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수원삼성 데얀이 지난 2일 서운함을 나타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가시마앤틀러스와의 4강 원정 1차전 경기를 앞두고 한국에서 이 경기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얀은 “아시아 최고의 대회, 그것도 4강이다. K리그 팀으로서는 수원이 유일하게 남아있다”면서 “솔직히 지금 가시마전을 앞둔 월요일 저녁에 한국에서 기자가 한 명만 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10개 매체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데얀의 작심 발언, 우리는 왜 ACL에 관심이 없나?

그는 “내가 인터뷰를 하고 있을 때 옆에서 사리치, 염기훈, 신화용 등 선수들이 인터뷰를 하고 있어야 정상”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K리그의 팀이 이곳에 왔으면 더 많은 응원과 조명이 필요하다”며 “다시 말하지만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동의한다. AFC 챔피언스리그가 큰 대회인 건 분명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흥행을 보장하는 대회는 아니다. 나 역시 이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다. 중동과 일본, 중국 등에서 AFC 챔피언스리그가 받는 사랑에 비해 아직 국내에서의 사랑은 부족하다.

많은 이들은 K리그와 J리그 사이에서 내셔널리즘을 자극하면 흥행이 좀 되지 않겠느냐고 한다. 한국과 일본이 맞붙으면 누구도 일본에 지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껏 지켜본 AFC 챔피언스리그에는 이런 애국심이 별로 잘 먹히지 않는다. 사람들은 태극마크를 달고 일장기를 단 이들을 눌러주길 바라지 수원삼성의 푸른 유니폼을 입은 데얀이 가시마 골문에 골을 넣는다고 애국심을 느끼지는 않는다. 3.1절에 AFC 챔피언스리그 J리그 팀과의 원정경기에서 K리그 선수가 기가 막힌 골을 넣고 산책 세리머니 정도를 해주면 아마 대중과 언론이 아주 조금 관심을 가질 것이다. 물론 이런 관심은 그때뿐이다.

경기력으로 국내 팬들에게 AFC 챔피언스리그를 어필하는 것도 지금까지는 잘 이뤄지지 않았다. K리그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팀을 바꿔가며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할 때도 흥행은 폭발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아시아에서는 K리그가 제일 잘하네’라고 생각할 뿐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다. 아마 가시마전에서 데얀이 오버헤드킥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해도 이슈는 그때 뿐이었을 것이다. 경기력이 국내에서 AFC 챔피언스리그 흥행의 요소였다면 이미 성남과 포항, 울산이 아시아를 정복했을 때부터 경기장은 만석을 이뤘어야 한다. 적어도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AFC 챔피언스리그의 경기력과 흥행, 관심은 별로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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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사드전을 기억하십니까?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스토리다. 억지 애국심을 자극하는 스토리가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 <스포츠니어스>가 자주 하는 훈훈한 감동 스토리의 선수를 발굴하는 일도 아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K리그와 싸우는 ‘적’을 만들고 ‘악당’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일본이면 더 좋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부당하고 비열한 상대 녀석들을 반드시 꺾어줘야 한다는 당위성이다. 마치 프로레슬링에 악당 캐릭터가 있는 것처럼 AFC 챔피언스리그도 그런 식으로 이슈몰이를 해야 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국내 시장에 관한 이야기다. AFC에서 스토리를 집필하자는 게 아니다.

내 인생 경기를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2011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현대와 알사드의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꼽는다. 이 경기는 전북팬 뿐 아니라 알 사드 팬을 제외한 대다수가 전북을 일방적으로 응원했던 경기였다. 이 경기 전에 열린 수원삼성과 알사드의 4강 1차전에서 벌어진 초유의 폭력사태 때문이었다. 당시 경기 도중 두 팀은 충돌했고 결국 알 사드 선수가 관중을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 와중에 알 사드 소속 이정수는 스스로 경기장을 빠져 나가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경기를 본 적이 없다. 경기가 끝난 뒤 모두가 분노했다. 알 사드는 그냥 전북을 상대하는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팀이 아니라 깨부숴야 할 악의 무리였다.

전북과의 결승전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바로 1년 뒤인 2012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울산현대가 알 아흘리를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할 때도 현장에 있었는데 그때는 경기도 일방적이었고 무엇보다도 상대팀에 대한 적개심이 별로 없었다. K리그 팀이 우승을 차지해 기쁘긴 했지만 ‘저 놈들을 반드시 부숴버려야 한다’는 전투력은 별로 없었다. 알 아흘리가 오건 페르세폴리스가 오건 뭐 별로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알 사드 때는 달랐다. 후반 종료 직전 이승현이 극적인 동점골을 터졌을 때는 중립을 지키려던 기자들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냥 경기장 전체가 경기 내내 그렇게 들썩였다. 현장 뿐 아니라 언론에서도 이 경기를 시작 전부터 꽤 비중 있게 다뤘다.

