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호 1주기③] 이승엽 코치가 말하는 진호형, 그리고 ‘벌써 1년’

우리는 앞으로 그의 세레머니를 볼 수 없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오늘(10일)은 2017년 10월 10일 심장마비로 故조진호 감독이 하늘로 간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딱 1년 전 오늘 축구계는 故조진호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충격에 빠졌고 함께 슬퍼했다. 그리고 그렇게 1년이 흘렀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고인은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다. <스포츠니어스>에서는 故조진호 감독 1주기를 맞아 고인을 추모하는 의미로 기획 기사를 준비했다. <스포츠니어스>의 故조진호 감독 추모 기사를 통해 많은 이들이 오늘 하루는 한국 축구에 많은 걸 선물하고 1년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인을 기억했으면 한다. -편집자주

[스포츠니어스 | 곽힘찬 기자] 故조진호 감독. K리그 팬들은 그를 무릎을 꿇는 특유의 세레머니를 즐겨하는 감독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늘 자신감이 넘치던 감독이었고 항상 자신보다 선수들과 팬들을 먼저 생각했던 감독이었다. 대전 시티즌, 상주 상무, 부산 아이파크 등을 맡으며 K리그에 큰 족적을 남겼던 故조진호 감독은 팬들에게 있어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 커리어의 두 번째 승격, FA컵 우승이라는 꿈을 앞둔 채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K리그 팬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함께 나눴다.

2018년 10월 10일. 故조진호 감독이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긴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고 다른 이슈들이 영원히 메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의 빈자리를 서서히 덮어가고 있다. 하지만 故조진호 감독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가장 가까이서 그를 보좌했던 이승엽 코치에겐 여전히 텅 빈 자리로 남아있다. 그 누구보다도 故조진호 감독을 믿고 따랐던 이승엽 코치였기에 그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혼자서 술잔을 기울일 때면 감독님과 함께 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이승엽 코치는 세상을 떠난 故조진호 감독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믿고 싶지 않은 사실, 故조진호 감독의 죽음
故조진호 감독이 세상을 떠난 직후 급하게 지휘봉을 넘겨받았던 이승엽 코치는 최윤겸 현 부산 감독에게 감독 자리를 넘겨주고 프로축구 감독의 세계를 떠났다. 이승엽 코치는 현재 대구예술대학교 축구부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제 엄연히 코치가 아닌 감독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에게 “나를 코치라고 불러 달라”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 故조진호 감독은 여전히 자신을 이끌어준 감독이고 형으로 남아있었다.

故조진호 감독이 세상을 떠난 이후 이승엽 코치는 쉼 없이 달려왔다. 50일 남짓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순식간에 사령탑을 잃은 부산을 이끌고 승격과 FA컵 우승에 도전했고 후회 없는 시간을 보냈다. “쉴 시간이 필요했다”는 이승엽 코치는 대구예술대학교 축구부의 지휘봉을 잡기 전까지 가족들과 여행을 다녔다. “감독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이후 그동안 쉴 틈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스스로 너무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기분전환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을 와이프와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한적한 산속에 위치한 대구예술대학교에서 지내며 축구부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이승엽 코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혼자서 숙소에 앉아있을 때면 故조진호 감독과 함께 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추억에 잠긴다. “감독님과 나는 포항 스틸러스, 부천SK, 부산 아이파크 등 많은 팀에서 함께 했었다. 그래서 인연이 많이 깊다. 정말 친형제처럼 지냈던 그 세월들이 계속 스쳐지나간다”는 이승엽 코치는 인터뷰 내내 故조진호 감독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그를 자신의 친형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1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지만 이승엽 코치에게 故조진호 감독의 빈자리는 시간과 별개였다. 이승엽 코치는 “솔직히 말해서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래서 감독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던 직후보다는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랜 기간 동안 함께 했던 소중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곁을 떠난 것, 이승엽 코치는 여전히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이승엽 코치에게서 故조진호 감독의 모습이 보였다. ⓒ 스포츠니어스

이승엽 코치가 기억하는 선수, 감독 시절의 故조진호 감독
故조진호 감독과 이승엽 코치는 포항 시절 선수로 한솥밥을 먹었다. 본격적으로 친한 관계를 유지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당시 故조진호 감독은 주변 선수들이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다. 하지만 이승엽 코치가 포항에 입단하고 나서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승엽 코치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그때부터 우리는 각별한 사이였다. 힘들 때 내색하지 않고 서로에게 기댔으며 의지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둘의 관계는 故조진호 감독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이어졌다.

