킹 파티였다. “자 여기에서 맥주를 제공해 드리니 가져다 드세요.” 진행자의 안내 멘트가 나오자 여대생들은 저마다 캔맥주를 집어 들고 축제를 즐겼다. DJ가 경쾌한 음악을 틀자 베어스타운 리조트는 마치 클럽이 된 듯했다. 한바탕 댄스 파티가 펼쳐졌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그라운드를 누비던 ‘서울대 메시’와 ‘이화여대 호날두’, ‘한양대 즐라탄’이 EDM에 맞춰 화려한 댄스를 선보였다. 딱 영락없는 대학생의 풋풋한 모습이었다. 그라운드에서 경쟁하던 이들은 서로 뒤섞여 춤을 추며 즐거워했다. 이 끼를 어떻게 숨기고 있었나 싶다.

파티가 끝난 뒤에는 강연이 이어졌다. 방송인 곽정은 작가가 토크 콘서트의 강연자로 나서 ’20대의 연애’라는 주제로 대학생들의 고민을 듣고 함께 해결하는 시간을 가졌다. 축구 대회에서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강연자처럼 보였지만 20대 여대생들에게는 가장 큰 관심사에 대한 강연이었다. 행사를 기획한 인스파이어드아시안매니지먼트 이동준 대표는 “강연자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면서 “20대가 어떤 걸 고민하고 있을지 생각해 보다가 ‘연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아 곽정은 작가를 섭외했다”고 밝혔다. 꽤 의미 있는 강연이었다.

이후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를 제작한 매쓰씨앤지 이희곤 대표와 축구평론가 장원재 교수가 참석해 ’20대의 꿈’이라는 주제로 대학생들의 진로 문제에 관한 강연을 열었다. 진지한 이야기가 이어졌고 강연이 끝나자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상대팀 선수들과 전화번호를 교환하며 친목을 다졌다. 포천 베어스타운 리조트의 밤은 이렇게 깊어졌다. 축구 대회에서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추억을 쌓는 시간이었다. 이들은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다음 날 아침부터는 또 다시 그라운드에서 상대팀이 돼 격돌했다.

K리그 퀸컵
곽정은 작가가 20대 대학생들을 상대로 토크 콘서트를 펼쳤다. ⓒ프로축구연맹

하버드에서도 오고 몽골에서도 오고
해당 대학 재학생이나 휴학생, 졸업생도 참여할 수 있는 대회라 독특한 이력의 참가자도 많았다. SNUW FC(서울대)에는 하버드대학교에 온 교환학생도 있었고 FC천마(한국체대)에는 졸업 후 경찰 공무원 준비를 위해 기숙 학원에 다니다 잠깐 짬을 낸 선수도 있었다. 외국인 선수도 많았다. FC여우락(성균관대)에는 몽골 국적의 바트뭉히강벌러르라는 선수도 속해 있었다. 다양한 국적의 또래 대학생들이 모인 의미 있는 자리였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팀마다 아시아 쿼터 선수가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FC여우락(성균관대) 소속 몽골 국적의 바트뭉히강벌러르는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면 한국인이라고 믿어도 될 정도였다. 그는 “엄마, 아빠가 한국으로 일을 하러 오셔서 10년 전에 한국에 왔다가 이곳에 정착했다”면서 “오히려 몽골어를 기본적인 수준으로 하고 한국어를 더 잘한다”고 웃었다. 바트뭉히강벌러르는 “첫째날 밤 진행한 파티 덕분에 다른 학교 친구들과도 친해졌다”면서 “전화번호도 교환했다. 서울에서 만나 같이 밥을 먹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강연 내용도 재미있었다”며 “우리가 공감하고 관심사인 것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금방 다른 학교 학생들과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만들었다.

