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소년은 이제 친구들과의 어울림보다 형들과의 경쟁이 익숙하다. ⓒ 양주시민축구단 제공

[스포츠니어스ㅣ남윤성 기자] 최근 발표된 10월 A매치 축구국가대표팀 명단에 경남FC 중앙수비수 박지수가 생애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박지수의 이번 대표팀 승선이 더욱 주목받은 이유는 그의 축구인생에 유독 굴곡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인천유나이티드에서 방출된 이후 아마추어리그 K3에서 다시 한 번 축구화 끈을 동여맨 박지수는 4년 뒤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며 신데렐라 스토리를 써내려가고 있다.

여기 동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 박지수를 오래전부터 동경해 온 한 선수가 있다. 중앙수비수 포지션부터 높이를 활용해 제공권을 장악하는 플레이스타일 그리고 현재 속한 리그까지 여러모로 박지수와 비슷한 점이 많은 이 선수는 2000년생으로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하다. 친구들과의 어울림보다는 형들과의 경쟁이 익숙해진 정호준은 오늘도 ‘제2의 박지수’를 꿈꾸며 훈련장으로 향한다.

축구를 동경한 어린 소년의 성장기

2002년 월드컵 키즈인 정호준은 친구들과 함께 선수들의 헤어스타일부터 세리모니를 모두 따라하며 성장했다. 그 중에서도 안정환의 반지키스는 늘 그의 몫이었다. 열광적인 월드컵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그가 축구를 좋아하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마포구 근처에서 일을 하셨던 어머니와 함께 길을 걷다 FC서울의 홈경기 홍보 현수막과 전단지를 보게 됐어요.”

“무작정 어머니를 졸라 상암으로 향했어요. 서울이 가장 재밌게 축구하던 시기였는데 기성용과 이청용, 히카르도의 플레이를 보고 처음으로 축구선수의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이후 부모님을 졸라 축구부가 있는 갈현초로 전학가면서 축구를 시작했어요. 당시 서울을 얼마나 좋아했냐면 산하 고등학교인 동북고로 진학하기 위해 테스트를 보고 동북중에 입학했을 정도였으니 이만하면 말 다했죠.”

ⓒ 정호준 본인 제공

“중학교 초반 많은 기회를 받았지만 말썽을 좀 부렸어요. 핸드폰을 내지 않고 몰래 사용하다 걸려 혼나고 사춘기까지 찾아와 훈련장에서 제대로 집중하지도 못했죠. 이런 부분이 감독님 눈에까지 고스란히 드러난 거 같아요. 이후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를 못했어요. 1학년이어서 뛰지 못한 것도 있었겠지만 당시엔 벤치에 앉아있는 걸 도저히 견딜 수가 없겠더라고요.”

스스로를 위해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던 그는 정든 친구들을 뒤로하고 능곡중으로 향했다. 당시 능곡중은 동북중에 비해 리그와 전국대회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고 감독으로부터 경기 출전도 약속받았다. 그 중에서도 윤하로 수석코치는 정호준을 특히 아끼고 챙겼다. 집에서 거리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벽 숙소를 찾아와 잠에 빠져있는 정호준을 깨워 함께 새벽운동에 나섰다.

“제가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억지로 따라나선 것도 있었지만 코치님께서 각별히 챙겨주시는 게 느껴져 군말 않고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운동을 소화했어요. 이때 의욕도 넘쳤고 정말 열심히 운동했어요. 실력도 많이 늘었고요. 스스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중학교 때까진 같은 리그 내 중앙수비수 중에선 제가 제일 잘했던 거 같아요.”

