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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가시마 앤틀러스 골키퍼 권순태가 또 한 번 논란이 됐습니다. 이번 인터뷰 거부 논란만큼은 저도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권순태는 지난 2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가시마 앤틀러스와 수원삼성의 AFC챔피언스리그(ACL) 4강 2차전에서 그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습니다. 비록 후반전에 무너지면서 3실점을 기록하긴 했지만 그가 보여줬던 선방 능력은 여전했습니다.

가시마 홈에서 펼쳐졌던 1차전에서 그는 임상협에게 박치기를 해 논란이 됐습니다. 권순태를 특별히 옹호하거나 비난할 마음은 없습니다. 사실 비판의 여지는 권순태보다도 그날 경기의 주심이었던 바레인 출신의 나와프 슈크랄라 심판에게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퇴장성 파울에 옐로카드만 줬기 때문이죠. 딱히 한국 선수 임상협에게 거칠게 했다거나 1차전 이후 그의 인터뷰 발언에 토를 달 생각은 없습니다. 권순태는 가시마의 주전 골키퍼로서 경솔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가 비판받아야 할 여지는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궁금한 점도 있었습니다. 권순태가 ACL 4강 1차전 이후 인터뷰에 응한 매체는 일본 매체였습니다. 2차전이 수원 홈에서 열리는 경기였고 권순태의 출전도 유력했기에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그러나 그는 경기 하루 전 열리는 기자회견에서도 인터뷰를 거부한 데 이어 경기 후 결승에 진출하고도 국내 매체, 일본 매체와의 만남을 거부했습니다.

권순태의 인터뷰는 크게 두 가지의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위에서 말한 '발언의 사실 여부'였고 다른 하나는 '수원 팬들의 야유를 감당하고도 결승에 올라가 실력을 증명한 점'이었습니다. 좀 더 확장하면 '가시마 팬들의 한글 응원 문구를 보며 느낀 점'까지 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터뷰 거부 사건으로 또 다른 논점이 생깁니다. '프로 선수 인터뷰 거부의 정당성 여부'입니다.

결국 그가 앞선 경기에서 말했던 "한국팀에 지기 싫었다"라는 발언의 진위와 상대 팀 팬들의 야유를 감당하고도 팀을 처음으로 ACL 결승에 올린 정신력은 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주 나중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정도로 나오면 다행일 겁니다. 그래서 논점을 확장하려 합니다. 권순태의 인터뷰 거부는 옳았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그의 인터뷰 거부는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이러면 유럽 축구랑 다를 게 뭘까."

이러면 유럽 축구랑 다른 게 뭔가요?

물론 권순태의 처지를 이해합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는 국내에서 '악역'과도 같았습니다. K리그(대중의 맥락은 한국이었죠) 대표로 나선 수원의 임상협에게 거칠게 행동했으며 일본 매체를 만나 "한국팀에 지기 싫었다"라고(알려진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과 일본의 축구판은 라이벌 같은 존재입니다. 그의 발언이 국내 축구팬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도 사실입니다. 굳이 국내 매체를 만나도 그에겐 '득'이 없었을 겁니다. 어떤 말을 꺼냈어도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도 권순태는 국내 매체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습니다. 그가 프로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의 역할은 그저 축구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을 차는 것 이외에도 팬들, 미디어와의 소통을 감당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가시마의 주전 골키퍼로서 결승에 올라간 걸 자랑스러워해도 좋고 '경솔했다'라며 미안함을 밝히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죄송합니다" 한 마디로 취재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믹스드존을 떠난 건 프로 선수로서의 직무를 유기한 것과 같습니다. 멀리 한국까지 찾아와 한국어 걸개를 들며 그를 응원한 가시마 팬들은 그의 목소리를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주: 이 글을 작성한 다음날, 그러니까 오늘(26일) 아침 국내 언론사를 통해 단독 인터뷰 전문이 나왔습니다.)

믿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기자도 일을 합니다. 그날 믹스드존에는 국가대표팀 경기를 연상시킬 만큼 많은 기자들이 몰렸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1차전에 일본까지 찾아가지 못한 '죄책감'도 있었을 겁니다. 그 죄책감을 씻기 위해서 권순태를 기다린 기자들도 있었을 겁니다. 어쨌든 그의 육성을 한국어로 들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는 2차전 경기가 끝나는 시점까지 논쟁거리였습니다. 권순태를 보호하려고 기자들이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현장을 찾은 기자들의 직무 유기였을 겁니다.

"이러면 유럽 축구랑 다를 게 뭘까."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직무 유기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저도 <스포츠니어스>의 사람인지라 쓸데없는 '객기' 같은 게 있습니다. '어차피 모두의 관심은 권순태에게 있을 테니 나는 정승현을 하겠다. 오늘 잘하기도 했고'라는 게 제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권순태의 이야기를 다른 동료 기자와 선배들에게 떠넘긴 거죠. 반대로 아무도 안 하려고 했다면 제가 하려고 했을 겁니다. 어쨌든 권순태가 어떤 말이라도 한다면 국내 매체를 통해 팬들과 독자들에게 잘 전달될 테니까요. 물론 저도 묻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그렇게 수많은 기자들이 있는데 제가 생각하는 질문들은 모두 나올 것 같기도 했고요. 마이크만 들이대고 그대로 받아쓰느니 정승현과 인터뷰를 하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았거든요.

