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렸던 K리그1 미디어데이. 국내 감독들 밖에 보이지 않는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곽힘찬 기자] K리그 팬들 중 외국인 감독끼리 마지막으로 격돌했던 날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알툴이 이끄는 강원FC와 페트코비치의 경남FC가 맞붙은 지난 2013년 11월 16일이 마지막이었다.

지난 11일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1 2018 대구FC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 대구의 안드레 감독과 인천의 욘 안데르센 감독이 양 팀 벤치에 앉아 그라운드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K리그 팬들에게 조금 어색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무려 5년 만에 펼쳐진 외국인 감독들의 대결은 K리그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한 장면이었다.

1983년 출범한 K리그의 감독 역사를 되돌아보면 K리그 팀들을 거쳐 간 외국인 감독은 결코 적지 않았다. 1990년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의 지휘봉을 잡았던 동독 출신 프랑크 엥겔을 시작으로 니폼니시(부천), 귀네슈(서울), 파리아스(포항) 등 많은 외국인 지도자들이 K리그에 발을 들였고 떠나갔다. K리그에서 지휘봉을 잡은 외국인 감독은 모두 22명에 이른다. 그런데 우리는 왜 외국인 감독들의 대결을 흥미로워하고 신기하게 여기는 것일까.

욘 안데르센이 인천에 부임하기 전까지 유일한 외국인 감독은 대구의 안드레였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서서히 사라진 외국인 감독들

1990년 엥겔 감독이 대우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 한국 축구계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국인이 아닌 국적이 다른 감독이 K리그 팀을 맡는다는 것 자체가 팬들과 축구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당시 대우는 유럽의 선진축구를 K리그에 들여왔던 선두주자였다. 엥겔 감독이 부임 첫 시즌 2위를 기록했고 이듬해 영입한 헝가리 출신의 비츠케이 감독은 부임 첫 해 K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수많은 외국인 감독들이 열풍 속에서 K리그 팀들을 맡았다. 특히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포항을 맡으며 최장수 외국인 감독으로 꼽히고 있는 파리아스 감독은 2007년 정규리그 우승과 2009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차지하며 가장 큰 업적을 남겼다. 파리아스 감독은 전술적으로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리더십을 통한 선수단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파리아스 감독을 비롯해 니폼니시 감독과 귀네슈 감독이 50승의 고지를 넘어서는 등 K리그에서 뛰어난 족적을 남겼다. 2009년 K리그는 그야말로 외국인 감독들의 각축장이었다. 4명의 외국인 감독들이 서로 맞대결을 펼치며 팬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외국인 감독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K리그 구단들이 독립법인화 되면서 모기업들의 재정적 지원이 감소했고 결국엔 감독에게 지급할 연봉 문제가 발을 잡게 되면서 하나 둘씩 K리그를 떠났다.

여기에 경기 내외적인 문화적 요소들 역시 외국인 감독의 이탈에 한몫했다. 많은 감독들은 소수의 감독들과 달리 K리그의 분위기를 빠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국 한국 선수들 또는 운영진들과 사고방식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별 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 채 결국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2016년 K리그2의 서울 이랜드FC가 박건하 감독을 마틴 레니 감독 대신 선임하며 K리그 23개 구단 전부가 한국인 감독들이 이끌게 됐다. 그리고 2년 후에야 비로소 대구의 안드레 감독과 인천의 안데르센 감독이 팀을 이끌며 외국인 감독끼리 맞대결을 펼칠 수 있었다.

지금 K리그는 창조적이지 못하다

현재 K리그는 창조적이지 못한 면도 적지 않다. 그저 바로 눈앞의 성적을 위해 감독을 선임하고 경질한다는 지적도 있다. ‘성적’만을 위해 앞만 바라보고 뛰고 있는 대부분의 감독들은 ‘성적’이라는 위압감에 눌려 K리그 내에 창조적인 것을 시도해 볼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성적을 내더라도 결국 한계를 드러내고 수많은 비난을 받으며 자리에서 내려온다. 창조적이지 못한 리그는 정체되어 그 자리만 맴돌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경기장을 찾는 팬들의 발길은 서서히 끊어지게 되고 리그 수준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체된 K리그의 흐름 속에서 남다른 생각과 참신한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시도하고 만들어 낸 감독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젊은 감독에 속하는 남기일, 윤정환 감독 등은 과거 부천을 지휘했던 니폼니시의 영향력을 많이 받았다. 니폼니시 감독은 K리그에서 흔하지 않던 정교한 패스 플레이와 공격적인 전술로 많은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승리와 재미를 모두 챙기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리그의 발전을 위해 “무조건 브라질 또는 잉글랜드 출신이어야 해”라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선진 축구가 몸에 배인 뛰어난 외국인 감독들은 K리그가 발전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큰 원동력이 된다.

