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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수원=홍인택 기자] 쎄오. 그가 끝내 사임 의사를 번복하고 팀으로 돌아왔다.

서정원 감독은 1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지는 2018 KEB하나은행 FA컵 제주유나이티드와의 8강전을 앞두고 취재진을 맞이했다. 정말 많은 수의 취재진이 몰렸다. 서정원 감독의 얼굴을 본 취재진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사진부터 찍었다. 서 감독은 정장이 아닌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특유의 미소를 띠고, 그러나 조금은 수척해진 얼굴로 취재진을 반겼다.

팀을 떠나면 홀가분해질 줄 알았건만

서정원 감독은 8월 28일 스스로 팀을 떠났다. 공식적으로는 부진한 성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팬들의 어긋난 태도가 문제가 됐다. 서정원 감독의 아들, 정확히는 아들의 SNS를 통해 서 감독을 비난했다. 아들은 아버지를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에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서 감독이 보지 못하게 했다. 그 사실을 알았던 서 감독의 가슴이 무너졌다. 서 감독은 "내 자식이 아빠 때문에 그 비난을 감수하고 있다면 다른 아빠들 생각은 어땠을까"라며 "감독은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자리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에게 했다고 하니 나도 뭔가가 확 올라왔다"라고 전했다.

그가 팀을 떠난 뒤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졌다. 그가 물러난 다음 날 수원은 전북현대를 전주 원정에서 3-0으로 꺾었다. 서 감독은 그 경기를 보지 않았다. "팀의 경기를 보고 싶지 않았다"라고 했다. 참 이기기 어려웠던 팀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 서 감독 대신 지휘봉을 잡은 이병근 대행은 전북전 승리 후 "감독님이 미리 준비하신 대로 했다"라고 말했다.

서 감독은 팀을 떠났지만 팀은 서 감독을 그대로 떠나보낼 생각이 없었다. 제일기획 부사장 박찬형 구단주는 10일 간격으로 계속 서 감독에게 연락하며 "다시 생각해달라. 한 번만 만나자"라며 서 감독에게 매달렸다. 서 감독이 잠시 개인적인 시간을 위해 유럽으로 출국하기 전에도 염기훈, 신화용, 조원희, 양상민 등 팀의 고참 선수들이 그를 찾아와 사임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때만 해도 서 감독은 단호했다. 서 감독은 "난 안 들어간다고 했었는데… 누가 봐도 다시 들어가는 게 좀 그랬다"라고 말했다. 박 구단주를 향해서도 "팀이 어렵다면 어서 새 감독을 선임해달라"라며 역으로 요청을 하기도 했다.

선수로서, 코치로서, 감독으로서 헌신한 팀이었다. 그가 떠난 팀은 리그 7경기 만에 1승을 거뒀다. 전북과의 AFC챔피언스리그 2차전에서는 신화용의 선방으로 어떻게든 올라갔지만 이어진 가시마 앤틀러스 원정에서는 역전패를 당했다. 팀을 떠나면 홀가분해질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팀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선수들이 혼란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마음에 부담이 더해졌다. 박 구단주는 그때도 서 감독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채 그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팀도 점점 어려워졌고 서 감독도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졌다.

경기 전 인터뷰에 응하는 서정원 감독 ⓒ 스포츠니어스

선수들이 아파하니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서 감독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도 결국은 자식 같은 선수들 때문이었다. 팀이 흔들린다는 소식에 쳐다보지도 않던 팀의 경기를 지켜봤다. 선수들은 힘들어했다. 혼란스러워했다. 선수들은 서 감독에게 "다시 돌아와 달라"라며 메시지를 보냈다. 가족들은 복귀를 줄곧 반대했지만 그를 애타게 찾는 선수들이 계속 눈에 밟혔다.

그에게 선수들은 특별했다. 그가 팀의 지휘봉을 잡는 동안 연봉을 줄여가며 팀에 남아 헌신한 선수들이 있었다. 이적 과정에서 서 감독만을 바라보고 팀으로 왔던 선수들도 있었다. 선수와 감독이 서로 의지를 많이 했다. 서 감독은 "받은 문자마다 선수들의 아픔이 서려 있더라. 어떤 선수는 내가 꿈에 나와서 손도 잡아줬다고 했다"라면서 "정이 많이 든 것 같다. 내가 돌아온 이유는 오직 선수들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서 감독은 "내가 이 팀에 짧은 시간만 있었다면 또 모르겠다. 나는 선수, 코치, 감독으로 오랜 시간 이 팀과 동고동락했다. 내가 나간 후 팀이 잘 됐다면 절대 안 왔을 것이다. 나는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돌아왔다"라며 복귀 이유를 전했다. 이어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을 때 나만 빠져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팀을 떠나자 팀 전체가 흔들렸다. 선수들은 구심점을 잃은 상황이었다. 이병근 대행은 간신히 팀을 지도하면서도 '대행' 자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리그에서는 승리를 거두기 어려웠다. AFC챔피언스리그 가시마 앤틀러스 원정에서는 역전패까지 당했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여전히 FA컵 타이틀과 AFC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이 남아있었다. 그는 결국 어렵고,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그래. 이번 시즌까지만."

