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축구협회 공식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곽힘찬 기자]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은 기자회견을 열고 12일 우루과이, 16일 파나마와의 A매치에 출전하게 될 25인의 명단을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된 국가대표팀 명단은 표면적으로 봤을 때 ‘벤투 2기’이지만 사실상 1기와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지난 ‘벤투 1기’는 벤투 감독이 아직 국내 선수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을 감안해 대한축구협회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었고 벤투 감독 또한 협회의 많은 도움을 받아 대표팀을 구성했다. 하지만 이번 대표팀은 벤투 감독이 K리그 경기들을 관전하면서 직접 선발한 사실상의 첫 대표팀이다.

예상대로 손흥민, 이재성, 황희찬, 황의조, 조현우 등 소속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들이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대표팀에 승선하게 됐다. 또한 박지수와 이진현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사상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며 많은 축구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과 함께 그러한 영광을 누리지 못하게 된 선수들 역시 존재한다. 아쉽게 벤투 감독으로부터 부름을 받지 못한 선수들의 실력이 결코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대표팀 명단이 25명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벤투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이들의 발탁을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 소속팀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극마크를 달지 못한 선수들은 누가 있을까.

GK – 강현무 (포항 스틸러스)

ⓒ 한국프로축구연맹

‘포항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강현무는 이제 포항 스틸러스에서 필수 불가결한 선수다. 그가 없는 포항의 선발 라인업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현무는 포항 입장에서 중요한 존재다. 지난 대구FC와의 홈경기에서 조현우와 맞대결을 펼친 강현무는 경기 내내 선방쇼를 보여주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어냈다. 포항은 이 승리로 3년 만에 상위 스플릿 진출을 확정지으며 ‘전통 명가’로서의 자존심을 세웠다.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포항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양동현과 손준호를 비롯한 주력 선수들이 팀을 떠나면서 전력에 큰 공백이 생겼다. 최순호 감독 역시 “팀의 상황이 좋지 않은 때 팀을 맡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포항은 그러한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조기에 상위 스플릿 진출을 달성해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강현무가 있었다. 강현무는 동물적인 감각을 통해 실점으로 직결될 수 있는 상대의 기회를 무산시키는 등 매 경기 선방쇼를 보여주면서 포항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올 시즌 조현우와 함께 가장 핫한 K리그 골키퍼로 떠오른 강현무는 184cm의 작은 신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를 뛰어난 집중력과 순발력으로 보완하면서 ‘제 2의 신화용’이라 불리기도 한다. 1995년생으로 아직 어린 선수인 강현무는 분명 향후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는 자원으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DF – 정우재 (대구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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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축구 인생 초반을 ‘테스트 선수’로 보냈던 정우재. 하지만 지금은 K리그 팬들이 그를 두고 “국가대표 측면 수비수 자원으로 손색이 없는 선수”라 평가하고 있다. 이제 대구FC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은 정우재는 날을 거듭할수록 그 기량이 빛을 발하고 있다. 정우재는 그야말로 ‘황소’와 같다. 빠른 스피드가 바탕이 된 뛰어난 돌파력, 그리고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넓은 지역을 커버할 수 있으며 상대 공격수가 들어오는 길을 미리 차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 국가대표팀은 최근 측면 수비수 자원과 관련해 고민이 많았다. 차두리, 이영표 이후로 국가대표팀의 측면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인재들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이후로 김문환, 김진야 등의 신예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그 고민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측면 수비수의 기본은 ‘투지’다. 미친 듯이 뛰고 투지가 바탕이 된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가 필요한 포지션이다. 정우재가 그러한 기본을 갖추고 있다. 그라운드 곳곳을 끊임없이 뛰어다니고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 가장 먼저 그라운드 위에 쓰러지는 정우재는 대구 축구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정우재’라는 이름 석 자만 놓고 본다면 K리그1 빅클럽 선수들에 비해 네임벨류가 떨어질 수 있다. K리그 팬들 중 아직까지 정우재가 어떤 선수인지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실력과 팀을 위한 헌신만 놓고 비교하게 되면 정상급 측면 수비수들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DF – 강상우 (포항 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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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무와 함께 포항을 먹여 살리고 있는 또 다른 ‘강 씨’ 강상우. 포항이 후반기 3경기 연속 무득점을 기록하면서 부진을 거듭하고 있을 당시 강상우는 대구와의 원정경기에서 강력한 중거리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강상우는 측면 수비수다. 그렇기 때문에 득점과 거리가 어느 정도 먼 선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점은 강상우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팀의 실점을 조기에 차단할 수 있는 수비력뿐만 아니라 해결사 능력까지 갖춘 강상우는 ‘수트라이커’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는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강상우는 포항의 ‘언성 히어로’다. 올 시즌 리그에서 보여주고 있는 활약과 달리 언론의 주목을 그리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팬들은 이제 그를 인정해주고 있고 국가대표팀 승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강상우의 폭발적인 오버래핑과 마치 거머리와 같은 끈질긴 수비는 올 시즌 전력이 약해진 포항에 큰 보탬이 됐다. 최근 수많은 팬들은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매 경기 팀을 위한 헌신과 간절함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선수가 강상우다. 크게 돋보이지 않아도 항상 팀을 먼저 생각하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강상우는 충분히 국가대표팀 전력에 도움이 될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강상우가 ‘언성 히어로’가 아닌 ‘진짜 영웅’이 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DF – 윤영선 (성남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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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 당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독일전에서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줬던 윤영선은 벤투호 1기에 합류한 바 있지만 송범근, 정승현, 주세종과 함께 단 1분도 뛰지 못하면서 아쉬움을 삼켰다. 그리고 벤투 감독은 지난달 11일 칠레와의 A매치 경기를 마친 후 “앞으로 소집 명단의 마지막 결정권은 내가 갖는다”라며 변화를 예고했다. 그 결과 여러 선수들이 탈락했고 새로운 얼굴들이 벤투호 2기에 승선하게 됐다. 아쉽게 탈락한 선수들 중 한 명이 윤영선이다. 1기 명단에서 단 1분도 뛰지 못한 선수들 중 정승현만 다시 이름을 올렸다.

