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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최수경 기자]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이 열린지도 어언 30년이 됐다. 30년 전 오늘은 전세계 이목이 서울로 집중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개막식에서 작은 체구의 한 선수가 눈에 들어왔더. 손기정 옹으로부터 성화를 받아들고 잠실주경기장을 한 바퀴 돈 그의 이름은 바로 임춘애였다. 그는 영광스러운 ‘성화 최종 주자’로 남게 됐다.

임춘애는 성화를 마라토너 김원탁 등 세 명에게 넘겼다. 임춘애는 현역 시절 대단한 활약도 활약이었지만 이 성화 최종 주자로도 역사에 남겨져 있다. 그의 이름은 영화에도 등장하고 라면만 먹고 운동을 했다는 헛소문이 사실인 것처럼 돌기도 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르는 임춘애는 정말 어떤 사람일까.

임춘애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치른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해 국가대표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한국신기록을 내며 좋은 성적을 거두자 극적으로 뒤늦게 국가대표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엄청난 역사를 썼다.

여자 육상 800m와 1,5000m, 3,000m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한국 육상 역사상 이렇게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한 건 임춘애가 유일무이하다. 임춘애는 아시안게임 3관왕 이후 언론이 주목하는 최고의 스타가 됐다. 임춘애가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보도 이후 이 관심은 더 커졌다.

졸지에 그는 ‘라면 소녀’가 됐다. 전국 각지에서 임춘애를 위한 후원이 쇄도했다. 임춘애는 1988년 서울올림픽 성화봉송 최종 주자로도 뽑히는 등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임춘애는 이후 육상계에서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8년 서울올림픽에서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예선 탈락한 뒤 은퇴했다. 사람들은 ‘라면 소녀’가 배가 불러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하지만 육상은 세계의 벽이 워낙 높았고 구타도 훈련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풍토 또한 심했다. 결국 임춘애는 육상계를 떠난 뒤 지금은 생활 체육 지도자로 살고 있다. 영화 ‘넘버3’에도 등장하는 명대사에 나올 정도로 임춘애는 헝그리 정신의 대명사와도 같았다.

하지만 임춘애가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당시 열악한 육상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언론에서 과장해 보도한 것이었다. 임춘애는 체력 보강을 위해 도가니탕과 삼계탕은 물론 뱀탕까지 먹고 뛰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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