ACL이 이렇게 뜨거웠던 적 있나?

지금도 알 사드는 K리그에 공공의 적으로 남아 있고 당시 이야기는 계속 회자된다. K리그가 자주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라갔지만 이때가 가장 치열했고 관중의 호응도 컸던 건 상대가 ‘악당’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팀도 아니고 카타르에 있는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팀이었는데도 그들은 4강전에서의 폭력적인 장면 때문에 ‘공공의 적’이 됐다. 어쩌면 그때 진정한 축구를 본 적 같다. 체통을 지키고 중립을 지켜야 할 이들까지도 들썩이게 만드는 그 경기는 알 사드를 때려 부수기 위한 한 편의 영화였다. 물론 알 사드가 우승을 했으니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나쁜 놈들, 아주 비열한 놈들, 그런 식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다니 더 나쁜 놈들….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난다. 이런 게 바로 진짜 우리가 축구에 몰입하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데얀이 대중과 언론을 향해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나 역시 많이 동의하고 있지만 우리도 이제 관심을 호소만 하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고민해 봐야 한다. 그리고 나는 알 사드처럼 K리그, 혹은 대중을 하나로 모을 소재를 어제 가시마전을 보면서 찾았다. 바로 권순태다. 그는 경기 종료 후 지금까지도 검색어 순위에 이름을 올리며 이슈의 중심이 됐다. 물론 국내 언론 중에서는 그를 좋게 바라보는 이들은 별로 없다. 한국인이 K리그 팀을 상대로 발차기를 하고 박치기를 했다는 자극적인 소재로 바라본다. 만약 FC서울에 있던 다카하기가 J리그 팀과의 경기에서 박치기를 하고 “팀을 위한 행동이었다. 일본 팀에는 지고 싶지 않았다”라고 하면 박수를 칠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나는 권순태의 행동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잘못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거기에 ‘한국인’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서 무슨 민족을 배신한 반역자 취급할 필요는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다카하기가 J리그 팀에 박치기를 했다면 우리의 반응이 어땠을지 똑같이 비교해 보자. K리그 기사 한 줄 안 쓰던 매체들이 권순태로 조회수를 쪽 뽑아먹기 위해 그의 SNS까지 뒤져 아내의 미모가 어떻다는 둥의 기사까지 쓰고 있다. 별로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의도가 불순하기 때문이다. 권순태의 행동을 비난하면서 거기에 애국심 프레임을 씌워 논란을 더 끌어 보겠다는 거다.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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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태가 ‘악당’이 좀 되면 어떤가

그런데 한편으로는 오랜 만에 알 사드에 필적할 만큼 대중을 똘똘 뭉치게 할 소재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이슈 몰이는 애국심으로도 안 됐고 경기력으로도 안 된다는 걸 너무나도 많이 봐온 상황에서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대중의 관심을 얻는 건 알 사드 같은 ‘악당’이 등장할 때다. 권순태에겐 미안하지만 어제 경기를 통해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아마 권순태는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4강 2차전에서 어마어마한 야유를 받을 것이다. ‘나카무라 순타이’라는 조롱 걸개가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해트트릭을 하고 산책 세리머니를 해도 딱 그때만 관심을 받는 게 전부인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이 정도의 험악한 분위기는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지금도 권순태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렇게 그 동안 대중이 관심 없던 AFC 챔피언스리그에 대해 언론이 달라붙어 기사를 양산해 낸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다. 대부분이 ‘권순태 나쁜 놈’을 기사의 화법으로 풀어쓴 식이지만 이렇게 누군가 악당이 되는 것도 AFC 챔피언스리그 흥행에는 나쁜 일이 아니다. 데얀은 경기를 앞두고 관심 부족에 대한 불만을 내뱉으며 바로 옆에서 염기훈과 사리치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마 권순태는 2차전을 위해 수원을 찾으면 언론 누구나 가장 먼저 인터뷰하고 싶어하는 선수가 돼 있을 것이다. ‘악당’에게도 대중은 관심이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축제를 좋아한다. 월드컵 때만 반짝하는 열기를 보면 공놀이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K리그 팀이 승승장구해도 별로 관심이 없다. 한국의 빨간 유니폼과 일본의 파란 유니폼이 애국가와 기미가요 연주 후에 붙는 경기가 아니라면 애국심을 K리그까지 대입하지도 않는다. AFC 챔피언스리그가 국내에서 관심을 끌 수 있는 건 우리가 다 함께 청산해야 할 악당을 만들어 놓고 그를 이긴 뒤 기뻐하거나 패하고 분해 하는 모습을 만드는 것뿐이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알 사드가 했던 그 ‘악당’ 역할을 이번에는 권순태가 좀 해줘야 한다. 나는 ‘악당’ 권순태를 환영하고 수원 팬들은 이 권순태에게 더욱 더 분노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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