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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원클럽맨’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실력도 있어야 하고 운도 따라줘야 한다. 데뷔 후 은퇴까지 한 팀에서만 프로 생활을 한다는 건 35년 K리그 역사에서도 몇 명 이루지 못한 업적이다. 그런데 이 선수는 조금 애매한(?) 원클럽맨이다. 몇 번이나 팀을 떠날 상황이 생겼지만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이 팀에 안착했다. 2010년 K리그에 데뷔해 군 생활을 했던 시기를 빼면 한 팀에만 있었다. 심지어 군대에 갔다가 잠시 팀에 돌아온 적도 있다. 성남FC의 ‘강제 레전드’가 돼 가고 있는 윤영선에 관한 이야기다. 얼마 전 성남에 집까지 사 더 이 동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를 직접 만났다. 그는 여러 논란을 요리조리 피해갔다.

반갑다. 요새 컨디션은 어떤가.

8월에 발등을 다쳐서 좀 쉬었다. 그런데 그 사이 벤투 감독 출범 이후 첫 대표팀에 발탁돼 국가대표 훈련에도 합류했었다. 벤투 감독 출범 이후 치른 첫 두 차례 평가전에서는 부상 중이라 훈련만 하다가 나왔다. 이제 다시 회복해 얼마 전에 복귀전을 치렀다. 서서히 좋아지고 있다.

성남은 K리그1 승격을 향해 가고 있다. 분위기는 어떤가.

나쁘지 않다. 우리는 승격을 바라보는 팀이다. 아산무궁화와 1~2위를 다투는데 상대를 신경쓰지 않고 우리 할 것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오는 21일 1위 팀인 아산과 우리의 경기가 승격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일단은 그 경기에 앞서 치르는 경기부터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 바로 눈앞에 닥친 경기에만 신경을 쓸 생각이다.

오랜 시간 성남과 상주에서 함께 지낸 임채민과의 호흡은 어떤가.

(임)채민이와 과거 성남에서부터 상주상무까지 거의 5~6년째 같이 호흡을 맞추고 있다. 신인 때부터 봐온 동료라 편하다. 서로 원하는 걸 말하지 않아도 경기장에서 알아서 커버해 주는 사이다. 편한 마음으로 운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나는 원래 오히려 큰 경기일수록 부담을 덜 받는 편이다. 항상 편하게 하려고 하고 나 할 것만 잘하자고 생각한다. 옆에서 워낙 채민이가 잘 도와주고 있다.

월드컵 독일전도 나간 선수인데 긴장하면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사실 그 독일전을 앞두고는 경기 전에 엄청 긴장했다. 그런데 경기장에서 딱 분위기를 보고 ‘다 날 응원해 주고 있다’는 정신 승리(?)를 하고 경기에 나가니 편해졌다.

그 이야기는 차차 나누기로 하자. 당신은 2010년 성남일화에 입단해 군 복무 시기를 제외하고는 이 팀에서만 뛰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성남일화 출신 선수다.

사실 그때는 내가 드래프트로 성남일화의 선택을 받았다. 원래 그 전에 몇몇 다른 K리그 구단에서 관심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성남일화가 날 선택할 줄은 몰랐다. 아마 그때 다른 팀의 선택을 받았더라면 내 축구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모를 것이다. 어찌됐건 2010년에는 성남일화에 하늘 같은 선배들이 많았다. 너무나도 유명하고 잘하는 선수들이었다. 외국인 선수는 라돈치치, 몰리나, 사샤가 있었고 국내 선수들 중에서는 정성룡, 조병국, 장학영, 김철호 등이 있었다. 멤버가 워낙 좋아서 운동할 때도 기가 죽을 정도였다.

윤영선은 성남의 이 흑역사 시절 유니폼도 입었던 선수다, ⓒ프로축구연맹

그 당시 성남은 뭔가 일화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듯한 느낌이었다.

당시 성남일화는 신태용 감독님이 이끌고 있었는데 늘 감독님한테 혼이 났다. 욕도 많이 먹었다. 데뷔 시즌에는 5경기를 뛴 게 전부였는데 거의 2~3년 동안 긴장해서 운동할 때도 얼어 있었다. 신태용 감독님은 그런 부분을 호되게 질책하셨다. 다른 선수들은 늘 신태용 감독님을 보면 개방적이고 장난도 잘 치고 편하다고 하는데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 나에게는 늘 어려운 분이다.

