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유나이티드 공식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북한의 축구 개방이 조금씩 확대되면서 이제 북한 축구를 세계 여러 무대에서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북한 클럽의 AFC(아시아축구연맹)컵 참가다. AFC의 협조와 북한의 의지로 북한 클럽은 AFC컵에 참가하고 있다. 아직 AFC컵 정상을 차지한 적 없지만 꾸준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분발하고 있다. 최근 AFC가 AFC컵과 AFC챔피언스리그(ACL)의 교류를 고민하고 있어 북한 클럽의 참가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 클럽과 북한 클럽의 공식 경기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물론 친선전은 몇 차례 있었다. 그렇지만 정식 대회에서 맞붙은 적은 없다. 그런데 최근 북한 땅을 밟고 정식 아시아 대회에서 북한 클럽과 경기를 한 한국인 선수가 있다. 바로 싱가포르 홈 유나이티드의 에이스 송의영이다. 이 경기에서 그는 골을 넣기도 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스포츠니어스>가 들어봤다.

"이거 이기면 우리 북한 간다"

AFC컵 F조에서 4승 1무 1패라는 성적으로 1위를 차지한 홈 유나이티드는 아세안 존 4강전에 진출했다. 여기서 우승을 차지하면 본격적으로 AFC컵 우승을 향한 여정에 돌입한다. 하지만 선수들을 설레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아세안 존에서 우승할 경우 인터 존 4강전 진출 자격이 주어진다. 첫 상대는 동아시아 팀들로 구성된 I조의 1위 팀이었다. 그 팀은 4.25 축구단이었다. 북한 팀이다.

4.25 축구단은 I조에서 6전 전승으로 인터 존 4강전에 진출한 강팀이다. 그래도 선수들은 설렜다. 우승을 차지한다면 북한 땅을 밟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꿈을 이뤘다. 8월 초 열린 아세안 존 결승전에서 홈 유나이티드는 1, 2차전 합계 3-1로 필리핀의 세레스 네그로스를 꺾었다. 송의영은 당시를 회상하며 "결승전을 앞두고 '이거 이기면 북한 가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아세안 존 결승전에서 우승한 홈 유나이티드 ⓒ 홈 유나이티드 공식 페이스북

아세안 지역의 최강자 자리에 오른 홈 유나이티드는 이제 4.25와의 경기를 준비해야 했다. 송의영의 팀 동료들은 북한에 대한 호기심이 폭발했다. "이 친구들이 전부 북한에 처음 가는 거여서 많이 궁금해 했어요." 마침 홈 유나이티드에는 송의영이라는 한국인 선수가 있었다. 그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너는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그런데 남한과 북한은 왜 분단된 거야?" 단순한 질문도 있었지만 상당히 난이도 높은 질문도 있었다.

"아직 영어를 잘 하는 편도 아닌데 어렵게 설명은 해줬어요"라고 송의영은 멋쩍게 웃었다. 홈 유나이티드가 북한 팀과 맞붙는다는 것은 싱가포르 내에서도 화제였다. 여러 싱가포르 매체는 홈 유나이티드와 4.25 축구단의 AFC컵 맞대결에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북한 팀과의 일전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평양에서 꼭 보자우", 하지만 쉽지 않았던 북한행

홈 유나이티드는 먼저 싱가포르에서 4.25 축구단과 1차전을 가졌다. 송의영 역시 경기를 준비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반갑게 인사했다. 4.25 축구단의 박승진 감독과 코치진이었다. 박 감독은 그에게 덕담 아닌 덕담을 건넸다. "내래 송 동무가 여기서 용병으로 뛰고 있는 걸 봤어. 골 많이 넣길래 송 동무 나오는 경기 많이 챙겨봤어. 선수들에게 단단히 일러놨으니 오늘 경기 조심하라우." 박 감독은 송의영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경고 섞인 농담이었다. 송의영도 웃으면서 그의 인사를 받았다.

1차전에서 홈 유나이티드는 패배했다. 성의영의 발 끝도 침묵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는데 4.25 선수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같은 조선 반도 동무끼리 뛰니까 반갑구만 기래. 2차전 때 평양에도 꼭 오라우. 같이 한 번 더 경기하면 좋갔어." 말 통하는 사람을 상대로 만난 반가움의 표시였다. 송의영도 꼭 그러겠다고 답했다.

아세안 존 결승전에서 우승한 홈 유나이티드 ⓒ 홈 유나이티드 공식 페이스북

아쉬운 1차전이 끝나자 이제 송의영은 평양에 갈 준비를 해야했다. 송의영보다 팀 매니저가 더욱 바빴다. 싱가포르 소재 한국 대사관에 가서 서류를 떼고 AFC에도 연락해 서류를 발급 받았다. '한국인' 송의영이 북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가 특별 케이스로 분류됐다 하더라고요."

