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를 받기에 앞서 포토라인에 서 심경을 밝혔다. 취재진은 한 명, 우리 <스포츠니어스> 뿐이었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히딩크 감독을 추종하는 단체인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이하 축사국)’이 나를 지난 4월 고소했다. ‘축사국’ 회장 우 모씨가 직접 고소장을 제출했단다. 이유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과 저작권법 위반이었다. ‘축사국’은 그들에게 가장 많이 쓴소리를 한 나에게 법적 분쟁을 시도했다. 나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축사국’이 한국 축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이건 나뿐 아니라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다. 나는 명예훼손을 한 적도 없고 저작권법을 위반한 적도 없다. 하지만 툭하면 ‘축사국 법무팀’을 들먹이는 무시무시한 그들은 고소와 고발이 일상화 돼 있다.

‘축사국 법무팀’이 출격했다

일산동부경찰서로부터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소식을 접했다. 그런데 나만 고소를 당한 게 아니었다. 함께 일하는 홍인택 기자 역시 ‘축사국’으로부터 피소를 당했다. ‘축사국’은 홍인택 기자에게도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을 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자행했다. 인택이가 불쌍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애가 그냥 나를 고소하는 김에 엮여 피의자가 된 것이었다. “형, 저도 고소 당했어요.” 인택이의 말에 한 마디했다. “아이고. 불쌍한 우리 인택이. 형 잘못 만나서 고생이 많다.” 아마 우리 인택이는 내가 ‘축사국’을 무시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고초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택이는 아무런 죄가 없다. 그냥 내 옆에서 칼럼 하나 썼을 뿐이다.

도대체 누가 있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축사국 법무팀’은 툭하면 등장한다. 조금만 자기들을 깔보는 이들이 있으면 “축사국 법무팀에서 가만히 있질 않겠다”고 한다. 아마도 대단한 힘이 있는 듯하다. 드디어 ‘축사국 법무팀’의 실력을 볼 차례다. 나도 이 고소 사건에 초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창천이나 김앤장을 선임할까 고민하다가 ‘축사국’과 싸우는 돈이 아까워 포기했고 국선 변호인을 선임할까 하다가 사건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이 감정 싸움에 귀한 인력을 쓰는 것도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냥 혼자 경찰서로 자진출두(?)했다. ‘국민의 뜻’이라며 한국 축구의 정의를 외치는 집단과 ‘기레기’ 두 명의 싸움은 이렇게 시작됐다.

첫 번째 조사를 위해 경찰서로 출두했다. 텔레비전에서 보면 이렇게 경찰서로 출두할 때는 정장을 차려 입고 넥타이는 하지 않는 게 센스(?)였다. 쓸 데 없이 격식을 좋아하는 나는 정장을 빼 입고 넥타이는 하지 않은 채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에 출두해 연예인들은 다 한다는 포토라인 앞에 섰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취재하러 온 기자는 딱 한 명이었다. “형. 사진이나 한 장 찍고 빨리 들어가요.” 취재 온 기자는 우리 <스포츠니어스> 조성룡 기자 뿐이었다. 물론 쓸 데 없이 격식을 좋아하는 나는 사진을 한 장 찍은 뒤 기자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들께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바로 옆에서 ‘X병하네’라고 말해주는 이도 없었다. 나는 ‘축사국’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들이 가장 신성시 한다는 네덜란드 국기를 몸에 둘렀다.

이렇게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로 출두했다. 외롭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그 어떤 지지자도 나와 반겨주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정치인들이 출두하면 다 해주던데. ⓒ스포츠니어스

무슨 기사가 문제였을까?

첫 번째 조사를 받았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나에게 명예훼손과 저작권법 위반 혐의를 씌웠을까. 정말 내가 이런 큰 죄를 저질렀다면 ‘축사국’에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사과할 생각이었다. 나에게 달걀을 던져도 맞을 생각이었다. 조사관과 마주했다. 정말 고생이 많으신 분이었다. 어린 애들 투정하듯 남발한 고소, 고발 사건을 이렇게 하나하나 다 성실히 조사해야 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왜 내가 피소됐는지 이유를 들어보니 더 그래보였다. 이유는 내가 ‘축사국’ 홍보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했고 자신들의 집회 때 10명이 넘게 왔는데 9명이라고 허위보도를 했다는 것이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억지나 부리려고 조사관님들을 이렇게 힘들게 하나.’

