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 선수단’ 대구WFC의 의미 있는 도전

대구WFC 선수단 ⓒ 서진범 대구광역시체육회 생활체육부장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합천=곽힘찬 기자] 제 17회 전국 여자축구 선수권대회 일반부 대구WFC-경남창녕WFC의 경기가 열린 지난달 25일 합천 공설운동장. 이날 대구WFC는 제대로 된 공격 한번 시도해보지 못한 채 창녕WFC에 0-4 대패를 당했다. 하지만 경기를 마치고 나오는 선수단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김연수 단장과 황봉구 감독은 패배한 선수들을 향해 “잘했다” “수고했다”며 끊임없이 격려를 보냈다. 어떻게 보면 승리한 창녕WFC보다 더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선수들 한명 한명과 악수를 하던 김연수 대구WFC 단장을 만나 대뜸 질문을 던졌다. “0-4 대패가 아쉽지 않으시나요?” 김연수 단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WK리그에 뛰는 팀과 이렇게 겨뤄볼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한 거죠. 23일엔 대학부에서 15-0 스코어가 나왔다고 하는데 우리는 0-4로 졌잖아요. 이정도면 선수들이 매우 잘 뛰어줬죠.” 그의 얼굴엔 만족감이 가득 드러나 있었다. 보통 무기력하게 패배했을 경우 감독이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을 불러다 일장 ‘연설’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대패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대구WFC는 어떻게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웃을 수 있는 것일까? 그 이야기를 김연수 단장으로부터 들어볼 수 있었다.

김연수 대구WFC 단장 ⓒ 스포츠니어스

대구WFC를 위해 다시 축구화를 신은 선수들
이번 전국 여자축구 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일반부 팀들 중에 유일하게 WK리그 소속팀이 아닌 대구WFC는 지난해 5월 대구시체육회가 여성축구와 여성들의 생활체육 참여 활성화를 위해 창단했다. 대구는 지난 2011년 이민아의 모교인 영진전문대 축구부 해체 이후 여자축구 쪽에서 굉장한 침체를 겪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인물이 현재 대구WFC 단장을 맡고 있는 김연수 대구시 축구협회 전무이사였다. “대구 여자축구를 대표하던 영진전문대가 해체되고 상원중도 지금 해체단계에 있어요. 거기에 지난 7월 창녕에서 열렸던 여왕기에 출전한 침산초와 상인초도 유명무실해졌습니다. 대구 축구계에 몸담고 있던 제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뭐라도 해야 했죠.”

김연수 단장과 대구시 체육회가 협력해 창단한 대구WFC의 창단 이유를 보면 ‘실업팀 운영에만 집중해 선수들을 양성하는 틀에서 벗어나 일과 운동을 병행하는 선진화된 스포츠클럽 활동을 통한 엘리트 체육 육성을 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시작한 계획엔 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먼저 선수 수급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여자축구 선수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김연수 단장은 고민에 빠졌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순간 도움의 손길이 뻗어져왔다. 축구를 그만두고 일반인들처럼 사회생활을 하던 선수들이 돌아온 것이다. 그 중엔 과거 충남일화를 거쳐 일본 2부 리그에서 2014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다가 현재 상원중 코치를 지내고 있는 이해미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축구를 그만뒀다가 대구WFC 창단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선수들이에요. 정말 고맙죠.” 김연수 단장이 선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축구가 좋아서, 그리고 후배들을 위해
대구WFC가 이렇게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은 선수들 덕분이었다. 이들은 과거 선수로 활동했지만 지금은 개인별로 직장을 가지고 있는 ‘투잡’ 선수들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전문대에서 뛰다 온 선수도 있고, 심판으로 활동하다가 온 선수, 체육회 소속 선수, 헬스클럽 강사, 요가강사, 심지어 일반 회사의 경리로 일하고 있는 선수도 존재한다. 이들은 이날 경기를 위해 직장에서 퇴근 후 개인별로 운전을 해 합천 공설운동장으로 왔다. 이렇게 각자 직장을 다니느라 훈련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훈련은 제대로 못하죠. 각자 직장이 있어서 프로 선수들처럼 훈련하기가 힘들어요”라는 김연수 단장은 “작년엔 훈련비가 나와서 그나마 시간을 내서 훈련을 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훈련비가 없어서 한 달에 한번밖에 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WFC는 실업리그 소속팀이 아니기 때문에 지원을 받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월급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체육회에서 나오는 대회수당을 받는 것이 전부다. 차비는 단장과 감독, 코치들이 받는 수당을 쪼개서 선수들에게 지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선수들은 그 어떤 불만도 없었다. 대구의 침체된 여자축구 열기를 살려보자고 뜻을 모은 이들은 급여도 없는데다가 힘든 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달려와 다시 축구화를 신었다.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었다. 선수들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훈련과 대회 참가를 통해서 예전과 같은 경기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축구가 좋았고 자신들이 선두가 되어 후배들의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 직장을 다니며 사회생활을 하느라 제 기능을 발휘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목표는 같았다. 김연수 단장은 “선수들이 나이가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실업리그 선수들을 상대로 당당하게 겨루는 의미 있는 도전을 계속 하다보면 축구 꿈나무들이나 어린 선수들이 봤을 때 느끼는 것이 있지 않을까요?”라면서 미소를 지었다.

