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수많은 축구선수들의 공통된 꿈이 하나 있다. 국가대표다.

많은 선수들은 국가대표를 꿈꾸며 땀을 흘린다. 세상에는 많은 축구선수가 있고 그 중에 태극마크를 다는 선수는 극히 소수다. 누군가는 '영광'이라고 한다. 평생 한 번 달기도 어려운 것이 태극마크다. 그렇기에 국가대표는 많은 선수들에게 꿈과 희망이다.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은 '가장 잘한다'는 훈장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대표팀에서 도망을 쳤던 선수가 있다. 알고보니 이 선수 은근히 도망 전문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축구를 그만둘까 고민했던 선수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흔들렸던 그녀는 화천정산고 김유미 감독의 '밀당'에 조금씩 마음을 다잡고 있다. 그만큼 실력 있는 선수기에 김 감독이 그녀를 조련했을 것이다. 유쾌하면서도 솔직한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다. 화천정산고 문하연의 인생을 소개한다.

탱탱볼로 시작한 축구로 자신감 얻다

그녀의 축구 인생은 굉장히 사소하게 시작됐다. 그녀의 아버지는 과거 태권도 사범이었다. 그녀는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치면 태권도 학원에 가 태권도를 배웠다. 태권도장 안에서 문하연은 마음껏 뛰어 놀았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축구를 접했다. 제대로 된 축구도 아니었다. 그냥 '공놀이'었다. "축구공도 아니고 탱탱볼로 했어요. 그런데 그게 참 재밌었어요."

그녀는 당시 경기도 화성에 살았다. 그곳에는 여자축구부가 없었다. 대신 문하연은 남자 축구 클럽에 들어가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거기서 그녀는 조금씩 재능을 발견했다. 다른 남자 선수들이 그녀의 모습을 보며 "쟤 여자야?"라며 수군댔다. "그 때는 다들 잘한다고 해줘서 겸손이란 걸 몰랐죠. 오만했어요. 남자 선수들의 시선에 '응. 나 다 잘해' 이런 느낌으로 살았죠."

문하연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축구부에 들어갔다. 안양에 있는 부흥중학교였다. 그 때부터 그녀는 축구선수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는 모든 것이 장밋빛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여자축구는 마냥 꿈을 꾸기에는 너무나 열악했고 힘들었다.

해체와 대표팀 소집, 그리고 첫 번째 탈출

과거 부흥중은 여자축구의 명문 학교였다. WK리그 선수와 대표팀 선수를 여럿 배출한 팀이다. 그곳에서 문하연이 계속해서 축구를 했다면 순탄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부흥중은 해체되고 말았다. 그녀에게는 하나의 시련이었다. 새로운 팀을 알아봐야 했다. 문하연이 향한 곳은 강릉이었다. 강릉 하슬라중에서 새로운 축구 인생을 살아야 했다.

"솔직히 해체가 부끄러웠어요." 어린 중학생에게는 팀 해체의 심적 고통이 부끄러움으로 표현됐다. 새로운 학교에서 팀 동료들은 그녀를 붙잡고 물어봤다. "거기는 왜 해체됐어?" 물론 동료들은 그녀를 향한 걱정 섞인 마음에 던진 질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매번 해체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 일련의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와중 그녀는 대표팀에 승선했다. 2016년 5월의 일이었다. 당시 2016 AFC 여자 U-14 지역 챔피언십을 위해 발표된 소집 명단에 문하연의 이름이 있었다. 경사였다. 문하연은 처음으로 파주 트레이닝센터를 밟았다. 하지만 그녀는 웃지 못했다. 오히려 강한 부담감이 짓누르고 있었다. "제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았어요."

"사실 파주에 가기 싫었어요. 대표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니었어요. 아직은 제가 대표팀에 갈 때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런 자리에 간 것이 부담스러웠어요. 제 자신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그녀는 동행한 아버지에게 "나가겠다"며 짐을 싸 파주를 떠났다. 스스로 대표팀을 나온 것이었다.

좀처럼 마음 못잡은 문하연, 그리고 두 번째 탈출

어릴 적 좋아서 시작한 축구지만 문하연은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했다. "축구가 너무 하기 싫었어요. 너무 힘들어요. 몸도 마음도 힘들었어요. 훈련도 힘들게 느껴졌어요. 훈련 끝나고 숙소에 오면 곧바로 침대에 뻗었어요." 하지만 그녀의 축구 실력은 여전했다. 165cm로 크지 않은 키지만 탄력 있고 헤더를 잘 따내는 센터백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아무리 축구가 싫다고 해도 문하연은 유망주였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녀가 향한 곳은 화천이었다. "화천 때문에 두 번 놀랐어요. 한 번은 화천정산고 언니들 보면서 '우와… 저걸 저렇게 하네'라고 감탄했고 화천에 도착하자 '헉…'하고 놀랐어요. 강릉이나 안양에 비해 정말 좁은 도시였어요. 군인도 진짜 많았어요." 김유미 감독이 그녀를 화천정산고로 부른 것이었다.

