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안고 아산으로 모인 이들은 축구화를 벗을 위기에 놓여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아산무궁화축구단이 존폐 기로에 놓여 있다. 경찰청에서 내년 시즌 선수 수급을 중단하면서 팀은 해체 위기에 몰렸다. <스포츠니어스>에서는 아산무궁화를 위해 다각도로 힘을 모으기로 했다. 지금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시간이 많지 않다. <스포츠니어스>는 다양한 ‘아산 사람들’을 취재했다. 부디 <스포츠니어스>가 미약하지만 '마지막 불씨'라도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어른들은 아이들이 꿈을 꾸길 원한다. 미래를 이야기하길 원한다. 아이들이 밝은 표정으로 미래를 말할 때 어른들은 이 나라를 지탱할 힘을 얻는다. 그래야 아이들이 꿈을 이어갈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해줄 수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이변을 일으킨 대표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2연패를 달성한 대표팀은 전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다. 지난 12일(금)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우루과이 대표팀의 친선 경기가 열렸다. 약 6만 4천여 명의 팬들이 몰렸다.

티켓 매진 소식이 들리자 카드 섹션 응원 아이디어가 거론됐다. 문구는 2002년 그들이 보여줬던 '꿈★은 이루어진다'를 이어받은 '꿈★은 이어진다'가 채택됐다. 국가대표를 향한 뜨거움이 K리그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꿈을 이어받아야 할 꿈나무들은 꺾일 위기에 처했다. '축구 선수가 되겠다'라는 꿈을 꾸고 공을 차며 운동장을 누볐다. 더 좋은 축구를 하기 위해, 더 많이 배우기 위해 제주도에서 올라온 양군호(17) 군은 내년이 되면 공을 찰 수 없을지도 모른다. <스포츠니어스>가 아산의 어린 선수를 만났다.

양 군은 꿈에 그리던 아산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꿈을 안고 아산으로 오다

우리는 그동안 학생 선수와 유소년을 이야기할 때 늘 그들의 목소리를 배제했다. 그들을 가르치는 코치나 교육자, 혹은 학부모들의 목소리만 들었다. 아산무궁화축구단은 경찰 측의 선수 충원 중단 공식 발표로 해체 위기에 놓였다. 미래를 내다보며 2020년 이후 시민구단 전환을 위해 유소년 선수들까지 수급했으나 이제 그들은 어른들이 말하는 구단의 존폐 위기설 속에 숨겨져 있는 가장 큰 피해자로 덩그러니 남겨졌다.

양 군의 기억은 아직 흐려지지 않았다. 햇수로만 따지면 8년 전이다. 양 군은 제주 외도초등학교 2학년 재학 시절부터 공을 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가 축구 선수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다.

그는 정식으로 축구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그때 "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했다. 그는 "제가 원래 운동을 좀 좋아하는 편이었다. 축구가 적성에도 맞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꿈을 꾸기 시작했다"라면서 축구 선수가 되기로 한 계기를 전해줬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축구가 마냥 쉽지는 않았다. 그에게 가장 어렵게 느껴졌던 건 제주도의 축구 환경이었다. 그는 "제주도에서는 기숙사 생활을 못 해 몸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다. 축구선수는 몸이 자산이라고 들었다. 그 자산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양 군이 아산 코치진의 눈에 들어온 건 소년체전 출전 때였다. 아산 코치진은 양 군의 중학교 감독과 부모님을 통해 "우리가 한 번 키워보겠다"라며 양 군의 전학을 설득했다. 양 군의 부모는 아들에게 선택권을 줬다. 양 군은 망설임 없이 "아산으로 가겠다"라고 말했다. 팀의 창단 멤버가 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프로선수 출신의 코치진도 양 군의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양 군은 8월에 이미 아산을 마음에 품었다. 11월부터는 전학과 수속을 진행할 수 없어 10월에 짐을 꾸리고 아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주도에서 공을 차던 양 군에게 아산 구단은 별천지 같았다. 체계적인 훈련과 시스템이 있었다. 프로선수 출신의 코치진은 정성을 다해 양 군의 축구를 한 단계 끌어 올렸다. 측면 공격수였던 양 군에게 측면 수비수로 포지션 변경을 제안한 것도 아산의 유소년 코치진이었다.

