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3층과 4층’ 오간 목포시청 김경연 이야기

목포시청 김경연
목포시청 김경연은 6개월 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내셔널리그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8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인천유나이티드와 목포시청의 KEB하나은행 FA컵 16강. 목포가 인천을 2-1로 제압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경기가 끝나자 90분을 쉴 새 없이 뛴 한 작은 선수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등번호 7번의 이 선수는 그라운드에 털썩 주저 앉아 감격했다. 모든 목포시청 선수들이 예상을 뒤엎고 거둔 승리에 기뻐했지만 특히나 이 선수의 표정은 더 감격스러워 보였다. 목포시청 미드필더 김경연이다. 이 선수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지난 해에도 FA컵 4강의 주역이 됐던 이 선수가 다시 한 번 FA컵 8강에 오른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 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려는 것일까. 그에게는 이 사이 폭풍 같았던 6개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3층에서 바라본 4층, 한 없이 높아보였다
전라남도 화순이 고향인 김경연은 광주FC 유소년 팀인 금호고에 입학해 축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그의 꿈은 광주FC에 입단하는 것이었다. 늘 광주FC 경기를 보러 다녔다. 하지만 그가 졸업하던 해 광주FC는 결국 김경연을 선택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육성한 유소년 선수 중 구단별로 네 명만을 우선 지명할 수 있었는데 김경연은 광주FC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건국대에 입학한 그는 이제 스스로 자신의 갈 길을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2015년 건국대를 졸업했지만 그를 받아주는 K리그 구단은 없었다. 결국 그는 내셔널리그 목포시청에 입단해야 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실업 팀이었다.

그나마 당시 목포시청을 이끈 김정혁 감독이 받아준 게 다행이었다. 김경연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축구를 아예 그만두려고 했다. 목포시청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때 축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김경연은 목포시청과 계약 후 숙소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목포시청은 목포축구센터를 숙소로 쓰는데 한 건물 바로 위 층에는 또 다른 이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바로 그가 학창시절 그토록 입단하고 싶었던 광주FC 선수단이었다. 목포축구센터를 같이 쓰는 목포시청과 광주FC는 한 건물에 나란히 입주해 있었다. 목포시청이 건물 3층을 숙소로 쓰고 광주FC는 건물 4층을 차지했다.

김경연에게는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토록 원했던 광주FC가 아니라 우여곡절 끝에 목포시청에 입단해 광주FC와 한 지붕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었다. 김경연은 목포시청에서 펄펄 날았다. 세 시즌 동안 54경기에 출장하며 팀의 핵심 미드필더 역할을 했다. 왼발이 뛰어난 그는 중원에서 팀을 진두지휘했고 강력한 중거리 슛도 날렸다. 김경연은 지난 해 목포시청의 FA컵 4강 진출에도 공헌했고 지난 시즌 내셔널리그 베스트11에도 이름을 올렸다. K리그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는 세 시즌 만에 내셔널리그 최고 선수가 돼 있었다. 그는 내심 더 큰 무대로 도전하고 싶었다. 물론 가장 가깝게 생활하면서도 가장 멀게 느껴진 광주FC가 그의 목표였다. 숙소 바로 한 층 위에 살고 있지만 그에게는 이 한 층이 너무나도 높게 느껴졌다.

목포시청 내셔널리그
지난 해 FA컵에서 4강에 올랐던 목포시청은 올해에도 이변을 연출하고 있다. ⓒ내셔널리그

‘3층 남자’ 김경연, 4층으로 이사가다
한 건물에 같이 살고 있지만 목포시청과 광주FC의 차이는 극명하다. 광주FC는 화려하게 래핑이 된 구단 버스를 타고 다니지만 목포시청은 그렇지 않다. 관광 버스를 전세 내 타고 다닌다. 겉에서 보면 축구단 버스인지 아무도 모를 정도다. 언론의 주목도 역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목포시청 선수들은 광주FC 선수들에게 내심 패배의식을 느끼기도 했다. 한 건물에서 지내고 있으니 더 그랬다. 한 팀은 내셔널리그에서도 그리 주목받지 못했고 한 팀은 K리그에서 주목 받았기 때문이다. 김경연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는 왠지 광주FC 선수들을 마주치면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우리는 내셔널리그에 있는데 그 선수들은 K리그에 있어서 그랬던 거 같다. 자격지심 같은 게 있었나보다.” 물론 목포시청과 광주FC 사이에 엄청난 차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선수들의 마음은 그랬다.

그런데 지난 시즌이 끝난 뒤 김경연에게는 믿기지 않는 제안이 왔다. 금호고 시절 자신을 지도했던 최수용 감독이 광주FC 기영옥 단장에게 김경연을 추천한 것이었다. “이 선수 한 번 테스트 해보라”는 최수용 감독의 제안에 기영옥 단장도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 김경연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프로 테스트생이 됐다. 자존심도 다 내려 놓고 테스트에 임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던 팀에 이렇게 돌고 돌아 다시 도전하게 된 것이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FA컵에서 4강에 오르며 펄펄 날았던 김경연을 광주FC에서 좋게 평가한 것이었다. 광주FC는 김경연 뿐 아니라 목포시청에서 골키퍼 박완선과 이인규까지도 영입했다. 목포시청의 핵심 선수들은 이렇게 광주FC로 옮겨갔다.

