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A매치 기간을 앞두면 바쁜 구단들이 있다. 소속 팀 선수가 국가대표팀에 차출된 팀들이다. 단순히 선수를 보내주는 것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의외로 할 일이 많다. 서류 처리도 해야하고 홍보도 해야한다.

더군다나 신생팀에서 국가대표 선수가 차출되면 이것은 또다른 경험이다. 선수도 좋은 경험이 되지만 구단 직원들 또한 많은 것을 배운다. 여기 정말 제대로 배운 구단 직원들이 있다. 안산그리너스다. 최근 안산은 외국인 선수 코네를 라이베리아 대표팀에 차출했다. 그저 보내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에피소드가 너무나 많다. 고생은 곧 경험이라지만 이건 너무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소개한다.

왜 우리가 보내줘야 해?

어느 날 평화롭던 안산 구단 사무실에 공문 한 장이 발송됐다. 외국에서 온 팩스였다. 안산의 입장에서는 낯설 수 밖에 없었다. 공문은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날아왔다. 라이베리아 축구협회가 A매치 기간을 앞두고 안산 코네를 차출한 것이다. 안산 구단의 입장에서는 경사였다. 당연히 보내줘야 했다. 하지만 공문을 천천히 읽어 본 직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거 보내줘야 하는 거야?"

이렇게 열심히 뛰니 대표팀도 가는 거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라이베리아 축구협회는 두 경기를 위해 코네를 소집했다. 문제는 상대 팀이었다. 공문에는 라이베리아 국가대표팀의 경기 일정이 안내되어 있었다. 라이베리아의 상대 팀에는 당연히 상대 국가 이름이 적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엉뚱한 동물 이름들이 등장했다. "이거 프로 팀과 평가전 같은데 보내줘야 해?" 당시 안산은 매 경기가 상당히 중요할 시기였다. 연패 중이었다.

그런데 한 직원이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잠깐, 이거 나이지리아 아니에요?" 두 번째 경기 상대 팀은 'Super Eagles(슈퍼 이글스)'라고 적혀 있었다. '슈퍼 이글스'는 나이지리아 대표팀의 애칭이었다. "그럼 첫 번째 팀은 누구야? 한 번 찾아봐." 첫 번째 상대는 'The Leopards(더 레오파즈)'였다. 안산 구단 관계자는 미지의 팀을 찾아 팔자에도 없는 검색을 했다. 그리고 찾아냈다. 콩고민주공화국이었다.

"거 참, 살다가 소집 공문에 동물 이름 적어서 보낸 적은 처음이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안산은 신생 팀이다. 청소년 대표는 배출해봤지만 아직 대한축구협회의 A대표팀 공문도 받아본 적 없다. 그런 와중에 라이베리아 축구협회의 A대표팀 차출 공문부터 먼저 받아본 셈이다. 이 이야기를 전한 구단 관계자는 "이 경기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이었는데 경기 일정도 틀리더라. 그래서 직접 네이션스컵 공식 홈페이지를 찾아서 일정을 찾아야 했다"라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콩고와 콩고민주공화국이 다른 것도 처음 알았다."

조지 웨아가 왜 거기서 나와?

우여곡절 끝에 코네는 오랜만에 고국 라이베리아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두 경기를 뛰었다. 첫 경기는 '더 레오파즈' 콩고민주공화국이었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인 만큼 꽤 중요한 경기였다. 코네는 교체 명단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등번호 만큼은 에이스였다. 그는 7번을 달고 있었다. 후반 25분 교체 투입된 코네는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 무대를 밟았다.

그리고 며칠 뒤 코네는 두 번째 경기에 나섰다.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였다. 구단 관계자들은 코네가 여기에서 골을 넣기를 기원했다. 아프리카 강호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득점을 한다면 안산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경기에서도 코네는 여전히 교체 명단에 있었다. 선발 명단을 확인하던 구단 관계자는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조지 웨아가 왜 여기 있어?"