의외다. 신태용 감독은 선수들이 먼저 장난을 걸 정도로 편하다고 생각해 왔다. 특히 홍철 같은 선수들은 신태용 감독과 허물 없이 지낸다고 알고 있다. 홍철이 버릇이 없는 건가.

(홍)철이는 그럴지 몰라도 나는 아니다. 내가 신인 시절 감독님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 막 평소에 무섭게 하는 분은 아닌데 딱 한 번 실수를 할 때면 그 순간 늘 신태용 감독님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눈치도 많이 봤다. 성남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감독님들과 다 해봤다. 박종환 감독님, 안익수 감독님, 김학범 감독님 등은 축구계에서도 흔히 말하는 ‘빡센’ 분들이다. 그런데 나는 이 분들보다도 신태용 감독님이 더 어렵다.

에이, 그래도 박종환 감독을 대하는 게 훨씬 더 어렵지 않을까. 그 분은 빠…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박종환 감독님이 더 편했다. 2010년 이후 성남 감독님 중 지난 해 군 입대로 박경훈 감독님만 경험하지 못하고 모든 지도자들을 다 겪어 봤는데 박종환 감독님은 생각보다 부드러우셨다. 옛날 분들은 박종환 감독님이 무서웠다고 하시던데 내가 겪은 바로는 그냥 아버지 같았다. 원래 성남이 동계훈련 때 체력훈련이 힘들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성남에서 8년을 경험하는 동안 박종환 감독님 시절이 가장 편하게 운동했던 시기였다. 그때는 체력훈련 위주가 아니라 연습경기만 했다. 김치찌개도 잘 끓여주셨다.

그 전설의 ‘박종환표 김치찌개’를 먹어봤다니…. 난 그게 평양 옥류관 랭면 보다도 맛이 궁금하다. 진짜 맛있다고 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먹을 만한 정도였나. 그것도 아니면 별로였는데 맛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건가.

정말 맛있었다. 개막을 앞두고 마지막 전지훈련을 광양으로 갔는데 거기에서 끓여주신 적도 있다. 그런데 다른 찌개는 아니고 오직 김치찌개만 끓여주셨다.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많이 부드러워 지셨더라. 주변에서는 내가 정말 어려운 감독님을 많이 경험해 본 것 같다고 하는 분들도 있더라.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어딜 가건 편하게 할 수 있을 만큼 어려운 감독님을 다 경험해 본 건 사실이다.

성남일화의 마지막 세대를 경험한 선수로서 그 시절이 그립지는 않나.

확실히 지금보다는 투자에서 풍족한 건 사실이다. 훈련이나 숙소 환경은 달라진 게 없지만 선수 영입에 있어서는 성남일화 시절이 풍족했다. 승리 수당도 지금보다는 확실히 많았다.

그때 좀 벌었나.

무슨 소리인가. 첫 시즌에 다섯 경기밖에 못 뛰었다고 하지 않았나.

윤영선은 성남의 이 흑역사 시절 유니폼도 입었던 선수다, ⓒ프로축구연맹

당신은 점점 ‘강제 레전드’가 되고 있다. 2014년 중국으로 이적을 발표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당신이 이렇게 금방 팀에 돌아올 줄은 몰랐다.

아…. 그 이야기를 해야 하나. 2014년 1월에 중국 슈퍼리그 허난 구단으로 이적하게 됐다. 사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때 몇몇 중국 구단에서 제의가 있었다. 중국에 우리나라 수비수들이 막 들어가던 시기였다. 내가 구단에 보내달라고 조금 조르기도 했다. 또 다른 무대를 경험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난 구단과 이야기가 잘 돼 계약서에 사인을 하러 중국으로 날아갔다. 성남에서 선수단과 다 인사까지 나눴다. 그런데 사흘 만에 다시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었나.

허난 구단으로 가 MRI를 찍었다. 양쪽 발목과 무릎, 허리를 네 시간이나 검진하더라. 내가 이적을 많이 해보지는 않아 다른 구단은 메디컬 테스트를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 어찌됐건 나는 네 시간 동안 MRI 통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호텔에서 이제 계약서에 사인을 하러 출발하려고 하는데 연락이 없더라. 뭔가 잘못 됐다고 느꼈다.

몸에 이상이 발견된 건가.