숙소 3층에서 짐을 빼 4층으로 올라가는 간단한 이사였다. 하지만 이렇게 한 층을 올라가기까지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포기할 뻔했고 위기도 많았다.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게 되자 목포시청 동료들은 “다시는 이곳에 내려오지 말라”고 축하해줬다. 4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광주FC 선수들 역시 “올라온 걸 환영한다”고 했다. 이 한 층 사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낄 이들도 있겠지만 목포시청과 광주FC 사이의 한 층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2017년 12월 4층으로 올라온 김경연은 곧바로 적응에 들어갔다. 3층에서 볼 땐 건방져보였던 광주FC 선수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내가 너무 광주 선수들을 건방지게 생각한 것 같다. 같이 지내보니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다들 착했다.”

목포시청 김경연
김경연은 목포시청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내셔널리그

4층에서 바라본 3층, ‘행복해 보였다’
김경연은 다시는 3층으로 내려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 물었다. 하지만 경쟁은 쉽지 않았다. 스스로도 부족한 걸 느꼈다. “경기력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스피드와 체력에서는 확실히 내가 부족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특히나 광주에는 빠른 선수들이 많다. 나는 스피드로 축구를 하는 선수가 아니라 더더욱 이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결국 힘들게 4층으로 올라온 김경연은 주전 경쟁에서 밀리고 말았다. 지난 5월 26일 수원FC와의 원정경기에서 딱 한 번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뿐 나머지 경기에서는 아예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다. 목포시청에서 세 시즌 동안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였던 그는 광주FC에서는 벤치도 아닌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선수가 됐다.

오며 가며 목포시청 선수들과 마주쳤다. 훈련을 함께 진행하지는 않지만 훈련장으로 나가는 길에도 목포시청 옛 동료들과 마주쳤고 식당에 가면 광주FC와 목포시청 선수들이 유독 더 마주할 일이 많았다. 심지어 광주FC 박진섭 감독과 목포시청 김상훈 감독도 친했다. 현역 시절 울산현대에서 활약한 이들은 한 시기에 뛴 적은 없어도 오랜 시간 K리그 무대에서 마주하며 친해졌다. 4년 선배인 김상훈 감독과 감독 초년생인 박진섭 감독은 만날 때마다 반갑게 살을 부비는 사이다. 서로 식사도 같이 하고 술도 한잔하며 의지하는 중이다. 서로 경기가 있으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목포시청과 광주FC 선수들은 미묘한 감정이 있을지 몰라도 감독들은 격의 없이 지낸다. 그래서 더 김경연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김경연은 마음이 무거웠다. “경기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숙소에서 늘 지난 시즌 행복하게 축구를 했던 목포시청 동료들과 마주쳤다. 바로 한 층만 내려가면 옛 동료들이 있는데 향수병에 걸렸다.” 목포시청은 숙소가 있는 목포축구센터 내에서 내셔널리그 경기를 치르고 광주FC는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홈 경기를 한다. 광주FC 선수들은 훈련 일정만 겹치지 않으면 숙소 내에서 열리는 내셔널리그 목포시청 경기를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가끔씩 목포시청 경기를 챙겨보는 선수도 있고 아예 관심이 없는 이들도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김경연은 올 시즌 목포시청 홈 경기를 빼놓지 않고 직접 관중석에서 봤다. 그럴 때마다 마음은 더 흔들렸다.

김경연 광주FC
광주FC 유니폼을 입은 김경연. 하지만 그는 결국 공식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프로축구연맹

그가 다시 3층으로 내려온 이유
“바로 내 눈 앞에서 작년까지 함께 했던 친구들과 동료들이 경기를 했다. 그 모습을 보면 불과 몇 개월 전 일이지만 경기에 나가 뛰었던 때가 그리워졌다. 그런데 나는 광주FC에 와 아예 경기에도 나갈 수 없는 신세였다. 그래서 더 향수병이 있었던 것 같다.” 지난 시즌 목포시청 유니폼을 입고 FA컵 4강의 역사를 쓴 김경연은 불과 몇 달 사이 꿈도 이뤘다가 그 꿈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도 했다. 함께 목포시청에서 광주FC로 이적한 이인규는 그래도 전반기 동안 경기에 꾸준히 나섰고 박완선은 경기에는 나가지 못해도 꾸준히 엔트리에는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김경연의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아는지 모르는지 목포시청 김장현 코치와 김상훈 감독은 마주칠 때마다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라”고 했다.