우연히 찾아온 기회 그리고 끝 모를 시련

수석코치의 보살핌 아래 하루하루 성장을 거듭한 그에게 기회는 뜻하지 않은 순간 찾아왔다. 인천유나이티드 유스팀 대건고와의 연습경기에서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선보인 것이다. 경기 후 버스에 오르려는 그에게 대건고 스카우트가 찾아와 또래에 비해 신체조건도 좋고 수비능력도 훌륭하니 열심히 운동하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정호준에겐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스카우트 선생님께서 세 차례나 경기장에 찾아오셨어요. 원래는 경기 전에 웬만하면 긴장하지 않는 성격이에요. 근데 하필 경기장 들어가기 직전마다 그 선생님이 제 눈에 딱 보이는 거예요. 나를 지켜보러 오신 게 확실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엄청 긴장되기 시작했어요. 결국 그날 경기는 제가 다 망쳐버렸어요.”

“당시 스카우트 선생님께서 제가 경기에 뛰는 모습을 연락처 프로필로 지정해놓으셨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만큼 저에 대한 관심이 진지했다는 뜻이죠. 찾아오신 날 중 하루라도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드렸다면 대건고에서 뛸 수 있었을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있긴 해요. 하지만 결국은 제 능력이 부족했던 거죠.”

ⓒ 정호준 본인 제공

이후 인천남고에 진학한 정호준은 신입생임에도 불구하고 주전으로 활약했고 대학교와의 연습경기에도 나서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장의 축구에 대한 과한 열정이 결국 탈이 됐다. “신입생들이 한 자리에 처음 모인 날 어리둥절했어요. 보통은 동기가 10명이 채 안되는 게 정상인데 한 학급정도 되는 학생들이 모여 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저희 때부터 교장선생님이 축구부에 많은 지원을 약속하면서 신입생을 35명이나 뽑은 거였어요.”

“선수가 많으니 자연스레 경쟁구도가 형성됐어요. 하지만 그 경쟁이 너무 치열했어요. 모든 선수를 경기에 뛰게 하려는 감독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훈련과 바로 전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도 다음 경기면 벤치를 지켜야 했죠. 한 경기라도 뛰지 못하는 날엔 경쟁에서 밀리는 느낌이 들었고 상처받는 일도 많아졌어요. 집중력이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플레이와 성장까지 영향을 미치는 게 느껴졌어요.”

무엇보다 정호준을 괴롭혔던 건 어려서부터 간직해온 축구선수의 꿈이 한순간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진로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하던 시기 초등학교 은사가 양천FC를 추천해왔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양천FC는 환경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었다.

“선수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말썽을 부렸고 운동 목적과 태도에도 차이가 있어 훈련장에서 분위기 형성이 쉽지 않았어요. 어수선한 분위기에 나머지 선수들도 집중이 어려웠는데 감독님은 어떠셨겠어요. 특히나 노병준 감독님은 양천FC가 지도자로 맡는 첫 번째 팀이었어요. 오죽하면 감독님께서 너무 힘들다, 제발 열심히 좀 해달라고 훈련 중에도 몇 번씩 부탁하실 정도였어요.”

K3리그에서 되찾은 축구선수의 꿈

또다시 팀을 옮길 수도 그렇다고 남아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이 남을 때마다 개인 운동을 하고 훈련도 열심히 따라갔지만 제자리를 맴도는 기분이었다. 설상가상 이렇다한 대회성적이 없어 원하는 대학진학도 불가능했다. “진지하게 운동을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했어요. 왜 나한테만 이런 시련이 찾아오는지 싶어 서럽기까지 하더라고요. 하지만 누굴 원망하겠어요. 그냥 제 능력이 부족했던 거겠죠.”

“알바부터 군대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부모님과 대화했는데 일단 몸을 만들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말씀하셔서 집근처에 있는 고양시민축구단을 찾아갔어요. 그렇게 한 달 정도 몸을 끌어올리고 있었는데 감독님께서 좋게 봐주셨는지 함께 해보자 말씀하시더라고요. 처음엔 성인리그에 대한 두려움에 망설였지만 이왕이면 하루빨리 맞부딪치면서 경험을 쌓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정식으로 선수등록을 마치고 7월부터 고양에서 뛰고 있습니다.”

