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K리그2 공무원’ 알렉스, “1부리그 찍고 명예퇴직할 것”

알렉스 안양
FC안양 알렉스를 직접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사람들에게는 내셔널리그도 생소하고 K리그2도 생소하다. 이 리그는 늘 관심이 부족한 경기장에서 경기를 한다. 기사 한 줄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이 무대에서 무려 8년 동안 뛰어온 외국인 선수가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더욱 놀랍다. 2010년 내셔널리그 울산현대미포조선에 입단한 그는 이후 K리그2 고양 Hi FC와 강원FC, 대구FC, FC안양, 서울이랜드 등을 거쳐 다시 FC안양에 돌아왔다. 무려 하부리그에서만 6개 팀의 유니폼을 입었던 대표적인 저니맨이다.

사람들은 그를 ‘K리그2의 공무원’이라고 부른다. 일확천금을 벌 만큼은 아니지만 소소하고 꾸준하게 활약하는 그는 K리그2가 출범할 때부터 지금까지 누구보다도 한국 축구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바로 FC안양 알렉스다. 한국에서 여자친구 발 닦아주는 알렉스나 여러 명의 축구선수 알렉스도 있지만 늘 묵묵히 최선을 다했던 이 ‘K리그2의 공무원’ 알렉스를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렇게 오랜 시간 한국에서 생활한 그에 대해 한 번쯤은 주목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갑다.
나도 반갑다.

요새 컨디션은 어떤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처음에는 팀 분위기가 좋지 않았지만 시즌 중반부터 서로 발이 맞고 있다. 지금도 나아지는 중이다. 고정운 감독이 수비에 대한 요구도 많이 하는데 일단은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에 적응해야 한다. 지금 팀 스타일상에서는 한 명이 덜 뛰면 공백이 크다. 열심히 뛰려고 노력 중이다.

한국과 인연을 맺은 지 벌써 8년째다. 중간에 잠깐씩 태국이나 고향으로 돌아간 던 적도 있지만 그래도 8년을 이곳에서 생활해 왔다는 건 대단하다.
뭐 웬만한 한국어는 다 알아 듣는다. 말을 잘 하지 못해서 그렇지 듣는 건 문제 없다. 경기 도중에도 상대팀 선수들에게 “건드리지 마”라고 한국말로 이야기한다. 물론 내가 불리할 때는 못 알아듣는 척 한다. 5대2 공 돌리기를 하다가 내기에 걸리면 “몰라. 몰라”라고 한다. 요즘은 공 돌리기를 할 때 숫자도 한국말로 센다. 할 수 있는 말은 대부분 욕이다.

어떤 욕을 잘하나. 나에게 해달라.
안 된다. 너무 감칠맛이 살아 있어 정말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괜찮다. 해도 된다.
알겠다. 니X 뽕이다.

외국인에게 이런 욕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이 고급 욕설은 어디에 배웠나.
영화 ‘똥파리’라고 아나. 난 그 영화를 수십 번도 넘게 봤다. 물론 영화 내용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냥 보고만 있어도 재미있는 영화다. 여기에 나오는 대사 대부분을 외웠다. 거기에 아까 당신에게 한 욕이 나온다. 선수들에게도 자주 쓴다. 원래 해외에 처음 나가면 배우는 게 욕 아닌가.

외국인 선수가 영화 ‘똥파리’를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신선한 일이다.
그 영화는 최고다. 2010년 울산현대미포조선에서 처음 그 영화를 봤다. 당시 숙소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그 영화를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인터넷으로 영상을 다 찾아봤다. 그래서 내가 욕을 좀 맛깔나게 한다.

‘똥파리’를 그렇게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
주인공이 한 번에 두 명을 때릴 때의 장면은 영화 ‘똥파리’의 백미다. 당신도 아마 그 영화를 봤다면 나의 말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명은 웃다가 또 맞는다. 수도 없이 돌려봤다. 유튜브 영상으로도 요즘도 심심할 때마다 본다. 유튜브에 접속하면 내가 많이 본 영상 1위가 맨 위에 뜨는데 늘 ‘똥파리’가 떠 있다. 이건 독립영화의 수준을 넘어섰다.

