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산 무궁화 제공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27일 잠실올림픽주경기장.

서울이랜드와 아산무궁화의 KEB하나은행 K리그2 2018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여기서 아산은 승리할 경우 자력으로 K리그2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중요한 경기였다. 하지만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아무리 아산이 잘하고 있지만 잠실 원정만 되면 마법처럼 축구를 못하는 팀이 아산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 세트피스 찬스에서 키커로 김도혁이 등장하는 것이다. 사실 아산에는 프리킥 등을 찰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하다. K리그에서도 최고 수준이라 평가 받는 자원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이날 유독 세트피스에서 킥을 준비하는 선수는 김도혁이었다. '무슨 일이 있나?' 생각했다. 박동혁 감독의 변칙 전술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보니 사연이 있었다.

감스트와 아산의 약속, "우승할 때 만나자"

사실 얼마 전 김도혁은 BJ감스트를 만났다. 8월이었다. 감스트는 휴가 차 아산에 내려온 김에 축구장을 방문했다. 감스트는 아산 유니폼을 구매하고 이순신종합운동장을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선수단을 만났다. 박동혁 감독과 김도혁, 주세종과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김도혁에게는 '절친' 문선민이 이미 추고 있는 '관제탑 댄스'를 전수하기도 했다.

불과 시즌 초만 하더라도 김도혁은 '관제탑 댄스'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문선민의 골 뒤풀이를 보고 "도대체 무슨 춤을 춘 것인가"라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이제 '관제탑 댄스'를 확실히 알았다. 원조인 감스트가 전수해줬기 때문이다. 박동혁 감독과 김도혁은 그 자리에서 감스트와 한 가지 약속을 했다. "김도혁이 골을 넣는다면 관제탑 댄스를 추겠다. 대신 감스트는 우리가 우승하는 경기에 방문해달라."

ⓒ 아산 무궁화 제공

기약 없는 약속이었다. 아산이 1위를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고 김도혁이 골을 쉽게 넣을 위치도 아니었다. 그리고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감스트였다. 일단 누군가는 약속을 지켜야 상대방에게 약속 이행을 촉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 쪽 모두 약속을 이행하려면 시즌 막바지로 가야 했다. 그렇게 서로 공약을 하나씩 주고받은 아산과 감스트는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우승 확정 경기에 감스트가 없다

그리고 약 2개월이 지났다. 아산은 1위를 눈 앞에 두고 있었고 김도혁은 서울이랜드전에 선발로 출전했다. 여기서 승리를 거둔다면 우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감스트는 없었다. 박 감독과 김도혁의 입장에서는 못내 섭섭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딱히 할 수 있는 말은 없어 보였다. 김도혁이 약속한 '관제탑 댄스' 뒤풀이는 단 한 차례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산 입단 이후 김도혁의 득점 수는 '0'이었다.

김도혁은 이번 경기에서 적극적으로 골을 노렸다. 성과는 전반 14분 만에 얻었다. 프리킥 상황에서 김도혁이 키커로 나섰고 날카로운 킥을 올렸다. 이는 서울이랜드의 자책골로 이어졌다. 김도혁은 그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우리 팀에는 킥 정말 잘 차는 선수들이 많다. 그런데 내가 잘 찬다는 이미지는 없다. 나는 '숨겨둔 비밀병기' 쯤으로 생각해달라. 그런데 그거 내가 득점한 걸로 기록해주면 안되나…" 기록은 안성빈의 자책골로 판단했다.

물론 '자책골 유도 뒤풀이'를 하는 FC안양 김경준 같은 선수도 있지만 김도혁은 골 뒤풀이를 하지 않았다. 득점 상황이 애매했기 때문에 할 상황이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아산은 점점 서울이랜드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후반 2분 이명주의 골이 터졌을 때는 모두가 아산의 우승을 직감했다. 두 골 차는 K리그2 최하위 서울이랜드가 뒤집을 수 있는 차이가 아니었다. 아산은 점차 여유 있게 경기를 하기 시작했다.