내가 쓴 지난 해 9월 기사를 문제 삼았다. 제목은 <‘히딩크 집회’ 참석자, “적폐세력 몰아내고 히동구 모시자”>라는 기사였다. 이날은 ‘축사국’이 히딩크 감독 선임을 위한 두 번째 집회를 연다고 한 날이었다. 이 바로 직전 예정됐던 첫 번째 집회 때는 아무도 오지 않아 결국 혼자 현장에서 네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나는 한 번 더 속는 심정으로 두 번째 집회 장소로 향했다. 내가 ‘기레기’라고 욕을 무지하게 먹어도 또 이럴 때는 쓸 데 없는 기동력이 좀 있다. 장소는 서울시 종로구 축구회관 앞이었다. 오후 2시부터 집회라고 해서 1시 반부터 가서 기다렸다. 그런데 이날 취재진은 나를 포함해 세 명이었고 집회 참석자는 채 10명이 안 됐다. 사전 집회 신고 때는 100명이 참석할 것이라고 했지만 채 10명이 오질 않았다.

그렇게 집회가 시작됐다. 일일이 참석자 수를 셌고 이후 나를 고소한 회장 우 모씨도 인터뷰했다. 협회에서 룸살롱에 보내주는 적폐 ‘기레기’ 소리를 들을까봐 우 모씨를 비롯한 참석자를 인터뷰 해 그대로 기사에 냈다. 그날 그들의 목소리를 기사로 담아준 곳은 우리 <스포츠니어스>를 포함해 딱 세 개 매체에 불과했다. 우리는 이렇게 ‘축사국’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준 몇 안 되는 매체였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월드컵이 9개월 남았지만 지금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에 와도 시간은 충분하다”면서 “대표팀 감독은 히딩크 감독을 모시고 신태용 감독은 조감독이나 수석코치면 충분하다”고 했다. 나는 인터뷰를 마친 뒤 곧바로 사진을 찍고 바로 옆에 주차해 놓은 내 차에서 기사 마감을 했다. 내가 욕은 많이 먹어도 이럴 때는 또 쓸 데 없이 열심히 한다.

‘히딩크 집회’ 참석자, “적폐세력 몰아내고 히동구 모시자” (당시 기사 보러가기)

이렇게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로 출두했다. 외롭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그 어떤 지지자도 나와 반겨주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정치인들이 출두하면 다 해주던데. ⓒ스포츠니어스

고소장 보고 경악한 이유는?

그런데 이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됐다. 조사관이 말했다. “왜 참석자가 9명이라고 쓰셨어요? 이 사람들은 참석자가 10명이 넘었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대요.” 황당했다. 오후 2시에 시작된 집회를 1시 반부터 기다렸다가 2시가 넘어서부터 취재했다. 기사에 쓴 사진을 조사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제가 이날 현장에서 집회 시작 이후에 찍은 사진이거든요. 같이 잘 세어볼까요. 하나, 둘, 셋, …, 여섯, 일곱, 여덟. 어? 여덟 명이네요. 죄송해요. 아홉 명인줄 알았는데.” 조사관이 웃었다. “네. 답변 되셨어요.” 그날 집회 참석자는 9명인 줄 알았는데 8명이었다.

조사관이 족히 50장은 돼 보이는 고소장을 들여다 봤다. 마치 무슨 국정농단 사건 조사를 하는 것처럼 자료가 많았다. 고소장을 넘기는데 앞에서 힐끔 보니 익숙한 내용이 보인다. 내가 경악하며 조사관에게 말했다. “설마 저것도 고소장에 첨부한 건가요?” 그러자 조사관이 답했다. “네. 이 내용이 대부분이에요.” 맙소사. ‘축사국 법무팀’에서 쓴 고소장의 상당 부분은 나무위키 내용이었다. 내 이름을 검색해 보면 내 나무위키 항목에 너무나도 악의적이고 황당한 비하가 많았지만 그래도 이런 걸 누가 신빙성 있는 자료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웃어 넘겼다. 그런데 ‘축사국 법무팀’은 아무나 막 만들어낼 수 있는 나무위키를 고소장에 첨부했다. 그것도 글씨도 크게 수십 장으로 나눠 뽑아 고소장에 첨부했다.

