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리그

[스포츠니어스 | 인천=김현회 기자] “저는 선수 시절 울산에서 뛸 때 인천에 져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포항과 성남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인천을 만나면 늘 ‘오늘은 승리 수당 버는 날’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감독이 되고 나니 오히려 도전자 입장이 됐네요. 선수 시절 느꼈던 인천과 오늘의 인천은 달라요. 선수들에게 경기 전부터 계속 말 조심했어요. 우리 선수들에게 이 경기는 만만한 경기가 아니라 도전이니까요. 우리는 이렇게 좋은 경기장에서 경기를 해본 적이 없는데 아마 잔뜩 얼어서 경기를 제대로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서로 멋진 축구를 하면 우리가 이길 수 없어요. ‘같이 축구를 못해야 이긴다’고 주문했어요. 끈적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서로 축구를 못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어요.”

경기 전 만난 내셔널리그 목포시청 김상훈 감독의 말이다. 그는 현역 시절 잘 나가는 선수였다. 울산현대에서 주전으로 활약했고 이후 스타군단 성남일화에서 은퇴했다. 국가대표로도 뛰었다. 늘 도전자 보다는 지키는 입장이었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는 괌으로 날아가 국가대표 감독도 했고 울산현대 코치도 지냈다. 하지만 목포시청 감독이 된 이후로는 지키기 보다는 도전해야 한다. 지난 시즌 김정혁 감독이 목포시청을 FA컵 4강에까지 올려놓고 떠났으니 부담감은 더했다. 올 해 FA컵 32강에서 FC안양에 2-1 승리를 거두고 다시 16강에 오르자 지난 시즌 돌풍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내셔널리그에서는 아직 4위에 머물러 있다. FA컵만 보는 이들에게는 그들이 강호일 수 있어도 그들은 늘 도전자다.

열악한 환경, 힘들게 구성한 선수단

목포시청은 아직 멋들어진 구단 버스도 없다. 보통 K리그는 물론 내셔널리그 팀들은 겉면이 멋지게 장식된 구단 버스를 탄다. 하지만 목포시청 선수단 버스는 전세 고속버스다. 내부는 큰 불편함이 없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선수단을 태운 버스인지 관광을 가는 어르신들의 버스인지 알 길이 없다. 김상훈 감독에게 물으니 부끄럽다는 듯 답변이 이어졌다. “처음엔 팀에 와 버스가 부끄럽기도 했다. 구단 버스가 따로 없어서 시즌 전에 입찰을 해 전세로 버스를 탄다. 목포축구센터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훈련도 하니 원정경기가 아니면 크게 버스를 쓸 일이 없다. 그래도 번지르르한 정도는 아니어도 선수들이 자부심을 느낄만한 래핑 정도는 돼 있는 버스였으면 좋겠다.” 김상훈 감독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색하게 웃었다.

경기 전 만난 김상훈 감독은 사연 있는 선수들을 소개했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인 선수는 팀 내 유일한 외국인인 일본 출신 타츠였다. 올 시즌 2월 2일 부임한 김상훈 감독이 어렵게 뽑은 선수였다. “내가 오기 전 지난 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선수 영입이 거의 다 마무리 됐었다. 나는 타츠와 이제승 정도만 뽑았다. 이 선수들도 운이 좋게 찾을 수 있었다. 나머지 선수들은 잘 몰랐던 선수들이다. 정확한 정보 없이 시즌을 준비해야 했다.” 타츠는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날아온 선수다. 아직까지 프로 경험은 없다. 174cm의 작은 키로 올 시즌 목포시청 주축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다.