경기 전 인터뷰에 응하는 서정원 감독 ⓒ 스포츠니어스

시차 적응도 하지 못한 채

서정원 감독은 복귀 이유에 대해 "선수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나도 여기 오래 있었다. 선수 시절엔 응원도 받았다. 마무리를 잘하고 싶다. 최선을 다해서 선수들과 뭉쳐보겠다"라고 말했다. 구단 측에는 "대신 다시 돌아가서 안주할 생각은 절대 없다. 원래 계약 기간만큼 팀에 남아있을 생각도 없다. 지금은 마무리를 위해 돌아갈 테니 팀은 새 감독을 물색하셔야 한다"라며 복귀 조건을 걸었다.

서정원 감독이 복귀를 결정하면서 구단과 서 감독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복귀를 결정할 당시 서 감독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었다. 당장 17일 제주와의 FA컵 경기를 앞둔 상황이었다. 급하게 귀국을 결정하다 보니 비행기 표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백방으로 비행기 표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15일(월) 한국에 올 수 있는 티켓이 어렵게 구해졌다. 서정원 감독은 시차 적응도 하지 못한 채 곧바로 수원으로 향했다. 수원에 오자마자 체력 회복을 위해 스스로 가벼운 러닝을 하기도 했다.

드디어 지난 15일, 그의 복귀 소식이 수원 구단을 통해 전해졌다. 그가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선수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중에는 "꿈만 같다"라며 기뻐한 선수들도 있었다. 다만 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수원 팬 중 일부는 그의 복귀를 반겼으나 일부는 그의 복귀를 탐탁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

서 감독은 "팬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지휘봉을 내려놓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지막, 올해까지는 선수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해줬으면 한다"라며 팬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는 "이번 시즌을 팬들과 함께 마무리 짓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라며 매듭을 짓겠다고 했다.

경기 전 인터뷰에 응하는 서정원 감독 ⓒ 스포츠니어스

복귀전, 어려움을 딛고 FA컵 4강 진출에 성공하다

그리고 그는 1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팬들과 마주했다. 주중이라 어렵게 경기장에 모인 팬들은 선발 명단 맨 마지막에 호명된 감독의 애칭을 경기장이 떠나가라 외쳤다. '쎄오.' 이번엔 그의 이름 뒤에 붙었던 '아웃'은 없었다. 이후 경기 시작 바로 직전에는 모두가 '서정원'의 이름을 세 번 외쳤다. 그 외침은 마치 미안함을 표현하는 듯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린 서 감독에게 반가움을 표현하는 듯했다. 경기장 2층 난간에는 서정원을 응원하는 걸개가 걸려 있었다.

서 감독은 이번 제주전을 앞두고 "난 한 달 반을 떠나 있었다. 선발도 코치들에게 맡겼다. 나는 중요한 포인트만 짚어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가 팀을 떠난 뒤 전북전을 앞두고 지휘봉을 대신 잡았던 이병근 대행도 "감독님이 모두 준비하신 것"이라고 했었다. 서 감독과 코치진은 그렇게 서로를 신뢰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일을 미루지도 않았다.

그렇게 킥오프 휘슬이 울렸다. 수원은 전반부터 간결하게 움직였다. 공을 건드리고 달리는 모습부터 그들만의 결의를 느낄 수 있었다. 수원은 전반 3분이라는 이른 시간에 데얀의 선제골이 터지면서 앞서갔다. 그러나 이후 제주가 준비한 내용을 펼치며 수원 골문을 위협했다. 수원 수비수들과 신화용은 수차례 실점 위기를 맞이했으나 간절한 마음으로 마지막 집중력을 발휘하며 실점을 막았다.

제주는 수원이 공중볼에 취약하다는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수원 수비진도 흔들렸다. 결국 후반 교체 투입된 김성주에게 머리를 내주며 실점했다. 1-1 동점으로 연장에 돌입한 수원 선수들은 근육이 부서지라 뛰었다. 연장 종료 6분을 남겨두고 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염기훈이 크로스를 올렸다. 박기동이 머리로 해결했다. 선수들과 팬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그 6분을 버티지 못하고 찌아구에게 동점골을 허용했다. 경기는 승부차기로 돌입했다.

지난 전북과의 AFC챔피언스리그 8강전 2차전처럼 이번에도 신화용의 선방이 빛났다. 1~3번 키커로 나섰던 권순형, 찌아구, 김성주의 킥을 모두 막아냈다. 데얀은 첫 번째 키커로 나서 골을 기록했다. 이기제와 박형진의 슈팅은 골문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한 상황에서 마그노가 신화용을 넘어 골을 기록했지만, 결국 제주 이창근이 골문 위로 공을 차버리고 말았다. 서정원 감독의 복귀전은 그렇게 승부차기 점수 2-1로 수원이 승리를 거두고 FA컵 4강 진출권을 따내며 마무리됐다.