내 무릎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중국 쪽 에이전트가 베이징으로 가 정밀 검진을 다시 받아보자고 했다. 중국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 비슷한 곳이었다. 그런데 거기에서도 비슷한 진단이 나왔다. 그래서 결국 최종 계약을 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아마 중국에 3박 4일인가, 4박 5일인가 있다가 온 걸로 기억한다.

정말 무릎에 이상이 있다면 그 이전이나 이후에도 문제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게 말이다. 내가 바로 그 전 시즌에 성남에서 36경기를 뛰었다. 선수라면 누구나 다 안고 있는 부상 정도라고 생각했다. 축구선수가 어느 정도 통증은 다 안고 있는 거고 그 정도로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록상으로도 다 보여줬는데 무릎에 문제가 있다고 하니 좀 의아했다. 고질적으로 좋지는 않다보니 늘 관리는 하고 있다. 훈련할 때 미리 한 시간 전에 나가 먼저 보강 운동을 하는 습관이 있다. 관리만 잘하면 은퇴까지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궁금한 건 그렇게 중국에서 돌아와 그 시즌에 얼마나 많은 경기에 나섰느냐는 것이다. 정말 무릎 때문에 경기에 나가지 못했다면 당신도 할 말이 없지 않은가.

2014년 시즌 도중 두 달 가까이 쉬기는 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엉덩이 근육 쪽 부상이 있었다. 무릎 때문에 탈이 나서 못 뛰고 그러지는 않는다. 2014년에 엉덩이 근육 부상으로 못 뛴 기간을 빼고 19경기에 나섰고 2015년에도 35경기에 출장했다. 물론 지금도 꾸준히 경기에 나선다.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미 동료들과 다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 사흘 만에 다시 돌아오는 건 굉장히 민망한 일이었을 것 같다.

그건 그렇다. 정말 금방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인사를 다 하고 떠났는데 그렇게 빨리 돌아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성남 구단은 터키로 전지훈련을 떠난 상황이었다. 나도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바로 터키로 합류하지 않고 집에서 일주일 정도 쉬었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가족들과 설 명절을 보낸 것 같다. 동료들과 코칭 스태프 얼굴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걱정도 됐다.

다시 만난 동료들은 무슨 말을 하던가.

터키로 가니까 박종환 감독님이 그러시더라. “너 누구냐?”

그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정말 무서울 것 같다.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나. 그 분 그렇게 무섭지 않다. 물론 장난으로 하신 말씀이었다. 아마 처음에 그렇게 장난으로 대해주지 않으셨으면 내가 더 멘탈을 잡는데 어려웠을 것이다. 먼저 동료들도 다가와 줘 금방 털어낼 수 있었다. 그때 의지했던 동료들이 많았다. 채민이부터 해서 (박)진포 형, (김)동섭이, 제파로프 등등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시즌을 계속 치르면서도 강등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윤영선은 성남의 이 흑역사 시절 유니폼도 입었던 선수다, ⓒ프로축구연맹

하지만 성남과 두 번째 이별을 또 했다. 2016년 4월 군대에 갔다가 며칠 만에 다시 돌아왔다.

그 문제와 관련해서도 말이 많았다. 당시에는 내 무릎에 문제가 있어 훈련소에서 퇴소했다고 알려졌는데 그건 아니었다. 일부에서는 “윤영선이 양쪽 무릎 인대가 없어서 군 생활하는 데도 문제가 있다”고 했지만 무릎 인대는 양 쪽 모두 다 있다. 좀 닳아서 그렇지…. 훈련소 입소 관련 문제는 민감한 부분이 있어서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구단과 상무, 나 사이에 입대 시기에 관한 조율 문제가 있었다는 정도로만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복잡한 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

입대 시기를 조율하면서 문제가 있었지 몸 상태의 문제는 아니었다. 제일 힘들다는 입대 후 2박 3일 입소대를 경험한 뒤 나왔다. 소대장이 나갈 때 나가더라도 머리는 잘라야 한다고 해 삭발을 하고 나왔다. 물론 석 달 뒤 다시 당당하게 훈련소에 입소해 복무를 다 마쳤다. 그 해에 훈련소에 가 경기에 나서지 못한 기간을 빼고 성남과 상주에서 22경기를 뛰었다.

얼마 전에는 성남과 세 번째 이별을 할 뻔했다가 또 남았다.

강원 이적 이야기를 하는 건가.

그렇다.

음…. 민감한 문제다.

