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수호신. '국가, 민족, 개인 등을 지키고 보호하는 신'이라는 뜻이다. FC서울을 응원하는 서포터스의 이름도 'FC서울 지지자연대 수호신'이다. 서울 서포터스는 경기마다 "그대들이 가는 길 우리가 지켜주리라"라는 대형 걸개를 난간에 걸치고 응원을 펼친다.
2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FC서울과 강원FC의 K리그 경기가 펼쳐졌다. 서울은 전반전 동안 강원을 상대 진영에 몰아넣으며 공격을 펼쳤다. 오랜만에 서울의 힘을 본 것 같다. 최용수 감독의 복귀가 효과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서울 골문 뒤쪽에 자리 잡은 서울 서포터스 '수호신'도 집으로 돌아온 최용수 감독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그리고 후반 5분 서울이 좋은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상황에서 박희성의 패스 실패가 나왔다. 서울 골문 뒤에 있던 수호신은 머지않아 그들이 좋아하는 스트라이커 박주영의 이름을 크게, 계속, 매우 오래 외쳤다. 그들의 응원이 있고 약 7분 후 박주영은 몸을 풀다가 후반 12분 윤주태와 교체됐다. 이들의 응원은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응원이었다. 하필이면 박희성의 실책 이후 나왔던 응원이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박주영이었기에 그의 활약을 보고 싶었던 수호신의 응원이었다고 믿고 싶다. 서울 선수들이 몸을 푸는 구역은 서울의 서포터들이 있는 쪽이었으니까. 그러나 타이밍이 너무 좋지 않았다. 가뜩이나 박희성은 서울 팬들의 공격을 받았던 선수다. 그의 실책이 이어지자 서포터들은 박주영의 이름을 외친 것 같았다. 적어도 취재석에서 바라본 그들의 연호는 "어서 박희성을 빼라. 박주영을 투입해라"라는 느낌이었다. 제발 내 느낌이 틀렸기를 바란다. 내 느낌이 맞다면, 그 응원이 박희성에게는 너무 가혹한 응원이었기 때문이다.
에스쿠데로는 좋지만 박희성은 싫다?
박희성은 전방에서 좋은 움직임을 보여줬고 매우 성실하게 뛰었다. 현실적으로 현재 서울의 최전방 자원 중 그런 활동량을 보여줄 수 있는 자원은 박희성뿐이다. 마티치는 느리고, 윤주태와 박주영의 무기는 활동량보다는 센스이기 때문이다. 박희성도 충분히 자신의 몫을 해냈다. 전반전에는 그의 신체적인 장점을 이용해 무게 중심이 뒤로 쏠리는 상황에서도 골문 안쪽으로 슈팅을 기록했다. 물론 이 슛이 이범영에게 막혔고, 오른쪽 측면에서 잡은 두 번째 기회에서는 반대쪽 포스트가 아닌 가까운 쪽 포스트를 노리면서 아쉬운 마무리 장면이 나오긴 했다.
서울 팬들이 박희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략 알고 있다. 박희성은 이번 시즌뿐만 아니라 서울에 입단했을 때부터 최전방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서울 팬들이 원하는 서울의 스트라이커는 골을 기록할 수 있는 공격수다. 박희성의 기록만 살펴봐도 그의 골결정력은 뛰어난 편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떠오르는 선수가 있다. 최전방에서 '우당탕' 뛰어다니면서 '탱크' 역할을 했던 에스쿠데로다. 그러나 에스쿠데로와 박희성을 대하는 서울 서포터스의 온도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들은 에스쿠데로를 좋아했으니까.
최용수 감독은 두 가지 유형의 공격수를 선호하는 편이다. 한 유형은 우수한 결정력을 갖춘 '골잡이', 그리고 다른 유형은 상대 수비진을 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괴롭힐 수 있는, 소위 말해 '비벼주는' 선수다. 최 감독은 에스쿠데로나 박희성에게 골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이 골을 자주 기록하는 선수가 아님을 최 감독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을 정상으로 이끌었던 최용수 감독이 어째서 에스쿠데로나 박희성 같은 유형의 선수를 기용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다른 이유가 없다. 앞에서 뛰어달라는 의미다. 이날 선발 투 톱으로 나선 선수 중 골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는 윤주태였다. 박희성에게 기대했던 건 상대 수비수에게 혼란을 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박희성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그러나 패스 실책이 이어지고, 서울 서포터스의 '박주영' 연호까지 이어지며 박희성의 플레이는 눈에 띄게 나빠졌다. 그중 가장 두드러졌던 모습은 패스 실책이다. 단순히 박스 앞에서 동료에게 찔러주지 못했던 그 패스가 아니라 패스마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건 결국 자신감의 결여다.
누가 그의 자신감을 앗아갔을까
전반전에 그렇게 잘 뛰어다니던 선수가 후반전 실책 이후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몸을 풀던 박주영이 교체 투입을 위해 하프라인 근처로 향할 때 팬들은 환호했다. 팬들이 어떤 생각이었을지 궁금하다. 모르긴 몰라도 '박희성을 빼겠지'라고 예상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최용수 감독의 선택은 박희성이 아닌 윤주태였다.
