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연속 PK 선방’ 필리핀 GK 에더리지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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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 직전 케네디의 PK를 막은 에더리지 ⓒ 프리미어리그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임형철 기자] 필리핀 국적의 선수가 프리미어리그(PL)에 진출했다. 주인공은 승격팀 카디프시티의 골키퍼 닐 에더리지다. 지난 1, 2라운드에 모두 선발로 출전한 에더리지는 PL 역사상 첫 필리핀 선수로 역사에 남았다. 동시에 동남아 선수 중 최초로 PL에 출전하는 기록도 세웠다. 1990년생인 그는 긴 시간 잉글랜드 3, 4부리그를 전전하다 2017-18 시즌 2부 리그(EFL 챔피언십)의 카디프로 이적했다. 한 시즌 동안 리그 45경기에서 37실점을 허용하며 팀 역사상 두 번째 PL 승격을 이끌었다.

이후 PL 1, 2라운드 연속으로 페널티킥을 선방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2라운드 뉴캐슬전에는 경기 종료 직전에 시도한 케네디의 페널티킥을 막아내 팀을 패배의 위기에서 구했다. 영웅이 된 닐 에더리지 덕분에 카디프는 0-0으로 비겨 2라운드 만에 PL 승격 후 첫 승점을 획득했다. 만 28세의 나이로 뒤늦은 PL 데뷔를 신고한 그는 개막 후 두 경기에서의 활약으로 승격팀 카디프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런 에더리지도 불과 4년 전까지는 잉글랜드 하부리그에서 소속팀 없이 방황을 거듭하고 있었다. 당시엔 잉글랜드 생활을 접고 필리핀으로 떠날 결심을 하며 차를 팔고 짐 가방을 싸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다시 기회를 잡은 그는 4년 동안 3부 리그(EFL 리그 1)와 EFL 챔피언십에서 꾸준히 노력한 끝에 최상위 리그 PL까지 진출했다. 얼마 전에는 그의 손으로 조국 필리핀을 아시안컵 본선에 최초로 진출시키기까지 했다. 어느 곳에서든 ‘영웅’이라 불릴만한 그는 도대체 어떤 선수일까?

첼시와 풀럼에서 꿈을 키웠던 골키퍼
닐 에더리지는 잉글랜드 국적의 아버지와 필리핀 국적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잉글랜드 런던에 있는 엔필드 타운에서 태어난 이래 잉글랜드에서만 생활했다. 축구에, 그것도 공격에 유독 흥미가 있었던 그는 왼쪽 측면 미드필더와 공격수 포지션에서 뛰며 9세의 나이로 축구를 시작했다. 그가 골키퍼 포지션과 인연을 맺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같은 학교의 주전 골키퍼가 부상을 당한 것을 계기로 그의 빈 자리를 대체하며 골키퍼 포지션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가 축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이후 그는 2003년에 첼시 아카데미 U14 팀에 가입했다. 여전히 공격수에 대한 흥미가 많았던 탓에 시작은 공격수로 했으나 이후 코치의 끈질긴 권유로 인해 골키퍼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3년 동안 첼시 아카데미에 있었던 그는 긴 시간 프로 골키퍼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끝내 첼시로부터 프로 계약 제의는 받지 못했다. 그는 3년 뒤 지역 라이벌 팀 풀럼 아카데미로 옮기고 나서야 프로 계약 제의를 받았다. 꿈에 그리던 프로 선수가 된 그는 2011년 풀럼 1군 팀 등록과 동시에 하부리그 팀으로 임대를 떠나며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긴 시간 찰튼 애슬레틱과 브리스톨 로버스, 크루 알렉산드라 등 3, 4부 리그의 팀들과 단기 임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두 달간 브리스톨 로버스에 임대됐을 때를 제외하면 어느 팀에서도 주전 자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하부리그에서 두각을 내지 못한 그에게 원소속팀 풀럼이 출전 기회를 줄 일은 없었다. 결국 유스 시절부터 8년간 몸담았던 풀럼에서 유로파리그 1경기 출전에만 그친 채 2014년 여름에 방출을 통보받았다.