알렉스 안양
영화 ‘똥파리’ 마니아라는 알렉스는 포즈를 요구하고 영화 속 주인공의 포즈를 그대로 보여줬다. ⓒ스포츠니어스

그 주인공이 사실 그 영화의 감독이라는 건 알고 있나. 양익준 감독이다.
그건 몰랐다. 좋은 정보 고맙다. 늘 영상만 계속 돌려볼 뿐 그 사람이 주연이면서 감독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앞으로 ‘똥파리’를 다시 감상할 때 참고하도록 하겠다.

중간에 공백이 있긴 해도 한국에서 8년 가까이 살았다. ‘똥파리’ 말고 다른 영화도 좀 보자.
‘똥파리’ 만큼은 아니어도 밤마다 채널 돌리다가 수십 번 본 다른 영화도 있다.

제목이 뭔가.
제목은 모르겠고 그런 대사가 나온다. “쉽, 쉽새X?”

‘타짜’다. 난 그 영화는 백 번도 넘게 봤다. 유해진이 하는 대사 아닌가.
맞다. 내용은 다 이해를 못해도 그냥 보다보면 재미있다. 그리고 유해진을 보면 우리 팀 누구와 닮았다.

혹시 그. 그… 감, 감독님?
나는 답하지 않겠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알겠다. 그냥 나 혼자만의 추측이라고 해두자.
가장 많이 본 영화는 ‘똥파리’고 두 번째는 ‘타짜’다. 밤마다 영화 채널에서 해주더라. 그러면 중간부터라도 꼭 본다. 그리고 요즘에는 경찰인데 사람 한 명을 자동차로 치어 시체를 실고 다니는 그 영화를 자주 본다. 요즘에는 밤마다 그걸 해주더라.

‘끝까지 간다’라는 영화인 거 같다. 나도 밤마다 매일 본다.
맞다. 우리 다음에는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

알겠다. 앞으로 10번씩 더 보고 만나기로 하자. 한국에 처음 온 지 8년이 됐다. 이제 생활할 만한가.
물론이다. 이제는 너무 편한 곳이다. 아들과 와이프와 함께 한국에서 살고 있다. 아내도 내가 태국에서 잠깐 뛰고 있을 때는 “다시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우리 가족 모두 한국을 좋아한다. 아들은 이제 세 살인데 3살 평생 중 2/3을 한국에서만 살았다. 태어나기만 브라질에서 태어났고 태국에서 6개월 살았고 나머지는 다 한국에서 살았다. 아마 우리 아들도 곧 유창한 한국 말을 하게 되길 기대한다.

알렉스 고양
2014년 고양 Hi FC 유니폼을 입었을 당시 알렉스의 모습. ⓒ프로축구연맹

한국에 처음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10년의 일이다.
처음에는 테스트를 받으러 왔다. 내셔널리그 울산현대미포에 브라질 피지컬 코치가 있었는데 그 분이 나를 추천해 줬다. 그래서 한국으로 오게 됐다. 내가 정말 촌놈이다. 그전까지는 브라질에서만 뛰었고 비행기를 타본 적도 없다. 한국에 온다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봤다. 처음 해외에 나가는 건데 혼자였다. 두려운 게 많았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한국과의 인연이 깊어질 것이라 생각이나 했을까.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은 브라질에서 거의 축구를 그만두려던 시기였다. 기회도 별로 없었고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나에게 한국행은 정말 신의 한수였다. 그 당시에는 한국에서 이렇게 오래 뛸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울산미포는 사실상 나에게 첫 팀이나 다름이 없다.

그건 무슨 말인가.
브라질에 있을 때는 프로라고 할 수도 없었다. 딱 3개월만 계약하고 그 계약기간 동안만 선수로 뛰었다. 그리고 실력이 괜찮으면 “내년에 다시 와서 3개월 계약하자”고 하는 식이었다. 정식 프로라고도 할 수 없었고 이렇게 해야 3개월치 월급만 주고 선수들을 써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는 9개월은 알아서 어디든 돌아다니다가 오라는 식이었다.

