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사람을 힘 나게 한다. ⓒpixabay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축구 경기는 90분 동안 진행되지만 사실은 경기 전부터의 준비 시간은 길다. 선수단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부터 선수들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며 경기를 준비한다. 머리 속으로 오늘 열릴 경기를 상상해 보는 이들도 있고 좋았던 경기를 복기하는 이들도 있다. 아니면 잡생각을 비우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도 있다. 저마다의 방법이 있다. 그리고 경기장에 도착하면 미리 몸을 풀기 전 그라운드에 나와 잔디를 밟는다.

이 시간을 이용해 상대팀에 친한 선수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이 긴 시간 동안 대부분의 선수들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정서적인 안정을 주기 위한 수단이다. 음악을 통해 긴장감을 해소하거나 집중력을 유지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이 선수들은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직접 선수들에게 물었다. 경기 전에 어떤 음악을 듣느냐고.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들어보니 의외로 흥미로운 결과였다.

"판타스틱 붸이비~" ⓒ프로축구연맹

댄스곡 들으며 분위기 올리는 선수들

역시나 경기를 앞두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신나는 곡을 듣는 선수들이 꽤 많았다. 전북현대 정혁은 ‘빅뱅’ 팬이다. 경기 전에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나 <하루하루> 등을 즐겨 듣는다. 이런 신나는 ‘빅뱅’ 음악은 정혁만 듣는 게 아니다. 전북현대는 대체적으로 라커룸에서도 워밍업 전까지 신나는 음악을 즐겨 듣는다. 정혁이 ‘빅뱅’ 노래를 즐겨 듣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대학 시절에 힘든 운동이 끝나고 나면 늘 ‘빅뱅’ 노래를 들었다”면서 “그때를 기억하면서 ‘빅뱅’ 음악을 들으며 경기장에 나간다”고 했다. 힘들었던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참고로 정혁은 “열기도 더 더해지고 너무 힘들어요. 요새 불쾌지수도 높고 끈적끈적 끈적끈적 힘들어요”라는 가사로 유명한 희대의 히트곡 ‘불쾌지수송’은 경기 전에 잘 듣지 않는다. ‘불쾌지수송’의 주인공은 바로 그의 아내다. 이 노래를 듣는 대신 그는 골을 넣고 아내의 임신 축하 세리머니를 했으니 그 걸로도 100점짜리 남편이다. 원래 흥이 많기로 유명한 강수일(랏차부리 미트르 폴-태국)도 경기 전이면 꼭 싸이의 <오토리버스>를 듣는다. 강수일은 경기 전부터 흥을 끌어 올려 이를 플레이로 보여주는 스타일이다. 강수일은 2011년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도 셔플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인천유나이티드의 ‘흥부자’ 문선민도 경기 전 신나는 댄스곡을 들으며 경기를 준비한다. “요새는 경기 전에 어떤 노래를 들으며 몸을 푸느냐”고 물으니 아주 자신 있게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은 <뜨드뜨드> 그거 들어요.”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 다시 답이 왔다. “아 <뚜두뚜두>구나.” 노래 제목도 모르면서 신세대인 척 하는 걸 걸리고 말았다. 어찌됐건 문선민은 블랙핑크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기가 신세대인 척하며 경기를 준비한다. 뭐 노래 제목 좀 모르면 어떤가. 잘 접으면 됐지. 김도엽(성남FC)은 신나는 클럽 음악을 들으며 경기를 준비하고 서상민(호이킹-홍콩)도 “텐션을 올리기 위해 신나는 음악을 주로 듣는다”고 했다. 그래도 <뜨드뜨드>는 안 듣는다.

"판타스틱 붸이비~" ⓒ프로축구연맹

의외의 선곡, 다 그 이유가 있다

강원FC 황진성은 ‘방탄소년단’파다. 그는 평소에도 늘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아내가 ‘방탄소년단’의 열혈 팬이라 황진성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팬이 됐다. 경기 전에 컨디션을 끌어 올리기 위해 듣는 노래 제목을 묻자 황진성은 35세의 흔한 남성이라면 잘 알지 못하는 ‘방탄소년단’ 노래 제목을 읊기 시작했다. “<불타 오르네>, , 등등을 자주 듣고 요새는 신곡 도 많이 들어요.” 순간 축구선수 황진성이 아니라 음악 평론가 임진모인줄 알았다. 이렇게 많은 선수들은 경기 전 신나는 곡을 들으며 자신의 기분을 끌어 올린다.

