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축구는 과연 위상과 권위가 어느 정도일까.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아시안게임 축구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른 대회와는 전혀 다르다. 과정과 축구 본연의 매력을 즐긴다기 보다는 오로지 이 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먼저다. 금메달을 따면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아시안게임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시안컵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위치에 있다. 물론 나는 아시안컵과 아시안게임의 위상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시안컵은 우리가 나갈 수 있는 대회 중 월드컵 다음으로 큰 대회다. U-23 대표팀이 나서는 아시안게임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대회지만 우리는 아시안게임을 더 쳐준다. 왜? 아시안게임에는 병역 혜택이 있으니까.

아시안게임은 권위 있는 축구 대회인가?

아마도 아시안게임에 병역 혜택이 없었다면 정말 매력적이지 않은 대회가 됐을 것이다. 리그 도중 금메달을 따도 큰 혜택이 없는 이 대회에 나갈 선수도 없고 보내줄 팀도 없다. 만약 아시안게임에 병역 혜택이 없었다면 이 대회는 덴소컵에 나가는 대학 선발 정도가 출장하고 있을 것이다. 23세 이하의 대학 선수들에게 경험을 쌓게 해주면 딱 좋을 대회다. 심지어 일본과 사우디는 이 대회에 U-21 대표팀을 출전시켰다. 이란도 사실상 U-21 대표팀이다. 우리는 병역 혜택 때문에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까지 소집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만 사실 그 정도로 치열한 대회는 아니다. 병역 혜택이 없었으면 그냥 유니버시아드 축구와 별로 다를 게 없는 대회다.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은 대단히 필요하다. 한창 나이 때 군대에 가고 싶은 선수들은 없다. 그들이 병역 혜택을 받는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선수 개인을 위한 혜택일 뿐이다. 선수들이 군대에 묶여 해외로 나가지 못한다고 해 한국 축구가 발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한국 축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선수들의 병역 혜택은 대단히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특례법을 적용받아 군대에 가지 않은 이들을 제외하면 2012년 런던올림픽이나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으로 병역 혜택을 받은 이들이 이후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 살펴보자. 이들 중 병역 혜택을 이용해 눈부시게 발전한 이가 있나.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중 그래도 유럽 무대에서 주전으로 꾸준히 뛴 건 기성용과 구자철 정도다. 이들 중 현재에도 유럽에서 도전 중인 이는 기성용과 구자철, 지동원 뿐이다. 김기희는 미국에 진출했고 김영권은 중국에 있다. 김창수는 K리그에서 뛰고 오재석은 일본에 있다. 김보경도 역시나 일본에서 생활 중이고 남태희는 카타르에서 많은 돈을 번다. 박종우와 백성동은 한국으로 돌아왔고 김현성은 K리그2에서도 주전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박주영도 FC서울에서 시즌을 소화 중이다. 마치 무슨 병역 혜택을 받으면 한국 축구에 대단한 변혁이 일어날 것처럼 믿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돈 많이 주는 아시아 국가에서 열심히 외화벌이를 하거나 K리그에서 뛰고 있다. 당시 와일드카드였던 박주영과 김창수, 정성룡은 국내와 일본에서 뛰고 있다. 선수로서는 몸값이 올라갔을지 몰라도 그들이 대단한 입지의 변화를 느낀 건 아니었다.

2012년 병역 논란 속에 런던올림픽이 출전했던 박주영은 이후 FC서울로 돌아왔다. ⓒ프로축구연맹

병역 혜택 선수들, 어떻게 지내고 있나?

마치 병역 혜택이 선수의 앞길을 꽉 막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유럽 큰 무대로 갈 선수들은 알아서도 잘 간다. 군 문제를 해결하고도 유럽으로 간다. 차범근 감독은 군대에 두 번이나 가고도 분데스리가에서 역사를 썼고 허정무 부총재 역시 해병대를 나온 뒤 네덜란드 진출에 성공했다. 서정원과 이근호는 상무 시절 월드컵에서 골도 넣었다. 비록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조원희나 조재진처럼 어린 나이에 군 문제를 해결하고 해외 진출을 타진하는 방법도 대단히 현명하다. 병역 혜택이 선수들에게는 몸값을 올리는 수단은 될 수 있어도 이들이 병역 혜택을 받고 펄펄 날며 한국 축구를 이끌어 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말자. 이미 2012년 런던올림픽과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통해 입증됐기 때문이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들을 살펴볼까. 이들 중 그래도 제대로 된 도전을 위해 외국으로 날아간 이는 이재성 뿐이다. 나머지 선수들은 오히려 국내로 복귀하거나 일본 등으로 진출한 게 전부다. 김진수와 박주호는 유럽에서 뛰다 오히려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국내로 복귀했다. 더군다나 박주호는 당시 해당 연령대가 아니라 와일드카드로 뽑은 자원이었다. 강요할 수는 없지만 군미필자에게 와일드카드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우리네 정서상 박주호는 병역 혜택을 부여받은 뒤 계속 유럽에서 도전을 이어가는 게 보기에는 좋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와일드카드 자격으로 당시 금메달을 따낸 김신욱은 전북에서 뛰고 있다. 김승규는 일본으로 갔다.

