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 선임은 악수? 비난 아닌 인내 필요할 때


한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게 된 파울로 벤투 감독 ⓒ Fanny Schertzer

[스포츠니어스 | 곽힘찬 기자] 대한축구협회가 17일 오전 10시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울루 벤투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을 발표했다. 임기는 오는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고 역대 한국 축구 외국인 감독 중 최고액인 25억 원의 연봉을 받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수비형 미드필더 출신으로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 출전한 바 있는 벤투 감독은 16년 만에 한국과 다시 인연을 맺게 됐다.

벌써부터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벤또인지 벤투인지 모르겠다”, “벤투는 슈틸리케와 다름없다. 왜 히딩크를 뽑지 않았냐”는 등 여러 부정적인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벤투는 한국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있고 김판곤 위원장은 역적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무조건적으로 축구협회를 옹호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맹목적으로 “적폐를 청산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한국 축구의 현실을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협회는 최선을 다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김판곤 위원장은 유럽으로 출장을 떠나기 전 이렇게 말했다.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 있어서 절대 적당히 뽑지 않도록 하겠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특히 팬들이 가장 원했던 키케 플로레스는 김판곤 위원장이 직접 그의 집을 방문해 얘기를 나눴지만 많은 부분에서 이견을 보였다. 플로레스는 한국 축구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손흥민 밖에 알지 못했으며 가족과 떨어져 있는 부분과 협회가 제시한 연봉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다른 후보군 카를로스 케이로스와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는 한국 대표팀 감독직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번 감독 선임 과정에 있어서 결코 건성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다. 한국 축구의 수뇌부가 이렇게 진정성을 가지고 솔선수범한 것은 꽤 오랜만이다. 김판곤 위원장은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가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마음을 품에 안고 직접 유럽으로 날아가 기나긴 협상을 진행했다. 그리고 17일 오전에 진행됐던 기자회견 당시 벤투의 선임 과정을 설명하는 김판곤 위원장의 말에서 간절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김판곤 위원장 ⓒ CIBS 유튜브 방송 캡쳐

팬들은 벤투 선임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지만 김판곤 위원장 역시 플로레스를 비롯해 뛰어난 업적을 많이 남겼던 감독들 중 한명을 데리고 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들은 한국 대표팀에 그다지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협회는 한국 대표팀 감독직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도전적인 의지가 강했던 인물을 선임할 수밖에 없었다.

아쉽지만 협상을 진행했던 대부분의 감독들이 협회의 협상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협회가 두 발 벗고 나서서 팬들이 원하는 유명하면서도 유능한 감독을 찾겠다고 나섰지만 그러한 감독들에게 한국은 관심 밖이었다.

한국은 분명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을 달성한 나라다. 하지만 막상 세계무대에 나서게 되면 강호들의 벽에 막혀 원했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은 유명하면서도 유능한 감독들에게 우선적인 선택지가 절대 될 수 없다. 한국은 세계를 호령하는 축구 강국이 아니며 유럽과 남미를 비롯한 세계 축구 강국들의 시선에는 한국 축구가 아직 아시아에 위치한 ‘FIFA 랭킹 57위’의 변방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높아진 눈높이를 낮춰야 할 필요가 있다.

벤투 감독은 무능하고 쓸모없는 감독이다?
벤투 감독은 최근 실패를 거듭했던 것은 사실이다.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포르투갈 대표팀을 이끌고 본선 무대를 밟았지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중국 슈퍼리그의 충칭 리판을 이끌며 아시아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성적 부진 및 구단 수뇌부와의 의견충돌로 인해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벤투가 무능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대표팀 감독이 되기 전 벤투는 포르투갈의 스포르팅CP에서 네 시즌 동안 139승 51무 39패로 승률 61%를 기록했고 FA컵과 슈퍼컵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네 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에는 포르투갈을 유로 2012 4강에 안착시키기도 했다. 벤투가 ‘컵 대회의 왕자’라고 불리는 이유다. 2019 UAE 아시안컵과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에 적합한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스포르팅CP 감독 시절의 벤투 ⓒ Captomente 유튜브 캡쳐

몇몇 팬들은 벤투를 두고 과거 울리 슈틸리케와 다를 바가 없으며 눈여겨 볼만한 점이 전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코치진에서부터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슈틸리케는 카를로스 아르무아 코치 단 1명만을 대동하고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벤투는 세르지우 코스타 수석코치, 필리페 코엘류 코치, 비토르 실베스트레 콜키퍼 코치, 페드로 페레리아 피지컬 코치 등 10년 넘게 함께 하고 있는 4명의 코치들과 함께 오는 20일 한국에 입국할 예정이다.

