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들만 쫓아다니다 어느새 형이 된 남준재의 세 번째 인천 이야기

남준재
ⓒ 인천유나이티드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돌고 돌아 다시 인천으로 왔다. 두 번 인연을 맺기도 쉽지 않은데 올해 세 번째로 인천 유니폼을 입었다. 인천의 희로애락을 직접 체험하고 밖에서도 지켜봤다. 현재 인천유나이티드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는 문선민이지만 ‘인천’ 하면 이 선수를 빼놓을 수 없다. 임중용도 아니고 전재호도 아닌 남준재다.

남준재는 2010년 드래프트 1순위로 인천에 처음 발을 들였다. 이후 전남과 제주를 전전하다 2년 만에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다. 그는 2015년 FA가 되어 성남으로 향했다. 이어 아산무궁화에서 제대한 이후 성남에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며 미지급 급여에 대한 분쟁도 겪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남준재는 세 번째 인천과 인연을 맺은 만큼 인천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그만큼 정신이 번쩍 드는 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세 번째 인천과 인연을 맺은 남준재가 바라본 인천은 어떤 팀일까. 인천의 ‘레골라스’ 남준재를 <스포츠니어스>가 만났다.

만나서 반갑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지난 강원전 승리 후 좋은 분위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A매치 휴식기 동안 남은 경기를 위해서 재정비하고 개인적으로도 팀적으로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여름에 인천으로 돌아왔다. 세 번째 인천 생활은 어떤가.
똑같은 것 같다. 신인 때나 두 번째 돌아왔을 때나 세 번째나. 그 사이에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어쨌든 팀에 세 번째로 돌아왔는데 리그 환경이 변한 것 같다. 한 팀에 오래 있었다면 몰랐을 텐데 다른 팀도 다녀오고 이러다 보니까 변화가 보이는 것 같다.

팀보다는 리그에? 어떤 면이 변했을까.
일단 리그 제도가 플레이오프에서 스플릿 제도로 바뀌지 않았나. 이 시기쯤 되면 긴장감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냥 플레이오프 떨어지는 팀들은 시즌이 일찍 끝나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돌아올 때는 스플릿 제도가 생기면서 시즌 끝날 때까지 긴장감이 계속 있다.

인천 유니폼만 해도 세 번째 바꿔 입었는데 팀이 똑같나.
하하. 유니폼도 바뀌기도 했고. 파고 들어가면 사실은 너무 많이 변했다. 15년 이전까지만 해도 인천이라는 팀이 중위권, 좀 더 바라본다면 ACL도 바라볼 수 있는 여건이 있었던 팀이고 또 그만한 색이 어느팀보다 확실했었다. 어느팀 보다도 팬들의 응원이 엄청나고. 그런데 거기에 걸맞지 않은 성적이 아쉽다.

세 번째로 온 만큼 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것 같다.
물론. 프로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팀이고 대학 때 가장 밀접하게 관계를 맺었던 곳이 인천이었다. 그만큼 편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각별한 것 같다. 지금까지 수많은 선배님들이 계셨고 앞으로 더 많은 선수도 나오겠지만 과연 리그에 저만큼이나 이 팀에 애정을 느끼고 다시 돌아올 기회를 얻을 선수가 있을까. 그만큼 애정도 있고 역할도 있는 것 같다. 특별한 것 같다. 인생 슬픈 거, 기쁜 거, 희로애락을 다 겪는 것 같다.

처음 인천에 왔을 때도 지금처럼 외국인 감독이었다. 페트코비치 감독은 어떤 분이었나?
페트코비치 감독님은 유연하셨다. 부드러운 이미지였다. 그땐 신인이었고 그때만 해도 아직 선후배 관계가 정말로 타이트했던 것도 있었다. 지도자분들도 그랬고. 페트코비치 감독님은 외국인 감독님이셨지만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엄청 편하게 해줬던 것 같다. 특히 어린 선수들한테.