ⓒ 정호준 본인 제공

“선수생활 내내 회비를 내면서 운동을 해 부모님께 항상 죄송스러웠어요.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 없어 뿌듯해요. 부모님도 고등리그가 아닌 성인리그에서 뛰고 있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세요. 지인들에게 그렇게 자랑을 하신대요. K3리그가 환경이 엄청 좋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 아직 19살이고 이제 겨우 발걸음을 내딛은 선수에요. 환경에 불만을 갖고 이것저것 비교하기 보단 현재에 집중하면서 실력을 키워나가는 게 중요한 시기라 생각해요.”

지난 9월 정호준은 부산FC와의 경기를 통해 고대하던 성인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어떻게 경기를 뛰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었지만 보다 성장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행복했다. “큰 실수는 없었지만 배운 게 정말 많았어요. 고등학교 땐 공간이 있어도 위협적인 패스가 들어오지 않았는데 여기는 키퍼랑 수비사이로 정확한 패스가 들어와요. 킥 동작을 보고 먼저 라인을 내렸는데도 공격수에게 패스가 전달되고요. 패스속도와 질이 달랐고 경기운영도 훨씬 공격적이에요.”

“이틀 전 전술훈련 때 주전팀에 속해 내심 기대하고 있었어요. 이후 끊임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서 많이 준비했는데 결국 실전경험이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전반은 어떻게든 따라갈 수 있었는데 후반 들어 힘이 많이 부치는 게 느껴졌어요. 공을 처리할 때도 바로 걷어내야 할지 한 번 잡고 할지 등의 디테일한 부분을 경기를 뛰면서 많이 깨달았어요. 경기속도와 피지컬에 적응하는 게 급선무라 생각해요. 그러려면 훈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서 꾸준히 경기에 나서야겠죠.”

제2의 박지수를 꿈꾸며

최근 대졸선수들의 유입이 늘어난 K3리그는 경기 템포와 피지컬적인 부분에서 과거와 비교해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때문에 여전히 리그에 적응중인 정호준은 부족한 경험이 드러날까 두렵지만 좌절보단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려 노력하고 있다. “최연소 선수인 저에게는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는 리그에요. 솔직히 말해 저는 아직 보잘 것 없는 선수나 마찬가지니까요.”

“모든 순간이 소중한 경험이고 훌륭한 수업이에요. 소통과 수비라인을 리딩하는 능력은 제 나이 또래들이 쉽게 기를 수 없는 능력이잖아요. 훗날 선수로서 오랫동안 뛰고 성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최연소인 만큼 패기와 배짱으로 무장해 자신 있게 저만의 플레이를 하고 싶어요. 한참 어린 후배가 이렇게 말하는 게 버릇없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경기장 안에서 선후배나 형동생은 없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리그에서 만날 상대편 선배님, 형님들 바짝 긴장하셔야 할 겁니다.”

ⓒ 정호준 본인 제공

“고양은 규모가 정말 작은 구단이에요. 하지만 매번 두세 명 정도의 팬들이 한 경기도 빠짐없이 심지어 원정까지 따라오세요. 이런 열정적인 팬들의 존재가 처음엔 낯설었어요. 데뷔하기 전 몸을 풀면서 언젠간 내 이름도 저렇게 불려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경기를 뛰는데 이분들께서 제 이름을 외쳐주시는 거예요. 경기 내내 정말 큰 힘이 됐어요. 빠른 시일 내 리그 내에서 제 이름을 알리는 선수로 성장하고 싶어요. 고양의 역사적인 승격을 이끈다면 마냥 불가능한 일도 아니겠죠? 저라고 박지수형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라는 박지수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긴 채 오늘도 정호준은 더 큰 꿈을 꾸며 잠자리에 들고 있다. 가까운 혹은 먼 미래에 정호준은 어떤 선수가 되어 우리 앞에 등장하게 될까. 그 누구도 심지어 본인조차 정답을 알 수 없는 이 물음은 그로 하여금 긴장감과 목표의식을 불어넣고 있다. 지금까지 보다 더한 시련이 찾아와도 나아갈 길이 많기에 열아홉 소년은 겁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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