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쓸모 기획] 한 여름 축구장 vs 한 겨울 축구장, 어디가 더 나은가?

사실 더운 거 추운 거 다 싫다 ⓒ pixabay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조성룡 기자] 지옥 같았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저녁엔 기분 좋은 시원한 바람이 분다. 그러나 동시에 불안감도 엄습한다. 축구장의 겨울은 너무 일찍 찾아오기에. 오늘은 <스포츠니어스>에서 쓸 데 없는 기획을 준비했다. 사석에서 “그래도 축구장은 여름이 낫다”는 쪽과 “아무리 그래도 축구장은 겨울이 낫다”는 쪽이 첨예하게 대립니다. 그래서 이 일을 공론화 해 보기로 했다. 축구장에 오래 다녀보신 분들이 판단해 주시길 바란다. 한 여름 푹푹 찌고 끈적끈적한 축구장이 나은지,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도 보내지 못할 정도로 손이 꽁꽁 언 겨울 축구장이 나은지 선택해 보시라. <스포츠니어스>의 홍인택, 조성룡 기자가 자신의 생각을 담아 봤다.

꼭 취재 가는 날 날씨가 험한 건 기분 탓일 거야 ⓒ 스포츠니어스

“그래도 여름 축구장이 낫다”는 홍인택 기자

겨울은 “이러다 죽겠다” 싶더라

사실 내가 추운 게 싫은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나는 지난해 11월 인천현대제철과 인천유나이티드 취재 현장에서 정말 얼어 죽는 줄 알았다. 골대 뒤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뛰면서 열렬히 응원하는 팬들이 정말 부러웠다. 나도 차라리 저기서 뛰고 있다면 이렇게 추울 것 같지는 않겠더라.

내복에 양말 두 개를 신고 중무장을 해도 추웠다. 특히 기자석은 왜 그리도 높이 있는지. 축구를 보기엔 높은 곳에서 보는 게 편하지만 겨울만 되면 기자석은 바람이 쌩쌩 분다. 인천은 바닷바람 때문인지 바람이 너무하더라. 수원월드컵경기장도 기자석이 참 높은 곳에 있다. 관중석이 계곡 바람을 일으키는지 피부가 찢어질 것 같은 바람이 분다. 경기장 안내를 담당하시는 분이 따뜻한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건네주기라도 하면 감동의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 사실 차갑고 건조한 바람 때문에 나온 눈물이었다.

수원삼성은 이번 시즌을 일찍 시작했다. AFC챔피언스리그를 플레이오프 단계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장에 가는 길부터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폭설이 내렸다. 기자석까지 올라가니 이미 맨 윗자리까지 눈이 들이닥쳤다. 천만 다행히도 수원 구단은 취재를 나온 기자들에게 4층 실내 자리를 내줬다. 나야 좋았지만, 계속 내리는 폭설에 AFC 관계자와 구단 관리자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황급히 터치라인 주변의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겨울엔 이렇게 눈도 내려서 사람들을 괴롭힌다. 한국에 와서 눈을 처음 본 베트남 탄호아 팀의 선수들도 경기 전에는 신기한 마음에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가 전반이 끝난 뒤로는 혀를 내둘렀다.

 

홍인택
제발 저를 이런 냉동실로 내몰지 말아 주세요.