경기 전 인터뷰에 응하는 서정원 감독 ⓒ 스포츠니어스

좀 더 하자고, 더 중요하게 됐다고, 망치지 말자고

경기를 마친 후 먼저 기자회견장을 찾은 제주 조성환 감독은 경기를 총평한 뒤 이렇게 말했다. "같은 감독으로서 그 마음을 이해한다. 우리도 경기장 밖에서는 모두 동료다. 경기 끝나고도 인사를 나눴다. 서 감독의 눈가가 붉어졌던 것 같다." 이에 서 감독도 답했다. "(조)성환이는 후배인데, 경기가 끝나고 포옹할 때 '미안하다, 성환아'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조 감독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할까. 다음 경기는 꼭 승리하라고 얘기해줬다."

이날 팀의 4강 진출을 견인했던 신화용도 서 감독의 복귀에 고무적인 모습을 보였다, 신화용은 "어려운 결정을 하셨다. 팀을 나가신 이후로 팀이 어수선해졌고 힘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라며 서 감독 부재 시의 팀 상황을 전했다. 이어 "돌아오신 것 자체가 많은 힘이 됐다. 선수들끼리도 감독님을 위해 더 열심히 뛰자고 말했다. 확실히 감독님이 돌아오시고 선수들끼리 하나로 뭉치는 효과도 있었다. 좀 더 하자고, 감독님이 돌아오셨으니 더 중요하게 됐다고, 망치지 말자고 했다. 동기부여가 됐다"라고 덧붙였다.

신화용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 감독의 결정에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듯했다. 그는 "감독님이 팀에 대한 책임감으로 돌아오신 게 아닐까.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거다. 팀을 생각하는 그 마음 하나로 돌아온 것 같다"라면서 "이 경기를 첫 단추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잘 뀄기 때문에 우리가 더 자신 있게 한다면 AFC챔피언스리그에서도, K리그에서도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팀에 한 명이 더 생긴 것과 같다. 같이 의기투합해야 할 것 같다"라며 서 감독의 복귀 효과를 전했다.

경기 전 인터뷰에 응하는 서정원 감독 ⓒ 스포츠니어스

그가 벤치에 앉자, 비로소 수원이 됐다

서 감독은 복귀전 승리에도 승리의 공을 코치진과 선수들에게 돌렸다. 그는 "힘든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은 의욕이 오늘 승리의 원동력이다"라면서 "연장전 돌입할 때도 운동장에서 선수 하나하나 다시 얘기해줬다. 힘을 줬다. 절대 포기하지 말자고 했다. 연장전이 끝난 뒤에도 '절대 포기하지 말자'라고 했다. 우리가 따라잡힌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기운이 푹 가라앉으면 안 됐었다.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고 잘해줬다"라며 승리 요인을 꼽았다.

이어 "착잡했다. 우리 선수들이 나 때문에 더 뛰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많이 보였다. 그런 모습에 나도 가슴이 아팠다. 나로서는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미안한 감정이 더 크다"라면서 "오늘 승리는 코치진의 성과다. 나는 한 달 반 동안 자리를 비웠으니까. 코치진이 승리에 기여했다"라고 덧붙였다.

서 감독은 "이 팀이 무너지지 않고 힘들 때 버틸 수 있는 건 분명 노장들이 팀을 잘 이끌기 때문이다. 어린 선수들에게 본보기가 되면서 동기를 부여한다. 그렇게 팀이 끈끈해지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잘해주고 있다. 내가 감독이지만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라며 팀의 베테랑들을 칭찬했다. 이날 환상적인 선방을 보여준 신화용을 향해서는 "나에게도 놀라운 일"이라며 "이운재 코치도 페널티킥에 강했지만 어떻게 보면 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기량을 보여주는 것 같다. 경험도 많고 침착하게 끝까지 보고 뛰는 것, 그리고 신화용이 갖춘 민첩함, 순발력이 명장면을 만들었다"라며 4강 진출의 일등공신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나는 선수들과 6년 동안 위기를 이겨내는 일을 해왔다. 어려운 경기들이 눈앞에 있다. 중요하지 않은 경기가 없다. 이럴 때 우리가 좀 더 집중하고 하나로 뭉쳐서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전했다.

그는 팬들의 응원 소리에 대해서도 기쁜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서 감독은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 팬들에게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인 것 자체가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맞아주셔서 감사드린다"라면서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서 감독은 "우리 선수들과 다시 한번 똘똘 뭉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드리겠다"라고 덧붙였다. 마치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있다는 것처럼. 서 감독에겐 팬들도 수원삼성이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난다는 그의 뜻을 존중해야겠지만, 서정원 감독이 없었던 수원은 어딘가 불안했다. 기둥들은 있었지만 그 기둥들을 받칠 주춧돌이 없는 것 같았다. 이병근 대행과 염기훈을 비롯한 팀의 고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현재의 수원을 떠받치던 존재는 분명 서정원 감독이었다. 서 감독의 복귀에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경기를 마치고 대기실을 빠져나오는 이병근 대행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팬들은 정규시간뿐만 아니라 연장전과 승부차기까지 멈추지 않으며 뜨겁게 노래했다. 그가 벤치에 앉자, 비로소 수원이 됐다.

쎄오. 그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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