FC여우락(성균관대) 김소은도 “숙소가 참 좋았다. 원래 이렇게 한 숙소에서 다 묵는 대회가 없었는데 색다른 경험이었다. 방이 너무 지글지글 끓어 아침에 일어났더니 더웠다”고 웃으며 “파티도 재미있었고 밥도 맛있었다”고 말했다. 연맹에서는 이 대회를 위해 지역별로 버스를 대절했고 숙소와 식사를 제공했다. 2010년 처음 시작된 이 대회는 이렇게 9년 동안 빠짐 없이 진행 중이다. 이 대회를 통해 여대생들도 축구에 대한 관심이 키우고 더 나아가 K리그의 홍보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들은 이미 친구가 돼 있었다
조연상 K리그 사무국장은 “축구를 즐기는 여학생들이 많아지는 건 한국 축구를 위해 긍정적인 현상”이라면서 “9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이 대회가 대학교 동아리 축구 발전의 기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원래는 1년 동안 개최된 대학생 아마추어 여자 축구대회에 포인트를 부여하고 산정된 랭킹에 따라 상위 12팀만이 참가하는 대회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지방에 있어 대회에 자주 참가하지 못한 팀들의 의견을 받아 이번 참가팀도 16개로 늘렸다. 연맹은 참가비를 전혀 받지 않고 모든 비용을 지원했다. 경기장에는 밥차와 커피차까지 출동했고 대회 첫날 폭설이 내리자 인근 FC KHT 김희태 축구센터에서 제설을 돕기도 했다.

첫째 날 밤 파티에서 가장 열심히 댄스를 선보인 ESSA(이화여대) 전수빈은 “다들 수학여행에 온 느낌이었다”면서 “요새 여대생 축구대회가 꽤 있어서 여러 번 대회에 나가봤지만 이렇게 파티를 열어주고 숙박까지 제공하는 곳은 없었다. 밥도 잘 챙겨주고 다른 학교 학생들과 대화를 할 시간도 많아 즐거웠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전날 파티와 강연을 통해 이미 친구가 돼 있었다. INHA WICS(인하대)와 SNUW FC(서울대)의 4강전 경기 도중에는 작은 충돌이 있었지만 이들은 경기가 끝난 뒤 서로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몇 살이에요?”라고 묻더니 “어? 동갑이네. 우리 말 놓자. 아깐 미안했어”라며 곧바로 친구가 됐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첫날 폭설이 내려 제설 작업을 하는 바람에 경기를 전후반 각각 10분씩으로 축소해 치르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한 선수는 “경기 시간이 짧아서 뭘 하려고 하니 경기가 끝났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시간을 줄이는 것보다 다른 대안을 모색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시상식에 참석한 프로축구연맹 한웅수 총재는 “정말 고생 많았고 내년에 또 뵙겠습니다”라는 말로 대회를 마무리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 대회에서는 FC 천마(한국체대)가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SNUW FC(서울대)를 제압하고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K리그 퀸컵
우승 확정 후 눈물을 흘리는 한국체대 FC천마 선수들의 모습 ⓒ프로축구연맹

1박 2일의 즐거운 축구 수학여행
K리그가 한국 축구에 기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K리그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 올리고 팬들에게 더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가장 먼저다. 하지만 이렇게 저변을 확대하는 것 또한 한국 축구를 위한 길이다. 9년째 진행되고 있는 이 대회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축구를 즐기고 추억을 쌓아나가길 기원한다. SNUW FC(서울대)와 4강전에서 승부차기를 벌여 패한 INHA WICS(인하대)는 패배가 확정되자마자 다같이 골키퍼에게 달려가 위로의 박수를 보내고 그를 꼭 끌어 안았다. SNUW FC(서울대)를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한 FC 천마(한국체대) 선수들은 끝내 눈물을 쏟았다. 포천 산골에서 열린 작은 대회지만 이 안에는 ‘희노애락’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즐거운 수학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footballavenue@sports-g.com

이 기사의 단축 URL은 https://www.sports-g.com/pSsbg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