쉽지 않았지만 그의 방북 준비는 순조롭게 이뤄졌다. 그리고 송의영은 홈 유나이티드 선수들과 함께 북한으로 가는 여정에 올랐다. 공항에는 여러 기자들이 몰려와 평양으로 떠나는 그들을 취재하기도 했다. 북한에 간다는 설렘과 1차전 결과를 뒤집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동시에 안고 홈 유나이티드는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땅, 북한으로 향했다.

'한국인' 송의영, 입국하자마자 따로 조사 받은 사연

쉽지 않은 비행이었다. 싱가포르 창이 공항을 출발한 홈 유나이티드는 베이징에 내렸다. 거기서 중국 민항기를 타고 평양으로 향했다. 한 번의 환승을 거쳐서 평양 순안 공항에 내릴 수 있었다. 송의영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입국 심사대에서 그의 여권을 본 공항 직원이 말했다. "동무 잠시 이리로 와보시라우." 그는 선수단과 따로 떨어져 여권과 서류 등을 다시 한 번 심사 받아야 했다. 한국인이기 때문이었다. "남한에서 왔다고 하니까 공항 직원이 상부에 전화를 했던 것 같아요."

겨우 공항을 빠져나온 홈 유나이티드는 북한에서 마련한 버스에 탑승했다. 그들은 안내원에게 주의사항을 들었다. "사진 찍는 것은 우리가 찍으라는 것만 찍으십시오. 어디 가서 마음대로 사진 찍으시면 안됩니다. 그리고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이 실감났다. "사실상 알아서 조심하라는 얘기죠"라고 송의영은 덧붙였다.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송의영은 평양의 모습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깔끔했어요. 높은 빌딩도 많았어요." 다른 선수들도 호기심 어린 눈길로 창 밖을 바라봤다. 홈 유나이티드는 평양 관광으로 북한에서의 일정을 시작했다. 그런데 관광이 이어질 수록 뭔가 이상했다. "뭔가 좋은 것만 보여주려고 하는 이미지를 지울 수 없었어요. 동료들도 '뭔가 감추고 있는 것 같다'라고 수군대기도 했어요."

'말년 병장'이 되어버린 홈 유나이티드 선수들

홈 유나이티드는 평양의 서산호텔에 짐을 풀었다. 이곳은 1989년 완공된 유서 깊은 호텔이다. 임수경의 방북으로 유명한 제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높이가 30층에 달한다. 북한은 나름대로 시설 좋은 이 호텔을 홈 유나이티드에 내줬다. 하지만 짐을 풀고 씻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간 송의영은 깜짝 놀랐다. 온수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온수는 그가 평양을 떠나는 날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북한에서 약 6일 간 체류했다. 첫 이틀은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래서 즐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그들은 전역을 앞둔 말년 병장처럼 힘들어했다. 시간이 안간다는 푸념이 줄을 이었다. 북한에서는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쓸 수 없다. TV도 북한 방송만 나온다. 영화는 꿈도 꿀 수 없다. 특히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아세안 존 결승전에서 우승한 홈 유나이티드 ⓒ 홈 유나이티드 공식 페이스북

"말 그대로 운동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선수들이 활기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은 훈련하는 시간 정도였다. 그 외에는 알아서 시간을 떼워야 했다. "쉬는 시간에는 서로 모여서 수다 떠는 것이 일상이었어요. 그래도 호텔 안에 포켓볼 등이 구비되어 있어서 그거라도 했죠. 정말 시간이 좀처럼 가지 않았어요. 그것이 북한에서 제일 힘들었어요."

특히 외국인들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식사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대부분 한식이 나왔다. 그나마 송의영은 한국인이었기에 북한에서의 식사를 무리 없이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한 가지 짙은 아쉬움이 남아있다. 냉면이었다. "평양 냉면이 맛있다고 하길래 기대했는데 호텔에서 제공한 냉면은 제게 썩 맛있지는 않았어요. 역시 옥류관을 가야 맛있나봐요."

