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져서 눈물, 이겨도 눈물… 그래서 축구다

부천 안산
부천FC와 안산그리너스의 지난 2일 경기 모습.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2일 부천종합운동장을 찾았다. 부천FC와 안산그리너스의 KEB하나은행 K리그2 2018 경기 취재를 위해서였다. 경기를 앞두고 양 팀의 사정은 복잡했다. 시즌 개막 후 5연승을 내달리며 다이렉트 승격도 꿈이 아닌 것처럼 보였던 부천은 최근 6경기 연속 무승(2무 4패)이라는 극도의 부진에 빠져 있었다. 안산은 더 심했다. 무려 9연패에 빠진 안산은 이흥실 감독이 중도 사퇴하는 아픔까지 겪었다. 경기 전 만난 부천 정갑석 감독은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이흥실 감독을 떠나보낸 안산 이영민 감독대행의 모습도 초조했다.

양 쪽에서 흘린 눈물, 축구는 슬픈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경기에서는 안산이 극적으로 부천을 제압했다. 먼저 한 골을 내준 안산이 후반 들어 두 골을 뽑아내며 경기를 2-1로 뒤집었다. 오늘 칼럼은 경기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경기가 끝난 뒤 풍경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난 뒤 이영민 감독대행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와 입을 열었다. 그는 “이런 경기를 진작 했으면 감독님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이영민 감독대행은 이흥실 감독 이야기를 꺼내며 울먹였다. 겨우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기자회견을 마쳤다. “이흥실 감독이 아마 이 기자회견 기사를 볼 텐데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한참을 고민하더니 “전화 드리겠다”고 했다.

이긴 뒤에도 기쁨보다는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이영민 감독대행의 심정을 헤아려 보니 말로는 표현 못할 그런 게 충분히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패장’ 정갑석 감독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왔다. 7경기 연속 무승에 빠진 그가 등장하자 공기가 무거워졌다. 사실 이영민 감독대행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상당히 오랜 시간 정갑석 감독을 기다려야 했다. 정갑석 감독이 서포터스와 만나 대화를 나눌 시간을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정갑석 감독은 대단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책임을 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겠다.” 더 질문하기에도 난감할 정도의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공식 기자회견을 끝내자 정갑석 감독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책임을 지고 싶어도 이렇게 떠나면 도망치는 것 같아 사퇴하는 것도 송구스럽다”는 이야기였다. 대부분의 이야기를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해 더는 전하기가 어렵다. 어찌 됐건 분위기는 침울했다. 이 복잡한 과정을 겪는 와중에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부천 홍보팀 직원이 훌쩍였다. 좋지 않은 팀 성적도 안타까웠고 정갑석 감독의 극도로 어두운 표정도 안쓰러웠을 것이다. 이 홍보팀 직원은 부천을 상징하는 ‘주장’ 문기한의 아내다. 여러 모로 이 상황이 괴로울 수밖에 없다. 한 경기가 끝나고 승패는 갈렸는데 이긴 팀에서도 눈물이 나왔고 진 팀에서도 눈물을 흘렸다. 잠깐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 다들 슬플 거 왜 축구를 해야 할까.’

안산 이영민
이날 이영민 감독대행은 이흥실 감독 이야기를 하며 울먹였다. ⓒ스포츠니어스

세상에서 가장 슬펐던 그 날의 경기
축구는 참 슬프다. 그래서 더 묘한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은 웃고 떠들며 보는 맛이 있는데 축구는 기쁠 때보다 힘들 때가 더 많다. 그런데도 늘 축구장으로 간다. 나는 지난 시즌 한 경기를 앞으로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날짜도 기억한다. 2017년 10월 14일이었다. 날씨는 화창했지만 수원FC와 부산아이파크가 맞붙은 이 경기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경기였다. 이 경기는 부산 故조진호 감독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뒤 열리는 첫 경기였다. 고인을 대신해 이승엽 코치가 선수들을 지휘했다. 경기 전 만난 이승엽 코치는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경기 전 누구보다도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지만 그가 눈물을 보인다고 해 그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이별을 그것도 갑자기 경험했기 때문이다.

