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신태용 결별’ 우리는 이별의 예의가 부족하다


신태용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2006년 6월 27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고별 기자회견이 열렸다. 당시 한국은 1승 1무 1패를 기록하며 원하던 16강 진출이라는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본선 진출 확정 이후 딱 9개월만 대표팀에서 일하고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계약만료로 한국을 떠난 아드보카트 감독은 제일 편하게(?) 일했던 대표팀 지도자 같다. 물론 악의는 없었겠지만 돌이켜보면 아드보카트 감독 만큼 물 들어올 때 노 젓고 떠난 감독도 없다.

아드보카트와 허정무, 그들과의 이별 방식
이유야 어찌됐건 아드보카트 감독은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그는 “아름다운 이 곳에서 하루하루가 정말 즐거웠다”면서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짧은 월드컵 준비 기간에 관한 이야기도 했고 스위스전 선발 멤버와 전략 구상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최종 결정권은 감독인 내게 있다”면서 “난 모든 결정에 있어 코치들과 토론을 거쳤지만 최종 결정은 내가 했다. 책임을 지는 사람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한국 유소년 축구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한국에 대한 인상도 이야기했다. 그는 “서울은 또 다른 뉴욕 같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드보카트 감독은 자신의 향후 거취를 설명하면 한국 축구를 위해 진지한 조언을 했다. “핌 베어벡 감독을 축으로 한 한국의 새로운 코칭스태프는 유능하다. 베어벡 감독과 압신 고트비, 홍명보 코치 모두 뛰어난 지도력과 자질을 갖춘 지도자들이다. 한국은 정말 좋은 선택을 한 것이다.” 비록 월드컵 16강에는 가지 못했지만 9개월 동안 한국을 이끈 감독과의 꽤 깔끔한 결말이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 기자회견을 끝낸 뒤 곧바로 인천국제공항으로 이동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떠났고 이후 러시아로 건너가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입단식을 치렀다. 협회는 비록 원하는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감독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

4년 뒤에는 조금 더 놀라운 기자회견이 벌어졌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뤄낸 허정무 감독은 서울시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이뤄내며 대표팀 유임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은 “내 입장을 분명히 정리하는 것이 차기 대표팀 감독 인선에 부담을 덜고 불필요한 오해나 혼선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독 유임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허정무 감독은 그러면서 “한국에 능력 있는 선배, 동료, 후배 지도자들이 많이 있다. 가능하면 그분들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자리에는 대단히 많은 취재진이 몰려와 허정무 감독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담았다.

허정무
2010년 남아공월드컵이 끝난 뒤 허정무 당시 감독은 예상을 깨고 감독직을 내려 놓았다. ⓒ프로축구연맹

그들이 마지막으로 전하는 메시지
단순히 사퇴 기자회견이 아니라 한국 축구의 깊은 고민에 대해 나누는 시기였다. 월드컵을 통해 느낀 부족함을 솔직히 토로했고 중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도 고민하는 자리였다. 허정무 감독은 “축구를 통해 과분한 은혜를 입었다. 축구를 통해 사랑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축구계에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한국 축구가 발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본다. 어떠한 방식으로건 한국 축구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소통하는 리더십에 대한 고민도 이야기했고 월드컵 그리스전 승리 때는 가장 기뻤다고 했다. 이 공식 기자회견에서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다 기록돼 역사로 남았다. 이 자리에서 허정무 감독은 국민들과 협회, 언론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4년 뒤에는 조금 아쉬운 장면이 있었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끝에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홍명보 감독의 임기는 2015년까지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거센 비난의 여론에 부담을 느끼고 결국 대표팀 감독 사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기자회견 역시 서울시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렸다. 이날도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고 홍명보 감독의 말 한 마디를 놓치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대대적인 보도가 이뤄졌다. 홍명보 감독은 이 자리에서 “이렇게 여러분과 만나게 돼 마음이 무겁고 가슴이 아프다. 월드컵 출발 전 국민들에게 희망을 드린다고 얘기했는데 결과적으로 약속을 못 지키고 실망만 안겨 드렸다.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했다.

홍명보 감독은 이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는 “월드컵을 마친 후 인천공항에 내리면서 사퇴라는 말을 하게 되면 비난을 피해갈 수 있었지만 이 비난까지 받는 것이 내 몫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월드컵 기간에 경기력, 기술적인 문제 등에 대해 모든 것을 내가 판단했고 결정했다. 순간순간 최선이라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실패가 있었던 점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홍명보 감독은 “대표팀 감독으로 1년 여 정도 시간을 보냈는데 많은 일도 있었고 많은 실수도 있었고 잘못된 점도 있었다. 나 때문에 오해도 생겼고 성숙하지 못했다. 죄송하다”고 했다. 이 기자회견은 뉴스 전문 보도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홍명보
홍명보 감독도 기자회견을 통해 마지막 인사를 전했었다.. ⓒ기아자동차

