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천국을 오간 조성진은 어쨌든 기분 좋게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수원=홍인택 기자] 19일 가을비가 내리던 수원월드컵경기장. 조성진에겐 불과 몇 분 사이에 홈 경기장이 지옥이기도 했고 천국이기도 했다.

AFC챔피언스리그(ACL) 8강. 수원삼성은 전북현대와 홈에서 2차전을 펼쳤다.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1차전은 수원이 3-0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1차전과 2차전 사이 두 팀의 분위기는 달랐다. 축구 관계자들 사이에서 "전북이 수원을 꺾으려고 골 넣는 연습을 한다"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경남FC와 제주유나이티드가 희생양이 됐다. 전북은 두 팀을 상대로 무려 7골을 뽑아냈다.

1차전 원정에서 큰 점수 차로 승리를 거뒀지만 수원 선수들은 방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염기훈과 홍철이 출전할 수 없었고 기동력을 살려줄 수 있는 바그닝요는 장기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상황이다. 수원 선수들은 "상대가 전북이니까 안일하게 대처하면 분명히 당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조성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차전에서 우리가 3-0으로 이기고 4강으로 갈 수 있는 좋은 발판을 만들었다. 선수들이 강한 의욕으로 경기에 임했다"라고 전했다.

아드리아노에게 PK를 내줬던 조성진. 다행인지 불행인지 운동장에 쥐구멍은 없었다 ⓒ 스포츠니어스

PK 내준 순간,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수원을 이끄는 이병근 대행은 최전방 공격수로 나선 데얀부터 강한 압박을 걸며 전북의 막강한 공격을 대비하려 했다. 수원은 방심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전북의 동기부여가 강했다. 전북은 전반부터 전방으로 공을 길게 연결했다. 아드리아노가 순간속도를 살리며 최전방을 휘저었고 한교원과 이승기가 측면을 흔들었다. 게다가 아드리아노 밑에는 높이에 강한 홍정호까지 가담했다.

조성진과 곽광선, 박종우가 최대한 막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수원 수비진이 전열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전북은 계속 공격을 이어갔다. 측면 전방으로 공을 넘기거나 비어있는 공간으로 공을 걷어내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는 사이 전북은 드라마를 쓰고 있었다. 전반엔 아드리아노, 후반에는 최보경과 김신욱이 결국 세 골을 기록하며 1, 2차전 동점을 만들고 말았다.

이미 들어간 건 어쩔 수 없었다. 최전방엔 데얀이 계속 공을 달라고 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전북 미드필더들도 사리치는 막을 수 없었다. 후반 교체 투입된 조지훈과 김종민은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다. 한 골만, 한 골만 막으면 됐다.

드디어 경기장에 추가 시간 안내 방송이 나왔다. 곧바로 한교원이 김신욱을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공은 김신욱의 머리를 맞고 운동장으로 떨어졌다. 아드리아노가 공을 따내기 위해 돌진했다. 아드리아노를 놓치면 골이나 다름없었다. 조성진이 그를 막았다. 그리고 아드리아노가 넘어지며 울리는 휘슬 소리. 세 번이 아니라 한 번이었다. 페널티킥이었다.

조성진은 쓰러진 채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그는 "김신욱의 헤딩에 떨어지는 공에 집중하자고 생각했는데 아드리아노의 움직임이 빨랐다. 순간적으로 놓치면서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던 것 같다"라면서 "그래서… 하… 그때는 진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라고 페널티킥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조성진은 전북의 드라마를 대신 써줄뻔 했다. 그때가 조성진에게는 지옥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마음을 다잡았다. 조성진은 "이미 판정은 났었다. (신)화용이 형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라면서 박스 바깥쪽으로 나갔다. 그리고 킥이 준비된 아드리아노는 특유의 스텝으로 공을 향해 다가갔다. 슈팅. 그러나 '철렁'이 아닌 '팡'이었다. 곧이어 이어진 수원 팬들의 환호와 신화용의 이름이 경기장 안에 울려 퍼졌다.