박동혁 감독의 한 마디, "네가 차"

후반 14분 아산은 또다시 기회를 얻었다. 조성준이 측면을 돌파하며 페널티박스에 진입한 이후 김태은과 충돌하며 넘어졌다. 주심의 휘슬은 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공이 밖으로 나가자 VAR 판독 선언을 했다. 그러더니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세 번째 골을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주심의 페널티킥 사인을 보면서 박 감독은 기뻐하던 도중 한 이름을 떠올렸다. '감스트.'

감스트가 우승 확정 경기에 오지 않았으니 우승 시상식이 열리는 경기에라도 감스트를 불러야겠다는 것이 박 감독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박 감독은 수비수이자 주장인 민상기에게 외쳤다. "상기야, 도혁이가 차라고 해라." 민상기는 김도혁에게 말했다. "감독님이 네가 차래."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김도혁은 박 감독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골 넣고 관제탑 댄스 추라는 뜻이구나.' 그렇게 김도혁은 침착하게 페널티킥을 성공시키고 관제탑 댄스를 췄다. 어설프지만 추긴 췄다.

ⓒ 아산 무궁화 제공

결국 아산은 이후 김륜도의 추가골까지 묶어 4-0 대승을 거두며 K리그2 우승을 마음껏 자축했다. "원정에서 우승을 확정짓고 홈에서는 편하고 재밌게 즐기면서 시상식을 만끽하고 싶다"라는 박 감독의 소망이 실현된 셈이었다. 우승의 분위기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볼 거리가 풍성해야 한다.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박 감독은 다음 경기에서도 주전을 모두 투입하는 구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구상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감스트가 오는 것이다.

김도혁에게 주어진 또다른 미션, 감스트 섭외

경기 후 믹스드존에는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박 감독은 믹스드존을 지나다 큰 소리로 한 마디 외쳤다. "아니 감스트 아산좀 오라고 해요. 오늘 와야 하는데 오지를 않았네. 감스트 오라고 기사좀 써주세요." 자신들은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 감스트가 약속을 지킬 차례라는 박 감독의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인터뷰 도중 듣고 있던 김도혁은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감스트 섭외하려고 알아보고 있다. 무조건 섭외할 거다."

비결은 문선민이었다. K리그에 '관제탑 댄스'를 들여온 장본인인 문선민은 종종 감스트와 연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도혁은 이 인맥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내가 문선민에게 감스트와 '단톡방'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놓은 상황이다. 그런데 문선민이 '오케이'라고 하더니 움직이지를 않더라. 이 참에 문선민에게도 빨리 '단톡방' 만들어 달라고 얘기해달라."

시간은 촉박하다. 아산의 시상식은 11월 4일 FC안양과의 홈 경기에서 열릴 예정이다. 불과 일주일 가량의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김도혁은 의경으로 복무 중이다. 주어진 일과를 마친 다음 '싸이버지식정보방' 등을 통해 감스트를 섭외해야 한다. 쉽지는 않은 미션이다. 그래서 김도혁은 "감스트가 이 기사를 꼭 봐야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내가 약속 지켰으니 이제 감스트가 약속을 지킬 차례다."

김도혁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김도혁의 SNS 상 닉네임은 '꿈은 이루어진다'다. 그는 지난 경기 맹활약으로 프로 사상 첫 리그 우승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아산을 위해 감스트를 시상식에 섭외하려고 한다. 김도혁은 아산에서 보내는 첫 해에 많은 꿈을 이루려고 한다.

사실 그는 한 가지 꿈이 더 생겼다. 친정팀 인천유나이티드와 K리그1에서 맞붙는 것이다. 친정팀과의 맞대결은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지만 우승컵을 차지하자 조금씩 욕심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최근 경찰청의 선수 선발 중단 통보로 인해 아산은 승격은 커녕 팀 존폐 위기에 놓여있다. 김도혁의 마지막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말 복잡한 난제를 풀어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인천은 최하위다. 팀이 살아남기만 한다면 K리그2에서 친정팀을 만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지지 않고 받아쳤다. "나와 박세직이 응원하고 있는 인천은 절대 강등 당하지 않는다. 내가 장담한다. 인천은 내려올 일 없으니 아산이 올라가야 한다. 친정팀을 만나게 된다면 그것은 K리그2가 아닌 K리그1에서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승격하고 싶다. 얼마 전에 휴가를 받아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 갔다. 다시 그곳에서 뛰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아산 유니폼을 입고 있더라도 거기서 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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