안데르센 감독은 북한팀을 이끈 경험이 있어서 타이트한 편인가?
그런 걸 떠나서 감독님 성향 자체가 강한 편이다. 플레이나 환경적인 걸 봤을 땐 감독님도 외국인 선수 생활을 오래 하시다 보니까 선수로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가 엄청 강하신 것 같다. 지도 스타일도 강직한 분이신 것 같다.

안데르센 감독이 세부적으로 주문하는 내용이 있나.
디테일한 면이 확실히 있다. 전술이나 세트피스를 일일이 준비하신다. 중요 포지션 선수들과 면담도 하신다. 개인적으로 저한테는 플레이 스타일도 주문하지만 경기장 안에서 리더십을 강조하신다. 인천이라는 팀이 실점이 늘었다. 수비 탓만 할 수는 없다. 공격에서 수비적인 주문도 많이 하시고 개인적으로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공격적인 부분도 신경 써야겠지만 수비적인 부분에 신경 쓰고 있다.

인천에서 뛸 때마다 좋은 동료 공격수들이 많은 것 같다. 예전엔 문상윤, 한교원, 이번엔 문선민, 아길라르 등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야 발전이 있지 않겠나. 제자리에 머무는 것보다 지금 뛰면서 경쟁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고 느낀다. 어렸을 땐 정말 힘들었다. 경쟁이란 게 하루하루 치열하다 보니까 다른 생각 없이 이 선수만 잡자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그것마저도 감사할 정도로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 끝날 때까지 경쟁할 수 있다는 것. 경쟁하면서 공을 찰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남준재
성남에서 인천에 다시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 인천유나이티드

성남에서의 분쟁, 인천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세 번째 인천으로 오기 전, 구단 공식 발표보다 팬 계정을 통해 인천에서 훈련하는 사진이 먼저 올라왔다. 본인도 공식 발표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나.
좀 조심스러웠다. 그 전의 팀과는 계약적으로 마찰이 있어서 풀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적이 급속도로 진전되기도 했다. 물론 공식 발표도 기다렸지만 조심스러웠다. 그때 당시 인천은 감독님도 선임이 안 된 상태여서 더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보니까 그렇게까지 공식 발표를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이적 얘기를 좀 더 해보자. 성남에서 미지급 급여나 훈련 제외를 두고 분쟁이 있었다. 그래서 팀을 옮길 때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나
많이 있었다. 상당히. 사실 그런 경험은 하지 말아야 할 경험이기도 하고. 비일비재한 일이긴 한데 제가 수면 위로 올렸을 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가지 말하고 싶은 건 축구인들이 머리를 맞대서 많은 노력을 하지만, 그 누구도 선수 인권이나 권익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 모든 스포츠가 선수 권익이 보호되지 않으면 리그 발전이 없을 것 같다. 결국엔 선수들이 모든 걸 해내야 되지 않나. 선수들이 좋은 환경에서 그 좋은 모습으로 플레이를 펼치고 그 모습을 팬들이 보러 오지 않겠나. 안타깝다. 이런 부분에서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구성원들이 좀 더 책임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 분쟁 때문에 겨울이 아닌 여름에 이적하게 된 건가?
사실은 여름 이적도 쉽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냈고, 이겨내야 했다. 저뿐만 아니라 분명히 피해 가는 선수들이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에 제가 주저앉아 버리면 그런 선수들한테도 용기를 줄 수 없다고, 어떻게든 이겨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팀을 옮기려고 생각한 게 더 이른 시기 아니었나.
사실은 제대하자마자 팀을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준비했지만 쉽지 않았다. 계약 기간도 남았었고 불합리한 조건을 제시받았고 쉽지 않았다.

기간이 문제가 됐었나. 이적이 늦어진 배경이 궁금했다.
여름에도 이적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쨌든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선수협(FIFPro)의 도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선수협이 계약이나 규정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상기시켜줬다. 규칙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서로 준비를 해서 소송도 걸고, 조정위원회도 들어가 봤고. 선수협에서 많은 일을 도와줬고 저뿐만 아니라 대전, 안양, 포항 선수들도 많은 힘을 얻었다. 선수협이나 선수들이 더 많은 생각을 해줬으면 한다. 선수협이 사람들 인식 속에서 좋은 모습으로 발전하면 좋겠다.

