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희망이 될 그 이름, 금산중의 15세 조진호

조진호는 최근 '콩'이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대한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ㅣ남윤성 기자] 축구가 왜 좋냐는 물음에 영락없이 열다섯 소년의 대답이 돌아왔다. 눈빛은 초롱초롱 빛이 나고 미소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잠을 재우지 않고 운동을 시킨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축구가 좋아요. 축구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에요. 게다가 할수록 점점 재밌어요.” 전북 김제에 위치한 전북현대 유소년 팀인 동대부속 금산중학교 3학년 조진호가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다.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뛰어다닌 유년기 소년에게 축구는 어쩌면 필연이었다. 이런 그의 모습에 부모는 일찍이 운동을 시키기로 결심했고 6살 소년은 그렇게 축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실력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축구 명문교인 대동초에서 테스트를 본 조진호는 강경수 감독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조진호는 일명 ‘사포’라 불리는 레인보우 플릭 기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자신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형들을 농락했다. 한 눈에 알아볼 수밖에 없었던 재능이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땐 눈에 띄는 플레이를 좋아했어요. 드리블로 상대를 제쳐내면 희열이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축구가 좋았어요. 레인보우 플릭은 이제 하지 않아요. 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영상을 챙겨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술적인 선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형들을 상대로 ‘사포’를 시전했다. ⓒ대한축구협회

금산중은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쌍용리에 위치해 있다. 조진호의 부모는 아들을 위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까지 이사를 왔다. 아버지는 매주 서울과 전주를 오간다. 맹모삼천지교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집에 오시면 쉬고 싶으실 법한데도 항상 경기장을 찾아와 응원을 보내주세요. 외박을 받으면 다른 친구들과 달리 집밥을 먹을 수 있고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마음이 훨씬 편해요. 오로지 축구에만 집중할 수가 있어요.”

“부모님이 워낙 축구를 좋아하시고 또 잘 아세요. 경기력이 좋지 못한 날에는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짚어주시고 때로는 따끔한 지적도 해주세요. 그 덕에 어떤 플레이가 제 장점이고 또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정확히 깨달으면서 성장하고 있어요. 부끄러워서 직접 말씀드린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저를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주시고 희생하시는 부모님께 이번 기회를 빌려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금산중 조진호는 ○○한 선수다

조진호의 플레이를 지켜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입을 모아 칭찬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공격적인 마인드와 창의성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무리 강한 패스가 들어와도 아무렇지 않게 공을 잡아낸다. “공격 작업을 할 때 쉽고 안전한 패스보다는 상대의 수비라인을 한 번에 무너뜨리는 패스를 선호해요. 패스를 받기 전에 동료들의 위치를 미리 살피고 다음 플레이는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요. 그렇게 하면 위협적인 지역으로 좀 더 빠르게 패스를 투입할 수 있거든요.”

조진호는 작은 키지만 절대 볼을 뺏기지 않는다. ⓒ대한축구협회

“볼을 잘 뺏기지 않고 상대의 압박을 빠져나오는 플레이가 장점이라 생각해요. 반면 신체적으론 부족함이 있어요. 때문에 판단 속도와 기술적인 완성도를 높이는데 집중하고 있어요. 아직 중3이고 계속해서 크고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키가 작아 오히려 유리한 부분도 있어요. 무게중심이 낮아 상대 밸런스를 쉽게 무너뜨리고 드리블 거리를 짧게 칠 수 있다는 점에서요. 지도자분들도 이런 부분에서 저를 좋게 봐주시는 거 같아 감사하고 동기부여가 많이 돼요.”

화려한 실력에 가려진 조진호의 또 다른 매력은 다재다능함과 이타성이다. 소속팀에선 공격형 미드필더를 주로 소화하지만 미드필더 포지션이라면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준수한 활약을 펼친다. 득점보다 어시스트가 더 좋다는 그는 최근 패스의 즐거움을 새롭게 느껴가고 있다. “대지를 가르는 패스라 표현하잖아요. 그런 패스를 성공하고 나면 묘한 쾌감이 느껴져요. 요즘은 측면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패스에 흥미를 느끼고 경기장에서 더 자주 시도하고 있어요.

제2의 이재성 아닌 조진호로 불리고 싶어요

금산중은 전북현대 산하 유스팀이다. 홈경기가 펼쳐지는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유소년 선수들에게 최고의 배움터다. “선수들이 어떻게 플레이 하는지 수비적으로는 어떤 위치에 서있는지를 주로 주목해요. K리그에서는 전북현대가 최고잖아요. 그런 선수들의 플레이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앞으로 어떻게 플레이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어요.”

“그 중에서도 이재성 형을 정말 많이 좋아했어요. 기술적으로 뛰어난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고 경기장에서 직접 보면 상대 패스 길을 예측하는 능력이 정말 훌륭하세요. 열심히 성장해서 전북에서 꼭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 먼저 떠나셔서 아쉬워요. 지금은 비록 볼보이로 경기장에 서있어야 하지만 언젠간 제가 재성이형의 빈자리를 채우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패스 길을 읽고 차단하는 능력은 이재성이 최고다. ⓒ전북현대

조진호는 신입생이던 지난 2016년 ‘비전2020!’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프랑스의 명문 클럽 올림피크 리옹에서 5주간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유럽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는 계속해서 조진호를 괴롭혔고 수준도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저보다 한 살 많은 U-14팀에서 함께 훈련했는데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적극적이었고 몸싸움도 치열했어요.”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태클이 들어오는데 심지어 거칠어요.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낯설어 기가 죽었지만 나중에는 저도 똑같이 태클하면서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했어요. 선수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고 피지컬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한국으로 돌아와 판단 속도를 높이고 경기를 읽는 눈을 키우려 많이 노력했어요.”

