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엔 ‘빡빡풀’이라는 슬픈 전설이 있어

데얀 로브렌, 크로아티아, 리버풀
ⓒ 데얀 로브렌 인스타그램



[스포츠니어스 | 임형철 기자] 크로아티아의 월드컵 준우승을 이끈 데얀 로브렌이 7월 말에 SNS로 자신의 근황을 공개했다. 배 위에서 경치를 즐기던 그는 검은 선글라스를 쓴 채 먼 곳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이 폭염이라 밖에 나와 있는 사진만 봐도 거부감이 들어서 그런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머리카락이 없었다. 리버풀 이적 후 줄곧 한 가지 머리만 고집했던 로브렌은 시즌을 앞두고 처음으로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충격적인 근황을 공개한 그는 빡빡 민 머리가 만족스러운 듯 날마다 SNS로 자신의 소식을 공유했다. 7월 30일에는 바닷가에서 헤엄치며 휴양을 즐기는 모습을 올렸다. 물속에 있을 때만 해도 문어 괴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빡빡 민 로브렌이었다. 결국 로브렌은 그 상태 그대로 8월 6일에 리버풀 훈련장 멜우드로 복귀했다. 팀 동료들 모두가 그의 새로운 머리에 관심을 보였는데 특히 절친한 모하메드 살라가 빡빡머리를 이리저리 만져가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데얀 로브렌의 민 머리는 과거 리버풀에 빡빡머리 선수가 유독 많았던 그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그때는 경기에 나서는 18명의 리버풀 선수 중 절반 이상이 빡빡머리를 고수했던 시기였다. 리버풀 올드팬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서 리버풀 현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내용이 가득했던 때였다. 많은 축구 팬이 그 시기의 리버풀을 ‘빡빡풀’이라고 부른다. 그때의 리버풀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 글에서는 슬픈 전설이라 칭하겠다.

마틴 스크르텔, 리버풀, 프리미어리그
이 분이 빡빡풀의 대표 주자 마틴 스크르텔 되시겠다 ⓒ 위키피디아

‘빡빡풀’은 무엇인가
빡빡 민 선수가 많았던 시기의 리버풀을 빡빡풀이라고 부른다. 넓은 의미로 2010-11 시즌부터 다니엘 아게르, 호세 엔리케 등 주전 백포가 빡빡 밀었던 2012-13 시즌까지를 지칭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독 그 숫자가 많았던 2010-11 시즌만 가리킬 때가 많다. 2010-11 시즌은 18명의 출전 선수 명단 중 대부분을 빡빡머리 선수가 차지했다. 당시 팀에는 골키퍼인 페페 레이나를 비롯해 글랜 존슨, 마틴 스크르텔, 폴 콘체스키, 하울 메이렐레스, 제이 스피어링, 존조 셸비, 조 콜, 라이언 바벨, 다비드 은고그가 머리를 빡빡 밀었다.

이들 중 대부분이 매 경기 선발, 벤치 명단에 이름을 올려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일으켰다. 분명 마틴 스크르텔이 골을 넣은 걸로 봤는데 진짜 득점자는 하울 메이렐레스였다. 제이 스피어링이 자신이 올린 롱패스를 직접 받으러 간다고 착각할 때도 많았다. 글랜 존슨이 측면에서 깔아준 크로스를 글랜 존슨이 멋지게 밀어 넣어 환호했더니 진짜 득점자는 라이언 바벨, 다비드 은고그였다. 골 세레모니 도중 마틴 스크르텔과 하울 메이렐레스, 제이 스피어링이 한데 모여 서로 껴안는 장면은 지금도 잉글랜드 축구의 전설적인 장면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 빡빡머리는 전염성도 굉장했다. 원래 레게 머리를 했던 글랜 존슨은 부상 기간에 빡빡 민 팀원들의 영향을 받고 말았다. 부상 회복 날짜에 맞춰 훈련장 멜우드에 복귀했는데 머리를 빡빡 밀고 돌아왔다. 하울 메이렐레스도 빡빡풀의 흐름에 동참했다. FC 포르투에서 뛸 때는 닭 볏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머리를 고수하던 선수였다. 그러나 리버풀에 오자마자 머리를 빡빡 밀어 달라진 모습으로 새 팀 팬들을 맞았다. 빡빡풀이 된 새 팀에 적응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빡빡풀의 기운이 비교적 양호해진 때지만, 2012-13 시즌에도 큰 사건이 있었다. 왼쪽 풀백 호세 엔리케가 머리를 밀고 멜우드를 방문하자 다른 선수들도 영향을 받고 말았다. 급기야 센터백 마틴 스크르텔이 잠시 기르던 머리를 삭발했고 파트너인 다니엘 아게르조차 빡빡 민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로써 오른쪽 풀백 글랜 존슨을 포함한 주전 백포라인 전원의 빡빡머리가 완성됐다. 지금까지도 빡빡풀의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구단에 두발 규정이 있던 게 아니냐”는 의견이 묘하게 설득력을 얻지만 이마저도 확인되지 않았다.