엄밀히 말해 병역 혜택이 한국 축구에 대단한 축복은 아니다. 선수 개개인에게는 몸값을 올릴 수 있고 군대에 가 고생할 시간에 훨씬 더 좋은 호텔에서 좋은 밥을 먹으며 생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국 축구 전체를 놓고 보면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따도 그만 못 따도 그만이다. 이 병역 혜택이 무슨 K리그에서 뛰어야 할 선수를 유럽으로 데려다주는 것도 아니고 유럽에서 힘들게 경쟁하는 이들에게 빅리그행 티켓을 쥐어주는 것도 아니다. 병역 혜택이 아니어도 이미 한국 스포츠는 대단한 혜택을 받고 있다. 국군체육부대와 경찰대학에서 운영하는 팀은 프로 무대에서도 활약 중이다. 이 자체만으로도 운동선수들은 이미 병역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2012년 병역 논란 속에 런던올림픽이 출전했던 박주영은 이후 FC서울로 돌아왔다. ⓒ프로축구연맹

그들의 금메달을 응원한다

심지어 요즘은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고 K3리그에서 2년간 뛰며 지내는 K리그 출신 선수들도 많다. 냉정히 따져 이런 행위는 편법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도 군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보다 더 많은 선수들이 깐깐하지 않은 요건 속에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있어 이를 문제 삼는 이들은 없다. 이미 운동선수에 대한 혜택은 충분하다. 그런데 이마저도 싫다며 완전한 ‘면제’를 받기 위해 덴소컵 대학선발 같은 팀이 뛰어야 할 대회에 전력을 집중한다. 거기에 이 선수 저 선수 나이 많은 사람들도 챙겨 줘야한다며 와일드카드까지 뽑는 모습이 그리 멋져 보이지는 않는다. 뭐 이렇게 병역 혜택을 받으면 당사자들이 더 많은 돈을 벌면서 행복하게 사는 거 말고는 한국 축구에 큰 이득은 없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이미 최근 두 번의 병역 혜택 당사자들의 사례도 보지 않았나.

손흥민이 상주상무에 가고 조현우가 아산무궁화에 가더라도 한국 축구에는 충격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뭐 당장 주말마다 치킨을 시켜 놓고 보던 손흥민 경기가 사라지면 우리 일상의 재미가 조금 사라질 수는 있다. 하지만 딱 그뿐이다. 그들에게는 상주상무나 아산무궁화라는 엄청난 혜택이 눈 앞에 있을 거고 계속 축구를 할 수 있을 거다. 이런 혜택들에 만족하지 못하고 아예 군대 안 가는 방법을 찾고 있는 한국 축구가 다소 아쉽다. 이건 손흥민이나 조현우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한국 축구 전체에 하는 말이다. 까짓 거 슈퍼스타 한두 명 군대에 좀 가면 어떤가. 그들은 거기에서도 계속 축구를 할 텐데 나까지 나서서 간절히 그들의 ‘군대 면제’를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아시안게임을 병역 혜택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봤을 때의 삐딱한 시선이다. 나는 그래도 이번 대회에 나간 김학범호를 응원한다. 마음 같아서는 꼭 금메달을 땄으면 한다. 병역 혜택을 위한 금메달이 아니라 이 가능성 많은 선수들이 우승을 경험하며 한 단계 더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또한 최근 김학범 감독과 자주 대화를 나눴는데 그는 이 대회를 대단히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노력은 보상 받아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선수들이 꼭 금메달을 땄으면 한다. 대회에 나간 선수들에게 저주와도 같은 이야기를 퍼붓고 싶지는 않다. 이왕 나간 대회에서는 최대한 많이 이기는 게 좋다. 다 이기고 금메달을 자랑스럽게 목에 걸었으면 한다. 대신 내가 그들의 금메달을 응원하는 건 멋진 경기력을 기대하기 때문이지 병역 혜택 때문은 아니다.

2012년 병역 논란 속에 런던올림픽이 출전했던 박주영은 이후 FC서울로 돌아왔다. ⓒ프로축구연맹

금메달과 군대는 반대말이 아니다

나는 김학범호가 금메달도 따고 군대도 갔으면 좋겠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논리가 허술해 보여 공격 당하기 딱 좋다. 하지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금메달과 군대는 반대말이 아니다. 금메달을 못 따면 군대에 끌려 가는 게 아니고 군대에 가기 싫으면 금메달을 따라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스포츠 경기에서는 그 도전과 승부 자체가 빛났으면 한다. 그래서 김학범호가 꼭 금메달을 땄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이미 체육계에는 선수들을 위한 다양한 병역 혜택이 존재하고 있으니 이 제도를 통해 선수들이 충분히 병역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꼭 강조하고 싶다. 역설적이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금메달도 따고 군대도 갔으면 좋겠다. 금메달과 군대를 반대말로 대하는 풍토가 사라졌으면 한다. 금메달을 군대와 연결 짓기에는 그 금메달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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