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K리그, ‘그 편집장’에게 고이 잠들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소극장 연극을 가끔 보러 갈 때가 있다. 사람도 별로 없고 배우들은 가난하다. 친구 놈 중에 한 명은 이 연극 바닥에서 10년 넘게 버티고 있다. 나는 연극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늘 응원은 보낸다. 나하고는 별로 관심 없는 분야지만 저주를 퍼붓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런데 만약 연극 기획자나 평론가 중에 누군가 “여러분, 왜 이따위 공연을 보러 옵니까? 여기에 세금도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라고 한다면 굉장히 의아할 것이다. 적어도 이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악담에 가까운 저주를 퍼붓는 것 보다는 응원, 아니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콘텐츠는 없고 사공만 많은 K리그
한 인터넷 방송에서 답답한 이야기를 들었다. ‘옐로우카드3’라는 인터넷 방송이었다. 여기에 나온 한 축구 전문 잡지 편집장은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간략하게 줄이자면 이런 내용이다. “세금을 축내는 시·도민구단은 해체하거나 실업리그로 가야한다. K리그는 10팀으로 줄여야 한다. 승강제를 폐지하자.” 깜짝 놀랐다. K리그 인기가 수원에서 고이 잠들었다는 저주에 가까운 이야기를 퍼부었던 이 편집장의 이야기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지금껏 축구로 먹고 살아왔던 사람이 축구를 바라보는 태도가 이렇다는 건 놀랍다. 이건 애정이 담긴 쓴소리가 아니라 거의 악담에 가깝다. K리그에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이들보다도 사공만 많다.

K리그에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는 건 동의한다. 세금에 의지하는 시·도민구단의 행태도 개선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해체나 K리그에서의 퇴출이어야 한다는 건 업계 관계자가 하기에는 너무 심한 발언이다. 승강제 폐지? 12년 전 고양국민은행의 승격 거부로 한 겨울 1인시위를 했던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말이다. 이 제도를 만들기 위해 거리로 나와 외치고 경기장으로 가 투쟁하던 이들이 힘겹게 만든 제도를 말 몇 마디로 우습게 만들었다. 승강제를 폐지하고 시·도민구단을 퇴출시키면 그게 해답이 될 수 있을까. 한국 축구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방안이라면 기꺼이 동의하겠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난 주말 아산엘 갔다. 아산무궁화 축구단이 해체 위기에 놓여 어떻게든 이 이야기를 공론화하고 여론을 바꾸고 싶어 달걀로 바위를 쳤다. 아산시장을 만나고 선수들과 코치진을 만났다. 팬들과 인터뷰를 했고 구단 관계자의 이야기를 기사로도 썼다. 소액을 후원하는 지역 업체들의 이야기도 전했다. 경기가 끝난 뒤 아산 박동혁 감독은 감정 섞인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제발 축구인들과 언론에서 저희를 좀 도와주세요.” 한 쪽에서는 이렇게 간절히 호소하는데 누군가는 편하게 앉아 이야기한다. 이런 인기 없는 팀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조소를 보낸다. 아산에 기자들을 총 동원해 마지막 이슈몰이를 하려던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K리그 시도민구단은 사라져야 할 존재인가. ⓒ 프로축구연맹 제공