최 감독은 박주영의 투입 시점에 대해 "박주영을 향한 응원 소리를 듣지 못했다"라고 했지만 진위는 가리기 힘들다. 애초에 최 감독은 경기 전부터 박주영 투입 계획이 있었다. 확실한 건 그 상황에서 박희성을 뺐다면 그의 정신적 충격이 꽤 컸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의 자신감을 끌어올리기가 더 어려워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최용수 감독은, 그래서 오히려 박희성에게 더 기회를 줬을 수도 있다. 박희성을 더 오래 남겨두는 게 그의 자신감을 위해서라도 좋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최 감독은 그렇게 했다.
최용수 감독이 서울로 복귀하자마자 내린 진단 중 하나는 선수들의 '자신감 결여'였다. 승리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선수단 전체에 퍼진 주눅 든 분위기를 감지했을 것이다. 자신감이 떨어지면 슈팅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FC안양의 에이스 정재희도 자신감의 차이를 설명한 적이 있다. 한 번 자신감이 올라오면 골문 앞에서 두려울 게 없다고 했다. 반대로 자신감이 생기지 않으면 슈팅이 무서울 정도라고 했다. 현재 서울에서 가장 자신감이 필요한 선수는 단연 박희성이다.
그들의 라이벌 수원삼성도 잘 알려지지 않은 걱정이 있었다. 기회를 받지 못하는 공격수들의 자신감 결여였다. 사실 수원 서포터들도 박기동과 김종민에게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러나 수원 서포터들은 적어도 그들이 나올 때 데얀과 염기훈을 찾지는 않았다. 수원 코치진은 김종민과 박기동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부상 회복을 돕고 계속 출전 기회를 줬다. 그리고 최근 김종민과 박기동은 수원이 필요할 때마다 중요한 골을 넣어줬다. 박희성은 지난 상주전에서 팀의 귀중한 선제골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서울 서포터들에게 신뢰받지 못한다. 그가 선발로 나설 때마다 서포터들은 불만부터 터뜨린다. 그의 자신감을 앗아간 건 누군가.
"그대들이 가는 길 우리가 지켜주리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서울 팬이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 팬은 얼마 없는 박희성의 팬이다. 그 팬은 10월 초 FC서울과 인천유나이티드의 R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R리그는 팬들과 선수들의 소통이 비교적 쉬운 편이다. 그 팬은 주변인의 눈치를 보면서도 박희성에게 자신이 그의 팬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런데 돌아온 박희성의 대답은 "에이"였단다. "감사합니다"가 아닌 "에이"였단다. 서울에도 자신의 팬임을 믿지 못하는 선수가 있다는 게 더 충격이었다. 그것도 자신감이 가장 필요한 공격수가.
냉정한 평가와 비판은 경기가 끝난 이후에 해도 충분하다. 서울 서포터들은 경기를 뛰고 있는 공격수들의 기를 죽였다. "그대들이 가는 길 우리가 지켜주리라"라고 하던 서포터들이 지켜줄 사람을 골라낸 것이나 다름없다. 경기 시작과 함께 정신 차리라며 선수들을 깨우는 모습은 좋았다. 그리고 박주영의 응원 구호는 박주영 투입 후 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교체로 투입되지 않은 선수를, 그리고 교체 투입을 준비하고 있지 않은 선수의 이름을 그렇게 크게 외친 건 그때 경기장에서 죽을힘을 다해 뛰고 있는 다른 공격수들에 대한 매너가 아니다. 그때 윤주태와 박희성의 마음은 어땠을까. 다른 선수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감히 헤아리기도 어렵다.
박희성은 이번 시즌 부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늘 서울이라는 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다. 그는 한 달 전 "항상 서울에서 경기에 나설 때마다 나는 이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 경기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뛰었고 오늘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절박한 경기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남은 경기는 매 경기 진짜 엄청 중요한 경기다. 선수들은 준비부터 잘하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다음 경기 출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온 정신을 다 해서 준비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박희성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정말 열심히 뛴다. 색안경부터 끼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의 누군가. 그를 지켜주는 사람은 위에서 말한 팬을 제외하면 어디에 있나.
이날 박희성은 후반 45분 에반드로와 교체됐다. 그는 터치라인 밖으로 빠져나오고 나서도 곧바로 벤치에 앉지 않았다. 그 추운 날씨에 땀에 젖은 유니폼을 입은 채 벤치 앞에 서서 간절한 마음으로 운동장을 지켜봤다. 후반 종료 직전 서울의 공격이 펼쳐질 때 강원의 핸드볼 파울로 의심되는 장면이 나왔을 때는 그도 함께 핸드볼 파울이라며 강하게 어필했다. 그는 90분 동안 충분히 잘해줬다. 터치라인 밖에서도 잘해줬다. 그도 서울의 유니폼을 입고 뛴다. 그도 서포터들이 말하는 '그대들'의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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