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전은 축구의 승패를 결정하기도 한다. ⓒ YunHo Lee

[스포츠니어스 | 곽힘찬 기자] 축구 경기가 시작되기 전 양쪽 팀 주장들이 나와 심판진 앞에 선다. 심판은 양 팀 주장들에게 동전의 앞뒷면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양 팀 주장들이 각기 앞뒷면을 고른 뒤 심판이 동전을 공중으로 던져 확인한다. 심판은 그 면을 알아맞힌 주장에게 진영을 먼저 선택할 우선권을 부여한다. 각 팀은 선택한 진영으로 가 포메이션을 갖추고 경기에 임할 준비를 한다. 여기까지가 축구 팬들에게 익숙한 ‘동전 던지기’의 모습이다. 우리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 TV 또는 인터넷 중계를 통해서 자주 이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양 팀 진영을 정하는 이 ‘동전 던지기’가 때로는 승패를 결정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경우엔 경기 중에 선수들이 기록한 골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경기 시간 내에 승패가 결정되지 않을 경우 상황에 따라 승부차기가 아닌 동전 던지기로 승자를 결정할 때도 있다. 어떻게 보면 정말 황당할 수도 있는 방법이다. 9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열심히 뛰었지만 거의 100% 운에 의해 결정되는 동전 던지기에서 패배한다면 선수들 입장에서 무척 허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의외로 동전 던지기는 역사가 무척이나 깊은 승패를 결정하는 방법 중 하나다.

로마에서 시작된 동전 던지기

동전 던지기의 시작은 카이사르가 집권하던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주조되던 동전엔 지금처럼 앞뒷면의 구분이 없었다. 오로지 액수를 나타내던 숫자만 표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카이사르가 권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동전에 표시할 것을 명령하면서 한쪽엔 숫자, 다른 한쪽엔 황제의 얼굴이 새겨지게 됐다. 앞뒷면의 구분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정해졌다. 황제를 신과 같은 신성한 존재로 여겼기 때문에 황제의 얼굴이 나온 부분을 앞면으로 하고 숫자가 있는 부분을 뒷면으로 결정했다. 그래서 동전을 던져 운세를 점치거나 할 때 앞면이 나오면 긍정적인 뜻으로 보았다.

이렇게 고대에서부터 시작된 동전 던지기 관습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축구와 미식축구에서는 연장전과 승부차기가 시작되기 전 선공을 할 팀과 골대를 정할 때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승부를 결정할 때 이 방법을 이용한다. 스포츠에서 뿐만 아니라 선거에서도 동전 던지기가 행해지고 있는데 지난 2015년 캐나다 주의원 선거에서 동점표가 나오자 동전 던지기로 당선자를 정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동전 던지기가 행해졌던 기록이 있다. 조선의 태종은 기존의 송악(개성)에서 새롭게 수도를 정하기 위해 종묘에서 태종의 사촌 형님인 완산부원군 이천우로 하여금 엽전을 던지게 했다. 이때 한양(서울)이 가장 길하게 나와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다.

동전 던지기로 정해진 승패

① 2018년 남아시아 챔피언십 조별예선 – 몰디브 4강 진출

다시 축구 얘기로 돌아와 보자. 동전 던지기로 승패를 결정하는 경우는 얼마나 자주 있을까.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불과 며칠 전에 있었다. 현재 방글라데시에서 열리고 있는 남아시아 축구연맹(SAFF) 챔피언십 B조 조별예선에서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한 몰디브가 4강에 진출하는 일이 발생했다. 몰디브는 같은 조의 인도에 0-2 패배, 스리랑카와 0-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승점 1점에 불과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스리랑카 역시 인도에 0-2 패배를 당하면서 몰디브와 함께 0승 1무 1패, 골득실 –2로 승점, 골득실, 승자승 등 모든 부분에서 동률이 되고 말았다. 결국 SAFF는 동전 던지기를 하도록 했고 대망의 동전 던지기 결전에서 몰디브가 승리하며 4강 진출을 결정지었다. 동전이 던져지고 결과가 나온 순간 몰디브 코치진은 환호성을 질렀고 스리랑카 선수들은 머리를 감싸 쥐고 무릎을 꿇었다. 동전 하나가 국제 대회에서 토너먼트 진출 팀을 결정지은 것이다. 동전 던지기에서의 승리 덕분이었을까. 몰디브는 4강전에서 네팔을 3-0으로 완파하며 결승에 선착했다. 이제 몰디브는 파키스탄을 3-1로 격파하고 결승에 진출한 남아시아의 강호 인도와 우승컵을 놓고 다투게 됐다.

