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직후 신현성 감독의 훈시를 듣는 경기고 선수단. 햇볕을 피해 더그아웃에 선수들을 모이게 했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희 기자] 폭염으로 체감온도가 40도를 넘나들고 있지만, 스포츠를 즐기는 팬들의 열정은 말리지 못하는 듯하다. 오히려 나름대로 더위를 식히기 위하여 자구책을 강구하면서 경기장을 찾는다. 그 장소가 야구장이건 축구장이건 관계없다. 그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승리만 볼 수 있다면,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팬들이 있기에 프로스포츠가 존재하는 것이다.

선수들도 이러한 점을 잘 알기에 더운 과정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플레이에 임하는 것이다. 사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국내보다 더하다. 체감온도가 아닌, 실제 측정 온도가 40도가 넘음에도 불구하고 군말 없이 그라운드에 나선다. 기온에 관계없이 팬들 앞에서 최선의 플레이를 선보이는 것이 메이저리거답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 프로야구 선수협의회에서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에 선수 보호 차원에서 폭염 경기 취소를 검토해 달라는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그라운드에서 직접 뛰어야 하는 선수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웠고, 또 그렇게 선수 권익을 위해 존재하는 단체이기에 충분히 의견 제시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주위에 이야기를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상당히 걸작이었다.

"폭염이라고 야구 안 하겠다고? 그럼 더우면 회사 다니지 말아야겠네? 덥다는 이유로 영업하러 다니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런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야구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덥다고 경기 취소해 달라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네. 설마, 축구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온 적 있니?"

오히려 어린 선수들을 보호해야 한다고요

사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폭염이라고 해서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 출근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택배를 비롯하여 외부 영업에 집중하는 이들도 더운 것을 극복하고 생업에 메달리는 것이다. 특히, 볼파크(ball park)가 많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폭염은 선수들이나 구단 차원에서 꼭 극복해야 하는 문제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인다. 그것이 정말로 프로이기 때문이다.

물론,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폭염으로 경기를 취소해 달라는 요청은 '더우니까 회사 출근을 취소해 달라'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프로'이기 때문에, 더위를 극복하기 위한 구단별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고, 선수들도 그 안에서 군말 없이 최선의 플레이를 선보여야 한다. 메이저리그 수준 타령은 그 다음에 해야 한다.

3년 전 청룡기 선수권은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렸다. 올해도 가능했고, 내년에도 가능한 일이다. ⓒ스포츠니어스

오히려 더 시급한 것은 어린 선수들에 대한 보호 문제다. 이미 황금사자기를 비롯하여 청룡기 선수권까지 모두 끝낸 고교야구만 해도 현재 목동구장에서 대통령배 대회가 한창이다. 성장을 마친 프로 선수들도 12~13시 경기가 부담이 될 법한데, 성장을 하고 있는 미성년 선수들이 뙤약볕 아래에서 경기를 강행하면, '청소년 보호법' 차원에서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다행히 협회와 주최사측의 배려로 폭염 주의보 때에는 아침/저녁에만 경기를 치르는 것으로 일정 조정을 마친 상태다. 이것이 폭염에 대한 근본 대책은 아니겠지만, 그라운드가 가장 뜨거울 때 경기를 하지 않는 것만 해도 선수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사실 프로야구 어른들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의 긴밀한 공조만 이루어졌다면, 1개 대회 정도는 충분히 고척 스카이돔에서 치를 수 있었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최사측에서도 목동구장을 사용했을 때외 비슷한 비용만 부담하면 된다. 이는 70회 청룡기 선수권을 고척 스카이돔에서 주최했던 '조선일보 문화사업단'의 예시로 파악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대회 기간이 넥센 홈구장 사용 시기와 겹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견을 낼 수 있으나, 이것도 사실 KBO와 김응룡 협회장의 긴밀한 공조로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올 시즌 스케줄만 봐도 그렇다. 청룡기 선수권이 7월 11~23일까지 열렸고, 같은 시기에 고척 스카이돔은 17~19일을 제외하면 모두 비워져 있었다. 이 시기는 올스타 브레이크 일정도 있었기에 넥센과 LG의 고척 3연전 일정만 조정됐다면, 올해 청룡기 선수권 시행 장소에 대한 변경도 가능했다.

아마야구 선수들의 고척 스카이돔 사용은 여러 측면에서 갖는 의미가 크다. 일단, 프로 입단 아니면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돔구장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 프로 1군 선수들이 사용하는 야구장에서 대회를 치름으로써 선수 생활의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 또 그러하다. 그러한 경험은 결국 한국 프로야구를 살찌울 수 있는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올해는 이러한 기회를 놓쳤지만, 내년에는 프로야구를 주관하는 KBO와 아마야구의 대표인 KBSA가 긴밀하게 공조하여 1개 대회 정도는 고척 스카이돔에서 시행하는 대안을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 아열대 기후로 변경된 한반도는 앞으로 추울 때 더욱 추워지고, 더울 때 더욱 더워진다는 예보가 있다. 그렇다면, 내년에도 올해 버금가는 폭염이 찾아 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에 대한 대안은 열려 있다. 남은 것은 어른들의 움직임 뿐이다.

eugenephil@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