(강원과 성남은 윤영선이 상주상무 소속으로 군 복무 중이던 지난 1월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한 이적을 확정지은 뒤 이를 추후 발표했다. 연맹 규정에는 군/경팀 입대를 위한 임대계약기간 중 원 소속 클럽과 타 클럽 간의 이적 또는 임대 합의를 금하고 있다. 연맹은 양 구단에 제재금 2천만 원의 징계를 내렸고 윤영선은 성남에 남게 됐다.)

에이, 말 좀 해달라.

나도 사실은 내 이적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제대를 한 뒤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 강원 간다며?”라는 이야기를 먼저 들었을 정도다. 사실 나도 잘 몰랐던 이야기다. 이 문제는 현 소속팀인 성남에서도 난처한 일이니 이 정도까지만 말씀드렸으면 한다. 이런 거 많이 물어보러 오셨는데 속 시원히 답변하지 못해 미안하다.

알겠다. 웬만하면 나도 더 묻겠는데 나도 같이 논란의 중심으로 들어가기는 싫다.

당신도 이전부터 논란은 많지 않았나.

서로 피해보는 이야기는 그만하자. 그런데 정말 당신은 성남의 ‘강제 레전드’가 돼 가고 있다.

‘강제 종신러’가 돼 가고 있는 것 같다. 이게 운명인가 싶기도 하다. 성남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돼 가는 모양이다. 그런데 나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팀을 승격으로 이끄는 거다. 한치 앞 미래도 모르고 내가 앞으로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지는 전혀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건 팀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내 임무라는 점이다.

윤영선은 성남의 이 흑역사 시절 유니폼도 입었던 선수다, ⓒ프로축구연맹

하나만 딱 더 물어보고 싶다.

뭔가.

지금 어디에 집이 있나.

성남 옆 수지에 산다.

자가인가. 전세인가. 월세인가.

얼마 전에 집을 장만했다. 왜 묻나.

그러면 계속 성남에서 뛰겠다는 뜻으로 알겠다.

우리 집 대부분이 은행 거다.

일단 대출금을 갚을 때까지는 못 옮기는 거 아닌가.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내가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건 성남이 생활하기에는 너무 편하다는 점이다. 쭉 수지와 판교에만 있었는데 이곳만큼 살기 좋은 곳이 또 없다. 성남이라는 팀 자체가 나를 키워준 것도 있고 가족 같다. 내가 군대 가기 전에 성남 구단에서 클럽하우스를 짓겠다며 “너 제대하고 오면 클럽하우스에서 생활하게 해주겠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내가 제대하고 얼마 전에 첫 삽을 떴다. 언제 완공될지는 모르지만 한 번 이용해 보고 싶기는 하다.

완공까지 오래 걸릴 수도 있겠다.

땅값 비싼 정자동에 짓는다고 하니 기대 중이다.

이제 세 번이나 작별할 뻔한 이야기 말고 즐거운 이야기를 해보자. 이렇게 월드컵 독일전 주역과 단 둘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돼 영광이다.

월드컵 끝나고 한 달 정도는 사람들이 알아봐 주기도 하고 “독일전 잘 봤다”는 말도 들었는데 이제는 그 ‘월드컵 버프’도 끝났다. 아시안게임 애들이 치고 올라와 우리는 잊혀졌다.

무슨 소린가. 이번 월드컵 독일전은 향후 30년은 회자될 것이다.

고맙다. (조)현우가 그래도 가장 큰 버프를 받았고 그 다음에는 (문)선민이도 좀 버프를 유지 중인 거 같다. 이 두 명이 진짜 신데렐라가 됐고 뭐 나는 금방 잊혀지는 것 같다.

당신이 그렇게 어려워하던 신태용 감독이 월드컵에 당신을 데려갈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나. 2010년 처음 신태용 감독을 만났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 아닌가.

그렇다. 사실 최종 명단 발표 하루 전에 열린 보스니아와의 평가전에서 경기력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오)반석이, (기)성용이와 함께 스리백으로 나섰는데 경기력도 별로였고 결과도 안 좋았다. 그날 밤에 별 생각을 다했다. ‘여기까지 와서 안 되면 어쩌나’ 싶었다. 정말 최종 명단 발표 당일까지 우리한테도 가르쳐 주지 않더라. 다음 날 아침 식사 후에 언론에 최종 명단이 발표되기 직전에 우리에게 통보가 왔다.

