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을용 감독대행은 다섯 달째 FC서울에서 감독 역할을 하고 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요즘 K리그에는 감독대행이 너무 많다. 툭하면 감독이 그만둔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프로의 세계에서 성적이 좋지 않은 감독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맞다. 당연한 일이다. 정이 든 감독도 떠나면 그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구단들은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지 않고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올려 남은 시즌을 버틴다. 감독이 떠나고 형님 리더십을 발휘하는 코치가 정신력을 다듬으면 한두 경기는 반짝한다. 그렇게 구단은 감독 없이 시간을 끈다. 감독 없이도 충분히 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감독대행이 반짝 성적을 내면 그를 정식 감독으로 선임한다. 만약 이런 반전의 기미를 보이지 못했을 때가 돼야 새로운 감독이 온다. 시즌 중에 감독 선임이 이뤄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감독이 경질되거나 사퇴하면 감독대행이라는 신분으로 코치를 남은 시즌 동안 써먹는다. 심지어 ‘감독대행의 대행’이 등장한 팀도 있었다. 감독대행이 그만두고 그 대행이 또 감독이 된 것이다. 이것도 K리그에서 유행이라면 유행이다. 내가 술을 마셔 대리기사를 불렀는데 그 분도 나와 같이 술을 마셔 또 다른 대리기사를 부른 셈이다.

안드레 감독은 감독대행만 무려 6개월을 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감독대행으로 몇 달씩 버티는 팀들

하지만 나는 이런 유행은 잘못 됐다고 생각한다. 성적 부진으로 감독을 내치는 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감독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도 한다. 이것도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감독대행이라는 건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기까지 임시방편으로 운용되어야 하는 체제다. 길어야 두세 경기다. 구단은 감독이 떠난 시점부터 빠르게 새로운 감독을 물색해야 한다. 일단 ‘감독대행 체제로 분위기를 보다가 성적이 괜찮으면 정식 감독으로 올리자’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렇게 감독대행 체제가 길어지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감독대행들에게 몇 달씩 간 보지 말고 정식 감독으로 선임해 지도력에 힘을 실어주건 이제 떠나라고 하건 선택해야 한다.

감독대행이 팀을 이끄는 일은 아주 일시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12개의 K리그1 구단 중 3개 구단이 벌써 한참 전부터 감독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FC서울은 황선홍 감독이 지난 4월에 사임했는데 5개월 째 이을용 코치가 팀을 이끌고 있다. 이쯤 되면 이을용 코치에게 감독을 맡기건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건 했어야 한다. 5개월 동안 손만 잡고 애매한 스킨십은 다 하면서 사귀지는 않는 꼴이다. 전남과 수원삼성도 한 달째 감독이 공석이다. 유상철 감독과 서정원 감독이 떠났는데 여전히 감독대행이 팀을 이끌고 있다. 한 달 동안 이런 식이면 감독대행이 아니라 감독 아닌가. K리그2도 10개 팀 중 두 팀이나 감독대행 체제다.

지난 시즌에도 그랬다. 대구FC는 손현준 감독이 사퇴한 뒤 안드레 감독대행 체제로 무려 6개월을 끌다가 그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강원FC도 최윤겸 감독이 떠난 뒤 박효진 감독대행 체제로 석 달을 버텼다. 인천유나이티드는 2016년 시즌 도중 김도훈 감독이 사임하고 이기형 감독대행 체제로 석 달을 보내다가 그를 정식 감독으로 선임했다. 지난 시즌 K리그2에서도 수원FC 조덕제 감독이 사퇴한 뒤 김대의 감독이 선임되기 전까지 조종화 감독대행 체제로 넉 달을 보냈다. 대전시티즌도 이영익 감독 사퇴 후 고종수 감독이 선임되기 전까지 김종현 감독대행 체제로 넉 달 가까이 버텼다. 둘 중 하나다. 넉 달 정도 버텨 분위기가 나쁘지 않으면 정식 감독으로 임명하고 아니면 새로운 감독을 찾는 식이다.

안드레 감독은 감독대행만 무려 6개월을 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감독대행과 감독은 엄연히 다르다

적어도 내가 아는 ‘대행’ 체제는 이런 게 아니다. 대행은 말 그대로 잠시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내가 술을 마시고 다음 날 너무 힘들 때 우리 조성룡 기자가 데스킹 대행 체제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석 달에서 넉 달씩 감독 역할을 맡겨놓고 이걸 감독대행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감독대행 체제가 오래가는 건 구단이 너무 책임감이 없는 행동이다. 감독대행은 성적에 대한 전적인 책임에서 자유롭다. 유리하게 해석할 때는 감독이고 불리할 때는 코치가 된다. 물론 감독대행들이 이렇게 무책임하게 피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늘 최선을 다하고 있고 감독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열심히 한다. 하지만 감독대행 뒤에 숨은 구단을 보면 무책임의 극치를 느낀다.

