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지만 배우는 사람에게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늘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축구선수라면 축구팬에게는 한결 친근감을 느낄 것이다. 공부하면서 축구 얘기를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게다가 국가대표 축구선수라면? 축구팬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다. 상상해보라. 손흥민이나 기성용 같은 선수가 당신의 외국어 과외 선생님이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얼마 전 한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한국에 왔다. K리그 도전이 아니다. 대학교에 공부하러 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 A매치에 출전하던 선수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으로 유학을 오더니 과외를 하겠다고 나섰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주말을 맞아 기숙사에서 낮잠 자고 있던 그를 불러내 이야기를 들어봤다. 생각보다 놀라운 이야기가 많다. 알고보니 이 선수, 조국에서는 이승우급 존재다. 당신이 무심코 '동남아 유학생이네'라며 지나쳤던 대학생이 자신의 나라에서는 스타라니 신기할 일이다.

만나서 반가워. 독자들에게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할게.

나는 부탄에서 온 오르기엔 왕축 트셰링이야. 얼마 전 한국에 와서 이제 막 적응하고 있어. 부탄 팀인 팀푸 시티 FC에서 뛰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종대학교에 왔어. 지금은 한국어를 배우면서 호텔관광외식경영학부에 있어. 부탄에서는 국가대표 축구선수야. 아직 한국이 많이 어색해. 어렵기도 하고. 잘 부탁해.

역시 부탄 사람이라 행복해 보이는구나.

한국인들은 내가 "부탄에서 왔다"라고 하면 꼭 그 얘기를 하더라. 부탄이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 중 하나라며? 사실 사람마다 다른 법이지. 부탄은 굉장히 작은 나라야. 그래서 국민들 대부분이 서로 안다는 이야기까지 있어. 그러다보니 범죄나 이런 것들이 비교적 적게 일어나는 편이야. 아마 그런 것들 때문에 우리나라(부탄)보고 행복하다고 하는 것 같아.

너에게 궁금한 게 많아. 천천히 시작해보자. 사실 부탄은 축구 강국도 아닌데 어떻게 시작한 거야?

아버지가 축구를 정말 좋아했어. 그래서 아들을 낳자마자 "얘는 축구선수로 키워서 AC밀란에 입단 시켜야겠다"는 다짐을 했대.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축구를 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야. 내가 축구를 굉장히 잘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 단지 부탄에서는 축구를 하는 사람이 많이 없어. 그러다보니 내가 좀 더 운이 좋았고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었지.

아버지가 AC밀란 팬이시구나?

우리 가족은 부탄 사람 중에 축구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야. 나도 축구선수가 됐지만 우리 사촌 형(카르마 셰드럽 트셰링)도 축구선수야. 지금 국가대표팀에서 주장을 맡고 있어. 심지어 사촌 누나도 호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부탄에 돌아와 여자 국가대표팀 선수로 뛰고 있어! 이 정도면 열혈 축구 집안이지.

우리 아버지는 나를 AC밀란에 입단시키고 싶었지만 사실 알고보면 아스널 팬이야. 우리 가족 대부분은 축구를 좋아해. 아버지는 아스널을 좋아하고 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좋아해. 그리고 어린 여동생은 첼시 팬이지. 평소에는 아무 탈 없다가도 어느 팀이 축구를 제일 잘하는지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하면 정말 끝이 없어.

불효자식이구나. 어쨌든 계속 얘기해보렴.

그렇게 계속 나는 축구를 했고 나이를 먹고 나서는 아버지의 팀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했지. 그러다가 청소년 대표팀에도 차출되서 뛰었고 이후에는 성인 대표팀에도 불려갔지. 축구선수로 정말 많은 경험을 했어.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부탄에는 프로 리그가 없어. 먼저 팀푸 리그라고 부탄의 수도 팀푸 내의 팀들끼리 하는 리그가 있어. 여기서 상위권을 차지하면 이후 전국 단위인 내셔널리그에 진출해 우승 팀을 가리지. 내셔널리그에서 우승하면 AFC컵 예선 출전권이 주어져.