‘월반’ 유망주 그리고 잊을 수 없었던 국제대회 경험

한 차원 높은 벽을 실감하고 돌아와야 했지만 조진호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족함을 깨닫고 축구에 매진하는 계기가 됐다. 이는 결국 연령별 대표팀 부름으로 이어지며 전화위복이 됐다. 그리고 지난 9월 조진호는 17세 이하 월드컵 진출권이 달린 2018 AFC U-16 챔피언십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대회가 열리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했다.

김정수 U-16 대표팀 감독은 조진호에게 등번호 7번을 부여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대회에서는 주로 교체멤버로 경기에 나섰지만 한 살 많은 형들 사이에서 조진호는 빛나는 존재감을 발휘했다. “등번호에 크게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에요. 소속팀에서는 1학년 때부터 쭉 31번을 달고 있거든요. 초심을 잃지 않으려 일부러 바꾸지 않았어요.”

16세 이하 대표팀은 4년 만에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다. ⓒ대한축구협회

 

“대표팀은 31번을 사용할 수가 없어 다른 번호를 생각하긴 했지만 7번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처음 받아보는 좋은 번호라 내심 기분이 좋았지만 이내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느껴지더라고요. 팬분들 앞에 제 모습을 처음 드러내는 건데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잖아요. 뭔가 해내야 한다는 생각보단 팀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자는 생각 하나로 대회를 치렀던 거 같아요.”

하루하루가 꿈만 같았다. TV로만 지켜보던 대회에 직접 뛰는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소집 초반 경기 템포와 피지컬 그리고 체력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꼈지만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며 점차 적응해 나갔고 이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기 시작했다. “어느 하나만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걸 배웠어요. 하지만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부분은 국제대회는 의욕과 달리 준비한 플레이가 100% 나오지 못하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계속해서 발생한다는 거였어요.”

이번 대표팀 경험은 조진호에게 잊을 수 없는 최고의 기억이 될 것 같다. ⓒ대한축구협회

“대표팀은 실전에서 가진 능력을 즉시 선보여야 하는 자리에요. 내년에 페루에서 열릴 U-17 월드컵은 이번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수준이 높을 거예요. 주도권을 내주고 라인을 내려서 두들겨 맞기만 하는 상황도 생길 거고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선 빈틈없이 준비해야 하고 경기장 잔디부터 컨디션 관리 등 현지적응도 빨라야 해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실력이에요. 남은 기간 더 많이 성장해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비록 4강전에서 복병 타지키스탄에 승부차기 패하며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4년 만에 월드컵 진출권을 확보해내는 등 다른 또래들은 경험할 수 없는 일에 조진호는 행복감을 느꼈다. 특히 대회 기간 나이도 포지션도 같았던 서재민의 존재는 조진호로 하여금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다.

“나이와 포지션이 같지만 워낙 잘하고 배울 점도 많은 친구에요. 스타일과 역할이 다르고 감독님께서 기대하시는 부분도 차이가 있어요. 제겐 경기장에 투입됐을 때 분위기를 바꾸는 플레이를 요구하셨어요. 동나이대 이런 선수의 존재는 좋은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주로 교체로 경기장을 밟아야 했지만 스스로가 만족하는 플레이를 펼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비록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축구를 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2019년을 최고의 해로 만들고 싶어요

조진호는 다가올 2019년을 최고의 해로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와 새롭게 진학할 영생고에서 가진 능력을 맘껏 선보이는 것이 그의 가까운 목표다. “해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프로에 데뷔해 큰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많잖아요. 그런 걸 보면 많은 자극이 돼요. 저라고 그 선수들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그러기 위해선 프로무대에 걸맞은 실력을 키워야 하죠. 지금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빠른 시일 내 프로무대를 밟고 싶어요.”

“다비드 실바와 이니에스타가 제 롤모델이에요. 마무리를 위한 세밀한 패스가 이 선수들의 장점인데 먼 훗날 성인대표팀에서 이 역할을 제가 맡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빠른 타이밍에 팀 동료들에게 정확하게 패스를 전달하고 때론 상대가 예측하지 못하는 공간에 창의적인 패스를 투입하는 선수로 성장하고 싶어요. 최종 꿈은 맨체스터 시티나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거예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언젠간 그곳에서 뛰는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노력할 테니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인터뷰 내내 수줍어 어쩔 줄 모르다가도 꿈과 목표를 밝힐 때면 누구보다 당돌하게 대답했다. 끝을 알 수 없어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열다섯 소년의 축구 인생이 이제 막 시작됐다. 한국 축구에서 ‘조진호’라는 이름은 대단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슬프고 아픈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진호’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금산중의 어린 조진호가 한국 축구를 상징하는 ‘조진호’가 되길 응원한다. 오늘은 한국 축구를 이끌던 한 명의 멋진 감독이 떠난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지만 이런 날일수록 같은 이름의 이 희망을 이야기해 보는 건 어떨까.

skadbstjdsla@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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