닐 에더리지, 풀럼, 프리미어리그
풀럼 1군에서는 한 경기 출전에 그쳤다 ⓒ 위키피디아

친구 집 소파에서 생활해야 했던 시간
2014년 7월 풀럼에서 방출 통보를 받은 그는 4개월 가까이 새로운 팀을 찾지 못했다. 무명의 필리핀 골키퍼를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 하부 리그에서도 눈에 띄는 실적이 없는 데다 긴 시간 경기 출전을 하지 않아 실패 가능성이 높았던 탓이다. 에더리지에게 이 시간은 거대한 시련으로 다가왔다. 직접 돈을 지급해 찰튼 애슬레틱 훈련장에서 개인 훈련까지 하며 대기했지만 그를 찾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에더리지는 시련에 굴복했다. 자신의 차를 팔고 살던 집을 내놓으며 잉글랜드 생활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어머니의 나라 필리핀에서 뛰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짐을 싸던 중 급하게 연락이 왔다. 후보 골키퍼로 벤치에 앉을 선수가 없어 상황이 급해진 EFL 리그 1 팀 올드햄 유나이티드가 그를 원한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2개월 단기 계약 제의를 수락했다. 주전 골키퍼로 출전할 가능성이 적고 팀에 합류해도 후보에 머물 뿐이었지만 잉글랜드에서의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올드햄 유나이티드에 입성했다.

그는 예상대로 11월 한 달 동안 올드햄 유나이티드의 리그 3경기에서 후보 골키퍼로 벤치를 지켰다. 잉글랜드 생활을 정리하는 동안 집을 팔았기 때문에 이 동안 친구 집에서 숙박하며 소파 위에서 잠을 청했다. 힘겹게 생활을 이어가던 그에게 9개월 만에 공식 경기 출전 기회가 찾아왔다. 올드햄 유나이티드가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하부리그 컵 대회(EFL 트로피)에서 그를 선발로 기용한 것이다. 연장 후반까지 2-2로 팽팽하게 이어진 경기는 12번째 키커까지 가는 공방 끝에 승부차기 12-11의 점수로 상대 팀 프레스턴 노스 엔드가 승리했다.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그는 올드햄 유나이티드를 떠났다. 기존 골키퍼가 복귀해 그가 벤치에 앉을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챔피언십의 찰튼 애슬레틱이 그에게 단기 임대 계약을 제의했다. 얼마 전까지 에더리지에게 돈을 받고 훈련 시설을 지원해줬던 찰튼은 주전 골키퍼인 스티븐 헨더슨의 부상 때문에 벤치에 앉을 후보 골키퍼가 필요한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과거 인연이 있었던 에더리지에게 다시 연락을 걸었다. 찰튼으로 팀을 옮긴 에더리지는 11월 말부터 한 달 동안 후보 골키퍼로 벤치를 지켰다. 이후 찰튼의 반년 계약 제의를 수락해 해당 시즌 후반기까지 팀에 머물렀다.

찰튼에 있는 동안 그는 기존 골키퍼인 닉 포프(현재 번리 소속)를 밀어내며 EFL 챔피언십에서 출전 기회를 잡기도 했다. 그는 2014년 12월 26일 카디프시티전에 선발로 출전해 24세의 나이로 EFL 챔피언십 데뷔전을 가졌다. 이후 5경기에 연달아 출전했으나 강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매 경기 실점을 내준 끝에 12실점을 허용하며 결국 1월 이적시장에 온 마르코 드미트로비치(국내에서 ‘노헤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세르비아 골키퍼)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그는 후반기 내내 1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채 찰튼과의 단기 계약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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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존재는 한동안 대표팀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 위키피디아

“대표팀에서 더 많이 뛰는 선수”
닐 에더리지는 풀럼 아카데미에 있던 2008년부터 필리핀 대표팀을 선택했다. 연령별 대표팀은 아버지 국적인 잉글랜드를 선택해 U16 팀에서도 활약했지만, 성인 대표팀은 어머니의 국적을 따랐다. 사실 에더리지는 필리핀 대표팀을 선택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2007년에 필리핀 대표팀으로부터 먼저 승선 제안이 왔지만 필리핀에서 생활한 적도 없고 친한 축구 선수도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그를 절실히 원했던 필리핀 축구협회가 1년 뒤 재차 대표팀 승선을 제안했다. 이번에는 필리핀 축구 협회 회장과 잉글랜드인 아버지, 필리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그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공격수 필 영허스밴드가 그를 설득하기 위해 나섰다. 결국 마음이 움직인 에더리지가 제안을 수락했다. 이후 꾸준히 필리핀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다. 그가 풀럼과 하부 리그 팀을 오가며 방황하는 동안에도 대표팀에서의 주전 입지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찰튼과의 계약이 만료된 2015년 여름까지 ‘소속팀보다 대표팀에서 더 많이 뛰는 선수’라는 부정적인 별명이 붙었다.