대표팀에서 뛰는 오르기엔 왕축 트셰링 ⓒ 본인 제공

팀푸 리그나 부탄 내셔널리그는 세미 프로, 또는 아마추어라고 볼 수 있지. 프로 선수의 경험을 해보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꿈을 이루지 못했어. 예전에 국가대표 A매치에 출전하고 나서 방글라데시 팀이 영입을 제안한 적이 있었어. 그런데 사실 부탄의 대표적인 축구 스타 첸초 겔첸이 방글라데시에서 뛴 적이 있었거든. 그런데 그곳은 부패가 심하대. 부정적인 면을 많이 봤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거절했지.

그럼 아버지가 뛰던 조기축구회에서 시작해 팀푸 시티까지 간 거야?

아니. 아버지 팀이 팀푸 시티야. 부탄에서는 최강 팀 중 하나지. 부탄의 다른 팀 팬들이 우리 팀 질투 정말 많이 해. 우리가 자주 이기고 우승하니까 "쟤들은 조작해서 이겨"라는 말을 많이 하지. 하지만 우리 팀은 정말 실력으로 맞붙는 팀이야.

우리 팀 자랑을 하나만 더 하자면 다른 부탄 팀들은 유니폼을 직접 사. 선수들 유니폼을 사와서 엠블럼 붙이고 마킹해서 입고 뛰지. 하지만 우리 팀은 유니폼 스폰서가 있어. 부탄에서는 유일해. 그 정도로 우리 팀은 실력도 좋고 나름 인기도 있는 팀이라고 볼 수 있지.

무슨 소리야? 너희 아버지가 감독인 거야?

하하 아니야. 우리 아버지는 부탄에서 관광업을 하고 계셔. 그래서 나도 아버지의 일을 이어 받을까 생각해서 세종대 호텔관광외식경영학부에 들어온 거야. 아버지는 사업을 하시면서 동시에 팀푸 시티의 구단주야. 축구를 워낙 좋아해서 팀을 운영하고 있지.

형… 돈 잘 벌면 다 형이에요. 밥 사주세요.

그런 거 아니야 하하. 나는 그렇게 돈이 많지 않아. 사실 한국에 오기 전에 원래는 호주에 있는 대학에 가려고 했어. 잘 추진되다가 막판에 비자 발급에 문제가 생겨 취소됐지. 그래서 다른 곳을 찾던 중에 한국에 오게 됐어. 아버지가 내게 그러더라고. "아이고 이 놈아. 너는 축구할 때 빼고는 항상 집에 콕 박혀서 아무것도 안하고 게으르게 그러고 있니? 너 한국 가라. 한국 가서 한국 사람들 열심히 사는 것좀 보고 배워라."

세종대에 오는 것도 쉽지는 않았어. 다른 나라의 대학들에 비해 한국 대학은 입학이 까다롭더라고. 그래서 입학 전에 미리 한국에 잠깐 와서 한국어를 배우기도 했어. 부탄에 다시 갔다오는 동안 다 까먹었지만. 게다가 사촌 누나가 한국에 있는 로펌에서 국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어. 덕분에 한국 생활을 미리 준비하기가 그나마 수월했지. 아버지가 내게 금전적인 지원을 하지는 않아. 그래서 지금 과외도 구하고 있어.

한국에 와서 보니까 정말 한국 사람들은 열심히 사는 것 같아. 공부도 일도. 잠깐 한국어를 배울 때 선생님이 내 걱정 정말 많이 했어. "공부 좀 하라"는 잔소리 꽤나 들었지. 하지만 천성은 쉽게 바뀌지 않나봐. 너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그냥 기숙사에 누워서 쉬다가 어슬렁 어슬렁 나왔어.

아니야.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이 이상한 거라고 생각해. 나도 주말에는 쉬고 싶은데 우리 회사 대표가 워낙 악덕 업주라 지금도 이렇게 너를 만나러 온 거야(인터뷰한 날은 토요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사는 한국인들을 좀 보고 배워야 할 것 같아.