양 팀 감독의 기자회견을 마치고 믹스드존으로 나온 기자들은 권순태를 수 십 분 동안 기다렸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원정 팀 라커룸 쪽을 힐끗 쳐다보는 일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라커룸을 나오는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도 아마 질문 거리가 됐을 겁니다. 다른 가시마 선수들이 한둘 씩 빠져나가는 동안 그는 정승현과 함께 막바지에 나왔습니다. 정승현은 인터뷰에 임했지만 권순태는 그대로 선수단 버스로 향했습니다. "한마디만 해달라"라는 말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갔습니다. 그와 면식이 있는 기자들도 꽤 있었을 텐데. 그를 하염없이 기다렸던 취재진은 많이 허탈했을 겁니다.

옆에서 이 장면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동료 기자들과 선배들을 보며 '저들도 일하려고 나온 걸 텐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그렇게 이어지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러다가 한 생각에서 멈추더군요. "이러면 유럽 축구랑 다를 게 뭘까. 결국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 내용은 진위를 추측할 수밖에 없고, 그의 '입말' 보다도 그가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모습으로만 그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구나. 우리는 또 박주영을 쓸 때처럼 '받아쓰기'를 할 수밖에 없겠구나."

"이러면 유럽 축구랑 다를 게 뭘까."

염기훈은 무슨 잘못이 있어서 인터뷰를 하나요

AFC는 챔피언스리그 대회 요강에 "각 참여 클럽은 AFC가 발표한 지침에 따라 (중략) 기자 회견 및 기타 미디어 및 마케팅 활동을 포함한 모든 공식 활동 및 행사에 참여한다"라는 문구를 넣어 놨습니다. 규정에 나타난 '클럽'의 정의 범위가 선수까지 포함하는지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포함되지 않는 것도 이상하죠. 어쨌든 선수는 클럽과 계약을 맺고 클럽의 유니폼을 입으며 클럽에서 뛰는 선수니까요. 그 클럽 팬들의 응원을 등 뒤에서 받으면서 말이죠.

심지어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도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습니다. 기자들은 궁금했을 뿐이에요. 딱히 권순태에게 '선한 사람, 악한 사람' 프레임을 씌울 의도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죠. 믹스드존 인터뷰는 대부분 건조하게 나가는 편입니다. 그걸로도 모자랄 땐 이렇게 사설을 씁니다. 판단은 글을 읽는 독자들과 팬들의 몫입니다. 경기에서는 그렇게 강한 멘탈을 보여준 선수가 믹스드존에서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사실은 더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염기훈은, 그래서 더욱 권순태와 대조됐습니다. 이번 시즌 수원은 홈에서 재미를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수원이 아쉽게 비기거나 질 때, 믹스드존에 나선 현장 기자들은 어쩔 수 없이 염기훈에게 인터뷰를 요청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날이 이어지면서 기자들은 "이번에도 염기훈에게 물어봐야 하나… 미안한데…"라며 어렵게 그를 붙잡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염기훈은 단 한 번도 인터뷰를 거부한 적이 없습니다. 이겼을 때나, 졌을 때나 인터뷰의 분위기만 달랐고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러면 유럽 축구랑 다를 게 뭘까."

염기훈은 아쉬운 ACL 결승 진출 좌절에도 기자들과 만났습니다. 그는 "끝까지 집중하고 냉정함이 있었어야 했었는데…"라면서 쉽게 말을 잇지 못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인터뷰에 응해줬습니다. 그는 "팬들의 응원은 완벽했어요. 저도 몸을 풀려고 들어갈 때 소름이 돋을 정도였어요. 우리가 승리했다면 정말 완벽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권순태를 향한 야유에 대한 생각을 염기훈의 입에서 들을 수 있었죠. 그는 "(권)순태도 야유는 선수로서는 감당해야 할 부분이고, 순태도 오늘 경기에서 잘 감당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해줬습니다.

염기훈이라도 말해줘서 다행입니다. 한때 전북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선수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권순태의 생각을 추측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씁쓸함을 떨치기엔 부족합니다. 이것도 결국은 추측에 불과하니까요. 권순태는 수원 팬들에게 악감정을 표출하든, 사과하든, 임상협에게 사과한 일을 다시 한번 얘기하든 아니면 최소한 취재진 앞에 서서 1차전에서 일어난 헤프닝을 제외한 질문만 받겠다고 먼저 얘기를 하든 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데얀이 FC서울에서 수원으로 팀을 옮겼을 때도 데얀은 "서울에 대한 질문은 자제해 달라"라고 요청했습니다. 권순태 정도의 프로 경력이라면 이 정도 인터뷰 스킬은 있어야 합니다.

염기훈은 무슨 잘못이 있기에 항상 기자들과 만나 "죄송하다"라고 말해야 하나요. 시즌 초반 끔찍하게 지루했던 슈퍼매치에서도 그는 수원 선수단의 대표로 기자들과 만나 "죄송하다"라고 했습니다. 아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염기훈은 그렇게 힘든 마음을 움켜잡으며 팬들과 미디어와 소통합니다. 그래서 염기훈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여전히 수원의 기둥 역할을 해냅니다. '프로 선수'라는 건 그만큼의 자격을 보여줘야 합니다. 땅을 치고 오열해도 모자랄 경기 결과를 얻고도 그는 미디어와 소통했습니다. 결승에 진출한 권순태는 헤드셋을 쓴 채 빠른 발걸음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염기훈과 대조되어 더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이 사설을 작성한 이후 국내 언론사와 권순태의 인터뷰 전문이 발행됐습니다. 그는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오해가 풀려서 다행입니다. 다만 해당 기사에 나온 이야기는 가시마 앤틀러스의 '선수' 권순태로서 믹스드존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인터뷰 거부는 염기훈과 대조돼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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