‘그루브’파도 있다. 플레이스타일만 보면 ‘아웃사이더’의 랩을 들어야 할 것 같은 울산현대 김인성은 요즘 ‘지코’의 를 들으며 경기를 준비한다. 특유의 그루브가 살아있는 노래다. WK리그 인천현대제철의 심서연도 경기 전 힙합 음악에 심취해 있다. “요새 경기 전에 어떤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가다 듬느냐”고 묻자 바로 노래를 캡쳐해서 보내줬다. ‘로꼬’의 이다. 첫 가사가 “1989 내가 태어난 연도”인데 심서연도 1989년생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음악을 듣는다. 그는 경기 전 이 노래로 마음을 가다 듬는다.

J리그 사간도스에서 뛰고 있는 조동건은 스마트폰에 ‘Ed Sheefan’의 를 저장해 놓고 경기 전마다 듣는다. “가사도 좋고 이 리듬을 들으면 릴렉스가 된다. 경기 전에 몸을 릴렉스하기에 딱 좋다”고 배순탁 작가나 할 만한 이야기를 했다. 수원삼성 김종우는 평소 경기를 앞두고 힙합이나 랩을 주로 듣는다. 요즘에는 경기 전에 ‘The Quiett’의 에 꽂혀 있다. 하지만 유독 긴장되고 흥분되는 경기를 앞두고는 노래를 바꾼다. 이때 즐겨듣는 노래는 ‘길구봉구’의 <다시, 우리>다. 이 노래를 들어야 긴장된 마음이 풀어지는 느낌을 받는단다. 외모는 <반갑습니다>나 <휘파람> 쪽이지만 사실 경기 전 즐겨듣는 노래는 꽤 감성적이다.

"판타스틱 붸이비~" ⓒ프로축구연맹

조용한 곡, 루틴, 그리고 고요함

김종우처럼 경기 전 오히려 흥분을 가라 앉히기 위해 조용한 템포의 노래를 듣는 선수들도 꽤 많았다. 수원삼성 염기훈은 “경기 준비하면서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신나는 음악보다는 잔잔한 음악이나 발라드를 듣는다”고 했다. 나름대로 쌓인 노하우였다. 같은 팀의 양상민 역시 “자주 듣는 노래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요즘은 경기 전이면 ‘폴김’의 <모든 날 모든 순간>을 듣고 경기에 임한다”고 했다. 또 다른 특이한 선수도 있다. 포항스틸러스 배슬기는 경기 전 포항의 상징과도 같은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를 듣고 경기장에 들어간다. 배슬기는 “그 노래를 들어야 힘이 난다”고 했다. 구수하니 배슬기와 참 잘 어울린다.

경기 전 노래 듣는 걸 하나의 루틴처럼 여기는 이들도 있다. 숙소에서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에 딱 저장해 놓고 8년째 같은 노래를 듣는 선수가 있다. 바로 제주유나이티드 김원일이다. 그런데 그가 듣는 노래도 독특하다. 경기 도중에는 상대 공격수를 씹어 먹을 듯한 표정으로 수비하는 그가 숙소에서 경기장으로 가는 길에 8년째 듣는 노래는 CCM이다. 그는 “맨 처음에는 마음이 편해져서 들었는데 지금은 그냥 습관처럼 듣는다”고 했다. 그는 경기장에 도착할 때까지만 CCM을 들으며 얌전해졌다가 경기장에 도착하면 ‘해병대 출신 수비수’가 된다. 이용래(태국 치앙라이)도 경기 전 CCM을 듣는다. 감바오사카에서 뛰는 오재석은 “경기 전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와 ‘싸이’의 <예술이야>를 무조건 듣는다”고 했다. 이 노래를 듣는 게 하나의 루틴이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특징인 선수도 있다. 바로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뛰는 골키퍼 정성룡이다. 그는 경기를 앞두고는 노래를 웬만해서는 안 듣는다. 심지어 스마트폰도 끈다. 경기장에 버스 타고 갈 때 조용한 게 제일 좋단다. 남들은 다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정성룡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경기를 준비한다. “그 전에 통역 형 차 타고 경기장에 갈 때는 신나는 곡을 듣긴 했는데 노래 제목도 모르겠다”고 하니 음악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뚜두뚜두>를 <뜨드뜨드>라고 하며 ‘음잘알’인 척 하는 문선민보다는 그래도 양심은 조금 있다.

다른 목표, 다른 음악을 듣는 그들

이렇듯 경기 전 선수들은 전혀 다른 음악을 들으며 경기를 준비한다. 그라운드에 있는 22명의 선수가 전혀 다른 목표를 가지고 경기에 임하는 것처럼 그들이 경기 전에 이 승부를 준비하며 듣는 노래도 각양각색이다. 그들이 이렇게 <하루 하루> 멋진 경기를 준비해 <모든 날 모든 순간> 팬들 앞에서 불타 오르는 플레이를 보여주면 <다시 우리>가 더 많이 경기장에 모여 선수들에게 <예술이야>라고 외쳐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K리그가 하늘을 달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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