그럼 다시 부탄 축구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한국 사람들은 부탄 축구를 잘 몰라. 기껏해야 멋있는 부탄 경기장 정도?

그건 아는구나. 우리 경기장 멋있지. 국가대표팀 유니폼도 멋있어. 주황색 유니폼에 용이 그려져 있지. 전 세계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통틀어서 우리나라 유니폼이 상위권에 속할 거야. 사실 네게도 한 벌 선물로 주고 싶은데 지금 내게 유니폼이 한 벌도 없어. 유니폼을 받고 경기를 뛰고 나면 꼭 친구들에게 연락이 와. "유니폼 좀 달라"고. 계속 주다보니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없어.

사실 부탄은 축구를 굉장히 못하는 나라야. FIFA 랭킹도 183위야(한국은 57위). 워낙 인구가 적으니 축구를 하는 사람도 많이 없어. 한국은 축구선수라고 하면 돈도 많이 벌고 대접도 좋지만 부탄은 축구선수에 대한 대우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야. 프로 리그가 없어서 다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어. 학생이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지.

그나마 택시 기사님들에게는 인기가 좋아. 택시 기사들 중에서 축구팬이 꽤 많거든. 택시를 타면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 하면서 택시 요금을 받지 않는 경우도 많아. 그래도 국가대표팀 경기를 하면 경기장이 꽉 들어찰 때도 꽤 많아. 부탄 내셔널리그 경기를 해도 몇천 명의 관중이 들어오는 편이지.

부탄은 왕정제라고 하던데 부탄 왕실은 축구를 좋아해?

음… 열광적이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관심은 가지고 있어. 지원을 해주도록 노력해. 하지만 돈이 없다보니 쉽지 않아. 부탄 국가대표팀의 성적을 보면 홈에서는 나름대로 선전할 때가 있어. 그런데 원정에서 똑같은 팀을 만나면 여지없이 깨지지. 0-7로 지고 그래. 좀 더 많은 원정 경험이 있다면 더 잘 할 수 있는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가끔은 왕족들끼리 축구할 때가 있어. 그럴 때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연락이 와. 서로 "자기네 팀에서 뛰어달라"고 말하지. 왕족들 간의 친선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승부욕이 강하니 절대 지기 싫은 거야. 그럼 우리가 '용병'이 되어서 같이 축구할 때도 있어. 그 정도면 왕실이 축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부탄 국민들 전체가 축구를 좋아하기는 해. 단지 못해서 그래. 홈에서 대패하면 "당장 축구 접어라"는 얘기도 많이 들어.

한국 축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어?

엄청 강하지. 빠르고 압박이 심하지. 하지만 나는 한국 축구에 대한 두 가지 기억을 가지고 있어. 2008년 남아시아 스즈키 컵(동남아시아 스즈키 컵과 다른 대회)에서 부탄이 역사상 최초로 4강에 진출했어. 그 당시 감독이 한국인이었어. 유기흥 감독이었지. 그 때 부탄은 정말 축제 분위기였어. 부탄에 남아시아 스즈키 컵은 월드컵과도 같은 대회거든. 2008년은 부탄 축구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지.

대표팀에서 뛰는 오르기엔 왕축 트셰링 ⓒ 본인 제공

그리고 불과 얼마 전 기억이 나.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봤거든. 사실 나는 독일의 열렬한 팬이야. 내가 미드필더라서 메수트 외질을 제일 좋아해. 그의 플레이를 따라 하려고 노력도 많이 하고. 그런데 그 독일을 한국이 2-0으로 꺾은 거야. 처음에는 내가 독일 사람인 것처럼 화가 엄청 많이 나더라고. 근데 생각해보니 내가 얼마 뒤에 한국에서 공부를 해야하네? 바로 태세 전환하고 열렬한 한국 팬이 되어서 승리를 기뻐했지.