11월 말 축구장에 가 봤나

강추위가 불어닥친 인천 현장에서 먹은 도시락을 잊을 수가 없다. 삼겹살 도시락이 나왔는데 삼겹살 특유의 기름이 다 얼어붙어 도시락 주변에 흰 기름띠가 양초처럼 붙어있었다. 젓가락으로 얼음 밥을 잘라 보는데 젓가락이 부러질 것 같았다. 꾸역꾸역 입에 넣긴 했는데 소화가 잘 될 리가 없다. 그 장면을 지켜본 김 대표가 안쓰럽다며 찍은 사진이 위의 사진이다. 또 인천현대제철로 취재를 하러 갔을 때는 김 대표가 일반 팬을 구단 직원으로 착각해 본의 아니게 라면을 구걸한 적도 있었다. 우리 김 대표는 맨날 살 뺀다고 잘 먹지도 않는데 그날은 뭔가 따뜻한 걸 입과 뱃속에 넣어야 했다. 그래야 살아서 기사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순히 추위를 견딜 때는 양쪽 주머니에 핫팩을 쥐고 있으면 조금 낫다. 그러나 나는 기사를 써야 한다. 겨울엔 핫팩을 놓기만 해도 손이 얼어붙어 타자 치기가 어렵다. 평소에도 오탈자가 많아서 맨날 독자분들에게 지적을 받는데 겨울이 되면 오탈자가 급증한다. 그걸 수정하느라 시간도 더 걸린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면 운동장은 쳐다도 안 보고 바로 기자회견장으로 내려가지만 원정팀과 홈팀 감독님이 자리에 앉고 경기 소감을 밝힐 때까지 손이 안 녹는다. 손은 아직 얼어 있는데 앞에 앉은 감독님의 말이 매우 빠르거나 발음이 부정확하면 멘탈이 깨진다. 분명히 다 받아적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회견 내용의 절반만 있다.

추우면 기사가 안 나온다. 나와도 내용이 부실한 적도 많다. 최대한 기억하고 받아써도 빠뜨리는 내용이 꼭 있더라. 단순한 경기 결과 기사 하나 쓰기에도 벅차다. 피부는 찢어질 것 같고 손은 안 움직이고 몸은 얼어붙어 축구는 보이지도 않는다. 노트북 근처에 눈이라도 내리면 큰일이다. 신경 쓸 게 너무 많다. 핫팩이 없으면 죽을 수도 있으니 꼭 사야 한다. 핫팩을 사는 지출은 평소에 없었던 지출이다. 핫팩 구매에 줄어가는 통장 잔액만큼 몸도 마음도 추워진다. 낮 경기 취재를 준비하려면 해가 겨우 뜨는 아침 시간부터 따뜻한 전기담요를 벗어나야 한다. 이렇게 겨울 취재 현장은 괴롭고 슬픈 일만 가득하다.

이 분을 기억한다면 겨울에 ‘X’를 누르고 조의를 표하십시오 ⓒ KBS

“차라리 겨울 축구장이 낫다”는 조성룡 기자

차라리 춥고 말지
홍인택 기자는 올해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을 겪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양이다. 더울 때 축구하면 사람 잡는다. 올 여름에도 축구장에 가는 건 고역이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숨만 쉬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 두 시간 동안 앉아 있는 건 거의 벌칙 수준이다. 차라리 추우면 일어나서 몸이라도 움직이며 몸을 데울 수라도 있지 더우면 아무 것도 못한다. 부채 하나로 땡볕에서 버티는 건 비폭력주의자 간디의 입에서도 욕이 나오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여름은 대단히 습하다는 게 더 큰 약점이다. 그냥 건조하게 더운 게 아니라 서로 살이 맞닿으면 끈적끈적함을 느낄 만큼 기분 나쁘게 덥다. 경기 도중 골이라도 들어가 서로 끈적끈적하게 땀을 흘린 상황에서 포옹이라도 한다면 가장 더럽다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축구장에서의 매력은 음식에 있는데 여름에는 경기를 보면서 음식을 먹는 것 자체로도 고문이다. 상상해 보시라. 뜨거운 여름 날 축구장에 앉아 컵라면을 먹거나 치킨을 먹는다고…. 누가 뭐래도 축구장 컵라면은 겨울에 먹어야 한다.