팀을 옮기려고 했을 때부터 인천이 가장 먼저 생각났나.
가고는 싶었지만 부담스러웠다. 제가 좋은 모습이 아니었고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제 마음엔 인천이 있었고 인천을 가고 싶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었지만 많이 힘들었다. 폐가 될 것 같기도 했다. 제가 인천에 있을 때 팬들이 좋아했던 모습이 아니라 소속팀에서의 소송이나, 제대하고 나서의 모습이 팬들에게는 안 좋게 보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인천은 그런 걸 감수하고 저를 영입하려고 했다. 죄송하고 미안했다. 마음은 인천에 있었지만 많은 고민을 했다.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인천보다 더 좋은 조건의 다른 팀들도 있었지만 옛날과 같이… 그냥 그리웠다. 서포터스의 개인 응원가를 너무 듣고 싶었고 인천 경기장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사실 몰래 경기도 많이 보러왔었다. 그러다 보니까 다른 데는 생각 못 하겠더라.

인천을 떠나 있을 때 다시 인천으로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나.
전혀. 군 입대 전에 성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성남에서 마무리 짓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K리그의 상황상 선수가 팀에 남고 싶다고 해서 남아있을 수만은 없다. 그래서 인천으로 다시 오는 게 쉽지 않았다. ‘팬들이 과연 좋아할까? 나는 지금 좋은 상황이 아닌데 옛날처럼 날 다시 반겨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한한 거 같다. 인천이라는 팀에 끌림이 있는 게 사실인 것 같다. 이제 다른 팀은 못 가겠다. 사실 인천을 처음으로 떠날 때도 제 의사랑 상관없이 갔고 성남도 제 의지랑 상관없이 갔다. 그러다 보니까 저는 가기 싫은데,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른다.

그럼 네 번째로 돌아올 생각은 절대 없겠다
하하. 그것도 장담을 못 하겠다. 여기는 장담할 수가 없다. 여기서 끝을 맺고 싶다. 네 번째 상황이 온다면 진짜 전무후무한 일이 되는 것 아닌가. 이제 나이도 있고. 인천에서 선수 인생 마지막을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싶다.

아무튼 세 번째 인천행이 결정됐을 때 기분은 어땠나.
아… 그때 정말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관계자들이 서로 눈치를 엄청 봤다. 인천에서는 빨리 결정을 냈으면 좋겠다고 했고. 근데 다른 팀에서도 오퍼가 있으니 회사에서도 고민하고. 저는 인천을 가고 싶은데 조심스럽고 너무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까. 이러고 있다가 딱 계약서가 도착하고 난 뒤에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눈물도 나려고 했고. 6개월 동안 너무 힘들었고 다른 팀도 아닌 제 가슴속에 있는 팀에 다시 갈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복잡한 감정이 있었겠다.
그렇다. 희로애락이라는 게 터져 나오더라. 그때 사장님이 ‘됐다’라고 할 때 이미 심장은 멈춰있고, 터질 거 같았고. 이튿날 바로 인천으로 넘어와서 지금 인터뷰를 하는 이 스카이박스에서 사인했는데, 사인하고 나서 30분 동안 운동장만 보고 있었다. 6개월 동안 운동장에 나가본 적이 없어서 너무 뛰고 싶었고, 자신감도 있었고. 너무 심정이 복잡해서 어떻게 단정 지을 수 없었던 거 같다.

운동장을 바라본 그 30분 동안 어떤 생각이 들었나.
원래 전광판 쪽에 선수들 사진이 걸려있지 않나. 저기 원래 제 사진이 걸려있었다. 근데 내 사진이 없더라. 바꾸고 싶었다. 그리고 제대하고 나서 지금까지 고생했던 거, 가족들한테 미안한 거, 그런 생각이 들었고 서포터스석으로 가서 큰절을 올리고 싶었다. ‘만약 선발로 뛰면, 교체돼서 뛰면 큰절을 올리자. 난 이번 시즌 그거면 됐다. 뛰고 싶다. 뛰고 싶다.’ 이런 생각? 그리고 첫 복귀전에서 바로 서포터스석으로 가 큰절을 올렸다.