김상훈 감독은 타츠를 영입할 수 있었던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지난 겨울 여러 K리그 구단에서 타츠 영입을 타진했다. 특히나 수원FC와는 영입 직전까지 갔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수원FC 사정으로 영입이 무산됐다. 그래서 내가 영입을 추진했는데 그때도 ‘바로 선수를 받을 생각은 없다. 한 달은 테스트를 해야한다’고 했다. 간절했던 타츠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딱 첫날 훈련하는 걸 보고 ‘얘는 되겠다’ 싶었다. 일본 선수들은 공은 잘 차지만 부딪히는 게 약한데 얘는 공도 잘 다루고 부딪힐 줄도 아는 선수다. 이 정도 실력을 갖춘 외국인 선수를 내셔널리그에서 찾기에는 어렵다.” 김상훈 감독은 한 달간의 테스트 끝에 타츠와 계약했다.

경기 전 만난 김상훈 감독의 모습 ⓒ스포츠니어스

인천전, 또 한 번의 드라마를 쓰다

목포시청에는 축구팬들에게 익숙한 선수가 한 명 있다. 바로 심영성이다.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히며 축구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심영성은 올 시즌 전반기까지 내셔널리그 부산교통공사에서 뛰었다. 하지만 이번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목포시청으로 이적했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었다. 김상훈 감독은 현역을 마무리할 때쯤 성남일화에 신입생으로 입단한 심영성을 기억하고 있었다. “잠깐이지만 현역 시절을 함께 한 사이다. 올 시즌 전반기 부산에서 뛰는 모습을 봤는데 영성이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같이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했다. 부산도 좋은 팀이지만 좀 더 좋은 축구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 보였다. 우리가 올 시즌 성적은 중위권이지만 내용은 우승권이라고 생각한다. 과정이 좋았는데 영성이가 이런 우리와 함께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김상훈 감독은 말을 이었다. “‘일단 거기에서 열심히 하라’고 했다. 어떤 결정을 내려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 본인이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영성이가 직접 이적에 대한 목소리를 내며 우리 팀에 입단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여기저기에서 모인 선수들이 목포시청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그들은 FA컵 16강 인천과의 경기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했다. 후반 32분 부노자가 발을 들고 들어올 때도 목포 김상욱은 머리를 들이밀며 투혼을 보여줬다. 이날 경기에서 목포는 전반에 먼저 한 골을 내주고도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며 결국 경기를 뒤집었다. 지난 시즌 FA컵 4강에 올랐던 그들은 지난 FA컵 32강전에서 FC안양을 잡더니 16강에서는 인천까지 제압하고 이번에도 8강에 올랐다.

대단한 승부였다. 목포는 포기하지 않았다. 인천 안데르센 감독도 경기가 끝난 뒤 “우리가 선제골을 넣고 나서부터 오히려 목포가 우리를 지배했다”면서 “오늘 경기에서 뛰었던 선수들 중 주말에 있는 K리그에서 뛸 선수들은 없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그만큼 목포의 끈적한 경기력에 휘말렸다. 목포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자 다들 그라운드에 주저 앉으면서도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지난 시즌 FA컵 4강 진출이 우연이 아님을 또 한 번 보여주는 자리였다. K리그2 FC안양도 목포의 제물이 됐고 이번에는 K리그1 인천유나이티드 역시 목포에 발목을 잡혔다. 월드컵에서도 활약한 문선민도 목포의 수비를 뚫지 못했다.

[caption id="attachment_21540" align="aligncenter" width="600"]내셔널리그 목포시청 경기 후 김상훈 감독이 기자회견을 통해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스포츠니어스[/caption]

그가 말하는 승리의 비결

특히나 김상훈 감독이 이날 활용한 교체 카드는 빛났다. 후반 교체로 투입된 김상욱이 연이어 두 골을 기록하며 팀의 거짓말 같은 승리를 이끌었다. 김상훈 감독은 김상욱을 꾸준히 교체로 쓰고 있다. “김상욱은 내셔널리그 득점 선두다. 그런데 대부분 후반 조커로 투입돼 활약했다. 조커로 들어갔을 때 득점력이 대단히 뛰어나다. 오늘 날씨가 더운데다가 상대가 후반전에 체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해 김상욱에게 기대했다.” 이날 김상욱은 헤딩으로 첫 번째 골을 기록했고 후반 추가 시간 그림 같은 프리킥으로 한 골을 더 보탰다.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빛나는 골 감각을 자랑하는 선수답게 이날도 가장 빛나는 활약을 선보였다.

