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선수들의 영원한 동반자, ‘아버지’라는 이름

대구 상원고 시절의 전다남(사진 맨 왼쪽). 아들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는 늘 응원석에 있었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대구=김현희 기자] 내일의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야구돌(야구+아이돌)’들을 만날 때면, 늘 곁에 있는 이들이 있다. 야구를 하는 아들의 영원한 후원자, ‘학부모’의 존재가 바로 그러하다. 야구를 하는 것에 찬성을 했건, 반대를 했건 간에 일단 아들이 야구를 시작했으면,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그 중 부모님의 후원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일찍 철이 들면서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에 반드시 보답하겠다.’라는 생각으로 야구에 더욱 매진한다. 그리고 그들의 바람대로 신인지명 회의에서 프로 구단의 호명을 받으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계약금 전액을 부모님께 드린다. 이 부분은 다년간 고교, 대학야구를 지켜봤던 필자 역시 매우 고마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야구를 함으로써 인성이 완성된다는 말이 이렇게 증명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늘 아마야구 현장에 가면, 학부모님들께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학생야구의 절반은 어떠한 의미에서 학부모님들께서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자신들의 희생은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아들들의 성공을 바라는 부모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 또한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어찌 보면 부모님은 아마야구의 강력한 팬이자 후원자이면서도 응원단장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늘 아버지의 마음으로

설령 아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건, 부모들은 늘 아들의 편이다. 고교 졸업 이후 프로의 선택을 받든, 대학으로 진학하든, 아니면 정말로 야구를 관두건 간에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따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어 야구 글러브와 방망이를 손에서 놓아야 할지라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길을 걸어가기 위해 늘 응원한다. 마음이 아프더라도 그래야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이자 의무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난 2016 시즌을 끝으로 잠시 야구 방망이를 놓아야 했던 전다남(20)의 사연은 사람들로 하여금 숙연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대구 본리초-경운중학교를 거쳐 대구상원고에 진학했던 전다남은 고척 스카이돔에서 처음 열린 2015년 청룡기 선수권대회 우승 멤버이기도 하다. 우승의 기운을 받아 이듬해 주전 3루수 자리를 차지했고, 유독 찬스에 강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 해 전반기 주말리그에서 타점상까지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내야 수비에서 다소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찬스에 강하고 타석에서 집중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은 높이 살만했다. 이에 따라 프로까지는 아니어도 대학 무대에서 기량을 더 쌓으면,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선수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가 입시 원서를 낸 대학들은 안타깝게도 그 재능을 높게 평가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그 해 지명을 받지 못했던 인재들 중에서 좋은 내야수 자원들이 대거 대학 무대를 도전했던 것도 전다남에게는 악재였다. 결국 그는 대학 입시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원치 않게 고교 졸업과 함께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 당시 그는 “이제 야구를 그만 두어야 할 것 같다.”라는 말로 씁쓸한 심정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한 아들의 모습을 바라 본 아버지 전병학씨 역시 애틋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평소 야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엄청난 애정을 지니고 있었기에 아들의 입시 실패 소식은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도 “괜찮을겁니다. 반드시 길은 있을 것입니다.”라며 특유의 웃음을 선보이기도 했다.

바로 그 때 그에게 손을 내민 이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였다. 옥산초등학교 이동우 감독이었다. 1995년도에 상원고등학교 내야수로 뛰었던 이 감독은 전다남의 20년 대선배이기도 했다. 그러한 인연으로 옥산초교 인스트럭터로 부임한 전다남은 어린 나이에 초등학교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야구에 대한 열정을 다시 키워갔다. 운이 좋았는지, 그 해에 일본에서 열린 연식야구 대회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종횡무진 활약을 펼쳤다.

“그때 다시 그라운드를 밟으면서 야구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게 불과 작년 일이다. 그래서 대만을 중심으로 우리 팀으로 오라는 제의도 많았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 다름 아닌 국방의 의무였다. 먼저 병역 의무를 다 하고 난 이후 그라운드를 밟겠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일본으로 연식야구를 하러 가기 전에 이미 전투경찰 지원서를 제출했던 터였다. 아버지 역시 아들의 결정을 존중, 그의 군복무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여기에서 또 운이 따랐는지, 올해 역시 군 복무 중에도 대만에서 열리는 연식 야구 대회 참가 제의가 들어와 허가를 얻어 해외로 다녀올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전역 이후 다시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일 뿐이었다. 필자 역시 야구 방망이를 놓칠 뻔했던 한 청년의 꿈을 꾸준히 응원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일찍 떠나 보내는 아들의 심정은 먹먹할 뿐이다. ⓒ전다남 제공

바로 그 때, 필자의 휴대폰에서 진동 소리가 울렸다. 부고 소식이었다. 내용은 ‘전다남의 아버지 전병학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이에 삼가 알려드립니다.’라는 것이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목동구장 관중석에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들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터라,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필자는 아버님의 임종 다음 날 대구 빈소를 찾았다. 그리고 영정 사진에 비친 故 전병학씨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정말로 세상을 떠나셨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별세 소식에 전다남은 담담하게 그 이유를 밝혔다.

“작년부터 좋지 않으셨다. 그래도 위암을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달 들어서 갑자기 좋아지지 않으셔서 재검사를 했더니, 다시 암이 발견됐다고 했다. 대만까지 다녀와서 이제 전역하면 그쪽으로 잘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되면 내가 성공하는 모습 보여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못 보시고 가셨다.”

그래서 옛 말 틀린 것이 하나 없다 하지 않았는가.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보면,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부대)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는,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 하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평생 아들의 동반자이면서 친구이자 스폰서이면서 가장 든든한 팬인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그 순간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찾아왔기에 황망하기 그지 없었던 것이기도 했다. 다만, 이제는 아픔이 없는 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아버지를 떠나 보내는 아들의 담담한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 후회 없도록 지금 이 순간 부모님께 늘 감사하다는 표현을 자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프로나 학생 선수들 모두 마찬가지다. 열혈 야구팬이면서도 아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故 전병학님의 명복을 빈다.

eugenephil@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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