그래서 팬들이 당신을 많이 아끼는 것 같다.
모르겠다. 팬들이 어떻게든 좋게 봐주시는 거니까. 다행이지 않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남준재
레골라스 세리머니 비하인드 방출 ⓒ 인천유나이티드

그는 왜 활을 쏘게 됐나

팬들 얘기가 나왔는데 지난 7월 FC서울을 상대로 골을 넣은 뒤 경기가 끝나고 팬들이 당신의 응원가를 불러줬다. 그때 당신이 울었던 게 기억난다.
진짜 울려고 안 했다. 인터뷰하고 대기실로 들어갔었어야 했는데 괜히 그거 해서 저도 모르게 울어서. 저는 전혀 울지 몰랐다. 그때 승리도 했고 팬들이 응원가도 불러 주시고 저는 가서 웃으면서 그 상황을 즐기려고 했다. 아, 이상하게 눈물이 나더라. 그냥 혼자 ‘가슴속으로 많이 안고 있었구나’ 했다. 울보가 돼버렸다.

괜찮다. 이제 울보는 이정빈이 됐다.
다행이다. 정빈이는 아직 아기니까 괜찮은데 아저씨가 울면 좀 그렇지 않나.

골 넣고 울었을 때가 서울전이었다. 조금 있으면 또 서울과 만나야 한다.
인경더비는 특별한 거 같다. 서울과는 많이 붙었지만 어려운 시기, 반등해야 하는 시기에 꼭 승점을 땄다. 그래서 이번에도 기대가 되고 선수들이나 모든 이들이 기대하고 있을 거 같다. 저도 인경더비만큼은 좀 더 집중하는 편이다. 특히 이런 시기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게 준비해야 하지 않겠나.

그게 인천만 그런 것도 아니고 서울도 그러더라. 꼭 서로 힘들 때 이기더라
하, 그렇게 막 주고받는다. 서울이 우리 홈에 왔을 땐 힘을 못 쓰는데 반대로 우리가 원정 갔을 땐 힘을 못 쓴다. 지금은 근데 또 상황이 달라졌다. 둘 다 비슷해졌다. 해봐야 알 거 같다. 서로 자신감이 있겠지만 지금은 우리가 더 자신 있다.

그렇게 복귀 골도 넣고, 전북을 상대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제가 인천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인천이 유독 전북에 강했다. 홈에서든 원정에서든 전북에만큼은 쉽게 지지 않고 강했던 거 같다. DNA가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전북에 그렇게 인천 선수들이 많이 갔나 보다.
전북의 주축 선수들도 인천 출신이었고 계속 영입하는 선수들도 인천 선수들이었다. 그 선수들이 어떻게든 전북에서 성적 내고 하는 거 보면, 인천 출신들이 K리그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선수들인 거다. 인천에서 신인 생활을 거쳐 간 선수들이 리그에도 많고 인천에서 한참 전성기를 누린 다음 팀을 옮기고 잘하는 선수들이 많다.
그래서 좀 더 아쉬운 거 같다. 제가 처음 왔을 때 인천이라는 팀은 색이 확고했고, 리그에서 성적을 내는 팀이었고 경쟁력이 있던 팀이었는데. 물론 지금도 선수들은 정말 대단한 선수들이다. 말이 안 될 정도다. 인천 역사상 이렇게까지 좋은 외국인 선수들이 있었나 싶다. 그러나 팀으로 봤을 때 이건 아니다. 결국 축구는 팀 스포츠고 성적이 결과를 말해준다. 팀으로 봤을 때는 너무 안타까운 거다. 그런 시즌을 몇 년째 보내고 있지 않나. 거기에 비해서 좋은 선수들이 나온다는 건, 여기 땅이 좋은 건지… 신기하기도 하다.