그럼 당신은 그 남은 9개월 동안 뭘했나.
나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트리에 쓰이는 액세서리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일을 해서 돈을 모았다. 내가 그 한 달 동안의 아르바이트를 잊을 수 없는 건 그 한 달 일한 월급으로 처음 여권을 만들어 한국에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행기 티켓은 울산미포가 대줬고 나는 이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여권을 만든 다음 한국에 와서 기초생활비로 썼다. 그 공장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한국에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슨 일을 했을까.
아마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은퇴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한국을 소중히 여긴다.

한국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이었나.
추운 게 너무 힘들었다. 브라질은 이런 추위가 없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어도 영상 10도에서 영상 24도 사이다. 그런데 2010년 1월 한국에 처음 왔는데 깜짝 놀랐다. 이렇게 추운 곳에서 축구를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심지어 눈도 왔다. 첫 2주간 훈련을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추워서 목이 너무 따가운 기분도 처음 느껴봤고 음식도 매워서 적응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그래도 다 적응한 모양이다.
물론이다. 날씨도 적응이 됐고 무엇보다도 한국 음식도 좋아한다.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김밥, 불고기, 라면 등을 좋아한다. 아, 만두를 빼놓을 수 없다. 만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매일 먹는다.

매일 만두를 먹으며 ‘똥파리’나 ‘타짜’를 보는 건 내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셔널리그 생활은 어땠나.
첫 시즌에는 적응이 중요했다. 지금이야 K리그2가 생겼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 내셔널리그가 2부리그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관중은 적었지만 운동장 등 환경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꿇리지 않는 좋은 시설이었다.

알렉스 대구
대구 유니폼을 입고 뛰던 알렉스의 모습 ⓒ프로축구연맹

울산미포만 그랬던 거 아닌가.
아니다. 고양국민은행도 환경이 좋았다. 또한 다른 팀들도 브라질 수준에 비하면 훨씬 더 좋았다. 특히나 고양국민은행과는 늘 우리가 라이벌 의식이 있었다. 서로 우승을 다투는 팀 아닌가. 그리고 항상 부산교통공사와의 경기가 힘들었다. 그 팀이 그렇게 좋은 성적을 내는 팀은 아닌데 항상 이기기가 어려웠다. 특히나 부산 원정경기는 더더욱 그랬다.

울산미포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은 모양이다.
물론이다. 그 팀에서 많은 걸 배웠다. 지금도 울산미포를 생각하면 늘 고맙다. 나를 크게 성장하게 해준 발판이었다. 그때 그 감독 이름이 뭐였더라. 머리 크고 울산현대 감독을 했다가 지금 대학교 감독하는 그 분…. 갑자기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조예스, 아니 조민국 감독을 말하는 건가.
맞다. 조민국 감독이다. 그 분이 그래도 나를 믿고 기용해 주며 기회를 줬다.

당신은 울산미포에서 두 시즌 동안 50경기 18골 4도움의 좋은 활약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 브라질로 돌아갔다.
울산미포에서 2011년 시즌을 마친 뒤 재계약 제의를 받았다. 그런데 브라질 주리그 1부에서 제안이 왔다. 내가 과거 브라질에서 뛰던 3개월 짜리 아르바이트 팀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브라질에서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어서 그곳에 가게 됐다. 상 카에타누를 거쳐 오에스치로 넘어 갔다.

하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걸 보면 브라질에서의 생활이 별로였던 것 같다. 
브라질에서도 차별이란 게 있다. 나도 브라질 사람이지만 브라질 프로무대에서는 한 번도 제대로 뛰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누가 프로 경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많이 따졌다. 그리고 내가 유명 선수도 아니어서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1년 동안 브라질에서 딱 두 경기에 나선 게 전부였다. 그래서 내가 먼저 한국에 있는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해 “한국으로 가고 싶은데 팀을 알아봐 줄 수 있느냐”고 했다.