이승엽 코치는 “부산에서 우리는 감독과 코치 관계로 다시 재회했다. 그때도 우리는 형제처럼 지냈다. 경기를 앞두고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고 감독님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은 직접 나에게 물어봐주시는 등 서로 힘이 되어줬다”고 밝혔다. 어떻게 보면 감독과 코치 간에 흔히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마치 친형제처럼 서로를 형, 동생이라고 부르며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기란 결코 쉽지 않다. “치맥도 같이하면서 농담도 주고받았는데…”라고 이승엽 코치는 말을 잇지 못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승엽 코치는 선수, 감독 시절의 故조진호 감독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선수 시절엔 그라운드 위에서 모든 선수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면 감독 시절엔 선수들뿐만 아니라 구단 관계자들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았다. “감독님은 항상 밝고 긍정적인 분이셨다. 어떨 때는 아이와 같았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갔다”는 이승엽 코치는 “하지만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하셨던 감독”이라고 강조했다. K리그 팬들이 기억하는 故조진호 감독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이다. 그라운드 위에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은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다. 그만큼 밖에서는 한없이 자상했지만 경기가 시작되면 눈빛이 달라졌다.

이승엽 코치, “故조진호 감독님은 나의 영원한 감독”
잠깐 생각에 잠겨있던 이승엽 코치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승엽 코치는 “거듭 말하지만 정말 힘들었다. 감독님은 친형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 슬픔을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도저히 적절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故조진호 감독이 세상을 떠나던 그날 이승엽 코치는 R리그 시찰을 하던 중이었다. 故조진호 감독이 쓰러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단숨에 뛰어왔다. 깨어날 것이라 하늘을 향해 애타게 기도했지만 끝내 故조진호 감독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故조진호 감독과의 동행이 곧 일상과 같았던 이승엽 코치는 슬픔에 빠져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나도 몰랐는데 혼자 빈소에서 절하면서 펑펑 울었다더라. 주변 사람들이 말릴 정도로 그렇게 울었다고 했다. 형수님과 감독님 아들을 보니까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친형 같았던 故조진호 감독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지만 팀은 이끌어야했다. 이승엽 코치는 故조진호 감독 사망 이후 첫 경기였던 수원FC전에 코치가 아닌 감독 대행으로 나섰다. 하지만 이승엽 코치는 그날 故조진호 감독이 생전에 앉았던 벤치에 앉지 않았다. “감독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감독님 자리는 비워놓겠다고 항상 생각했다. 내가 언제까지 지도자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는 이승엽 코치는 “내가 감독 대행을 하던 정식 감독이 되던 故조진호 감독님은 나의 영원한 감독으로 남을 것이고 나는 감독님의 코치다”라고 말했다.

아산 무궁화와 경기를 할 때도 이승엽 코치는 마음속의 故조진호 감독과 함께 그라운드 위에 섰다. 당시 부산은 승격을 위해서 아산을 잡아야했다. 그리고 부산은 3-0으로 승리했다. 이정협이 골을 터뜨린 순간 이승엽 코치는 故조진호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무릎을 꿇는 세레머니를 했다. “나도 모르게 감독님 생각이 나서 그 세레머니를 하게 됐다. 정협이도 골을 넣고 감독님을 기리는 현수막으로 달려가 얼굴을 파묻었다. 그렇게 우리는 감독님과 함께 경기를 뛰었고 승리했다. 그날 우리는 정말 많이 울었다.”

지난 시즌 아산 무궁화와의 경기에 앞서 묵념을 하는 부산 아이파크 선수단 ⓒ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산은 故조진호 감독이 세상을 떠난 이후 FA컵 결승과 최종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아쉽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특히 FA컵에서는 준결승에서 K리그1의 수원 삼성을 격파하는 이변을 보여줬기 때문에 더욱 아쉽게 다가왔다. 경기를 앞두고 모두가 슬픔에 빠져 훈련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이승엽 코치는 “중요한 경기들을 앞두고 훈련을 진행해야 했다. 그런데 훈련을 못하겠더라. 감독님이 생전에 늘 선수들을 내려다보던 언덕이 있다. 훈련할 때 늘 그 자리에 계실 것 같아서 너무 슬프고 힘들었다. 눈물을 삼키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선수들 역시 그랬다”고 말했다.