누구보다 빠르고 짜릿한 성공 신화
찰튼과의 계약을 마치고 또다시 소속팀이 없어졌지만, 이번에는 순조롭게 새로운 팀을 찾을 수 있었다. 찰튼에 있는 동안 조금이나마 EFL 챔피언십 출전 기록을 남겼던 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줬다. 그는 EFL 리그 1 월솔 FC와 2년 계약을 체결하며 길게 이어졌던 단기 계약 세례의 막을 내렸다. 그는 월솔 FC의 믿음에 보답했다. 두 시즌 동안 리그 81경기에 나서 주전 골키퍼로 맹활약했다. EFL 리그 1에서 우수한 활약을 남긴 덕에 비어있던 그의 경력이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에더리지의 활약에 만족한 월솔 FC는 즉시 에더리지에게 3년 연장 계약을 제시했다. 그러나 에더리지의 마음은 챔피언십 중위권 팀 카디프시티의 제안을 향하고 있었다. 결국 월솔 FC의 재계약을 거절하고 카디프의 이적 제의를 받아들여 생애 두 번째로 EFL 챔피언십에 입성했다. 카디프가 에더리지를 영입한 이유는 명확했다. 새 시즌을 준비하던 카디프의 닐 워녹 감독은 기회에 굶주린 선수를 원한다는 이유로 그를 눈독 들였다. 상위 리그로의 진출과 성장을 꿈꾸며 누구보다 기회를 열망하는 무명 선수를 선호했던 워녹 감독에게 닐 에더리지는 안성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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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디프시티 페이스북

결국 그는 카디프에서 리그 45경기에 출전해 37실점만 허용하는 놀라운 활약을 보였다. 경기당 평균 0점대의 실점률을 자랑했다. 카디프도 닐 워녹 감독과 함께 반등에 성공하며 EFL 챔피언십 2위를 기록했다. 마지막까지 3위 풀럼에 바짝 추격을 당했지만 최종전까지 좋은 성적을 낸 덕에 PL 자동 승격을 확정했다. 4년 전 잉글랜드 생활을 정리하려 했던 무명의 골키퍼는 이후 4년 동안 EFL 리그 1, EFL 챔피언십에서 끝없이 노력을 기울인 끝에 28세의 나이로 PL 출전 꿈을 이뤘다. 그는 잉글랜드에 있는 축구 선수 중에 돋보일 정도로 빠르고 짜릿한 성공 신화를 썼다.

곧 대한민국을 상대할 에더리지
2018-19 시즌은 그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시즌이 될 전망이다. 생애 첫 PL 출전 시즌인 데다 2019년 1월에는 필리핀 역사상 최초로 아시안컵 본선 무대에 나선다. 아직 에더리지의 아시안컵 차출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긴 시간 필리핀의 골문을 지키고 있는 그가 출전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필리핀은 2019년 1월 7일에 두바이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아시안컵 첫 경기를 갖는다. 조현우, 김승규 등 대한민국의 골키퍼들과 닐 에더리지의 선방 대결이 벌써 큰 기대를 모은다.

우리에게 닐 에더리지는 요주의 선수임이 틀림 없다. 이미 그는 PK 연속 선방을 포함해 영웅적인 활약으로 성공적인 PL 데뷔 시즌을 치르고 있다. 시즌 내내 좋은 활약을 보여 자신감이 가득한 상태로 아시안컵 본선에 나서면 첫 경기부터 대한민국에 큰 위협을 줄 가능성이 있다. 대한민국이 아시아 무대에서 이변의 희생양이 될 때는 늘 상대 팀 골키퍼의 기가 막힌 선방이 함께했다. 자칫하면 그 주인공이 닐 에더리지가 될지도 모른다.

감동적인 성공 신화와 출중한 기량, 영웅적인 활약상, 우리에게도 요주의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 닐 에더리지는 2018-19 시즌에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선수다. 이 드라마틱한 선수를 앞으로도 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최초라는 역사를 쓰고 있는 그는 지금까지 그 어떤 필리핀 선수도 해내지 못한 걸 세계적인 무대에서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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