리버풀, 챔피언스리그
이제 선수들의 개성이 더 돋보이는 팀이 됐다 ⓒ 리버풀 페이스북

이제 빡빡풀로 불리지 않는 리버풀
리버풀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빡빡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기존 빡빡머리 선수들은 극심한 부진이나 노쇠화 끝에 팀을 떠났다. 다양한 스타일을 가진 새로운 선수들이 이들의 빈자리를 채워 빡빡머리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리버풀을 한창 빡빡풀로 만든 주인공들은 2010년대 중반부터 단 한 명도 팀에 잔류하지 못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리버풀은 빡빡풀에서 벗어나자 조금씩 과거의 성적과 명성을 회복했다.

현재 리버풀 선수들은 과거와 비교해 머리 스타일이 아주 다양해졌다. 이집트 신 모하메드 살라의 뽀글뽀글 머리부터 시작해서 시즌 중 장발 머리까지 시도했던 아담 랄라나, 꽁지 머리 골키퍼 로리스 카리우스 등 빡빡머리와 거리가 먼 선수들이 가득하다. 파비뉴와 데얀 로브렌이 새롭게 가세했지만 2010-11 시즌과 비교해 리버풀의 빡빡머리 숫자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다행히 로브렌도 스스로 빡빡 민 사실을 후회하고 있는 거로 보아 전염에 대한 우려는 접어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

데얀 로브렌, 리버풀
비를 맞으면 머리가 더 빨리 자랄 거라며 애써 자기 위로 중이다 ⓒ 데얀 로브렌 인스타그램

빡빡풀 시대의 슬픈 전설
빡빡풀 시절과 지금의 리버풀 사이에는 7년이라는 시간 차이가 존재한다. 이 시간 동안 리버풀이 자칫 선수들의 머리 스타일만 달라졌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달라진 것은 수도 없이 많다. 특히 구단의 위상에 큰 차이가 발생했다. 빡빡풀로 대표되는 2010-11 시즌은 리버풀 암흑기의 문을 여는 시기였다. 그리고 2018-19 시즌을 앞둔 지금의 리버풀은 새로운 황금기를 준비 중에 있다. 사실 빡빡풀 시기는 리버풀의 슬픈 전설로 추억된다.

2010년 여름에 리버풀 감독으로 부임한 로이 호지슨 감독은 상위권 팀을 지휘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그는 이전에 맡은 중위권 팀 풀럼을 지휘하듯이 리버풀을 감독했다. 그의 소극적인 전술과 잘못된 선택은 8라운드 기준 리버풀의 순위를 리그 19위까지 내몰았다. 리버풀은 1승 3무 4패의 성적으로 10월 중순까지 어려움을 겪으며 수많은 축구 팬들에게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비 알론소에 이어 발생한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공백은 리버풀 중원의 전력을 급속도로 떨어트렸다. 주장 스티븐 제라드가 후방 빌드업부터 해야 할 역할이 맡아지면서 전방의 페르난도 토레스와 호흡을 맞출 기회가 부족했다. 게다가 그 토레스마저 겨울 이적 시장에 라이벌 팀 첼시로 이적하고 말았다. 우승하고 싶다던 토레스의 갑작스러운 이적 소식은 팬들에게 큰 슬픔과 좌절감을 안겼다.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던 유로파리그조차 16강에서 SC 브라가를 만나 탈락했다.