좋은 선수들이 있으니 꼭 잔류로 증명해야 할 것 같다. 가장 만나고 싶은 팀도 있을 것 같은데.
성남. 그냥 보여주고 싶다. 가장 만나고 싶은 팀이고. 더 독하게 마음먹은 거 같다. 여름에 온 뒤로 지금 손이 거의 세 번 부러졌다. 매 경기 너무 지기 싫었고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나 아닌 누구에게도 그런 실수는 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어쨌든 우리가 잔류해서 만나게 된다면 결과로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에도 골을 넣고 활을 쏴야 할 거 같다.
하하. 그러면 좋겠지만 저 말고도 좋은 공격수들이 많다. 물론 저도 욕심을 내겠지만 저는 연결고리가 되는 위치에서 플레이하는 게 이번 시즌 인천에서의 역할이고 마지막까지 그 역할을 제가 해야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세리머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반지의 제왕은 재밌게 봤나.
반지의 제왕은 OCN에서 아직도 하더라. 제가 엄청 좋아한다. 반지 원정대를 OCN에서만 4번 본 거 같다.

정말 멋진 세리머니다. 이 세리머니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다.
이야, 이게 또 옛날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게 참 여담이 많다. 이게 어떻게 나왔냐면 제가 12년도 때 인천 넘어오지 않았나. 그때 선수들끼리 문화가 생겼다. 운동 끝나고 마지막 하루 정리를 사우나에서 하는 거다. (설)기현이 형, (김)남일이 형이랑 다 같이 갔다. 12년도 때 훈련하고, 사우나하고 마무리하고 있는데 제 기억으로는 구본상이었을 거다. 걔가 “형, 골 넣으면 세리머니 뭐 하실 거예요”라고 하길래 “난 뭐 없는데?”라고 하니까 “형. 형수님도 계시고 곧 결혼도 하셔야 하는데 사랑의 큐피드 화살이라도 쏴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하더라. 처음 들었을 땐 쑥스러워서 “야, 그런 걸 어떻게 하냐” 그러고 말았다.
그런데 바로 그 주에 포항 원정을 가서 두 골을 넣었다. 순간적으로 ‘아, 이거 쏴야 한다’하고 생각났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냥 갑자기 활 쏘는 세리머니가 나왔다. 그렇게 활을 쏘니까 팬분들도 좋아해 주시고, 지금 와이프도 좋아하더라. ‘아, 이거 나만의 무기가 될 수 있겠다.’ 그러면서 골 넣기 시작하고, 그걸로 팬들한테도 어필하고. 당시 제 꿈은 제가 화살을 쐈을 때 서포터스가 제 화살을 맞고 다 쓰러졌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했다. 그때는 팬들한테 쏘는 사랑의 화살이라고 했는데 사실 여자친구한테 쐈던 화살이었다. 반반이었다. 와이프에게 반. 서포터스에게도 쏘고.

프러포즈도 경기장에서 하더니 로맨티스트 어디 안간다. 원조 ‘레골라스’ 올랜드 블룸의 최근 영화는 봤나?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또 나오더라.
애 낳고 나서 TV는 본 적이 없다. 영화도 안 본 지 너무 오래됐다.

그 양반도 세월은 못 이기더라.
많이 늙었나? 그렇겠지. 반지 원정대가 언제적 영화인가.

그런데 당신은 서른이 넘고도 어떻게 그렇게 잘 뛰나. 나는 이제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다.
원래 체력이 좋은 것 같다. 정말 어렸을 때는 아무것도 안 먹어도 막 뛰었다. 지금은 뛸 때와 안 뛸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거 같다. 어렸을 때 베테랑 선배님들 보면서 ‘저 형은 경기장에서 긴장도 안 하시나? 힘들지도 않나? 뭘 먹고 저렇게 잘 뛰시지?’하고 생각했다. 그때는 남일이 형, 기현이 형, (전)재호 형, (임)중용이 형 잘 뛰는 선배들이 엄청 많았다. 진짜로. 그때 중용이 형도 서른셋, 넷 했는데 저 형들은 뭐 하는 형들인가 생각했다. 개인적인 생각은 이동국 선수도 그렇고 서른 넘어가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충분히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다. 선수들 나이가 30대를 넘어갔을 때 노장 취급이 아니라 베테랑 대우, 레전드 대우를 해준다면 기본적으로 35살 때까진 20대 못지않게 충분히 경기장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 뛸 수 있는 건 선수 경력이 길어지면서 뛸 때를 구분하는 것, 그리고 포지션 역할을 이해하고 뛰는 게 가장 큰 비결인 것 같다. 또 간절함도 있고. 간절한 게 가장 큰 거 같다. 조금 아쉬운 게 제가 동계를 잘 소화하고 팀과 함께 훈련을 잘했다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게 아쉽다.