그 팀이 고양 Hi FC였나.
그렇다.

아멘.
에이전트가 그 팀을 추천해 줬다. 한국에서 이제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이라 다른 곳은 이미 선수 충원이 끝났고 이 팀이 아니면 갈 곳이 마땅치 않다고 했다.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선택하게 됐다. K리그2가 출범하면서 예전 내셔널리그 팀들에게도 프로화의 기회를 줬다고 들었다. 고양 Hi FC가 내가 알던 예전 그 할렐루야 팀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FC안양 알렉스
알렉스와 깊은 이야기를 나눘다. ⓒ스포츠니어스

늘 그 팀은 종교적인 색채로 논란이 많았다. 당신이 직접 느낀 팀 분위기를 말해 달라.
일단 나도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팀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간 거였다. 좋은 건 다른 팀 감독에 비해 그 팀 감독은 욕을 별로 안 한다는 점이었다. 뭔가 확실히 분위기가 다른 팀들과는 달랐다. 하지만 한 가지 불편했던 건 일요일 아침 6시에 다 같이 일어나 교회에 가야한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이런 경험도 좋았다. 한국 축구 리그가 개편되면서 K리그2로 입성하게 됐고 마치 집에 온 것처럼 편했다. 한국이 나에게 문을 열어줘 축구를 계속할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고양 Hi FC가 리그에서는 손꼽히는 약체였다. 약체 팀의 공격수로서 힘든 점은 없었나.
항상 지기 싫었는데 우리 선수들이 많이 도와줬다. 지금은 태국에 가 있는 알미르와 내가 최전방에서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해줬다. 한국 선수들은 중앙선 밑에서 알아서 할 테니 우리한테는 맨 앞에서 해결하라는 작전이었다. 그래서 전방에서 많은 걸 보여줄 수 있었다. 감독은 늘 기도를 했다. 약체 팀이지만 그 당시 화내는 모습은 거의 못 봤다.

당시 당신의 활약은 눈부셨다. 당신은 고양에서 두 시즌 동안 46경기에 나서 26골 9도움의 좋은 기록을 남겼다.
내가 한국에서 뛴 시즌 중에 최고의 시즌을 꼽으라면 바로 2013년도다. 전술에 얽매이지 않고 공격적으로 자유롭게 축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안산경찰청과의 경기에서 우리가 한 번은 0-8로 진 적이 있었다. 당시 선수들이 어렸고 안산경찰청 선수들은 다른 K리그1에서 뛰다 온 선수들도 많았다. 그래서 우리 선수들이 겁을 많이 먹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태업설은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그 다음 홈 경기에서 우리가 안산경찰청을 2-0으로 이겼다. 내가 그 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다. 그 경기장 한국에서 뛰었던 경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신은 이후 강원으로 이적했다.
원래는 고양에서 바로 울산현대 이적이 추진됐었다. 당시 울산미포 조민국 감독이 울산현대로 가면서 나를 원했다. 그런데 울산현대에서 제시한 계약 조건이 별로 좋지 않았다. 계약 기간이 너무 짧아 내가 안정적으로 뭔가를 보여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시기 강원이 더 긴 계약 조건을 제시했다. 또한 울산은 내 포지션보다는 더 수비적인 역할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계약 기간도 길고 내가 뛸 수 있는 포지션에서 기회를 주겠다는 강원으로 갔다.