윤영선은 성남의 이 흑역사 시절 유니폼도 입었던 선수다, ⓒ프로축구연맹

언론에서는 당신과 오반석, 정승현, 권경원 중에 낙마하는 선수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 걸 떠나 보스니아전 내용이 굉장히 많이 신경 쓰였다. 중앙 수비수를 5명이나 뽑았으니 누군가는 낙마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 최종 명단 발표 전에 긴장이 돼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 당일 아침 식사를 하는데도 정적만 흘렀다. 미팅을 통해 최종 엔트리가 발표된 뒤에는 분위기가 너무 묘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누구는 월드컵에 나가고 누구는 못 나가는 상황이라 감정이 복잡했다. 나는 최종 명단에 들었지만 들지 못한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컸다. 그래서 서로 인사하며 축하와 격려, 위로를 해줬다.

그때의 감정은 어땠나.

안도의 한숨을 쉬긴 했는데 한편으로는 다른 대회도 아니고 월드컵에 가 쟁쟁한 경쟁에서 또 한 번 살아남아야 한다는 게 굉장한 부담이었다. 그날 최종 명단이 발표된 뒤 하루 외박을 받고 다음 날 공항에서 바로 오스트리아 전지훈련을 가는 일정이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신태용 감독에 대한 비판의 수위도 높았다. 이 비판을 함께 경험한 사람으로서 기분은 어땠나.

힘들긴 했다. 아무래도 너무 좋지 않은 쪽으로만 보도가 이어졌고 선수단을 바라보는 시각이 호의적이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끼리 뭉쳐서 잘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자주했다. 주장인 (기)성용이부터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우리도 부담스러웠던 건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감독님이 가장 힘들지 않으셨을까. 워낙 긍정적인 분이시지만 그런 여론이 쉽지는 않으셨을 거다.

스웨덴전과 멕시코전을 벤치에서 지켜본 당신은 바로 그 전설이 된 독일전에 선발로 나섰다. 그때 기분은 어땠나.

멕시코와의 경기가 끝나고 나흘 뒤에 독일전에 열렸다. 그런데 독일과의 경기가 열리기 이틀 전 훈련을 앞두고 신태용 감독님과 우연히 버스에서 같이 내려 훈련장까지 걷게됐다. 신태용 감독님이 “긴장돼?”라고 묻기에 “네?”라고 반문했더니 “너 독일전 선발로 나가는데 긴장되냐고”라고 하시더라. 그렇게 독일전 선발 통보를 받았다. 마음의 준비를 그때부터 하게 됐다.

월드컵에서 독일과의 경기를 치르는데 선발 출장한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

앞 두 경기로 대표팀이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부담도 많이 됐다. 잠을 잘 잔 편이지만 무게감이 엄청났다. 그런데 경기장에 도착해 몸을 풀어보니 흥이라고 해야 하나 가슴 속에서 뭔가 훅 올라왔다. 긴장하거나 떨리는 것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편하게 즐기려고 했다.

윤영선은 성남의 이 흑역사 시절 유니폼도 입었던 선수다, ⓒ프로축구연맹

난 독일을 ‘위닝’이나 ‘피파’에서 만나기만 해도 떨린다.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 집중하면서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한 경기가 월드컵인지 리그 경기인지 잘 모를 정도로 집중했다. 원래 선수들은 경기 시작하고 첫 터치가 중요한데 독일전에서는 처음 공을 커트하기 전까지가 되게 편했다. 그 이후로도 심리적인 안정을 찾았다.

독일을 상대로 무실점한 건 대단한 성과다.

상대 공격수를 많이 분석했다. 티모 베르너라고 키 작은 선수가 있는데 이 선수가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도 뒷 공간을 자주 노리더라. 그래서 계속 그걸 신경 썼는데 그게 잘 먹혀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역사적인 경기에 함께 하게 돼 너무 영광이다. 그런 큰 경기에서 기회를 준 감독님께도 감사드린다.

하지만 기대했던 16강에 가지 못하게 된 건 아쉽다.