양 군에게 아산무궁화의 프로축구선수들을 만나는 시간은 꿈 같은 시간이었다. 그들은 의무경찰로 대체 복무를 하고 있는 신분이다. 일정 시기가 지나면 그들은 팀을 떠난다. 구단은 프로선수들에게 유소년 선수들을 위한 멘토링을 제안했고 프로 선수들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양 군은 같은 측면 수비수 민상기와 이주용에게 천금 같은 조언을 듣기도 했다. 그들은 양 군에게 "훈련 열심히 해야 한다. 다른 건 보지 말고 축구만 열심히 해야 한다"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양 군은 여전히 그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양 군은 아산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대회에 나선 순간도 잊을 수 없다. 양 군은 지난 8월 아산무궁화 유소년 소속으로 K리그 주니어 챔피언십 대회를 나갔다. 신생팀이었기에 선수들은 모두 1학년으로 구성됐다. 타 구단의 쟁쟁한 형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분투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래도 양 군은 만족했다. 양 군은 "여기서 이겨서 성적을 내자는 생각보다 많이 배우고 오자는 생각으로 대회에 나갔다. 유니폼을 입고 뛰었을 땐 첫 목표를 이룬 것 같아서 뿌듯했다. 열심히 성장하자는 생각이 들었다"라면서 "우리가 아직 많이 부족한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열심히 해서 3학년이 되면 다른 팀보다 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라고 전했다.

양 군은 꿈에 그리던 아산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불안한 미래, 흔들리는 꿈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이후 아산 구단을 둘러싼 소문이 쓰나미처럼 몰려들었다. 적어도 2020년까지는 선수 충원이 있을 줄 알았건만, 이미 경찰 측 실무진들 사이에서 내년 선수 충원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어린 선수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양 군은 "충원 중단 얘기를 듣기는 했다. 구단 해체까지 이야기가 나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양 군은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데 해체되면 축구를 못 하게 될까 봐 걱정도 되고 두려운 마음이 크다"라고 말했다. 양 군은 "해체된다면 따로 세워둔 계획도 없다. 그저 구단이 잘 유지됐으면 한다. 여기서 오래 축구를 하고 싶다는 마음과 바람뿐이다"라고 말했다. 그에겐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학생 선수로서 전학을 가거나 팀을 옮길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미리 다른 학교를 알아봐도 빠듯한데 9월과 10월 들어 충원 중단 소식과 팀 해체 소식까지 이어졌다. 어른들은 여전히 구단의 존폐를 두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학생 선수들은 11월이 지나면 팀을 옮길 수 없다. 이대로 팀이 없어진다면 아산에서 뛰는 유소년 선수들은 팀 없이, 최소한 1년을 버텨야 한다.

양 군의 학교는 방송통신고등학교다. 학교 특성상 2주일에 한 번 학교에 출석해 수업을 받는다. 그렇다고 공부를 게을리하지도 않는다. 아산 구단은 축구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두 번 영어 강사를 초빙해 아이들의 공부를 도왔다. 팀이 없어지면 그들의 축구뿐만 아니라 학업에도 지장이 갈 수 있는 상황이다.

혼란스러워하는 선수들에게 지도자들이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그저 "구단과 관계자들이 해결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하는 훈련만 열심히 하고 경기도 열심히 하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동료 중에는 학교를 이곳저곳 옮겨 다닌 친구도 있다. 양 군은 "제주도에서 아산까지 왔다. 다시 제주도로 가면 어떻게 될까. 걱정도 크다. 친구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다. 아산에서 오래 훈련도 하고 경기도 하고 싶어 한다. 구단이 잘 유지됐으면 하는 마음이 강하다"라고 전했다.

양 군은 "그저 제가 좋아하는 축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다 같이 힘을 모아서 구단이 유지됐으면 한다"라면서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큰 문제 없이 어른들이 이 문제를 잘 해결해주셨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양 군은 마지막까지 꿈을 이야기했다. 꿈은 이어질 수 있을까. 이 꿈나무는 한국 축구에 뿌리를 박을 수 있을까. 산사태 같은 어른들의 결정에 불투명한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이 떨렸다. 아산 유소년에는 지금 양 군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대로 아산이 해체된다면 그들은 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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