인기 없는 팀은 죄악인가?
나는 경찰축구단을 그리 좋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이다. 100분 토론에 나가 병역 혜택 폐지를 강하게 주장했다가 박동혁 감독에게도 한 소리 들었다. “아니, 왜 텔레비전에 나가 그런 말까지 합니까.” 지속적으로 상주상무와 아산무궁화는 프로에서 빠진 뒤 실업리그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이 선수들의 복장 문제를 칼럼으로 써 지금도 해당 구단 선수들과도 여전히 불편한 관계다. 궁극적으로는 이 팀이 프로 무대에서 퇴장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경기장에 가 이 팀의 관계자들과 만날 때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도 이런 팀들이 K리그에 있는 한 스토리를 발굴하고 비판할 건 비판하고 관심을 갖는 게 축구 언론의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도민구단을 이렇게 쓸 데 없는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 적어도 축구 전문 잡지의 편집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비록 적은 수지만 이 팀을 응원하는 팬들과 그 구단에게 조롱을 보내면 안 된다. 매 주말마다 열정을 바치는 이들을 세금이나 축내는 죄인을 만들어서 얻을 수 있는 건 과연 무엇인가. 지난 주말 아산 선수들과 박동혁 감독은 후반 조성준의 결승골이 터지자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격한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지금껏 아산 선수들이 이렇게 간절했던 걸 본 적이 없다. 경기 종료 후 기자회견을 준비하는데 바로 옆에 있던 아산 라커룸에서는 마치 월드컵에서 우승이라도 한 듯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인기 없는 2부리그 팀이 죄인인가. 이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죄인인가.

나는 결국 한국 축구가 그나마 버티고 있는 힘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아무도 관심 없는 곳에서 투혼을 발휘하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 이게 근간이 돼 한국 축구가 유지되고 있다고 믿는다. 인기 없고 돈 드는 거 다 없애고 전북, 수원, 서울, 포항, 울산 같은 팀들만 남기면 한국 축구는 체질에 맞는 다이어트를 하는 걸까. 관심이 부족해도 밑에서 치고 받고 위를 바라보는 수 많은 선수들과 팀이 있으니 이런 빅클럽도 있는 거고 무대도 생기는 거다. 그래서 어떻게든 아산무궁화를 살리려고 하는 거다. 이깟 인기 없는 경찰팀 하나 없어진다고 당장 한국 축구가 큰 일 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이런 뿌리가 있어야 전북도 있고 수원, 서울도 있다고 믿는다.

성남FC
시도민구단은 문제점도 많지만 함께 나아가야 할 존재다. ⓒ 성남FC

승강제와 시·도민구단,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떻게 만든 승강제인가. 그리고 어떻게 만든 시·도민구단인가. 3년 동안 실패하며 겨우겨우 만든 승강제를 개혁이라는 이유로 폐지하면 우리는 그 동안 들였던 노력과 시간을 모두 잃게 된다. 차라리 그 시간에 승강제를 통해 이뤄진 다양한 스토리에 귀 기울이고 이걸 대중에게 소개하는 게 정말 축구 언론이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성남일화의 시민구단 전환 운동 당시 팬들과 함께 이재명 시장을 찾아가 팬들을 돕는다고 도왔다. FC안양 창단 운동 당시에는 그냥 팬의 한 명으로 궐기대회에 갔다가 발각(?)돼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대대적인 개혁을 하자면서 ‘말로만’ 간섭하는 이들에게 난도질 당하니 힘이 빠진다.

정말 리그를 망치는 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허구헌 날 리그 가치를 훼손하고 망하라고 고사를 지내는 이들이 시·도민구단이나 승강제보다는 훨씬 더 큰 문제다. 차라리 이런 현실성 없는 쓴소리만 하는 사람보다는 그래도 축구로 계속 콘텐츠를 생산하는 ‘슛포러브’나 BJ 감스트, 킹종부가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 고기가 다 탄다고 불판 갈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말고 고기는 스스로 뒤집자. 왜 자기가 K리그 불판에 있는 스토리와 콘텐츠라는 고기를 뒤집을 생각은 하지 않고 고기가 탄다고 잔뜩 불평불만인가. 본인 스스로 생각해 보길 바란다. 과연 자신은 얼마나 한국 축구를 위해 기여하고 있나.

제3자가 돼 팔짱 끼고 훈수를 두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뭐 K리그의 일반적인 팬이라면 그래도 이해한다. 하지만 축구 전문 잡지의 편집장이라는 사람이 마치 자기는 위에서 내려다 보듯 팔짱 끼고 ‘너희는 그래서 안 돼’라는 식으로 축구계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한 쪽에서는 어떻게든 이 작은 판에서도 콘텐츠를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이 소중한 판에 있는 모든 것들을 조롱한다. 물론 이 편집장을 비롯한 이들은 지금도 ‘축구’로 먹고 산다. 나라고 아산무궁화가 예뻐서 그들의 해체 위기를 막으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뿌리를 받치고 있는 팀이 있어야 그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도 만들 수 있고 바르셀로나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을 지키려는 거다.