어쩌면 윤영선의 국가대표팀 탈락은 벤투 감독 입장에서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일 수 있었다. 지난 벤투호 1기에 차출된 동안 부상을 당한 윤영선은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하지 못했다. 지난달 30일 회복 과정을 거쳐 K리그2 부천FC전에 선발 출전해 성남의 1-0 승리를 이끌었지만 벤투 감독을 만족시키기엔 부족했다. 더욱이 장현수가 미드필더로 분류됐던 1기와 달리 2기엔 수비수로 발탁됐기 때문에 윤영선의 입지가 좁아졌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국가대표팀엔 새로운 중앙 수비수 옵션이 다양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성남 팬들 입장에서는 윤영선의 탈락이 무척이나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벤투 감독이 윤영선을 망설임 없이 탈락시킨 것은 아닐 것이다. 성남이 2010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는데 큰 공헌을 했고 지난 러시아 월드컵 당시 독일전에서 상대 선수들을 홀로 수차례 막아내는 등 뛰어난 수비력을 보여준 윤영선은 쉽게 제외할 수 없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MF – 최영준 (경남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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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FC의 최영준은 이번 벤투호 2기 발표를 앞두고 국가대표팀의 ‘뉴 페이스’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선수다. K리그 팬들 역시 그가 충분히 대표팀에 발탁될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갖췄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벤투는 끝내 최영준을 선택하지 않았다.

올 시즌 경남FC가 보여주고 있는 놀라운 돌풍은 말컹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최영준을 빼놓을 수는 없다. 최영준은 뛰어난 활동량을 기반으로 상대 패스 길목을 차단한다. 그리고 경남은 곧바로 역습으로 전환한다. 이와 같이 최영준은 경남의 공격과 수비를 이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최영준은 공수 모두를 담당하기 때문에 활동 영역도 어느 한 곳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라운드 전체를 뛰어다니며 상대의 공격을 막아낸다. 그리고 종종 날카로운 공격을 시도한다. K리그 팬들이 그를 두고 ‘경남의 캉테’라고 부르는 것은 모두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벤투 감독이 말하는 축구 철학의 요점은 안정적인 빌드업을 통한 경기 지배와 그라운드 위에서의 적극성이다. 그리고 벤투 감독이 구상하고 있는 전술의 중심엔 기성용이 있다. 직접 언론을 통해 그의 은퇴를 만류했을 정도로 벤투 감독에게 있어서 기성용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원이다. 기성용의 장점은 안정적인 빌드업과 경기 조율 능력이다. 만약 여기에 많은 활동량과 커팅 능력이 뛰어난 최영준이 가세한다면 대표팀의 허리에 더욱 무게감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다.