하지만 팀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들은 쉽지 않은 경기를 성공적으로 치렀고 모두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래도 후회 없는 경기를 했다”는 이승엽 코치는 “선수들 스스로도 우리가 성적을 제대로 내지 못해서 감독님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세상을 떠나셨다는 죄책감 아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정말 최선을 다했고 지금도 김문환을 비롯한 부산 선수들로부터 연락이 오는데 정말 고맙다”고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故조진호 감독이 이승엽 코치에게 남기고 간 선물
친형과 같았던 故조진호 감독은 이승엽 코치에게 많은 것을 안겨다주고 떠나갔다. 故조진호 감독과 선수시절부터 함께 했던 이승엽 코치는 “감독님 밑에서 코치 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눈으로 보고 배웠고 나에게 가르침을 주셨다”고 말했다. 故조진호 감독은 늘 ‘One Team’을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는 팀이란 절대 혼자만의 팀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이끌어나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코칭스태프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고 의견을 함께 공유했다.

故조진호 감독으로부터 팀을 먼저 생각하는 것, 그라운드 위에서의 열정 등 많은 것을 배웠지만 이승엽 코치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감독님의 가르침이 있다”고 말했다. 이승엽 코치가 팀에 합류하고 나서 부산은 제주에서 청소년 대표팀과 연습경기를 잡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제주로 내려가자마자 故조진호 감독은 이승엽 코치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등산이었다. 이승엽 코치는 “갑자기 나에게 등산을 가자고 하시더라. 그래서 새벽 6시에 같이 기상해서 주변에 있는 산을 탔다”고 말했다.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하며 산을 오르던 이들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감독님이 사진 찍는 것을 되게 좋아하셨다. 내가 ‘뭐가 예쁘다고 그렇게 꽃을 찍습니까’하면서 웃으며 핀잔을 주면 ‘예쁘다 아이가’하면서 웃으시던 것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리고 다시 산을 타던 도중 故조진호 감독은 갑자기 이승엽 코치를 향해 한 마디 던졌다. “여봐, 코치는 힘들어야 돼. 코치는 힘들고 고생을 많이 해야 하는 자리야.” 순간 이승엽 코치는 무언가를 느꼈다. “내가 코치라는 자리에서 일을 하긴 했지만 감독님만큼은 오래하지 못했다. 근데 감독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감독님 역시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이다.” 그렇게 산을 타고 내려오면서 故조진호 감독은 등산 내내 “감독과 코치는 책임감이 막중하고 힘든 자리”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승엽 코치는 그때의 등산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마음이 약해질 때 마음을 다잡아준 사람이 감독님이었고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신 분도 감독님이었다. 지금도 힘든 시기가 닥치면 ‘감독과 코치는 힘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

이승엽 코치와 함께 한 故조진호 감독의 생전 모습 ⓒ 이승엽 코치 제공

이승엽 코치의 진심어린 부탁
故조진호 감독은 크게는 한국 축구, 작게는 사람들에게 많은 선물을 남기고 떠났다. 하지만 1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故조진호 감독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다. 이승엽 코치는 “감독님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면서 “한국 축구로 봤을 때 정말 좋은 인재, 재산을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안타까워했다.

그 누구보다도 충격으로 다가왔고 故조진호 감독의 빈자리가 더 컸을 이승엽 코치는 故조진호 감독이 영원히 한국 축구팬들 사이에서 기억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감독과 코치로 연이 닿기 전인 선수시절부터 친형제처럼 지냈던 사이였기 때문에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한국 축구인으로서 정말 안타까운 인재가 떠났다고 말하고 싶다. 축구계와 언론, 팬들이 1주기 이후로도 감독님께서 우리에게 안겨다 준 선물을 기억하고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감독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마음속에서 멀리 안 떠나도록 해주셨으면 한다.”

이승엽 코치와 함께 한 故조진호 감독의 생전 모습 ⓒ 이승엽 코치 제공

이승엽 코치는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는 전형적인 부산 사나이였다. 누가 보더라도 그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강인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의지하고 친형으로 여겼던 故조진호 감독과 함께 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나오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이승엽 코치는 “내가 정말 눈물이 없는 놈인 줄 알았다. 항상 강한 사람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사랑했고 친형처럼 지냈던 감독님이 한순간에 사라지니까 이거는 뭐… 멍하고 그렇더라”라고 말하면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승엽 코치에게 故조진호 감독은 ‘친형’ 그 이상의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오랜 세월 동안 故조진호 감독과 함께 했던 탓일까.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이승엽 코치에게서 故조진호 감독의 모습이 보였다. 먼저 선수들을 생각하는 마음과 지도자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이승엽 코치의 말과 행동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는 故조진호 감독의 세레머니를 볼 수 없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팬들과 소통하던 故조진호 감독의 SNS 답신을 받아볼 수도 없다.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했고 누구에게는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 같았으며 친형보다 더 친형 같았던 故조진호 감독은 K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됐다. 어쩌면 故조진호 감독이 남겼던 가르침은 이승엽 코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는 한국 축구계에 많은 것을 선물해주고 떠났다. 정말이지 큰 별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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