사실 부탄에서 한국은 축구보다는 K-팝으로 유명하지. 부탄 학교에서 축제를 열면 장기자랑 때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노래가 빠지지 않아. 심지어 내 여동생도 내가 한국에 간다니까 엄청 부러워했어. 나는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K-팝이 진짜 부탄에서는 엄청나더라. 이제는 한국 남자들이라고 하면 부탄에서 인기 정말 많아. 한국에서 부탄으로 온 유학생이 있으면 모든 부탄 소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

그러고보니 지금 한창 남아시아 스즈키 컵을 하고 있는데 너는 한국에 있네?

고민 많이 했어. 스즈키 컵이 열리는 시기가 마침 학교 개강과 겹치거든. 부탄에서, 아니 남아시아 지역에서 축구선수를 한다면 스즈키 컵에 나가는 것은 꿈과도 같은 일이야. 한국 선수들은 월드컵에 나가는 것이 소원이지만 우리는 스즈키 컵에 나가는 것이 소원이야. 여기서 좋은 성적을 내면 정말 국가적으로도 축하하거든.

그런데 나는 아직까지 축구선수의 삶이 내 중심인 적이 없었어. 프로 선수가 아니니까. 국가대표로 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일단 한국 유학생의 삶에 적응하는 것이 우선이었어. 그래서 출전을 포기했지. 나는 아직 어리니까 앞으로도 스즈키 컵에 나갈 기회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 그래도 경기는 챙겨서 봤는데 3전 전패로 탈락했어. 방글라데시에 0-2, 네팔에 0-4, 파키스탄에 0-3으로 졌더라. 아쉬워.

국가대표팀도 너의 부재에 아쉬워 하겠지만 아버지, 아니 소속팀 팀푸 시티의 구단주도 안타까웠을 것 같아.

이번 시즌 팀푸 리그에서 팀푸 시티가 1위를 놓쳤어. 팀푸 리그는 4월에 개막해서 7월까지 열리거든. 내셔널리그 진출은 했지만 하필이면 라이벌인 트랜스포트 유나이티드에 승점 1점 차로 2위를 차지했어. 아버지 속이 부글부글 끓을 수 밖에 없지. 이제 내셔널리그를 준비해야 하는데 하필이면 내가 한국으로 가게 된 거야.

물론 아버지 입장에서는 팀 성적도 중요하지만 아들이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거든. 그래서 한국으로 날 보내셨어. 대신에 외국인 선수를 두 명이나 추가로 데려왔지. 한 명은 브라질 국적의 스트라이커고 다른 한 명은 나를 대체하기 위해 호주에서 미드필더를 구했더라.

만일 올 시즌 부탄 내셔널리그에서 우승하면 연말에 아버지가 다시 나를 부탄으로 부를 것 같아. 아마 1월 말 쯤에 AFC컵 예선 경기가 있거든. 한국은 AFC 챔피언스리그를 나가니까 모르겠지만. 아버지 소원이 AFC컵 조별리그에 나가보는 거야. 물론 해외 원정을 다녀야 하니 돈은 많이 들겠지. 하지만 AFC가 부탄과 같은 축구 약소국에는 AFC컵 원정 비용 등을 지원하고 인조 잔디를 깔아주기도 하더라고. 일단 조별리그 진출만 하면 정말 소원이 없을 거야.

일부 내 팬들도 내가 한국으로 떠난다니까 아쉬워 했어. 얼마 전 부탄의 스즈키 컵 경기가 열렸을 때 나한테 SNS 메시지가 오더라. "너 있었으면 이기거나 이기지 못해도 해볼 만한 경기였는데 너 없어서 졌다. 왜 한국을 갔느냐"고 하더라. 같이 선수 생활을 하는 내 친구도 "너 없어서 심심해 죽겠다"고 하기에 "그럼 너도 한국 와서 공부해라"고 말했지. 그 친구는 일단 고등학교부터 졸업해야 해.

그런데 네가 학교 생활을 하면 경기력 유지는 어렵지 않겠어?