이번 피소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얘 이렇게 나쁜 애니까 처벌해 주세요”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무위키가 그 사이 법적인 자료로 활용될 만큼 공신력이 생겼던지 ‘축사국 법무팀’이 비웃음을 당해도 쌀 만큼 허술하면서 쓸 데 없는 신념만 강하던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조사관과 검사가 나무위키 항목을 조사에 참고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축사국’이 “축사국은 히딩크 재단 사무총장인 노제호와 연결돼 있다”는 내 주장을 법적인 문제로 삼아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게 만약 허위사실이라면 그들이 가장 발끈할 일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축사국’은 10명이 넘게 집회에 참가했는데 기사에는 9명으로 표기했다는 걸로 고소장을 내면서도 내가 주장한 ‘노제호 연결설’은 고소하지 않았다.

[김현회] ‘전세진 논란’ 배후에는 노제호가 있었다 (당시 기사 보러가기)

이렇게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로 출두했다. 외롭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그 어떤 지지자도 나와 반겨주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정치인들이 출두하면 다 해주던데. ⓒ스포츠니어스

조사관과 나눈 깊은 축구 이야기

조사관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해야 했다. 일반인이 뭐 ‘히사모’ 아니, ‘축사국’이 어떤 단체인지 알 길이 없다. 왜 그들이 히딩크 감독을 그토록 애타게 부르짖다가 조롱 당하는지 일반인은 별로 관심이 없다. 매번 ‘축사국’은 자신들의 주장을 ‘국민의 뜻’이라고 하는데 정작 국민은 왜 히딩크 감독이어야 하는지, ‘축사국’은 뭐하는 곳인지 아무 것도 모른다. 조사관도 이번 조사를 통해 하나 하나 배워가는 중이었다. 나에게 물었다. “기자님,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 히딩크 감독을 원하는 거에요?” 한참을 생각하다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하, 어디부터 말씀드려야 할까요?” 그러다 지난 해 9월 국가대표팀에 신태용 감독이 선임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아니, 그러다보니 슈틸리케 감독 이야기를 먼저 해야 신태용 감독 선임 배경을 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슈틸리케 감독에 관해 이야기하다보니 자연스레 ‘갓틸리케’ 시절도 언급해야 했다.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까’ 하다가 그냥 2002년 이후 한국 축구사를 훑었다. 내가 또 욕은 많이 먹어도 이런 이야기는 쓸 데 없이 맛깔나게 한다. 짧게 한다고는 했지만 한 30분 정도는 이야기한 것 같다. 조사관도 굉장히 흥미롭게 들었다. 배경을 설명하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 정도로 축구사를 정리할 거면 차라리 돈 버는 유튜브로 할 걸.’ 이 조사관은 ‘축알못’에서 ‘축잘알’이 됐다.

저작권법 위반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나는 지난 해 10월 <‘축사국’인가 ‘히사모’인가>라는 칼럼을 통해 한국 축구 개혁을 위한 게 아니라 오로지 히딩크 감독만 바라보는 ‘축사국’의 행태를 비판한 적이 있다. 히딩크 감독 ‘탄신일’인 11월 8일을 맞아 118명이 네덜란드로 날아가 히딩크 감독을 만나 기념 파티를 하겠다는 ‘축사국’의 계획은 그들이 딱 ‘히사모’ 같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나는 이걸 비판하면서 ‘축사국’이 제작한 사진 한 장을 썼다. 그들의 로고가 그려진 비행기가 네덜란드로 날아가는 아주 단순한 이미지였다. ‘축사국’이 나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한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내가 자신들이 허락하지 않은 이미지를 무단으로 기사에 썼다면서 나를 고소한 것이었다.