김상훈 감독은 김경연을 늘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는 “마음을 열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3층 사람들’을 그리워하던 김경연은 결국 고심 끝에 목포시청의 손을 다시 잡았다. 아무래도 선수는 경기에 나서야 한다는 게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다. 2017년 12월 광주FC로 이적했던 그는 2018년 6월 다시 목포시청으로 6개월 임대를 결정했다. 3년의 노력으로 4층에 올라갔던 김경연은 다시 6개월 만에 짐을 싸 3층으로 내려왔다. 한 층을 내려오는 것 뿐이었지만 여기에는 정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김경연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했다. 그는 4층에서 3층으로 내려온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음이 편했다.”

김상훈 감독은 김경연을 전폭적으로 신뢰했다. 6개월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해 경기 감각이 떨어져 있었지만 믿고 기용했다. FA컵 FC안양과의 32강전에 출장했고 내셔널리그에서도 네 경기에 나섰다. 광주FC 이적 후 단 1분도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던 김경연은 한 층을 내려온 뒤 다시 날개 돋힌 듯 날아다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경기력이 떨어져 있는데도 믿어주신 감독님께 어떻게든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제 뛰니까 좀 선수가 된 것 같다.” 김상훈 감독도 김경연을 존중했다. “경연이는 지난 시즌 좋은 활약을 해 프로에 갈 자격이 충분한 선수였다. 그런데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걸 끌어 올려주고 싶었다.”

목포시청 김경연
김경연은 목포시청에서 왼발로 팀을 이끌고 있다. ⓒ내셔널리그

그는 3층에 있어도 행복하다
김경연은 금방 경기력을 찾았다. 그리고 8일 열린 FA컵 16강 인천유나이티드와의 원정경기에도 선발로 출장했다. 광주FC 유니폼을 입고는 프로팀을 상대해 본 적이 없지만 오히려 목포시청으로 돌아온 뒤에는 FC안양에 이어 또 다시 K리그 팀과 격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김경연의 인천전 전반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극적인 플레이를 했고 첫 실점의 빌미도 내가 제공했다.” 김경연은 전반이 끝난 뒤 마음을 고쳐 먹었다. “후반전에는 어떻게든 만회하고 싶었다. 그래서 간절하게 뛰었다. 거기에 (김)상욱이가 두 골을 넣어줘 결과까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됐다. 우리가 이겨 첫 실점의 자책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이날 김경연은 풀타임을 소화하며 시종일관 인천 중원을 괴롭혔다. 통렬한 왼발 슈팅이 인천 골문을 강타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 FA컵 4강 주역인 그는 이번에도 연이어 K리그 팀들을 격파하며 FA컵 8강에 일조했다. 경기가 끝난 뒤 김경연은 곧바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라운드에 주저 앉았다. 최선을 다한 선수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김경연은 목포시청 유니폼을 입고 인천을 2-1로 꺾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경기 소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너무 기쁘다. 선수는 지도자의 믿음에 따라 달라지는데 여기에서는 늘 그런 믿음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낮은 곳에 있어도 더 높은 곳에 있는 선수들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도자가 믿어주면 선수들도 100% 발휘할 걸 120% 발휘하기도 한다. 인천전이 그런 경기였다.”

4층에 힘겹게 올라갔다가 다시 3층으로 내려온 걸 누군가는 실패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수는 어느 위치에 있느냐보다는 그라운드에 설 기회가 주어질 때 가장 행복하다. 내셔널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상위 리그에 가 다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김경연은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채 목포시청으로 돌아왔고 이인규는 여름 이적시장에서 선수 보강이 이뤄진 뒤 경쟁에서 밀렸다. 박완선도 엔트리에는 계속 이름을 올렸지만 아직 한 경기도 못 뛰었다. 드라마와 현실은 이렇게 다르다. 꼭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건 아니다. 김경연은 이인규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숙소가 같아 오늘 저녁에도 인규를 만나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요새 인규가 경쟁에서 밀려 얼굴이 안 좋은데 잘 버텨냈으면 좋겠다.”

김경연이 서 있는 ‘3층과 4층 사이’
한 건물에 사는 두 팀은 올해 딱 연습경기를 한 번했다. 월드컵을 기점으로 앞뒤로 경기가 몰려 있어 일정이 빡빡해 연습경기를 자주하지는 못했다. 이 두 팀은 한 건물에서 지내지만 가깝고도 먼 사이다. 목포시청이 숙소로 쓰는 건물 3층과 광주FC의 숙소인 4층의 차이는 대단히 크다. 여기에는 복잡 미묘한 감정도 숨어있다. 이런 동거는 광주FC가 건설 중인 클럽하우스가 완공될 때까지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다시 김경연이 4층으로 올라가 즐겁게 축구를 할 수 있을까.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김경연은 일단 다가오는 미래를 즐길 준비가 돼 있다. 그는 각오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항상 최선을 다할 거고 쉽게 물러서지 않을 거다. FA컵에서는 작년의 4강 이상도 갈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 ‘3층 남자’ 김경연은 위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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