그래서 지금 한국에 와서 팀을 찾고 있어. 알게 된 한국인 친구를 통해서 K3리그 팀에 훈련이라도 할 수 있는지 알아봤는데 잘 되지 않았어. 경기를 뛰지 못하더라도 같이 훈련할 수 있는 팀이 있었으면 좋겠어. 돈은 중요하지 않아. 내 감각을 유지하면서 한 번 내가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아보고 싶어. 한국 선수들에 비해 내가 어떤 점이 부족한지 알아보고 싶어.

열심히 팀은 찾고 있는데 아직까지 긍정적인 답변은 받지 못했어. 내가 학교 생활에 일단 전념해야 하니 서울 소재 팀이나 수도권에 위치한 팀을 찾고 있는데 어려운 점이 많더라. 내가 한국 축구계에 아는 사람도 딱히 없고. 일단 올 시즌이 끝나고 연말에 새로 선수를 구하는 팀이 많아진다고 하니 기다려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학교를 다니면서 축구도 하는데 과외까지 구한다며?

나도 한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 영어 과외를 구하고 있어. 유학생 신분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더라고. 그 중에 하나가 과외더라. 부탄이 영어를 공용어로 쓰기 때문에 영어 하나는 잘 하거든. 그래서 지금 너와 영어로 인터뷰를 하고 있잖아?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가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한다면 기꺼이 내가 좋은 과외 선생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아.

한국 생활이 쉽지는 않겠구나.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 세종대 앞에 와놓고서 세종대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변호사인 사촌 누나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어. 아직 한국 생활이 얼마 되지 않아서 친구도 별로 없어. 물론 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다른 외국인들을 많이 만나. 하지만 서로 어울리는 무리가 있더라. 예를 들어 10명은 우즈베키스탄 사람이고 5명은 중국 사람이고 이런 식? 나 혼자 부탄 사람이야.

그래도 음식 같은 것은 입에 잘 맞아서 다행이야. 부탄 사람들도 매운 거 정말 좋아하거든. 나도 매운 한국이나 태국 음식을 정말 좋아해. 부탄에는 한국 음식점이 딱 한 군데 있어. '산마루'라는 곳인데 맛집으로 유명해. 하지만 부탄 사람들에게는 비싼 곳이야. 나도 살면서 딱 한 번 밖에 가보지 못했어. 그런데 여기 와서는 그 비싼 음식들을 매 끼니마다 먹을 수 있으니 아주 좋아.

아직 한국어는 "안녕하세요" 정도 밖에 못해. 배우고 있는 중이야. 한글은 어느 정도 알아. 글자를 보고 읽을 수 있어. 하지만 그 글자가 무슨 뜻인지는 아직 이해하지 못해. 더 배워야 한국 생활이 편해질 것 같아.

그럼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면 너는 무슨 일을 하고 싶어?

글쎄… 아직은 혼란스러워. 나는 지금 한국의 대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있어. 하지만 축구선수에 대한 꿈과 열망은 아직도 여전해. 무엇보다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부탄 국민들의 기대도 저버리기 어려워. 부탄 사람들에게 부탄 선수가 프로 무대에 진출한다는 것은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는 것 만큼 대단한 일로 여겨져. 축구선수에게 '프로 진출'을 기대하는 것은 어찌보면 부탄의 축구선수들에게 주어진 숙제지. 나 또한 어린 나이에 부탄 국가대표팀에 있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내가 프로축구 무대에 진출하는 것을 원해.

하지만 아직 어리잖아. 그리고 해야 할 공부도 많이 남아 있고. 지금은 내 할 일에 집중하면서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축구선수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 지금까지 학생과 축구선수라는 두 가지 역할을 해왔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해볼 거야. 그리고나서 정말로 내 길을 선택해야 할 시기가 다가온다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볼 생각이야.

※ 오르기엔 왕축 트셰링에게 과외를 원하거나 훈련 팀을 주선해주실 분이 계시다면 스포츠니어스 SNS 또는 기자 이메일로 연락 주세요. 연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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