경기 후 만난 김상훈 감독은 이날 승리 비결을 털어놨다. 바로 하프타임이었다. 그는 하프타임 때 ‘좋은 시간을 가졌다’라고 표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반전에 실점을 하고 흔들리면서 어려움을 느꼈는데 하프타임 때 선수들과 좋은 시간을 가졌다. 경기력은 둘째 치고 선수들의 자신감과 자존심을 언급했다. 내셔널리그 선수들은 K리그1이나 K리그2에 가지 못한 상처가 있는데 이걸 터치했다. 전반전에 소극적이고 터프하지 못한 경기를 펼쳐 이 부분을 지적했다. ‘너희들 계속 내셔널리그에서만 놀 거야?’라고 감성을 자극했다. 경기력을 떠나 이 부분을 자극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후반 들어 뛰는 양이 달라졌다. 후반전은 극찬을 보내고 싶다.”

김상훈 감독은 멋쩍게 웃었다. “전반과 후반의 경기력이 확연히 달라졌다. 그래도 하프타임 대화를 잘 활용한 것 같다. 감성을 건드리고 소통하면서 후반전은 전혀 다른 팀이 됐다.” 하지만 이제 목포시청은 더 힘든 경기를 펼쳐야 한다. 김상훈 감독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이긴 안양이나 인천 모두 베스트 멤버가 나왔더라면 쉽지 않은 경기였을 것이다. 이 두 팀은 우리와의 경기에서 주전 선수들을 쉬게 했다. 하지만 다음 8강이나 4강에서는 K리그 팀들도 이제 욕심을 내고 정상적인 경기를 할 것이다. 거기에 대해 대비해야 한다. 선수들에게 주어진 기회다. 내셔널리그 경기도 중요하지만 FA컵을 통해 상위리그 팀을 제압하면 선수들의 인지도가 올라가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개인 능력은 우리가 떨어질 수 있어도 물러서지 않겠다.”

경기 전 만난 김상훈 감독의 모습 ⓒ스포츠니어스

“최고인 적 없던 선수들, 오늘은 최고였다”

경기 전 만난 김상훈 감독은 인상적인 말을 했었다. “나는 솔직히 선수 시절 늘 좋은 팀과 좋은 환경에서 칭찬을 받으며 뛰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잘한다. 최고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애들이 아니다. 늘 어렵게 진학했고 이제 조금 활약을 할 만하면 잘하는 다른 선수에게 눌렸던 애들이다. 감독과 코치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선수들이다. 반면 K리그1에서 뛰는 선수들은 학창시절부터 ‘잘했다. 최고다’라는 말을 들어왔던 친구들이다. 그래서 우리 선수들에게 강하게, 때론 부드럽게 대하려고 한다. 우리 선수들은 항상 도전해야 하는 선수들이다.” 선수 시절 인천만 만나면 내심 승리수당을 먼저 떠올렸던 그는 이번 경기를 도전자 입장에서 멋지게 준비했고 멋진 결과를 냈다.

경기 후 만난 김상훈 감독은 얼굴에 흐뭇함이 묻어났다. “최고가 된 적 없었던 선수들이 오늘 멋진 승리를 거뒀다”고 하자 돌아오는 답변 또한 뇌리에 깊게 남았다. “나는 칭찬에 굉장히 인색한 편이다. 선수 시절에는 특별한 이야기를 서로 하지 않아도 그들은 늘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소외됐고 그늘에 있던 이들이다. 지금까지 최고의 위치에 오른 적 없는 선수들이지만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크게 칭찬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 단어를 써 칭찬해 주고 싶다. 오늘은 이런 행복을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목표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나는 선수 때부터 지는 게 싫었다. FA컵 마지막까지도 안 지고 싶다. FA컵이 끝날 때까지 우리 선수들이 이 운동장에 있었으면 한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감히 말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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