K리그를 선도하는 두 빅클럽 FC서울과 수원삼성이 모두 감독대행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흥행을 놓고 봤을 때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특히나 4월부터 9월까지 코치가 팀을 이끌고 있는 FC서울은 더더욱 그렇다. 아무리 이을용 감독대행이 지도자로서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다섯 달 동안이나 이렇게 애매한 상황을 이어가서는 곤란하다. 감독대행 체제라는 건 감독이 부득이하게 팀을 떠난 뒤 두세 경기를 임시로 치르는 정도로 끝내야 한다. FC서울은 이을용 코치를 정식 감독으로 올리건 다른 감독을 선임하건 빨리 선택해야 한다. 다섯 달이면 한 팀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다가 책임을 지고 사퇴를 했어도 이상할 게 없는 긴 시기다. 수원삼성과 전남 역시 마찬가지다. 감독대행 체제로 오래 시간을 끄는 건 팬들에 대한 서비스 인식 부족이다.

감독대행과 감독의 차이는 크다. 과거 인천에서 두 번이나 감독대행을 했던 김봉길 감독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감독대행은 감독이 아니다. 그냥 직함 하나 달라 보이지만 엄청난 차이가 난다. 나는 감독대행을 하는 동안 괜히 감독이라고 으스대는 것 같아 경기장에 양복도 못 입고 나갔다.” 얼마 전 서울이랜드와의 경기가 끝난 뒤 만난 부천FC 조민혁 감독대행도 “나는 감독이 아니다. 내가 뭐라고. 나같은 ‘초짜’가 뭐라고”라는 말을 연신했다. 겉으로 봤을 땐 아무나 벤치의 감독석에 앉아 있으면 똑같아 보일지 몰라도 감독대행을 하는 것과 정식 감독의 직함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과 선수들을 대하는 자세부터가 다르다.

안드레 감독은 감독대행만 무려 6개월을 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감독대행이 오래 이끄는 팀, 정상일 리 없어

요즘 보면 감독처럼 으스대는 걸로 보일까봐 감독대행 직함을 달고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벤치에 앉는 이들이 너무 많다. 그들을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저들을 괴롭히지 말고 정말 말끔한 양복을 차려 입은 새로운 감독을 데려오던가, 아니면 저들에게 정말 감독 직함을 주고 양복을 빼 입고 오게 하던가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도 아니고 코치도 아니고 그렇다고 책임을 묻기에도 어렵고 안 물을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을 자꾸 만들지 말자. 프로 무대에서 감독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마인드로 대하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몇 달씩 감독도 없이 팀을 운영하는 건 프로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감독이 없으면 구단으로서는 편한 점도 있다. 팬들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황선홍도 없고 서정원도 없으니 ‘황새 아웃’이나 ‘세오 아웃’이라는 구호도 사라졌다. 누군가 책임질 만한 이들이 사라졌으니 팬들은 어디 제대로 하소연할 곳도 없다. 그렇게 서울은 넉 달을 버텼는데 이제 와서 돌아보면 참 무책임하다. ‘황새 아웃’이라는 구호는 사라졌고 감독도 사라졌는데 힘겹게 선수들을 이끄는 감독대행 직함을 단 코치밖에 없다. 수원삼성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성적을 내면 감독대행을 정식 감독으로 선임하고 아님 말고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 코치진이 선수들을 가장 잘 안다”는 핑계로 감독대행을 세워 놓은 뒤 숨으면 안 된다.

감독은 그 팀의 상징이자 대표다. 감독은 팀의 스타일을 정하고 팀을 그 길로 이끈다. 물론 중간에 책임질 일이 생겨 감독이 팀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프로의 세계란 그렇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빠르게 새 선장을 구해야 하는데 가만히 있어도 바람에 배가 움직이니 그냥 가는 대로 놔둔다. 하지만 그 사이 배는 원래 방향을 잃고 이상한 곳으로 가고 있는 걸 수도 있다. 감독 없이 석 달, 넉 달을 버티는 팀이 정상일 리 없다. 감독은 감독의 역할이 있고 수석코치는 그들 자체로의 역할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요즘 K리그에서는 감독 없이도 수석코치만 있으면 된다고 믿는 팀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K리그에는 감독대행이 너무 많고 또 그들의 임무가 너무 길다. 반드시 새겨야 할 문제다.

footballavenue@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