남준재
남준재는 세 번째로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 ⓒ 스포츠니어스

신인, 중간, 베테랑

첫 번째 인천은 신인이었고, 두 번째는 중간, 세 번째 인천 소속이 되니 어느덧 베테랑이 됐다.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나? 베테랑이라는 말을 듣는 게 아직 많이 어색하다. 저도 아직 배워야 할 단계인데. 사실 운동장에서나 밖에서나 말을 많이 하는 걸 안 좋아하고 안 하려고 하는데 어쨌든 인천에 와서 인터뷰나 대내외적으로 쓴소리를 많이 했다. 해야 할 상황이었고. 저는 너무 간절했고 이런 모습이 싫었다. 인천이 이 순위에 있는 것도 싫었고 개인적으로 밝은 미래를 보고 싶었다. 지금 베테랑이란 말을 듣기엔 선배님들 앞에서 많이 부족하다.

워낙 인천에 좋은 선배들이 많았다.
엄청났다. 임중용, 코치님이라고 말하는 것도 어색하다. 저도 모르게 “형님, 형님” 할 때마다 당황스럽다. 코치님도 계시는 앞에서 그리고 제 위 선배님도 많으신데 제가 베테랑이라는 말을 듣는 게 부담스럽다. 좀 더 노련해지고, 인천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좋은 미래가 보인다면, 그때 가서 들으면 좋을 거 같다.

동생들은 당신을 많이 따르나.
모르겠다. 말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인데 하려다 보니까 많이 힘들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남일이 형, 기현이 형 있을 때 나도 20대 중반밖에 안 되던 어린 선수였다. 제가 그 형들을 따랐던 건 커리어때문이 아니다. 그 사람들의 인성과 인간적인 모습에 따랐다고 생각한다.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제가 운동장에서 더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고 경기에서 제가 좀 더 간절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런 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선수라면 더 열심히 해주지 않을까. 그런 조그마한 것 하나였다. 그런 게 어린 선수들, 구단, 팬들에게 조금이라도 자극이 된다면 그래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나. 옛날에 형들이 저한테 보여줬던 걸 생각하면서 그 모습을 최대한 보여주려고 생각했다.

세 번의 인연을 맺은 인천인데 어떤 게 가장 다른가?
첫 번째는 신인이라 아무것도 몰랐다. 저도 나름 적어도 국내에선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생각하고 자신감이 있었다. 대학 때 연습게임도 프로랑 뛰면 차이가 없었다고 생각해 자신감도 있었다. 프로에 왔을 때 충분히 제가 많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벽에 많이 부딪혔고 부족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다녔고 주눅도 들고.
두 번째 왔을 땐 내가 여기서 뭔가 하지 않으면 축구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제주에서 안 좋은 시기를 겪고 돌아왔기 때문에 축구에 대한 미련 같은 게 생겼다. 내가 가진 걸 다 못 보여주고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내 몸에 베어있는 모든 걸 보여줬던 거 같다. 다행히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이었고. 김봉길 감독님, 형님들이 워낙 저를 잘 챙겨주셨고 잘하게 만들어줬다. 제 역량을 다 펼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지금 돌아왔을 때는 반대로 저에게 형님들이 했던 것처럼 하려고 한다. 팀에 어리지만 재능있는 선수들도 많은데 성적이 안 좋다 보니까 저 혼자만의 공격 포인트나 저 혼자만의 경기만 생각하면 팀이 큰일 나겠구나 싶더라. 결국 팀이 살아남고 K리그1에 있어야 그 어린 선수들이 축구천재, 영플레이어상 후보 소리도 듣지. 솔직히 떨어지면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나. 그러다 보니 나 혼자 살면 안 되겠더라. 내가 어린 애들한테 본보기도 보여야 하고 팬들한테도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많이 변하면서 지금 이렇게 경기를 치러나가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은 인천만 오면 항상 잘하는 거 같다. 그런데 팀은 힘들 때도 많았다.
처음에 입단할 때는 인천이 중위권의 끈끈한 팀이었다. 두 번째 돌아왔을 때는 전반기에 1승밖에 못하고 후반기에 기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어떻게든 잘 맞물려서 19경기 무패라는 시민구단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인천이라는 팀을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인천의 경쟁력을 보여줬고 시민구단이지만 모범이 될 수 있는 팀이었다.
올여름에 돌아왔을 때 그때 상황과 비슷했다. 후반기 반전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팀 컬러가 아예 달라져 가는 상황이어서 아쉬웠다. 저 한 명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고 중간에 부상 때문에 당분간 팀을 떠나있었고. 제가 좀만 더 했다면 대구처럼 상위를 바라볼 수 있는 흐름이었는데. 그게 너무 아쉽다. 지금 잔류를 달성한다면 충분히 12년만큼의 가치가 있지 않겠나. 그보다 더한 가치가 있지 않겠나.