고양 입장에서는 팀의 에이스를 강원에 내주는 게 싫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당시 고양 구단에서 화가 좀 났었다. 내가 1부리그 팀과 계약하면 놓아주기로 했었고 1부리그인 울산현대로 간다고 해 놓아줬다. 그런데 2부리그 강원으로 가게 돼 구단이 화가 좀 났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알렉스 강원
강원에서 뛸 당시의 알렉스 ⓒ프로축구연맹

하지만 당시는 강원에서 딱 15경기 만을 뛰고 태국으로 날아갔다.
강원에서 뛰고 있는데 태국 차이낫FC이 단장이 강원까지 와 내 경기를 지켜보고는 계약을 제의했다. 그래서 그 팀으로 다시 옮기게 됐다. 하지만 태국은 한국 축구와 많이 달랐다. 경기 템포와 압박도 K리그보다는 느슨한 편이었고 너무 더웠다. 태국 팀과는 2년 계약을 했고 한국에 다시 올 기회는 이제 더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K리그2 대구에서 좋은 제안이 왔다. 나에게 “같이 승격을 이뤄보자”고 했다. K리그1에서도 뛰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대구에 가서 승격을 이루면 1부리그에서 뛸 수 있겠다는 마음 하나로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정말 우여곡절이 많다. 한국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그래서 대구에서 2016년 20경기에 출장해 5골을 넣었다. 그해 8월 우리가 승격을 이루려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부천전이 있었다. 이 경기에서 우리는 전반을 0-2로 밀려 패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후반에 세징야가 한 골을 넣었고 내가 추가 시간에 두 골을 넣으면서 극적인 3-2 승리를 챙겼다. 대구 유니폼을 입고 잊을 수 없는 최고의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해 대구는 승격을 맛봤지만 당시는 K리그1으로 가기 못했다.
대구에서 재계약을 제의하지 않았다. 나도 더 대구에 남고 싶었고 1부리그에서 뛰고 싶었는데 대구에서 계약 제안이 없었다. K리그1에서 한 번 뛰어보고 싶은 생각에 대구에 간 건데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섭섭한 감정이 좀 있다.

그래서 다시 K리그2 FC안양 유니폼을 입게 됐다. 정말 ‘K리그2의 공무원’이라고 부를 만하다.
대구에서 재계약 제안을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이 너무 흘렀다. 나도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강원에 같이 있던 임은주 단장이 안양에서 나를 불러줬다. 선수 등록 등을 위해서는 오래 기다릴 수가 없었다. 대구의 연락을 기다리다가 결국 지난 시즌을 앞두고 안양을 택하게 됐다. 그런데 지난 시즌 초반 경기력이 별로였고 결국 FC안양에서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서울이랜드로 또 다시 옮기게 됐다.

지난 시즌 안양에서 5경기 출장 무득점이었던 당신이 후반기 서울이랜드에서 14경기에 나서 7골을 넣는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서울이랜드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줘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서울이랜드 역시 재계약 과정이 지체됐다. 결국 또 대구에서처럼 될까봐 어떤 팀이건 먼저 제안이 오는 팀과 빨리 계약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다시 안양에서 제일 먼저 연락이 왔다. 아마 대구나 서울이랜드가 당시에 빨리 계약 제안을 했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한 번 초조함을 대구에서 경험해 보니 재계약 제안을 오래 기다리는 게 늘 스트레스다. 더군다나 외국인 선수는 인원이 다 차면 그대로 끝이다. 반 시즌을 쉬어야 하는 수도 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제안 오는 팀을 고려하게 됐다.

서울이랜드 알렉스
알렉스는 서울이랜드에서도 뛰었다. ⓒ프로축구연맹

내셔널리그와 K리그2에서 정말 많은 팀을 거쳤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팀은 어디인가.
대구다. 아까 말한 것처럼 대구에 섭섭한 감정이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경기 스타일이 가장 마음에 든 팀도 대구다.

K리그2의 공무원으로서 오래 살아 남아 있다. 이제 막 K리그에 오는 외국인 선수를 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지금 애들은 편한 거다. 내가 왔을 땐 아무 것도 없었다. 내셔널리그에서도 1세대 외국인 선수였고 K리그2에서도 외국인 선수로는 처음이었다. 요즘 외국인 선수들은 편한 거다. 모든 게 다 갖춰져 있을 때 오지 않나.