대구WFC 선수단 ⓒ 서진범 대구광역시체육회 생활체육부장 페이스북

‘계란으로 바위치기’, 대구WFC의 노력
대구WFC는 실전경험을 쌓기 위해 지난해부터 전국체전 및 전국 여자축구 선수권대회에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열렸던 전국 여자축구 선수권대회에서는 WK리그 강팀으로 평가받는 인천현대제철을 상대로 2득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대구WFC엔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김연수 단장은 팀을 후원해 줄 기업을 백방으로 찾아다니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창단된 지 겨우 1년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신생팀을 후원해주겠다고 나서는 팀을 찾기엔 쉽지 않았다. 김연수 단장은 “안경사협회 등을 제외하고는 잘 모르겠어요. 현재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후원 기업을 계속 찾고 있는 중이에요. 만약 실패로 돌아가게 되면 최종적으로 체육회에 도움을 요청할 계획입니다”라며 걱정을 토로했다.

김연수 단장이 말하는 최종적인 방법은 선수들이 취업을 체육회로 하는 것이라 말한다. 현재 대구WFC엔 수성구, 달서구 2명씩 총 4명이 체육회 소속 지도 선생님들로 등록이 되어 있다. 대구엔 총 8개의 군, 구가 있다. 각 군, 구마다 2명씩 뽑는다면 16명이 체육회 소속으로 개인적인 지도활동 뿐만 아니라 축구선수로서의 활동도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급여 걱정도 덜 수 있게 되고 대회도 나갈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구WFC는 당장 돈이 목적이 아닌 팀이다. 김연수 단장은 “돈이 먼저가 아니에요. 침체된 여자축구를 살리기 위한 것이죠”라고 강조했다. 김연수 단장은 대구WFC가 WK리그에서 뛰는 것을 꼭 보고 싶다고 한다. “전국체전도 나오고 전국 선수권대회도 나오고 있지만 앞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WK리그에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물론 최하위 예약이지만 선수들에게 정말 의미가 있을 것이고 여자축구 발전에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2~3년 안에 꼭 WK리그에 소속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김연수 단장 “여자축구의 발전을 선도하고 싶다”
최근 여자축구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천대교를 비롯한 팀들이 해체되었고 선수들은 흩어졌다. 대학교와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특히 지소연, 서현숙 등을 배출했던 한양여대의 해체 소식은 여자축구계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정말 지역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먼저 나서게 되면 언젠가 여자축구팀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것이 곧 여자축구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김연수 단장의 생각이었다. “가까운 일본만 봐도 그렇잖아요. 일본이 여자축구 강국인 이유가 축구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것도 있지만 남자축구 못지않게 국민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에요. 국민들의 관심을 계속 가지니까 자연스럽게 발전하고 있는 겁니다.”

보다 못해서 직접 발 벗고 나섰다는 김연수 단장의 모습에는 비장한 각오가 서려있었다. 시작은 대구였지만 대구를 넘어 한국 여자축구 전체가 발전하는 것이 가장 궁극적인 목표라는 김연수 단장은 대구WFC가 꼭 여자축구의 발전을 선도하는 팀으로 남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이 있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노력을 하다보면 분명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김연수 단장이 인터뷰를 마치며 남긴 말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축구팬들에게 대구WFC 뿐만 아니라 여자축구 전체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일본에 질 수는 없잖아요?”

emrechan1@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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