여름엔 수영장이나 계곡으로 가야 한다. 아니면 에어컨이 빵빵한 집에 있거나 은행에 가야한다. 피서지로 축구장은 절대 아니다. 축구는 눈밭에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더위가 심해지면 선수의 생명을 해칠 수 있다. 당장 올해 여름에도 수많은 대회들이 폭염으로 인해 취소되거나 경기 시간을 조정하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더운 게 낫다고? 이건 그냥 관람 편의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사람 목숨과 직결되는 일이다. 심지어 여름에는 경기 도중 ‘쿨링 브레이크’라고 해서 물 마시는 시간을 따로 주기도 한다. 그 정도로 여름 축구가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한 여름에 인형 탈을 쓰는 이들도 있다. 이들에게 여름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계절이다. ⓒ 스포츠니어스

8월에 축구장에 가 봤나
어차피 K리그는 길게 해봤자 12월 초까지다. 물론 홍명보 자선축구가 아직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면 내 생각은 조금 흔들렸을 수도 있다. 아직도 출입구에서 펄펄 끓는 아메리카노를 가지고 자리에 왔더니 커피에 살얼음이 껴 있었던 12월 말 홍명보 자선축구의 참혹한 기억은 잊을 수 없다. 하지만 12월 초라면 옷 두껍게 입고 보온병에 따뜻한 커피 마시면 버틸 만 하다. 특히 아산무궁화 같이 훌륭한 구단은 관중들에게 따끈한 어묵을 제공한다. 요즘은 핫팩 제공하는 구단도 많아졌다. 하지만 여름에 냉동고 가져다놓고 아이스크림 나눠주는 구단은 아직까지 본 적 없다.

정말 추운 1,2월에는 축구를 안 한다. 그런데 1년 중 가장 더운 8월에는 축구를 한다. 8월 축구장은 모두가 괴롭다. 뛰는 선수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한 경기만 뛰어도 체중 4~5kg이 빠질 정도다. 거기에 90분 동안 부채 한 번 쓰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 있는 이들은 어떤가. 겨울에는 내복도 껴 입고 롱패딩도 입고 있을 수 있지만 감독이 벤치에서 여름이라고 슬리퍼가 반바지, 민소매 차림으로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축구장은 관중도 뛰어야 제 맛인데 숨이 턱턱 막히는 8월 축구장에서 방방 뛰며 응원할 관중은 몇이나 될까. 취재도 마찬가지다. 90분 동안 부채질을 하고 있느라 타자를 칠 수가 없다. 잠시 부채질을 멈추는 순간 땀이 주르륵 흐른다.

어쨌든 이게 다 홍인택 기자가 한여름에 ‘탈 알바’를 안해봐서 그렇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땀을 쏙 빼고 몸무게가 순식간에 줄어봐야 겨울 예찬론자가 될 것 같다. 한겨울에 ‘탈 알바’하면 그냥 두꺼운 이불 두르고 다니는 것이랑 뭐가 다르겠는가. 조만간 한 번 체험을 시켜야 할 것 같다. 요즘 안산그리너스에서 탈 알바 구한다고 연락 오더라. 한 여름 축구장은 모든 이가 고생한다. 시원하게 스카이 박스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이가 아니라면 경기장에 있는 모든 이가 끈적끈적한 기분을 느끼며 빨리 집에 가 샤워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지금이 딱 축구보기 좋은 날씨

우리나라의 여름과 겨울 기온 차이는 조금 과장을 보태면 60도에 이른다. 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지고 여름에는 영상 40도까지 오른다. 더군다나 축구장은 딱 여름과 겨울 뿐이다. 축구장에서 봄과 가을을 느끼기란 어렵다. 선선한 날씨에서 축구 좀 보려고 하면 곧 찬바람이 불어온다. 지금이 1년에서 딱 며칠 경험할 수 없는 축구보기 좋은 날씨다. 가을이라고 전어만 열심히 먹지 말고 축구장으로 나오는 건 어떨까. 한 여름 축구장과 한 겨울 축구장은 고역이지만 딱 지금 날씨의 축구장은 환경이 너무나도 좋기 때문이다.

intaekd@sports-g.com, wisdragon@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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