MF – 한찬희 (전남 드래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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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아시안게임이 열리기 전만 하더라도 그 누구도 한찬희를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전남 드래곤즈가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었고 한찬희 역시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한찬희는 이제 전남이 부진을 털고 강등권을 탈출하는데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한찬희는 애초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지만 프로 무대에 발을 들이면서 공격형 미드필더뿐만 아니라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몸싸움 능력이 향상됐고 이제는 전형적인 ‘박스 투 박스’형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전남에서 한찬희는 중원의 지휘자다. 아직 어린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 능력을 보여주고 있고 전방, 중앙, 후방을 가리지 않고 활발히 움직이며 동료들에게 기회를 창출하는 모습은 한찬희가 과거에 비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소속팀인 전남이 아직 강등권을 탈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유상철 전 감독이 리그 6연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이후 김인완 감독대행 체제로 이어나가면서 전남은 4승 1무 3패를 기록, 침체됐던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그리고 그 중심엔 한찬희가 있었다. 지금 당장 한찬희가 국가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지만 아쉬워하기엔 이르다. 만약 지금과 같은 경기력을 유지하면서 강등의 위협을 받고 있는 전남을 잔류시킨다면 분명 기회는 올 것이다.

FW – 김승대 (포항 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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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대표 ‘라인 브레이커’라 불리는 김승대는 기술이 좋은 파트너만 있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선수다. 올 시즌 포항은 이석현을 영입하면서 김승대의 능력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김승대는 현재 7골을 터뜨리면서 팀 내 득점 1위를 기록 중이다. 그리 많은 득점은 아니다. 하지만 김승대는 최전방뿐만 아니라 중원에서도 자신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만능 공격수’다. 전방에서 김승대가 수행하는 역할이 침투를 통해 득점을 터뜨리는 것이라면 중원에서는 공격을 풀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를 시작으로 팀의 공격 방향이 결정되고 전방으로 날카로운 침투 패스가 연결된다. 최순호 감독 역시 김승대를 두고 “전방에서도 위협적이지만 중원에서 역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아는 선수”라면서 칭찬을 한 바 있다.

애초 포항에서 김승대의 조력자는 손준호와 이명주를 꼽을 수 있었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그들은 김승대에게 기회를 창출해주고 김승대가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하지만 올 시즌을 앞두고 두 명 모두 팀을 떠나면서 김승대를 아쉽게 했다. 그 결과 조직력이 약해진 포항은 김승대가 고립되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김승대는 그러한 상황을 스스로의 능력으로 극복해냈다. 이제는 이석현이 새로 영입되면서 김승대의 공격에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국가대표팀은 K리그와 다르다. 그래서 대표팀에는 아무래도 리그에서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만약 벤투 감독이 김승대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만 한다면 ‘라인 브레이커’의 달인 김승대는 대표팀에 꼭 필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탈락한 선수들에게도 기회는 있다

벤투 감독은 이번 2기 명단을 발표하기 전 25인 외에도 많은 선수들을 후보군에 넣고 계속 고민을 했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선수들을 포함해 당장 태극마크를 달고 뛰어도 손색이 없을 만한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25인’이라는 제약이 있고 벤투 감독은 그 제약 내에서 선수들을 선발해야 했다.

수많은 선수들이 벤투 감독의 부름을 받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뛰었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이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만큼 태극마크를 가슴에 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발탁된 선수들은 항상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대표팀은 절대 영원한 자리가 아니다. 붙박이 주전인 손흥민도 다른 선수들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곳이 대표팀이다.

그래서 탈락한 선수들에게도 아직 기회는 있다. 묵묵히 기다리면서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벤투 감독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먼 나라 칠레에서는 잉글랜드 4부 리그 골키퍼가 지난달 11일 한국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칠레 대표팀에 소집됐다. 다음에 발표될 벤투호 3기에서도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새로운 얼굴이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누가 다음 국가대표팀에 남고 탈락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나라의 대표가 된다는 것, 정말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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