“원래 감독님이 하셨던 것처럼 하려고요.” 그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 미치겠네요.” 목에 메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숨을 고른 뒤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도 감독님이 옆에 계신 것 같아요. 잠도 자지 못하겠고 눈만 감으면 감독님 얼굴이 아른 거려요. 선수들 앞에서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인데 선수들 얼굴만 봐도 다 알겠어요. 다들 저처럼 힘들어하고 감독님을 그리워하죠.” 이승엽 코치는 대화를 나누면서 몇 번이고 애써 눈물을 참았다. 이미 그의 마음은 고인을 생각하며 무너져 있었다. 그들은 故조진호 감독의 발인을 함께하기 위해 빈소에서 밤을 지새우며 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먹먹한 마음으로 상대팀 감독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이쪽에도 감독이 없었다. 조덕제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팀을 떠난 뒤 조종화 코치가 팀을 대신 이끌고 있었다. 그런데 더 슬픈 건 조종화 코치 역시 새로운 코치진이 부임하기로 해 이 경기가 마지막이었다는 점이다. 2003년 내셔널리그 수원시청 축구단에 입단해 이 팀에서 선수와 코치를 거쳐 감독대행까지 한 그는 양종후 코치와 함께 15년간 정들었던 팀을 떠나야 했다. 조종화 코치는 눈시울이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저도 오늘 마지막 경기입니다. 이게 현실인가 싶네요. 막상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날이 되니 여기 하나 하나 다 추억이 묻은 곳이 앞으로도 많이 그리울 것 같아요. 저는 수원FC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요일별로 어떤 식사 메뉴가 나오는지까지도 다 알아요.”

수원FC 조종화
수원FC에서 15년 동안 헌신했던 조종화 코치도 이 경기를 끝으로 팀을 떠나게 됐다. ⓒ스포츠니어스

수염 덥수룩하고 덩치 큰 사내의 눈물
슬펐다. 갑자기 감독이 하늘로 가 그의 빈자리를 보며 괴로워하는 코치를 보는 것도 슬펐고 15년간 정든 팀을 이제 떠나야 하는 상대팀 지도자의 모습을 보는 것도 슬펐다. 늘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조덕제 감독이 떠난 벤치를 지켰던 조종화 코치는 이날 검정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故조진호 감독에 대한 예의 때문이었지만 하필이면 양복을 차려 입은 날이 그의 수원FC 마지막 경기였으니 더 감정은 복잡미묘했다. “수원에 15년 동안 있던 저에게도 특별한 경기지만 진호형을 보내는 경기잖아요. 진호형하고는 올림픽 대표팀 시절부터도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이 있어요. 원래 이렇게 양복을 잘 안 입는데 마지막 예의를 표하기 위해 입었어요. 그런데 그날이 저도 팀을 떠나는 날이라니 뭔가 슬프네요.”