우리는 스웨덴-멕시코전에서 멕시코가 스웨덴을 잡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만 독일을 이기면 16강에 오른다고 믿었다. 경기 도중에는 스웨덴-멕시코전 결과를 전해듣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독일을 이긴 뒤 벤치에 있는 동료들에게 다른 경기 결과를 물었더니 3-0이라고 하더라. 다 멕시코가 스웨덴을 3-0으로 이긴 줄 알고 좋아했다. 그런데 “스웨덴에 멕시코를 3-0으로 이겼다”는 말을 듣고 너무 아쉬웠다. 이제 독일을 잡고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한 경기 더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보는 국민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나에게는 인생의 한 페이지에 남을 경기였다. 언제 또 월드컵에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평생 남을 추억이 됐다. 그런데 지금은 월드컵을 기억하는 이들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아시안게임의 감동에 묻혔다.

에이, 그렇지 않다. 독일전을 지켜봤던 모든 이들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경기였다.

고맙다.

그런데 벤투 감독 선임 이후 1기 대표팀에 발탁됐지만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 2기 대표팀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당시 부상이 있어 대표팀에 가서도 따로 훈련만 해야 했다. 계속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다가 막 K리그 경기에 복귀한 다음 날 2기 대표팀 발표가 있었다. 선수로서 대표팀에 가지 못했는데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언제든 대표팀 문은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뽑아주시지 않을까 싶다.

1기 때 잠시 경험한 벤투 감독은 어땠나.

젠틀하고 철학도 뚜렷했다. 수비에서부터 조직적인 부분을 많이 신경 쓴다고 느껴졌다. 벤치에서 첫 경기를 지켜보니 선수들이 다들 새로운 감독님 눈에 들려고 열심히 하는 게 보이더라. 운동할 때는 전쟁이다.

윤영선은 성남의 이 흑역사 시절 유니폼도 입었던 선수다, ⓒ프로축구연맹

올해 월드컵도 다녀오고 강원도 갈 뻔하고 의미 있는 일이 많았다. 올해 남은 두 달을 어떻게 보내고 싶나.

올해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제대도 했고 월드컵에도 나갔다. 하지만 아직 한 가지 이루지 못한 게 있다. 바로 팀의 승격이다. 나도 우리 팀이 K리그2로 떨어질지는 몰랐다. 군대에 다녀오니 2부리그에 있다. 감독님도 바뀌었고 선수들도 변화가 많다. 제대 후 돌아오니 (김)동준이와 (김)근배 형, (연)제운이 빼고는 아는 선수가 없더라. 대부분이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이다. 애들 이름 외우는 데만 한 달은 걸린 것 같다. 그만큼 팀에 변화가 크지만 그래도 성남은 성남이다. 팀을 반드시 K리그1으로 승격시켜 놓고 싶다. 또한 내년 1월에 있는 아시안컵을 준비하며 몸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성남의 ‘강제 레전드’가 돼 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덧 성남의 고참 선수가 됐다.

지난 8월 K리그 통산 2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2010년 처음 K리그에 입성했을 때는 딱 100경기만 뛰어보고 싶었는데 어느덧 2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그리고 이제는 300경기를 바라보고 또 달린다. 200경기 중 상주 시절 뛰었던 28경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경기를 성남에서 뛰었다. 정말 성남에 이렇게 오래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 성남이 해체 위기까지 겪으면서 시민구단으로 전환하는 모습도 봤고 관중이 꾸준히 늘고 있는 모습도 지켜보고 있다. 승격하면 더 많은 팬들이 경기장으로 찾아와 주실 거라 믿는다.

알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마지막으로 성남 팬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제대를 하면 해외의 새로운 무대를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흔히 말하는 ‘강제 레전드’다. 중간에 허난으로도 갔다가 어찌 어찌 돌아왔고 강원으로도 이적할 뻔했다. 이미 다 오픈된 일이니 사람들이 다 안다. 나는 여기에 있어야 할 운명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성남은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친정이고 고향 같은 팀이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래에 대해 쉽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올 시즌 성남 유니폼을 입고 반드시 승격을 이루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남을 지키고 있다. 그가 성남에서 은퇴해 전설로 남을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레전드는 실력뿐 아니라 행운과 우연이 겹치고 겹쳐야 한다고 믿는 입장에서 그의 우여곡절 많았던 축구 인생은 다시 한 번 조명될 필요가 있다. 2010년 성남 유니폼을 입은 윤영선은 지금도 그 경기장에서 뛰고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한 팀에 헌신하고 있다. ‘강제 레전드’ 윤영선은 올 시즌 성남을 다시 K리그1으로 올려 놓고 또 한 번의 역사를 쓸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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