아드리아노에게 PK를 내줬던 조성진. 다행인지 불행인지 운동장에 쥐구멍은 없었다 ⓒ 스포츠니어스

지옥을 빠져나와 천국에 오니 '신'화용이 있었다

후반을 마친 수원 선수들은 끝까지 원 진을 짜며 결의를 다졌다. 연장전에 돌입하면서 선수들은 공을 받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뻗었다. 두 팀 모두 모든 걸 쏟아냈다. 차이가 있었다면 전북 수비수들이 공을 걷어낼 때마다 계속 지쳐서 쓰러졌다는 점이었다. 전북이 세 골을 넣었지만 신화용의 선방으로 이미 분위기는 수원으로 넘어온 상황이었다.

결국 연장전 30분은 끝났고 두 팀은 승부차기로 4강 진출 팀을 가려야 했다. 120분을 뛴 조성진은 운동장에 앉아 회복에 힘쓰고 있었다. 그때 수원 코치가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조성진은 "내가 승부차기 키커로 나설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코치 선생님들이 나에게 자신 있냐고 물어봤다"라고 말했다. 수원 코치진은 30분 전까지 지옥을 경험했던 조성진에게 중요한 승부를 맡겼다. 조성진의 순서는 세 번째. 그가 차는 공에 남은 두 명의 선수들의 부담을 덜거나, 더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조성진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떨고 있는 동안 신화용은 수원의 영웅이 되고 있었다. 김신욱의 슛을 막았고 이동국의 슛을 막았다. 이미 데얀과 이기제는 골을 기록했다. 이제 조성진의 차례였다. 조성진은 조금 뜸을 들인 후, 오른쪽을 향해 강하게 찼다. 송범근이 손을 갖다 댔지만 슈팅이 강해 막지 못했다. 조성진이 골을 기록하면서 승부차기 스코어는 3-1이 됐다. 조성진은 "페널티킥을 내줬지만 이 기회에 스스로 이겨내겠다는 강한 마음으로 자신 있게 찼다"라고 말했다.

이후 김민재가 골을 기록했지만 사리치도 골을 기록하며 수원이 4강 진출을 확정했다. 선수들은 모두 4강 진출의 기쁨을 누렸다. 조성진의 지옥은 이렇게 천국으로 변했다. 홈에서 0-3으로 졌지만 팬들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조성진은 "경기 전에 충분히 이기고 올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막상 들어가 보니까 전북 선수들의 의지가 강했다. 매우 공격적으로 나와 실점하긴 했다"라면서도 "어쨌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겨서 4강에 진출한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그는 "우리가 리그에서는 뒤처지고 있지만 ACL 8강으로 올라왔고, 8강에 올라온 것도 우리가 충분히 실력이 있어서 올라왔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페널티킥을 막아준 (신)화용이 형에겐 진짜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라커룸을 나오면서도 마지막까지 형이 짐 챙기는 걸 다 도와줬다.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았다"라고 말했다. 마치 지옥을 빠져나와 천국에 오니 그곳에 신이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더 철저하게 가시마와의 대결을 준비하는 조성진

조성진이 뛰는 수원은 4일 뒤인 23일 또 전북과 K리그1 경기를 치른다. 조성진은 "차라리 잘 된 것 같다. 서로 연장까지 가서 서로 힘든 상황이다. 또 이럴 때 정신적으로 중요한 결과를 얻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4강 상대인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경기도 잘 준비해야 한다. 일본 팀들은 확실히 개인 기술이나 조직력이 상당히 좋다. 가시마와 조별예선에서도 만나봤지만 쉽지 않은 팀이고 지금도 그때보다 전력이 더 상해진 느낌이다. 더 철저하게 준비해서 경기장에서 보여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라면서 다음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다시는 지옥에 빠지고 싶지 않다고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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