빡빡풀의 주인공들도 팀 부진에 한몫하고 말았다. 시즌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조 콜은 데뷔전부터 퇴장을 당하더니 시즌 내내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 호지슨 감독의 야심작이 될 것 같던 폴 콘체스키도 왼쪽 풀백으로 나서 불안한 모습만 보였다. 혹시 모를 성장을 기대하게 한 라이언 바벨과 다비드 은고그도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리버풀은 최종 순위 6위로 시즌을 마쳤다. 후반기에 임시 감독으로 부임한 케니 달글리쉬가 팀을 잘 추스른 끝에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시즌 내내 리버풀 팬들이 받은 상처와 실망감은 매우 컸다. 리버풀의 암흑기로 대표되는 시즌이었다.

리버풀, 챔피언스리그, 프리미어리그
암흑기를 거치고도 팀을 향한 응원을 멈추지 않은 콥(kop)들 ⓒ 리버풀 페이스북

리버풀은 달라졌다
이때부터 7년이 지난 현재, 리버풀은 한눈에 보기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챔피언스리그에 진출도 못 해 매년 허덕이던 팀은 7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 문턱까지 진입했다. 두 시즌 연속 본선 진출을 확정하며 더는 리그 4위권 진입이 목표인 팀이 아니게 됐다. 상위권 팀을 지휘할 준비가 덜 된 로이 호지슨의 자리는 확고한 색깔과 능력을 갖춘 세계적인 감독 위르겐 클롭이 대신하고 있다. 모하메드 살라, 페어질 판 데이크, 사디오 마네, 호베르투 피르미누, 앤디 로버트슨 등 선수들의 면면도 7년 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화려해졌다.

리버풀의 위상에 많은 차이가 발생했다. 이적시장의 행보가 그 차이를 말해준다. 2010-11 시즌을 앞둔 7년 전 리버풀은 폴 콘체스키, 조 콜, 크리스티안 폴센, 존조 쉘비 등 어딘가 아쉬운 영입 소식만 전했다. 구단주가 바뀌기 전이었기 때문에 재정 환경도 열악했고 무너져 가는 명가를 찾는 스타 선수도 없었다. 겨울에는 페르난도 토레스마저 팀을 떠나면서 위상이 더 추락했다. 급하게 거액을 주고 데려온 앤디 캐롤은 초라한 성적표를 남긴 채 리버풀 암흑기의 상징 선수가 되고 말았다.

7년 뒤 상황은 급변했다. 리버풀은 누구나 오고 싶은 팀으로 탈바꿈했다. 이제는 이적 시장마다 스타 선수들의 리버풀 이적설이 흘러나온다. 이번 이적시장은 시작부터 라이프치히의 에이스 나비 케이타가 합류했고 스토크시티를 이끌던 제르단 샤키리가 공격진 뎁스 강화를 위해 영입됐다. 골키퍼는 2017-18 시즌 AS로마를 챔피언스리그 4강으로 이끈 알리송이 선택을 받았다. 빡빡머리 선수가 줄어든 것 외에도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리버풀이 달라진 점은 매우 많다. 특히 스타 선수의 이적설과 실제 영입이 아무렇지 않게 행해질 정도로 리버풀의 위상이 바뀌었다.

리버풀, 프리미어리그
ⓒ 리버풀 페이스북

2018-19 시즌을 기대하며
새 시즌을 앞둔 리버풀은 최근 좋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프리시즌 9경기에서 7승 1무 1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2018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 2차전에서 맨시티를 2-1로 격파한 것을 시작으로 4연승을 달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 4-1 대승, 나폴리전 5-0 대승을 거뒀고 비교적 주전을 뺀 채 경기에 임했던 토리노전도 3-1로 승리했다. 리버풀은 매우 큰 기대감을 안고 2018-19 시즌 본 경기에 돌입한다.

‘빡빡풀’로 불리던 시기와 비교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비로소 리버풀이 제 자리에 있다는 느낌이다. 빡빡풀 시절 수많은 아픔을 겪었던 리버풀은 이제 암흑기를 털고 또 하나의 전성기를 시작하겠다는 각오다. 리버풀의 첫 단추는 8월 12일 일요일에 열리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이다. 과연 리버풀은 2018-19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 국내 컵대회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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