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웨딩 사진이 공개됐다. ⓒ수원삼성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달 22일 제주에는 제19호 태풍 ‘솔릭’이 불어 닥쳤다. 제주유나이티드와 수원삼성의 KEB하나은행 K리그1 2018 경기 역시 열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빡빡한 일정 속에 이 경기가 연기되는 걸 좋아할 이는 누구도 없었다. 제주까지 내려 갔으니 그래도 경기를 어떻게든 치르고 올라오는 게 수원삼성에도 좋았다. 그런데 이 중에는 누구보다도 간절히 경기가 열리길 바라는 이가 있었다. 바로 수원삼성 윤청구 의무 트레이너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내달 8일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필이면 딱 그날이…

윤청구 트레이너가 시즌 도중 결혼식을 올리게 된 사연은 좀 특별하다. 축구단 종사자는 시즌 중이 아니라 시즌 종료 후 결혼식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1월에는 전지훈련을 가야해 보통 12월에 결혼식이 몰린다. 윤청구 트레이너도 12월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해 12월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른들은 “가족이 하늘로 간 달에는 결혼식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결국 윤청구 트레이너는 올 시즌 한국 축구 일정이 쭉 나오자마자 이걸 열심히 연구했다. 9월에 A매치 데이가 있었고 이 시기에 결혼식을 올리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윤청구 트레이너는 9월 8일을 백년가약을 맺는 날로 정했다. 충남 서산이 고향인 그는 사실 수원에는 지인이 많지 않다. 하지만 그는 수원월드컵경기장 1층에 있는 WI컨벤션을 결혼식장으로 잡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 직장에 함께 근무하는 선수들의 축하를 받고 싶었어요.” 그의 아내 역시 새 신랑의 뜻을 존중했다. 고향에서 지인과 친구들, 친척들이 올라오는 수고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생활하는 수원에서 꼭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2013년부터 수원삼성에서 근무한 그에게 많은 선수들이 축하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A매치 데이 휴식기를 맞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대부분의 선수단이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선수단 관계자도 “모든 선수들이 다 같이 참석해 윤청구 트레이너의 결혼을 축하해 주자고 약속했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달 22일 제주에 태풍이 몰아치자 불길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이 경기가 연기되면 재경기를 할 수 있는 날짜는 누가 봐도 딱 9월 8일뿐이었기 때문이다. A매치 기간이라 리그 휴식기인 이 날 경기를 치르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윤청구 트레이너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경기를 준비했다.

윤청구-김민경 부부는 이렇게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았다. ⓒ수원삼성

아무도 갈 수 없는 트레이너의 결혼식

지난 달 22일 경기장에 일찍 도착한 그는 구단 관계자와 연맹 관계자가 대화를 나눌 때도 바로 옆에 있었다. “이 날씨에는 경기 개최가 불가능하겠는데요. 연기합시다.” 관계자들은 모여 일정표를 확인해 보더니 “9월 8일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자세한 일정은 추후 확정하자”고 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사항 초유의 경기 연기 사태였다. 윤청구 트레이너는 모든 걸 부정하고 싶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결국 프로축구연맹은 제주와 수원의 경기를 9월 8일에 치르기로 합의했다. 윤청구 트레이너의 결혼식에는 제주 원정을 떠나는 선수단과 구단 관계자가 아무도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고향이 여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수원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는 건 직장 문제가 컸죠. 아무래도 선수단이 있으니까 여기에서 하고 싶었던 건데 의미가 없어졌어요. 속상했죠. 2013년부터 늘 함께 생활해 온 이들인데 그 분들의 축하를 받고 싶었거든요.” 이들 예비부부는 결혼식 일정을 하루 늦추는 것도 고려했지만 다른 하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 역시 실행하지는 않았다. 선수단과 코치진도 윤청구 트레이너를 걱정해줬다. 가뜩이나 경기력이 좋지 않아 분위기가 침울한 상황이었지만 모두 내 일처럼 윤청구 트레이너의 결혼식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러다 아이디어가 나왔다. 서정원 전 감독과 이운재 코치의 아이디어였다. “우리가 결혼식에는 못 가니 세상에서 하나 뿐인 웨딩 사진을 찍어주자.”

선수들도 다같이 환영했다. 2013년부터 팀에 헌신하는 윤청구 트레이너를 위한 특별한 웨딩 사진을 준비했다. 하지만 윤청구 트레이너는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컸다. 팀 분위기도 좋지 않았고 그 와중에 서정원 감독도 사퇴했기 때문이다. “괜히 팀에 민폐를 끼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윤청구 트레이너는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선수단은 AFC 챔피언스리그 전북현대와의 원정경기에서 3-0 대승을 거두며 다시 한 번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다행히도 웃으며 웨딩 사진을 찍을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렇게 지난 달 31일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수원 팬들이라면 누구나 가장 부러워할 웨딩 사진이 탄생했다.

윤청구-김민경 부부는 이렇게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았다. ⓒ수원삼성

그를 위한 멋진 웨딩 사진 선물

이날은 선수단 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경기도 기흥시 수원삼성 클럽하우스에 선수단이 모였다. 보통 훈련을 하는 날은 선수들이 자유롭게 트레이닝복을 입지만 이날 만큼은 규칙이 있었다. 경기 때의 복장으로 훈련에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코치진도 모두 복장을 갖춰 입고 모였고 제주 원정 길에 함께 하는 프런트 역시 다들 훈련장으로 집결했다. 박창수 단장까지 나왔다. 그리고는 의자를 세팅하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저 멀리서 예복을 멋지게 차려 입은 트레이너, 아니 예비 신랑 윤청구 씨와 그의 아내가 될 예비신부 김민경 씨가 걸어왔다. 선수들이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하나 뿐인 멋진 웨딩 사진을 찍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구단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보통 이런 사진은 시즌을 앞두고 딱 한 번 찍어요. 선수들에게도 어색한 일이죠. 이런 사진은 늘 날이 추울 때 찍는데 이렇게 더울 때 찍는 건 더더욱 그래요.”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청구가 워낙 성격도 좋고 음지에서 열심히 일하는 친구라 선수들이 다 좋아해요. 마당쇠 같아요. 한 번도 쉬지 않고 일을 그렇게 했는데 언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다들 그런 이야기를 해요.” 선수들은 웨딩 촬영이 끝난 뒤 윤청구 트레이너를 헹가래하며 미리 결혼을 축하했다. 염기훈과 양상민, 조원희 등 선배 선수들은 윤청구 트레이너에게 특히나 더 결혼식에 가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수원삼성 구단 측은 윤청구 트레이너에게 대형 액자에 사진을 담아 선물했고 선수단은 제주와의 재경기를 위해 지난 5일 제주도로 날아갔다. 비록 8일 열리는 그의 결혼식은 선수단이 다 제주도에 가 다소 썰렁할 수도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웨딩 사진이 걸려 있을 것이다. 윤청구 트레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원래 팀에 대한 애정이 강했는데 더 강해졌어요. 시즌 중에 결혼하게 돼 죄송한 마음인데 너무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셨네요. 트레이너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일할 때가 많죠. 선수도 아니고 구단에서 신경을 덜 쓸 수도 있는 자리인데 다 자기 일처럼 신경 써 주셨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우리는 정말 한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식장에서 찍는 기념 사진보다도 더 좋은 추억을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 하나 뿐인 웨딩 사진이잖아요.” 그렇게 윤청구-김민경 부부는 가장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footballavenue@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