수원FC 승격
K리그는 계속 되어야 한다. ⓒ수원FC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지 말자
축구 전문 잡지의 편집장이 자꾸 축구를 조롱해서는 안 된다. K리그의 당당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시·도민구단을 조롱에 가깝게 폄하해서도 안 되고 어렵게 만든 제도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 혹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일이 진행돼 한국 축구가 발전할 수 있다면 모를까 승강제 폐지와 시·도민구단의 리그 참가 불허가 정답일 리는 절대 없다. 이제 막 연극에 좀 관심을 가지려는데 연극 관계자가 “이따위 공연을 왜 보러 옵니까. 세금 먹는 이런 공연은 다 없어져야 합니다”라고 하면 있던 관심도 떨어진다. 연극 분야 역시 대중의 관심은 극히 부족하지만 꽤 많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그 어떤 연극 관계자도 근엄한 쓴소리랍시고 “이 분야 지원을 끊으시라”고 망염불을 들이진 않는다.

시장 경제 논리라면 이 땅에 KBO리그 팀 몇 개와 전북, 수원, 서울 정도를 제외한 모든 축구팀은 문을 닫아야 한다. 핸드볼도 해서는 안 되고 레슬링도 지원을 끊어야 한다. 연극과 소규모 뮤지컬도 망해야 하고 독립영화도 사라져야 한다. 이 편집장의 논리라면 대중이 극히 관심을 갖는 몇몇 분야만 빼고는 다 사라져야 한다. 시·도민구단의 문제점은 정말 많지만 그들이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정치적으로 유지되어야 할 이유도 있고 명분도 있기 때문이다. 시·도민구단과 K리그가 망하라고 빌지 않아도 투자 대비 얻는 게 없으면 자연스레 도태되는 게 당연하다. 정치인이 시·도민 눈치 보면서 운영하는데 거센 반발이 있다면 팀이 축소되고 없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다.

K리그 인기는 수원에서 잠든 적이 없다. 그렇게 단언해서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도 많은 시·도민구단 관계자들이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안산그리너스는 하루에 두세 번씩 선수와 코치진, 프런트가 시민들에게 다가가 공헌 활동을 펼친다. FC안양은 시민들과 함께 벽화를 그렸고 아산은 동네 치킨집과 주유소에서 소액 후원을 한다. 몇 마디 말로 그들의 노력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시·도민구단과 K리그가 갈 길은 정말 멀지만 적어도 팔짱 끼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간섭만 하는 이들보다는 시·도민구단이 한국 축구에 기여하는 바가 훨씬 더 크다고 믿는다.

스포츠니어스 기자회견
K리그2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 K리그를 걱정하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스포츠니어스

언론부터 반성해야 한다
해당 편집장은 한국 축구의 근간을 고민하는 듯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K리그 시·도민구단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고 K리그1과 K리그2를 언급했다. 승격과 강등에 관한 말을 했다. 하지만 K리그2 경기장을 그토록 많이 다니면서 단 한 번도 해당 편집장을 현장에서 만난 적은 없다. 수원삼성 경기장에서만 몇 번 봤을 뿐이다. K리그2 경기장에는 단 한 번도 발걸음조차 하지 않는 이가 한국 축구의 시스템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과연 우리 스스로 축구 언론으로서 얼마나 독자들에게 흥미를 유발할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지부터 반성했으면 한다. 나 역시 많이 반성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기성용의 말을 전한다. “일을 하는 사람은 없고 말만 앞서는 게 아쉬운 것 같다. 말은 다 한다. 그런데 과연 한국 축구를 위해 일을 뭘 하느냐는 거다.”

footballavenue@sports-g.com

이 기사의 단축 URL은 https://www.sports-g.com/Dhxtc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