강릉 하슬라중에 갈 때도 경포대 밖에 몰랐던 문하연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모르는 동네인 화천까지 갔다. 그녀의 내적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화천정산고의 훈련은 생각보다 혹독했다. 축구가 하기 싫었던 문하연은 더욱 힘들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결국 과거의 경험을 살려 한 번 더 결단을 하게 된다. '나가자.'

무작정 도망쳐 간 춘천에서의 하루

어느 날 수업 시간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교실 밖을 나갔다. 그리고 교문 밖을 나섰다. 아무도 모르게 그녀는 학교 밖을 빠져나왔다. 두 번째 탈출이었다. 화천에서는 그녀가 떠돌 곳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문하연은 화천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한 장이요." 그녀는 버스 표를 끊었다. 행선지는 춘천이었다.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으로 향했다.

춘천에 도착한 문하연은 정처 없이 떠돌았다. 닭갈비 사먹을 돈도 없었다. 그저 춘천 일대를 배회했다. 그녀는 혼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계속해서 축구를 해야 할까? 여기서 축구를 그만두면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문하연은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지금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축구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축구를 해야 했어요." 슬픈 이야기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축구를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선뜻 돌아가지 못했다. 축구는 그녀를 괴롭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화천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죄송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마음에 걸렸어요. 저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시는데 도망이나 나왔잖아요. 그 때도 걱정하고 계실 것 같았어요. 누가 돌아오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제 발로 돌아갔어요." 문하연은 탈출 24시간을 살짝 넘겨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그리고 김유미 감독에게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혼났다. 그렇게 그녀의 두 번째 탈출은 비교적 짧게(?) 끝났다.

친구가 알려준 '긍정적인 삶'

김 감독은 문하연과 '밀당'을 하며 조련했다.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혼내며 그녀를 축구선수로 키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문하연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김 감독은 문하연의 변화에 놀랐다. 그래서 한 번은 농담 삼아 그녀에게 말했다. "요즘 네가 정말 밝아져서 나는 좋아. 근데 하연아. 나는 솔직히 조금 불안해. 지금 내가 너를 본 이후로 가장 밝은 것 같아."

알고보니 비결이 있었다. 친구들의 조언이었다. "지금 경남로봇고에 있는 친구 최선아가 제게 말해줬어요. '나는 이제부터 긍정적으로 살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살면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부정적인 삶을 산대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도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모든 일에 수긍하고 넓은 마음을 갖고 항상 '나는 괜찮아'라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어요. 세상이 좀 달라보이던데요?"

화천정산고에서의 탈출 이후로 그녀는 코칭 스태프와 더욱 돈독해졌다. 김 감독이 때로는 선수들을 강하게 질책할 때도 있지만 문하연은 이제 김 감독의 마음을 이해하는 경지(?)에 올랐다. "감독님이 무섭게 혼은 내세요. 하지만 무섭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원래 감독님이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요. 잘 웃으시고 때로는 귀여우실 때도 있어요. 감독님이 화를 내실 때는 내셔야 할 타이밍인 것을 이해하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라"

한동안 방황했던 문하연은 이제 다시 축구화 끈을 질끈 묶고 있다. 그녀는 선언했다. "이제 다시는 도망갈 일 없을 겁니다." 두 번의 탈출을 감행한 끝에 얻은 교훈이다. "도망친 것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아요. 소중한 교훈을 얻었어요. 하지만 다시는 하지 않을 겁니다. 도망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도 알고 그런 일을 하면 저만 손해보는 일이거든요. 마음도 불편하고요."

그러면서 그녀는 김 감독의 명언을 인용해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김 감독님이 항상 하는 말 중에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있어요. 저처럼 축구가 힘들어서 도망칠까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도망은 철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지금 와서 생각하보면 그 때 참 철이 없었던 것 같아요."

문하연의 꿈은 소박하지만 크다. 남들처럼 '국가대표팀 승선'을 외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선수들에게 '쟤는 뚫기 어려워. 저 팀을 이기려면 반대쪽을 공략해야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태풍에 시달리던 어린 나무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그리고 이제 태풍도 조금씩 그쳐가고 있다. 이 나무는 얼마나 우람하고 튼튼하게 성장할까. 아직 문하연의 이야기는 미완성이기에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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