욘 안데르센이 인천에 부임하기 전까지 유일한 외국인 감독은 대구의 안드레였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좀 더 열린 마인드가 필요하다

큰 틀에서 놓고 보면 K리그는 아시아의 어느 리그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기량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선수들, 높은 수준의 구단 자체 시설, IT강국다운 분석 능력 등 좋은 리그가 되기 위한 것들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 지난날의 ACL 무대에서 우리는 K리그 팀들의 저력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현재 활발하게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중국 슈퍼리그의 경우 대부분의 감독들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독일 분데스리가 등을 지휘했던 명장들이 팀을 맡고 있고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팀의 공격을 이끌고 있다. 이처럼 자국리그에 투자하는 규모 자체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지만 국제무대에서 만큼은 K리그에 비해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K리그는 좀 더 열린 마인드가 되어야 한다. 수원 삼성에서 뛰고 있는 데얀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 축구계는 누군가 조언을 하면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조언을 듣고는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그냥 잘라버린다.” 데얀이 지적했듯 K리그는 여러 분야와 레벨에서 외국인 코치진과 감독들에게 기회를 줘야한다. 그저 한국 방식이 최고인 줄만 알고 있는 생각을 멀리 버려야 한다. 한국 방식을 무조건적으로 고수하는 것은 뛰어난 외국인 감독의 유입을 막는 것과 같다. 지금은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고 있는 시대가 아니다. 정치도 그렇듯 축구에서도 버릴 것은 버리고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여야 발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욘 안데르센이 인천에 부임하기 전까지 유일한 외국인 감독은 대구의 안드레였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좋은 감독은 좋은 리그를 만든다

좋은 감독은 좋은 리그를 만들고 좋은 리그는 한 단계 높은 국가대표팀을 만든다.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 연관이 있다. 전 세계 축구계가 지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세계 축구를 선도하고 있는 스페인, 독일, 잉글랜드 등만 봐도 알 수 있다. 자국 출신 감독들이 세계 곳곳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 리그에서 외국인 감독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꽤 높은 편에 속한다. K리그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케케묵은 축구 방식은 세계 축구계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다. 닫힌 문을 열고 외부의 선진 축구를 받아들여야 리그가 성장하고 끊겨가고 있던 팬들의 발길이 다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많은 한국 감독들이 선진 축구를 배우기 위해 너도나도 유럽으로 떠나 교육을 받고 있다. 하지만 감독만이 나서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K리그 수뇌부까지 나서서 마인드를 바꿔야 K리그의 숨통이 트인다. K리그가 뛰어난 외국인 감독들을 모셔와 직접 국내 감독들과 경쟁을 하게 한다면 직접 유럽으로 떠나는 것보다 몇 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국내 감독들의 실력이 낮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뛰어난 외국인 감독의 유입이 정체된 K리그에서 분투하고 있는 국내 감독들의 창의성에 활로를 개척해 줄 것이고 이는 전체적인 리그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각 구단들은 관중을 끌어 모으기 위해 각종 이벤트를 펼치고 수많은 먹거리들을 제공한다. 물론 맥주와 치킨은 경기를 보는 팬으로 하여금 더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결코 리그의 발전의 기반이 되지는 못한다. 수만 명의 관중을 끌어 들이기 위해서는 재밌는 축구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창조적인 리그가 되는 것이다. 과연 지금이 K리그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인지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11일 대구-인천전 경기를 앞두고 만난 안드레 감독과 안데르센 감독 사이엔 알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양 팀 모두 치열한 강등권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지만 무엇보다 5년 만에 성사된 외국인 감독끼리의 대결을 눈앞에 두고 서로의 자존심과 승리를 위해, 그리고 팬들에게 재밌는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각자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대구 안드레 감독은 사전 인터뷰를 끝내며 기자를 향해 “마지막에 어떤 외국인 감독이 웃게 될 것인지 기대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두 팀 감독을 만나며 어색함을 느꼈다. 내국인 감독이 대부분인 K리그에서 두 팀 감독 모두 외국인인 경우는 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양 팀 감독들 모두 통역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이렇게 긴 사전 인터뷰를 진행한 것도 어색했고 국내 감독이 아닌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외국인 감독끼리 보이지 않는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팬들 역시 지금껏 보지 못했던 외국인 감독끼리의 맞대결이 어색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각자 다른 언어를 구사하며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향해 소리치는 모습은 K리그에서 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팬들은 이러한 어색함을 환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어색함이 K리그가 발전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굉장히 어색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풍경이 잦아졌으면 한다.

emrechan1@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