입국 기자회견 이후 사라진 신태용 감독
모양새가 좋았던 적도 있고 그렇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누구나 다 박수를 받으며 떠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질책의 중심에 서 있었던 대표팀 감독은 떠날 때 작별 인사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그게 바로 대중에 대한 예의다. 마지막 공식 발언 기회를 통해 사과를 하고 싶은 부분은 사과하고 한국 축구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던지고 월드컵에서 경험한 것들을 공유하는 게 마지막 임무다. 자신의 향후 거취를 밝히고 그것도 아니면 덕담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월드컵 때는 엄청난 관심을 보여주고 빨대 꽂아 쪽쪽 빨아먹다가 월드컵이 딱 끝나면 나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그게 상상할 수도 없는 부담감을 안고 싸우는 대표팀 감독에 대한 마지막 예의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땠을까. 신태용 감독은 지난 6월 29일 2018 러시아월드컵에 나선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해 약식 기자회견을 가진 뒤 그 어떤 공식 석상에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계약기간은 지난 7월 31일까지였는데 러시아에서 돌아온 뒤에는 개인적인 일정만 소화했을 뿐 협회의 공식적인 일정은 단 한 차례도 한 적이 없다. 그 사이 협회는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 언론의 주인공이 돼 새로운 감독 후보들만이 줄줄이 언급되고 있다. 이에로 이야기가 나오고 스콜라리 이야기도 나온다. 셀라데스라는 사람도 언급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신태용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불과 40일 전만 하더라도 온갖 부담은 다 떠넘겼던 이를 이제는 신경도 안 쓴다. 그 사이 신태용 감독의 계약기간은 아무도 모르게 끝이 났다.

협회는 타이밍을 놓쳤다. 김판곤 위원장은 신태용 감독도 새로운 감독 후보군과 동등하게 경쟁시키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사이 신태용 감독 임기가 만료됐다. 신태용 감독은 대표팀을 응원한 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대표팀을 떠났다. 이게 과연 월드컵을 이끈 감독에 대한 예의인지 묻고 싶다. 3전 전패를 했어도, 아니면 8강에 갔어도 성과와는 상관없이 마지막으로 대표팀 감독에게 소감을 듣고 정리할 건 정리하고 고마운 이들에게는 인사하고 후임 감독에게 전할 말도 남기고 그런 기회 정도는 줘야하는 것 아닐까. 지난 6월 29일 이후 임기가 한 달이나 넘게 남았던 신태용 감독에게는 이런 기회가 일절 주어지지 않았다.

신태용
신태용 감독은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다. ⓒ스포츠니어스

신태용 감독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자
전임 감독에 대한 예우가 전혀 없다. 협회에서 그 흔한 기자회견 한 번 열어주지 않았다. 대표팀 감독이라는 사람이 협회가 자리도 만들어주지 않았는데 어디에 가서 먼저 감사 인사를 전하고 대표팀 문제점을 이야기하며 떠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참고로 월드컵이 끝난 뒤 조현우와 김영권 등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수 차례 출연했고 K리그 선수들은 프로축구연맹이 주관한 미디어데이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협회 차원에서 이 대회를 이끈 수장이 마지막 인사할 자리도 마련해주지 않은 건 대단히 아쉬운 일이다. 김판곤 위원장이 새 감독을 선임한다고 발표하기 전에 신태용 감독을 멋지게 보내주는 게 먼저였다. 전임 감독은 임기가 만료되는 순간까지도 고생했다는 메시지 한 번 남길 자리도 마련해 주지 않으면서 무슨 명장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전임 감독에 대한 예우가 없는데 명장이 올 리 만무하다.

신태용 감독 임기가 끝나는 지난 달 31일 그에게 전화를 했다. 마치 아무도 챙기지 않는 헤어진 전여자친구의 생일을 혼자 기억하고 있던 기분이랄까. 그래도 이렇게라도 고생했다는 말을 남겨야 할 것 같아 웃으며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고 했더니 “고맙다”는 말이 돌아왔다. “할 이야기가 많으실 텐데 인터뷰 한 번 해달라”고 하자 “정말 할 이야기는 많지만 내가 다 묻고 있다가 10년쯤 뒤에 하겠다”고 웃는다. 나도 “곧 K리그 경기장에서 뵙자”고 하고는 전화를 마쳤다. 이제 신태용 감독의 ‘독점 심경 고백’은 모든 언론사에서 노리는 특종이 됐다. 그 전에 협회에서 자리를 한 번 마련해 모든 언론과 팬들을 향해 신태용 감독이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도록 했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이렇게 국가대표팀 감독이 씁쓸하게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도록 한 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너무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아닌가 싶다. 또 다시 우리는 세계적인 명장이 와서 한국 축구를 일으켜 세워줄 거라는 희망에 도취돼 있다. 나도 물론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축구의 명운을 걸고 싸웠던 수장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못했다. 이렇게 앞만 보고 달리는 팀이 과연 제대로 갈 수 있을까. 필요한 만큼만 관심을 주고 그 기간이 끝나면 딱 잘라버리는 걸 프로라면 프로라고 봐야 할까. 아무리 그래도 계약기간이 끝나는 대표팀 감독이 고별 기자회견을 할 기회라도 한 번 마련해 주는 게 최소한 작별에 대한 예의 아니었을까. 이 자리를 통해 축구 인생을 걸고 대표팀을 멋지게 이끌어준 신태용 감독에게 진심으로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은 축구 인생을 걸고 정말 멋지게 싸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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