이렇게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로 출두했다. 외롭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그 어떤 지지자도 나와 반겨주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정치인들이 출두하면 다 해주던데. ⓒ스포츠니어스

조사관이 바뀐 황당한 이유

내가 조사관에게 답변했다. “독자들의 알권리를 위해 쓴 사진입니다. 긴 문장의 칼럼보다 이 사진 한 장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더 강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은 ‘축사국’ 공지사항에도 걸려 있고 오히려 그들이 네덜란드 여행을 홍보하는 용도로 널리 전파하던 사진이었습니다. 지금도 여러 블로그와 커뮤니티에 이 사진이 홍보용, 혹은 조롱하는 용도로 걸려 있습니다. 보도자료 형식으로 이미 다들 쓰고 있는 사진이어서 저작권법과는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홍보하는 용도로 쓰는 보도자료 형식의 사진은 이미 그렇게 쓰려고 의도했을 때부터 ‘무단 사용’이라는 게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축사국’은 이 사진을 널리 전파하며 자신들의 의도를 알렸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이미지 무단 사용으로 고소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역설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보통 이렇게 조사를 받을 땐 설렁탕을 한 그릇 시켜주던데 눈치가 보여 묻지는 못하고 있었다. 설렁탕에 면을 추가할 건지 밥을 추가할 건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조사관은 “조사가 다 끝났으니 이제 가세요”라고 했다. 그렇게 조사관과 한국 축구의 문제점과 앞날에 대해 한 시간 넘게 깊은 대화를 나눴다. “홍인택 기자는 따로 한 번 불러 조사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애들 감정 싸움도 진지하게 들어줘야 하는 조사관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사이버팀에서 이런 쓸 데 없는 일에 인력을 쓰지 않고 인터넷 도박이나 해킹 등 중대한 사건에 힘을 더 쓸 수 있으면 좋았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돌아 나오면서 혼자 읊조렸다. “설렁탕에 면 추가 하려고 했는데.”

홍인택 기자는 따로 조사를 받았다. 얘는 진짜 억울한 애다. 이런 논조로 비판하는 칼럼은 누구나 쓸 수 있다. 하지만 ‘축사국’은 자신들에게 가장 부정적인 나를 고소하며 ‘1+1’으로 홍인택 기자도 함께 고소했다. 홍인택 기자는 ‘축사국’을 종교에 빗댄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다. 따로 조사에 응한 그는 “‘축사국’을 ‘박사모’와 연관 지은 것에 관해 전대통령이 구속된 상황에서 악의를 가지고 빗댄 것 아닌가”라는 조사관의 질문에 “아니다. 그들과의 유사성이 축구나 사회적으로 다룰 만하다고 생각했다. 사회적인 현상이라면 공익 차원에서 언론이 다뤄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홍인택 기자도 한 시간이 넘는 조사를 마쳤다. 집도 서울인데 일산까지 와서 조사에 응해야 했다.

‘축사국’은 어떻게 종교가 되었나 (당시 기사 보러가기)

이렇게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로 출두했다. 외롭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그 어떤 지지자도 나와 반겨주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정치인들이 출두하면 다 해주던데. ⓒ스포츠니어스

조사관의 고생, 그리고 ‘당연한’ 무혐의 처분

두 달이나 지났나. 한가롭게 오후를 보내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번에도 일산동부경찰서였다. 두 달 전과는 다른 조사관이 전화를 했다. “기자님, 아주 짧게 조사할 게 조금 더 있는데 잠깐 경찰서로 좀 오실 수 있나요?” 다시 일정을 조율해 두 번째 출두(?)를 했다. 그런데 1차 출두 때 나를 조사했던 조사관이 아니라 바로 그 옆 조사관에게 2차 조사를 받았다. 왜 조사관이 그 사이 바뀌었을까. 이유는 황당했다. “‘축사국’에서 기자님하고 우리 조사관 이름이 비슷하다고 조사관을 바꿔달라고 했어요.” 늘 축구협회의 비리를 이야기하고 적폐를 이야기하다보니 ‘축사국’에서는 경찰서 사이버팀 조사관과 일개 기자 나부랭이와의 관계까지도 의심하는 모양이었다. ‘축사국 법무팀’의 대단한 상상력이었다.

