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조진호 감독과 포옹하는 아드리아노 ⓒ 프로축구연맹 제공

오늘(10일)은 2017년 10월 10일 심장마비로 故조진호 감독이 하늘로 간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딱 1년 전 오늘 축구계는 故조진호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충격에 빠졌고 슬퍼했다. 그리고 그렇게 1년이 흘렀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고인은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다. <스포츠니어스>에서는 故조진호 감독 1주기를 맞아 고인을 추모하는 의미로 기획 기사를 준비했다. <스포츠니어스>의 故조진호 감독 추모 기사를 통해 많은 이들이 오늘 하루는 한국 축구에 많은 걸 선물하고 1년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인을 기억했으면 한다. -편집자주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故조진호 감독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됐다. 고인은 생전에도 많은 이들에게 흔적과 추억을 남겼다. 선배, 후배, 동료를 비롯해 그의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고인에게는 특별한 제자가 있었다. 고인은 그를 단순히 선수가 아닌 아들, 동생, 혹은 친구로 여겼다. 그들은 서로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와 살아온 환경도 달랐지만 서로를 이해하며 거리낌 없이 지냈다. 그는 고인과 대전시티즌에서 함께 뛰었다. FC서울로 팀을 옮겼을 때만 해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중국으로 떠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고인은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아드리아노는 현재 전북현대 유니폼을 입고 뛴다. 아드리아노는 1년 전 고인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그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그는 내 역사의 일부였다"라며 슬픔을 표현했다. 조진호 감독 1주기를 맞아 전북현대 클럽하우스에서 아드리아노를 만났다. 이 자리를 통해 고인을 추모하는 인터뷰에 응해준 아드리아노와 전북현대에 감사를 표한다. 오로지 고인과 아드리아노의 추억에만 집중한 인터뷰였음에도 전북 구단은 흔쾌히 인터뷰 자리를 마련해 줬다.

아드리아노와 마주했다. 벌써 조진호 감독이 하늘로 간 지 1년이 됐다고 하자 아드리아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드리아노는 그때 당시를 "너무나도 슬펐던 순간"이라고 회상하며 "가족을 잃은 듯한 느낌과 기분이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픔에 잠겼다"라고 전했다. 아드리아노는 고인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때로는 웃었고 때로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끼 많고 장난 치기 좋아하는 아드리아노에게도 조진호 감독은 진지한 주제였다.

아드리아노는 평생 조진호 감독을 잊지 못할 것이다. ⓒ 조진호 감독 페이스북

어렵기만 했던 한국 생활, 먼저 손을 내밀었던 고인

아드리아노가 고인을 생각했던 마음은 이어진 말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감독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꿈을 꿨다. 또 만나서 같은 팀에서 경기하고, 훈련하고, 같이 지내는 꿈을 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 소식이 들렸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감독님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인사조차 드릴 수 없게 됐다"라며 한국으로 돌아왔을 당시를 돌아봤다.

고인과 아드리아노는 첫 만남부터 서로를 향한 호감을 느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드리아노도 여전히 고인의 첫마디를 기억했다. 당시 대전시티즌의 감독이었던 고인은 아드리아노에게 "잘 왔다. 경기장에서만큼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주변 환경을 만들어줄게"라며 환영했다. 아드리아노는 "감독님이지만 처음부터 장난도 많이 쳤고 오히려 그런 게 팀에 좋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너무 편했고 좋은 기억뿐이다"라며 "그래서 대전이 승격할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지금은 K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공격수 중 한 명이지만 그도 처음 한국과 대전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할 때는 적응에 어려움이 많았다.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그렇듯 아드리아노도 한국의 문화나 먹거리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밖에서 보기엔 대전이 시즌 초반부터 연승을 달리며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팀이었지만 아드리아노는 시즌 중반까지도 혼자 끙끙 앓고 있었다. 그때 먼저 손을 내밀었던 것도 고인이었다.

아드리아노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일단 감독님이 나를 믿어 주셨다. 대전에서의 생활환경은 열악했지만 브라질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도와주셨고 좋아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셨던 게 가슴에 와닿았다. 감독님을 봐서라도 한국에 더 빨리 적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며 "감독님은 훈련 때도 나에게 초점을 맞췄다. 그런 사소한 일들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한국에 적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셨다"라며 고인을 추억했다.

아드리아노는 고인과 늘 장난을 주고받았다. 친구와 이야기하듯, 장난치듯, 사소한 일로 서로 웃고 떠들며 즐거운 기억을 쌓았다. 원정을 떠나면 호텔 로비나 근처 커피숍에서도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다. 아드리아노는 "공과 사를 잘 구분하셨던 분"이라고 표현하며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지금은 뭐 때문에 혼났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야단 치신 것도 나를 더 좋은 선수로 만들려고 하신다는 걸 느꼈다. 나뿐만 아니라 한국 선수들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늘 편안한 형이었고 아빠였으며 친구였다. 선수들도 감독님을 많이 따랐고 문제가 생기면 함께 의논하고 소통하며 문제점을 풀어나가려고 노력하셨다"라고 전했다.

