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이 주장 완장을 손흥민에게 넘겼다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고양=홍인택 기자] 벤투호 1기가 출범했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우리 대표팀은 7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이재성과 남태희의 골에 힘입어 코스타리카를 2-0으로 꺾었다.

기성용은 이날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했다. 그러나 그의 팔에는 이제 주장 완장이 없었다. 주장 완장은 손흥민이 차고 있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경기에 나선 것이 10년, 그리고 그는 4년 동안 운동장에서 팀을 이끄는 주장이었다. 기성용은 주장 완장을 넘긴 것에 대해 "홀가분하다"라고 표현했다.

기성용은 이날 경기에 앞서 러시아 월드컵을 마무리하고 대표팀 은퇴를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를 만류했다고 알려졌다. 기성용 또한 "은퇴 의사를 감독님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감독님이 함께 가자고 말했다. 팀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대표팀에 남는 게 맞는 것 같다"라며 공식적으로 밝혔다.

주장 완장이 없는 기성용은 아직 어색하다 ⓒ 대한축구협회

기성용이 손흥민에게 주장을 맡긴 이유

오랜 시간 팀을 이끌어왔던 주장으로서 그의 "홀가분하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대표팀의 선발 명단이 호명되는 동안 그를 향한 팬들의 환호는 엄청났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손흥민과 황의조, 이승우를 향했던 환호가 더 크게 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늘 풀타임을 뛰었던 기성용이 주장직을 내려놓고, 전반전만 뛰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세대교체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손흥민에게 주장직을 넘기는 것도 기성용의 생각이었다. 그는 "감독님과 얘기를 나눴다. 주장은 (손)흥민이에게 가는 게 맞다고 건의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슈틸리케 감독님이 부임했을 때부터 월드컵까지 4년 동안 주장으로서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많이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다"라면서 "앞으로 4년을 내다봤을 땐 (손)흥민이가 하는 게 맞다. 토트넘에서도 잘하고 있다"라며 차기 주장에게 힘을 불어넣는 모습이었다.

기성용은 손흥민이 주장을 맡아야 한다는 이유로 '영향력'을 말했다. 그는 "주장이라는 건 나라를 대표해 영향력 있는 선수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손)흥민이가 맞다"라고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 "나는 옆에서 많이 도와주겠다"라고 말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야말로 '세대교체'를 강하게 뒷받침하는 말이었다. 기성용은 세대교체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대표팀 은퇴 의사를 접고 벤투 감독과 함께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했지만 은퇴를 고려했던 마음을 잊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나도 언제든지 교체가 필요하다면 대표팀을 떠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10년 동안 대표팀의 중심에서 잘 해왔고 이제는 다른 세대들이 좋은 모습으로 교체를 하고 있다고 본다. 이 선수들이 이제 월드컵 예선부터 최종 예선까지 책임감을 갖고 지금의 대표팀을 잘 이끌어야 한다"라며 당부하는 모습이었다.

또한 "나도 옛날에, 어렸을 때 그런 상황을 겪었다. 선배들이 자연스럽게 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팀을 떠나는 거에 대해선 전혀 부담은 없다"라면서도 "다만 후배들이 올바르게 갔으면 한다"라며 후배들을 지지하고 이끌어주겠다는 생각을 전했다.

주장 완장이 없는 기성용은 아직 어색하다 ⓒ 대한축구협회

후배들을 위한 기성용의 당부

기성용은 특히 '이후의 대표팀'을 강조했다. 기성용은 "아시안게임에서 선수들이 잘했기 때문에 팬들도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첫 경기였다. 감독님이 앞으로 많은 경기를 치를 텐데 우리가 이 경기에서 이겼다고 해도 아직은 판단이 어렵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새로운 감독님이 부임한 이후 첫 경기는 항상 좋았다. 처음에는 좋은 분위기를 이어 가다가 분명히 고비가 오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선수들이 오늘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매 경기에 임했으면 한다"라며 당부했다. 이어 "언젠가는 위기가 온다. 최종예선에 들어가면 선수들이 부담을 많이 느낄 수 있다. 선수들이 잘 이겨낼 수 있게 옆에서 잘 도와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기성용의 이 말은 그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는 언제나 대표팀의 핵심이었다. 그의 패스, 혹은 그의 존재 자체로 인해 우리 대표팀 경기의 질이 변했다. 언제나 실력으로 증명한 선수였으며 다른 선수들도 그에게 많이 의지했다. 그랬던 그가 중심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는 듯한 모습이다.

기성용의 말처럼 세대교체는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늦든 빠르든 그의 은퇴는 머지않은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은퇴 전까지 벤투 사단 안에서 후배들을 도울 생각이다. 10년의 대표팀 생활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그가 보여준 능력과 영향력은 깎아내리기 어렵다. 그랬던 그가 이제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기성용의 대표팀 활약을 지켜보던 우리들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듯 보인다.

intaekd@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