예전 수비가 단단한 끈끈함도 있지만, 승강제 이후로 항상 살아남는 끈끈함도 보인다.
그게 종이 한 장 차이다. 제가 생각하는 끈끈함은 11명, 넘어서 선수단 30명, 그걸 넘어 구단과 선수단의 관계, 넘어서 팬들과의 관계다. 전반기 끝나고 합류했을 때 선수와 구단, 팬이 분리되어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뭔가 어수선했다.
물론 이렇게 살아남고 있는 게 끈끈함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선수단, 인천이라는 팀의 이름값을 봤을 땐, 이건 아니다. 매년 강등권 싸움하면서 피 말리는 건 인천이 아니다. 인천이라는 팀은 11명을 넘고 30명을 넘고 팬들까지 세 조합이 확실한 상황에서 어느 팀을 만나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제가 인천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런 모습이었다. 자부심과 자존심이 있다. 그게 제가 정의할 수 있는 인천의 끈끈함인 것 같다. 다른 팀, 다른 선수, 다른 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K리그에서 인천은 지금 절대 이렇게 있어야 하는 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팀이 변한 만큼 본인도 많이 변했을 거 같다.
생각이 많이 변한 것 같다. 몸 관리나 생활 면에서 성숙해졌고 경기장 안에서는 더 여유로운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됐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팀을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고, 경기 안팎으로 성장한 거 같다. 그래도 정체되지 않아서 지금까지 축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선수로 기억이 되고 싶나.
저는 그냥 ‘인천에는 남준재가 있었다’ 이거면 된다. ‘K리그에 남준재가 있었다’가 아니고 인천 얘기할 때 ‘그때 남준재가 있었지.’ 인천은 임중용, 전재호, 그다음엔 남준재다. 그게 제 목표다.

‘투게더’로 유명한 라돈치치는?
라돈? 아, 그건 말이 안 되지. 안돼. 안돼. 딱 중용이 형, 재호 형, 그 다음 저 남준재다. 아니면 또 누가 있나.

이윤표는?
아, 윤표 형도 충분히 그런 가치가 있는데… 암튼 인천에는 남준재. 중용이 형, 재호 형, 윤표 형은 모두 수비수니까. 공격에는 남준재. 팬뿐만 아니라 축구 좋아하고 사랑하시는 인천 시민들이 ‘거, 옛날에 남준재 있었잖아’ 그것만 해도 제 축구 인생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인천과 세 번째로 계약한 남준재는 이렇게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꿈도 꾸고 있었다. 인천만 떠나면 부진하거나 불행했던 과거를 떨치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남준재의 바람처럼 팀의 전설로 남아 ‘인천 공격은 남준재’로 통하길 기대해 본다.

intaekd@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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