아드리아노는 평생 조진호 감독을 잊지 못할 것이다. ⓒ 조진호 감독 페이스북

떨어져 있어도 항상 아버지 같았던 분

2014년 성공적인 시즌을 마치고 故조진호 감독이 이끈 대전이 승격했을 때 사람들은 아드리아노가 곧 팀을 떠날 것으로 예상했다. 아드리아노는 그럴만했다. 당시 K리그 챌린지에서 압도적인 골 결정력을 보여주며 경쟁력을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드리아노는 승격 후에도 대전에 남았다. 고인의 "남아달라"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드리아노는 승격 후에도 대전에서 2015년 반 시즌을 더 뛰었다.

K리그 클래식에서도 그의 능력은 여전했기에 여전히 그를 노리는 팀들은 많았다. 반면 승격팀 대전은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결국 故조진호 감독이 먼저 팀을 떠났고 아드리아노의 FC서울 이적도 결정됐다. 성적 부진의 책임을 홀로 떠안고 먼저 팀을 떠난 고인이었으나 당신의 애제자가 FC서울로 이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고인은 아드리아노에게 "서울이 대한민국 수도이기도 하고 먹는 것도 더 좋은 게 많으니 대전보다 생활이 나을 것"이라면서 "서울이라는 팀도 상위권에 있는 팀이기 때문에 늘 하던 대로 계속 잘한다면 분명히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날 거야"라며 훈훈한 모습으로 그를 축복했다.

고인은 짧은 외인 생활을 마치고 2016년이 되기 전 상주상무의 감독으로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아드리아노는 서울에서 날고 있었다. 고인은 2016시즌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원하는 선수가 있느냐"라는 질문에 군인 팀 감독이라는 특별한 조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드리아노"라고 대답할 정도로 여전한 애정을 과시했다. 아드리아노도 서울에서 이 소식을 들었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안타깝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팀이었다. 만약 1부리그에서 갈 수 있는 팀이었다면 돈을 떠나서 우선적으로 선택했을 것 같다."

이후 아드리아노와 故조진호 감독은 생각보다 빨리 재회했다. 2016시즌 개막 후 아직은 쌀쌀했던 3월 20일, 아드리아노는 서울의 검붉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출전했고 고인은 양복 차림으로 상대편 벤치에 있었다. 이날 아드리아노는 팀의 두 번째 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4-0 승리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이날 아드리아노는 골을 넣고도 기쁨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전까지만 해도 골을 기록하면 늘 신나는 춤을 추던 선수였다. 아드리아노는 고인이 이끄는 팀을 상대로 골 세리머니를 펼치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드리아노는 "나를 이렇게 키워준 아버지 같은 분의 팀을 상대로 골을 넣었다. 세리머니 같은 건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당연히 경기장에서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감독과 제자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지만 세리머니는 도리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라며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다시 감독님을 1부 리그에서 봤을 때 너무 기뻤다. 다른 팀이지만 같은 대회에 상대 팀으로 만나서 얼굴도 보고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자체가 너무 기뻤다. 언젠가는 같은 팀에서 감독과 제자로 한 번 더 만나 경기할 수 있는 날을 기약하면서 나도 최선을 다했다"라고 덧붙였다.

아드리아노는 평생 조진호 감독을 잊지 못할 것이다. ⓒ 조진호 감독 페이스북

"한국에서 만난 내 첫 번째 아빠"

아드리아노는 서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다시 중국으로 향했다. 한국에 돌아와 전북 유니폼을 입고 골을 기록했을 때 예전만큼의 신나는 세리머니는 없었다. 아드리아노는 "골을 넣을 때마다 항상 감독님이 생각난다"라고 말했다. 그는 "감독님이 생전에 무릎 꿇고 양손을 올렸던 세리머니를 자주 하셨다. 나도 그 세리머니를 했고 감독님도 똑같이 그렇게 하셨다. 골을 넣을 때나 같은 세리머니를 볼 때 감독님이 가장 생각난다"라고 말했다. 그의 눈이 잠시 붉어졌다.

아드리아노는 "한마디로 그냥 아빠였다. 한국에서 만난 내 첫 번째 아빠라고 할 수 있다"라며 고인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그는 "축구 이야기가 아닌, 이렇게 단독으로 감독님에 대한 인터뷰를 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기다리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라며 "복잡한 감정이 오간다. 감독님에 대한 기억을 돌이켜볼 수 있다는 기쁨,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기쁜 감정도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감독님이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는 거에 슬픈 마음도 든다"라며 故조진호 감독을 추억했다. 그는 고인이 생전에 즐겨하던 특유의 세리머니를 따라 하며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감독님. 보고 계시죠. 보고싶어요. 사랑합니다."

intaekd@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