남아시안컵에서 진행된 동전 던지기 ⓒ 몰디브 축구협회 페이스북 영상 캡쳐

② 1962년 칠레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 – 모로코 2차 예선 진출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남아시안컵을 넘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대회에서도 동전 던지기 방법이 사용됐다. 1962 칠레 월드컵을 앞둔 1960년 아프리카 지역 예선. 당시 B조에 함께 속했던 튀니지와 모로코는 서로를 2-1로 꺾으면서 1승 1무 1패로 동률을 이루고 있었다. 결국 양 팀은 중립 지역에서 플레이오프를 치렀지만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지금처럼 세부적인 조항이 없던 때였기 때문에 아프리카 축구협회는 할 수 없이 동전 던지기를 제안할 수밖에 없었다. 최종 승자는 모로코였다. 사상 첫 월드컵 진출을 노렸던 튀니지의 꿈은 그렇게 깨어지고 말았다.

③ 1968년 EURO 대회 – 이탈리아 우승

동전 던지기의 덕을 받아 우승컵까지 들어 올린 팀들도 있다. 1968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UEFA 유로 대회에서의 홈팀 이탈리아가 그 주인공이다. 4강에서 강호 소련을 만난 이탈리아는 골키퍼 디노 조프를 앞세워 소련의 파상공세를 막아내면서 힘겹게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당시 승부차기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동전 던지기를 진행했다. 결국 이탈리아가 동전 던지기에서 승리하면서 결승에 올라갔고 결승전에서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2-0으로 물리치면서 대회 첫 우승을 차지하게 됐다. 당시 소련은 1960년대 소련 축구를 상징하는 수비수이자 위대한 리베로로 평가받던 ‘폭군 이반’ 알베르트 세스테르노프를 앞세워 2회 우승을 노렸지만 동전 놀음에 탈락의 쓴잔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④ 2000년 미국 골드컵 – 캐나다 우승, 한국 탈락

한국도 동전 던지기로 인해 탈락한 적이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전 2000년 2월 미국에서 펼쳐졌던 골드컵에서 한국은 월드컵 개최국 자격으로 일본과 함께 출전했다. 허정무가 이끌던 한국 대표팀은 약체 캐나다와 코스타리카에 각각 0-0, 2-2를 기록하면서 공동 2위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8강 진출 티켓은 조 2위까지 주어지기 때문에 캐나다와 득실이 같았던 한국은 동전 던지기로 승자를 가렸다.

한국은 앞면을 선택했고 캐나다는 뒷면을 선택했다. 심판은 동전을 던졌고 그 동전은 그라운드 위를 구르다 뒷면에서 멈췄다. 승리의 여신은 한국을 외면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국 축구 팬들과 선수들은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운 좋게 한국을 꺾고 8강에 진출한 캐나다는 멕시코, 트리니다드토바고, 콜롬비아 등 아메리카의 강호들을 차례로 격파하고 우승을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동전 던지기는 50:50의 확률이다?

동전은 앞뒷면 딱 두 개의 면으로 이루어진 물체다. 그렇기에 확률도 50:50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동전 던지기의 확률은 결코 반반이 아니라고 한다. 이들은 연구를 통해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각각 51%, 49%라고 규명했다. 연구를 진행한 스탠퍼드 대학교의 퍼시 디아코니스 수리 통계학 교수는 “동전을 던지는 방법은 상관이 없다. 저 멀리 달까지 던져도 마찬가지다. 던질 때의 앞면이 그대로 나올 확률이 51%라는 것은 증명 가능한 것이고 확고하다”고 밝혔다.

남아시안컵에서 진행된 동전 던지기 ⓒ 몰디브 축구협회 페이스북 영상 캡쳐

저명한 미국의 연구팀이 그렇다고 말하니 이제 지인들과 내기를 할 때 무조건 앞면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하는 팬들이 꽤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2000년 골드컵에서 앞면을 선택했다가 캐나다에 8강 진출권을 내줬다. 아무리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과학은 결코 행운을 이길 수 없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동전 던지기보다 공정한 방법은 없어 보인다. 최근 더욱 정확한 판정을 위해 VAR이 도입되는 등 온갖 과학 기술들이 축구 경기에 유입되고 있지만 판정 논란은 경기마다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동전 던지기는 그러한 논란이 생길 수가 없다. 팬들은 동전을 던진 심판을 욕하기에 뭔가 애매한 부분이 있고 앞면 또는 뒷면을 선택한 주장을 향해 비난하기도 그렇다. 동전 던지기에서 패배하더라도 어떻게 반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팀에서 연구 결과를 내놓고 “확률은 51:49다.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하다”고 아무리 얘기를 하지만 과학이 늘 옳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가까운 사례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90분 넘게 열심히 뛰고 5분도 채 되지 않는 동전 던지기 싸움에서 진 팀들엔 미안한 말이지만 괜히 먼 옛날 조상들이 이러한 동전 던지기를 승패를 결정하는 방법 중 하나로 채택한 것이 아니다. 모두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닐까.

emrechan1@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