이렇게 열심히 뛰니 대표팀도 가는 거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당시 라이베리아 선발 명단에는 세계 축구의 전설이자 현재 라이베리아 대통령 조지 웨아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라이베리아 축구협회는 안산에 나이지리아전에 대해 "평가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알고보니 평가전이 아닌 기념 경기였다. 조지 웨아의 전성기 시절 등번호 14번을 영구결번하기 위한 경기였다. 해당 경기는 공식 A매치로 기록되지 않았다. 정말 친선 경기였다.

그래도 무게감은 꽤 있었다. 상대 팀 나이지리아에는 윌프레드 은디디(레스터시티), 피터 에테보(스토크시티) 등이 있었다. 나이지리아 또한 조지 웨아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명단을 꾸린 것으로 보였다. 조지 웨아는 약 75분 정도를 뛰고 교체됐고 코네는 15분 정도 그라운드를 밟았다. 코네의 우상이었던 조지 웨아와 뛴 것이다. 경기는 라이베리아가 1-2로 패했지만 코네의 입장에서는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었던 코네

말도 많고 탈도 많은(안산의 입장에서는) 두 경기가 끝났다. 이제 코네는 소속팀으로 돌아와야 했다. 공문 상 코네의 복귀일은 10월 13일이었다. 코네가 없이 두 경기를 모두 이긴 안산이지만 그래도 코네의 합류는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코네에게서 연락이 왔다. "13일까지 안산으로 복귀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알고보니 비행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뛰니 대표팀도 가는 거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라이베리아에서 한국으로 오는 여정은 복잡하다. 비행 시간만 40시간이 넘는다. 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에서 출발할 경우 시에라리온 룽기 공항으로 이동한다. 이후 비행기를 타고 파리와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인천으로 온다. 운이 좋을 경우 암스테르담만 경유할 수 있다. 결국 코네는 18일 안산으로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16일 수원FC전을 앞둔 안산 이영민 감독대행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코네? 애가 라이베리아 가서 안와…"

그렇게 힘든 여정을 거쳐 코네는 한국에 돌아왔다. 안산의 입장에서는 천군만마가 돌아온 셈이다.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코네라는 최전방 공격수의 가세는 긍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모두가 돌아온 코네를 환영했다. 그런데 코네가 이상했다.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뭔가 이상해 이마를 짚어보니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몸이 뜨거웠다.

평소 같았다면 단순 감기로 생각할 수 있었다. 문제는 하필 코네가 돌아왔을 때 한국은 질병 문제로 술렁이고 있었다. 한국인 메르스 환자가 발생해 방역 당국이 비상 체제에 돌입했고 중국에서는 치사율 100%라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등장했다. 코네를 본 순간 구단 관계자들의 머릿속은 불안함에 가득 찼다. "이거 혹시 메르스 아니야?" 만일 메르스라면 코네는 당장 격리되어야 했다.

구단 관계자는 급하게 코네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검진을 받았다. 안산 구단은 안절부절할 수 밖에 없었다. 코네가 만일 메르스 환자라는 것이 판명되면 단순한 전력 손실 뿐 아니라 안산 구단의 모든 시설에 방역 작업까지 해야 할 수 있었다. 구단 관계자의 마음은 복잡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코네를 진찰한 의사가 한 마디 툭 던졌다. "감기네요. 잘 먹고 잘 쉬게 하세요."

이렇게 열심히 뛰니 대표팀도 가는 거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렇게 코네는 복귀 후 첫 경기였던 성남FC 원정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푹 쉬었다. 안산의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전력 손실이 한 경기 더 늘어난 셈이었다. 하지만 마냥 슬프지는 않았다. 적어도 코네가 메르스 환자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와, 저희 진짜 긴장했어요. 감기라고 할 때 어찌나 다행이던지요"라고 말하는 안산 구단 관계자의 표정은 밝았다. 그렇게 안산 구단 역사상 첫 외국인 국가대표 배출기는 끝났다. 정말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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