"동무, 주체사상이 말이야…"

홈 유나이티드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세 명의 북한 사람이 동행했다. 한 명은 투어 가이드였고 다른 두 명은 군인이었다. 군인들은 선수단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특히 송의영은 그들의 집중 감시 대상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남조선'에서 온 선수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송의영은 군인들의 눈길을 쉽게 피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어색하던 송의영도 곧 그들의 감시에 익숙해졌다. 몇 마디 말을 나누기도 했다. 홈 유나이티드에서 북한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송의영이 거의 유일했다. 군인들도 경계심을 풀지 않으면서 그와 대화를 나눴다. 그 때 갑자기 한 군인이 송의영에게 말했다. "이보라우. 동무. 주체사상이란 말이야…" 틈새 사상 교육이었다. 송의영은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별로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북한의 일반인들은 송의영에게 굉장히 호의적으로 대했다. 그들 또한 남한 사람이 평양에 있다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근데 왜 남조선 사람이 싱가포르에서 뛰는 거요?"라는 질문도 했다. 송의영이 "돈 벌려고 뛴다"라고 농담하니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우리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봉사하기 위해서 일합네다. 아니 정부에서 먹을 것도 주고 옷도 주고 집도 주는데 뭐하러 그렇게 돈을 많이 벌려고 합네까?" 사상의 차이는 곧 생각의 차이였다.

북한 사람들의 환대에 송의영은 깊은 감사를 느꼈다. 그들에게 "밥 같이 먹어요"라는 말이나 "커피 한 잔 같이 해요"라는 제안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들은 고마워 하면서도 이내 말 끝을 흐렸다. "내래 보는 눈이 많아서…" 북한은 어쩔 수 없는 통제 국가였다. 송의영은 "신기하게 느껴지면서도 한 편으로는 '북한 사람들이 저렇게 감시 당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회상했다.

북한 축구는 강했다

그리고 8월 28일 대망의 2차전이 김일성운동장에서 열렸다. "경기장 자체는 크고 좋았는데 인조잔디였어요. 생각해보니 북한의 축구장은 대부분 인조잔디였어요." 이 날 경기에는 사람도 제법 몰렸다. 약 10,000명의 관중이 찾은 것으로 추정된다(AFC컵의 공식 발표는 3,000명). 송의영이 관중들을 보고 신기해하니 한 관계자가 말했다. "평소보다 적게 온 겁니다. 근처에서 축구대회 결승전이 하나 있어서 다 거기 갔어요."

이날 경기에서 홈 유나이티드는 또다시 패배하며 AFC컵에서 탈락했다.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송의영은 여기에서 한 번 더 번뜩였다. 전반 19분 팀의 선제골을 넣으며 4.25 축구단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한 골이 전부였다. 4.25 축구단은 역전에 성공하며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송의영은 아시아 클럽 대회에서 처음으로 평양 땅을 밟고 골을 넣은 한국인으로 기록되는데 만족해야 했다.

아세안 존 결승전에서 우승한 홈 유나이티드 ⓒ 홈 유나이티드 공식 페이스북

"4.25 축구단은 선수 대부분이 국가대표라고 들었어요. 우리나라 축구와 비슷했어요. 동남아 팀에 비해 체격도 좋고 스피드도 빨라요. 패스 게임을 상당히 잘해요. 특히 10번 안일범 선수가 정말 잘해요. 지금 AFC컵 득점 랭킹 1위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참고로 안일범은 2007년 한국에서 열린 U-17 월드컵에 출전해 브라질을 상대로 골을 넣은 바 있다. 잘한다는 뜻이다.

"특히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4.25가 크게 이기고 있는데 벤치에서 '정신줄 잡고 뛰라. 끝까지 뛰라'고 외쳐요. 실제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요. 점수 차이가 제법 나면 좀 자세가 흐트러질 법 한데 북한 선수들은 절대 그렇지 않았어요. 여기에 국가대표에서도 같이 뛰고 소속 팀에서도 같이 뛰니 조직력이 좋을 수 밖에 없죠." 송의영은 이 이야기를 하며 혀를 내둘렀다.

"생애 첫 방북, 예상과 많이 달랐어요"

홈 유나이티드는 4.25 축구단과 두 번의 경기를 통해 AFC컵 탈락이라는 아쉬운 성적표를 들고 귀국했다. 하지만 송의영은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북한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좀 더 많이 알게 됐어요. 북한에 있으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그 나라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어요. 게다가 사회주의 국가가 어떤 것인지도 알았어요. '내가 본 것이 전부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양에서 예상 밖의 모습들도 봤어요. 사실 북한이라고 한다면 좀 딱딱한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마냥 그렇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북한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제게 많이 해주기도 했어요. 살면서 북한에 한 번이라도 가볼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죠. 비록 경기는 아쉬운 결과로 끝났지만 제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아직까지 한국인에게 북한은 미지의 땅이고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북한은 축구를 통해 세계 무대에 점점 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AFC는 ACL과 AFC컵의 교류를 점차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한국과 북한의 프로축구는 조금씩 접점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송의영의 경험은 그 자신에게 소중한 추억이 될 뿐 아니라 한국 축구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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