다 큰 건장한 사내들이 하는 축구 경기에서 눈물을 참 많이 봤다. 나는 슬픈 영화를 봐도 우는 법이 거의 없지만 이렇게 슬픈 축구 경기를 보면서는 가슴이 먹먹해 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올 5월에는 수염 덥수룩한 사내가 또 울었다. 누가 봐도 눈물 한 방을 흘리지 않을 것 같은 FC안양 골키퍼 전수현은 서울이랜드를 2-0으로 제압한 뒤 엉엉 울었다. 불과 한 달 전 서울이랜드와의 원정경기에서 악몽 같은 실수를 저지르며 팀의 패배를 지켜봐야 했던 그는 다시 한 번 운명적으로 만난 서울이랜드와의 경기에서 무실점 승리를 거두고 펑펑 울었다. 수염 덥수룩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그는 마음고생이 심한 듯했다. 경기 후 <스포츠니어스>와 만난 전수현은 쉽게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다. 운동장에서 북받친 감정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인터뷰 도중에도 조금씩 눈물이 고였다. “그냥 갑자기 눈물이 나왔어요. 눈물이 쏟아지면서 서러웠던 생각들이 스쳐갔습니다. 여러 가지 과거의 추억도 떠올랐어요. 저는 그동안 빛을 많이 보지 못했던 선수였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잘하는 선수도 아니었고 화려한 선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저 자신이 만들어낸 성과에 눈물이 확 났어요.” 그렇다. 이 ‘그깟 공놀이’는 다 큰 어른도 이렇게 울린다. 이겨도 울고 져도 울고 내가 잘해서 이겨도 더 펑펑 운다. 감독님이 하늘로 가신 뒤 치르는 경기에서 감독님이 그리워 울고 내가 곧 떠나야 하는 걸 알아 울기도 한다. 지난 2일 부천-안산전이 끝나고 양 구단에서 다 울먹이는 모습을 보니 참 축구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잔인함 속에서 감동을 찾고 희망을 본다.

외모와 안 어울리는 ‘울보’ 전수현 ⓒ FC안양 제공

이별의 연속인 스포츠, 그래서 더 간절하다
축구장은 이별의 연속이다. 지난 달 20일 밤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슬퍼서 마신 건 아니고 그냥 주말이라 의무감으로 신나게 마셨다. 그런데 이 시간 갑자기 이흥실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어? 내가 좀 할 얘기가 있어.” 안산 구단에 관한 일은 아니었고 한국 축구에 관해 쓴소리를 좀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들어보니 충분히 지지할 만한 주장이었다. 이렇게 돌아가는 상황이 안타까워 자기라도 할 말은 하고 싶다며 먼저 전화를 한 것이었다. “술을 많이 마셔 내일 정식으로 여쭙는 시간을 만들어 연락드리겠다”고 하니 이흥실 감독이 말했다. “그래. 내일 11시에 전화줘. 그리고 술 좀 작작 마셔.” 웃으며 끊었다. 그리고 다음 날 숙취 때문에 좀 고생하다가 11시가 넘어 전화를 했더니 이흥실 감독이 전화를 받지 않았고 저녁이 되니 이흥실 감독 사퇴 소식이 보도자료로 날아왔다.

오해가 있을 수도 있어 하는 말이지만 이흥실 감독 사퇴와 그가 하려던 발언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가 하려던 말은 한국 축구의 현안에 관한 문제였다. 내가 이걸 되짚는 이유는 이 정도로 축구에서는 이별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다. 밤 늦게 통화한 감독이 바로 그 다음 날 성적 부진으로 사퇴할 만큼 이곳에서의 이별은 당연한 일이다. 무서운 곳이고 서글픈 곳이기도 하다. 오늘 경기 후 악수를 나눈 감독이 그대로 경질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그냥 다시는 그를 볼 일이 없다. 오늘의 헤어짐이 영원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찌 보면 그래도 남아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릴 겨를도 없이 떠나야 하는 냉정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겨도 눈물, 져도 눈물을 흘리는 건 이 냉정한 세계에서 그나마 감성적인 일 아닐까.

나는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별로 없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영화는 불치병에 걸린 연인이 나오는 뻔한 영화다. 스포츠 영화는 억지 감독을 줘 아예 쳐다도 안 본다. 감정이 꽤 메말라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난 부천-안산전이 끝난 뒤 기자회견을 마치고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곤 나도 울컥했다. 다 큰 어른들이 이 공놀이 하나에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져도 눈물을 흘리고 이겨도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축구와 스포츠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그들의 눈물을 기사로 담아내는 일은 때론 잔인하지만 그 눈물의 의미를 알 듯 모를 듯 해 이번 주말에도 또 축구장에 가 볼 생각이다. 패자도 울고 승자도 우는 게 누군가에게는 이해 못할 일일 수도 있지만 다 큰 어른들의 공놀이는 그래서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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