결국 2차 조사는 내 이름과 단 한 글자도 겹치지 않는 다른 조사관이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이 조사관도 축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만삭에 정말 고생이 많아 보였다. 다시 2002년 이후 한국 축구사를 읊었다. 나도 이미 1차 조사에서 한 번 이야기를 다 한 상황이라 맥이 좀 빠졌다. 이 조사관은 이야기를 쭉 다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번 월드컵 되게 아까웠어요. 그쵸?” 월드컵 이야기를 나누며 조사를 이어 나갔다. 다시 나를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이 사건을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에 올렸는데 다시 경찰서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한 번 더 취약했던 내용을 보강해 보낸다는 것이었다. 조사 내용은 간단했다. 명예훼손 혐의는 무혐의가 나올 게 유력하고 저작권법 위반이 조금 애매한데 거기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더 답변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말했다. “사진 출처를 굳이 쓰지 않은 이유는 누가 보더라도 이 사진의 출처가 ‘축사국’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이미 사진에 ‘축사국’이 크게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사관도 이 이야기를 듣더니 진술서를 마무리했다. 물론 이날도 나에게 설렁탕을 권하지는 않았다. 조사관은 “곧 집으로 피의사건 처분결과 통지서가 날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넌지시 어떠한 처분이 나올지 예상해줬다.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이었다. 쓸 데 없는 일에 이렇게 힘을 쓰는 조사관들에게 미안했다. 진심으로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이렇게 인력을 허비하게 해 미안하다. 고생이 많다”고 하니 만삭인 조사관이 말했다. “이게 우리가 하는 일이죠 뭐.” 이 조사관의 순산을 기원한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고소를 남발하는 ‘축사국’은 정말 지탄 받아야 마땅하다. 내가 당해서가 아니라 쓸 데 없는 일에 시간과 힘을 써야하는 조사관들 때문이다.

이렇게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로 출두했다. 외롭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그 어떤 지지자도 나와 반겨주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정치인들이 출두하면 다 해주던데. ⓒ스포츠니어스

‘축사국’은 이길 수 없다, 정의가 아니니까

그리고 그저께(6일) 집으로 우편물 하나가 날아왔다.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에서 보낸 우편물이었다. 열어 보니 피의사건 처분결과 통지서였다. ‘축사국’ 회장이라는 우 모씨가 고소한 사건(?)에 대한 처분 결과였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은 ‘혐의 없음(증거불충분)’이었고 저작권법 위반도 ‘혐의 없음(증거불충분)’이었다. 쉽게 말해 무혐의였다. 뒷장에 보니 “혐의 없음 처분은 증거부족 또는 법률상 범죄가 성립되지 않아 처벌할 수 없다는 결정”이라고 써 있었다. ‘축사국’이 고소한 사건은 아무런 혐의도 인정되지 않고 이렇게 끝이 났다. 홍인택 기자 역시 ‘당연히’ 무혐의를 받았다. 김기춘이 석방되던 날 나도 이렇게 자유의 몸이 됐다.

‘축사국’에겐 미안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해도 상대를 이길 수 없다. 나와 싸워서가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게 정의가 아닌데 어떻게 상대를 이기나. 마치 자신들은 대단한 정의를 위해 싸우는 옳은 존재고 나머지 한국 축구 전체가 적폐라고 규정하지만 사실은 자신들이 가장 큰 적폐다. ‘축사국 법무팀’이 동원돼 변호사도 안 쓴 일개 소시민한테도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는데 무슨 큰 일을 하나. 나는 이렇게 혐의를 벗은 뒤 두부를 먹으며 이제는 사람답게 살자고 생각했지만 앞으로도 ‘축사국’처럼 한국 축구 발전을 저해하기만 하는 이들이 있다면 언제든 쓴 소리를 할 생각이다. '축사국'도 이제는 자신들만의 세상이 아닌 축구장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축구팬은 인터넷 댓글에만 있는 게 아니라 축구장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자리를 통해 오늘도 남 모르게 고생하는 경찰관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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