최근 세계 축구는 감독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낼 수 없는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다. 감독을 보조하는 코치진 역시 감독과 호흡이 잘 맞아야 감독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만큼 코치진의 존재가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에 ‘벤투 사단’은 한국 축구의 발전에 있어 큰 힘이 될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도 맡고 있는 팀에 대한 애정과 의지가 없다면 그 팀은 절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 하지만 벤투는 김판곤 위원장에게 자신의 축구 철학과 비전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등 의지가 강했다. 무엇보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벤투가 가지고 있는 도전적인 의지는 현재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에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였다.

독이 든 성배? 그것은 자발적으로 만드는 것
한국은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독일을 2-0으로 격파하는 기적을 보여주며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비록 3위로 아쉽게 16강 진출엔 실패했지만 대표팀이 보여준 간절함과 끈기는 지난 4년 전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런데 그러한 대표팀을 향해 계란과 베개를 던지고 비난을 하는 팬들이 있는 곳이 한국이다. 그리고 자국리그는 무시하면서 국가대표팀이 좋은 성적만을 내기 바라는 곳 역시 한국이다.

몇몇 언론들과 팬들까지 가세해 자발적으로 대표팀 감독직을 ‘독이 든 성배’로 만드는 이곳 지휘봉을 누가 잡고 싶을까? 어쩌면 벤투 역시 이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벤투는 한국이라는 아시아 축구 변방에서 도전을 하고 싶었고 유망주 선수들을 꾸준히 관찰하기 위해 파주에 사무실을 만들어달라고 협회에 요청할 정도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아시아에서조차도 이란에 밀려 고전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포르투갈을 유로 2012 4강까지 올렸던 벤투는 한국에 과연 적합하지 않은 인물일까?

누구든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리자
어떤 감독이든 팀을 맡아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몇몇 팬들은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휘봉을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감독 사퇴”를 외친다. 이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원하는 히딩크가 다시 한국 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하더라도 단기간 내에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기다려줄 수 있을까? 과거 히딩크의 별명이 ‘오대영’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팀을 응원해야 할 팬들이 이렇게 기다리지 않고 사퇴하라고 하는데 펩 과르디올라와 지네딘 지단, 주제 무리뉴가 온들 한국이 과연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까? 지금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협회는 최상의 지원을 제공하고 팬들은 대표팀을 신뢰하는 것밖에 없다. 물론 비판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비판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문제점들이 드러났을 때 해도 늦지 않다.

우리가 대표팀을 어떻게 응원하고 지원하느냐에 따라 대표팀의 방향이 정해진다. 히딩크는 레알 마드리드와 레알 베티스에서 실패를 맛보고 2002년 한국 대표팀을 맡았다. 그리고 유례없는 한국의 4강행을 이끌었다. 혹시 아는가. 2014 브라질 월드컵과 중국 슈퍼리그에서 경질되고 하향세를 걷고 있던 벤투가 한국을 맡아 ‘제 2의 히딩크’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 영광스러웠던 2002년의 기억으로부터 빠져나오자. 언제까지 히딩크만을 외칠 수는 없다. 맹목적인 비난이 바탕이 된 그릇된 여론이 오히려 한국 축구의 발전을 저해하는 ‘적폐’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대표팀에 필요한 것은 비난과 비판이 아닌 벤투가 내세우고 있는 자신감과 한국에서의 도전적인 의지를 자극해 벤투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그게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를 살릴 수 있는 길이다. 응원하고 지원하는 방식에 따라 대표팀의 방향이 결정된다. 기다리자. 그리고 지켜보자.

emrechan1@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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