한국에서 거의 10년을 살더니 ‘꼰대’가 다 됐다. 당신이 말하는 그런 게 요즘 ‘꼰대’들의 특징이다.
근데 정말이다. 나는 늘 새로 오는 외국인 선수한테는 문화를 빨리 이해하라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나도 처음에는 여러 한국 문화 중 형, 동생 문화를 이해하는 게 좀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다 이해하고 지낸다. 나보다 어린 한국 선수들한테도 장난 삼아 “나한테 형이라고 부르라”고 하기도 하는데 얘네들이 형이라고는 죽어도 안 한다. 반대로 나도 나이 많은 선수들에게 형이라고는 안 부르는데 그래도 예의는 지킨다. 경기장 안팎에서의 예의를 먼저 배워야 한국에서는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

한국 생활을 오래했는데 친한 외국인 선수는 누가 있나.
성남에 있는 에델과 가장 친하다. 대구에 같이 있었는데 요즘도 가족들끼리 자주 만나서 식사도 한다. 서로 집에 가서도 자주 논다. 그리고 부천에 있는 셀소실바라는 피지컬코치도 친하다.

대표적인 저니맨이라 이사를 자주 다녀야 한다. 이사의 노하우가 좀 있나.
노하우는 없다. 이사를 다니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사는 늘 어렵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다. 나도 이제 한 곳에만 머물고 싶다. 짐을 싸서 옮기고 그걸 다시 푸는 일을 반복하는 건 이제 지겹다. 하지만 저니맨으로서 좋은 점도 있다. 여러 곳을 돌아다녀보고 경험해 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구단마다 팀 컬러를 알아볼 수도 있고 돌아가는 상황도 잘 알 수 있다. 저니맨도 저니맨 나름대로의 매력은 있다.

FC안양 알렉스
FC안양 유니폼을 입은 알렉스 ⓒ프로축구연맹

K리그2 출범 당시부터 외국인 선수로 뛰었으니 당신은 누구보다도 K리그2의 전문가다. K리그2를 어떻게 생각하나.
K리그2는 다 어렵다. 팀마다 스타일도 다르고 어려운 팀들이 많이 모여 있다. 경기를 앞두고 흐지부지 준비했다가는 바로 티가 난다.  특히나 한국 수비수들은 다 빠르고 거칠어서 더 그렇다. 경기력에서는 K리그1이나 K리그2의 차이가 크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대신 K리그2가 조금 더 격하게 많이 뛴다.

‘K리그2의 공무원’이라는 별명은 어떻게 생각하나.
딱 나를 표현해 주는 좋은 별명이다.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되지 않나. 오래오래 한국에 남아 달라는 말로 받아들이겠다.

언제까지 한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할 생각인가.
공무원처럼 은퇴할 때까지 한국에서 오래 하고 싶다. K리그1에서 한 번 뛰면 그때는 은퇴를 해도 소원이 더 없다. 한 번은 꼭 K리그1으로 올라갈 기회가 오지 않을까. 1부리그를 한 번 밟아보고 명예롭게 정년퇴직을 하고 싶다.

알겠다. 올 시즌 남은 목표를 말해달라.
남은 경기에서 최대한 많이 이기고 최대한 높은 순위로 시즌을 마치고 싶다. 아직은 상위권 팀과 승점차가 많지 않아 플레이오프에도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올 시즌도 잘 마무리하고 싶다. 팬들은 결과에 따라 다음 경기를 찾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에 따라 경기장 분위기는 달라진다. K리그2에 더 많은 관중이 찾아올 수 있도록 늘 최선을 다하겠다. 그게 바로 공무원다운 자세 아닌가.

지난 21일 이 인터뷰를 마친 알렉스는 이틀 뒤인 23일 수원FC와의 홈 경기에서 두 골을 뽑아내며 또 한 번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그냥 단순히 K리그2에서 어떻게 어떻게 살아 남아 있는 게 아니라 그는 이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생존 중이다. 무려 6개 팀을 거치며 생존한 그의 능력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알렉스는 비록 많은 팬들을 거느린 화려한 선수는 아니지만 성실하고 헌신적이다. 그리고 늘 실력이 보장돼 있다. 그가 더 많은 한국 영화 대사를 외울 때까지 한국에 남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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