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밀란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임형철 기자] 사미르 한다노비치는 인터밀란 팬들에게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통한다. 게다가 그의 선방에 수차례 좌절을 맛본 세리에A 상대 팀 팬들조차 한다노비치의 진가는 굉장하다며 입을 모은다. 2012년부터 인터밀란의 암흑기 내내 골문을 지킨 한다노비치는 활약에 비해 잘 거론되지 않는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이다. 긴 시간 활약을 지켜본 세리에A 팬들에게 그는 다비드 데 헤아, 얀 오블락, 마누엘 노이어 등 세계 최고의 골키퍼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선수다. '한다신'이라는 별명이 그가 얼마나 팬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는지 말해준다.

그러나 한다노비치의 존재감이 유독 다른 선수들보다 부족한 이유는 챔피언스리그 출전 경험이 전혀 없는 탓이 크다. 우디네세, 인터밀란에 긴 시간 몸담았던 한다노비치는 소속팀의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을 단 한 차례도 경험하지 못했다. 좋은 기량을 가졌고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는 골키퍼지만 활약상이 세리에A 안에서만 국한된 탓에 세계적인 골키퍼로 이름을 올리기에 늘 존재감이 부족했다. 게다가 챔피언스리그에서 확실한 활약을 보여줘야 앞서 언급한 골키퍼들과의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2017-18 시즌 인터밀란이 세리에A 4위를 기록하면서 6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누구보다 챔피언스리그 본선 출전에 대한 열망이 컸던 사미르 한다노비치도 34세의 나이에 기어코 꿈을 이뤘다. 챔피언스리그 본선 무대를 밟기 위해 한다노비치는 2003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후 15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는 어떻게 세리에A에 정착했고 인터밀란의 골키퍼가 되어 끝내 챔피언스리그 본선 출전을 확정했을까. ‘한다신’ 사미르 한다노비치의 지난 경력을 되돌아본다.

사촌 형 야스민 한다노비치(중앙)도 슬로베니아 명문팀 마리보르에서 여전히 주전으로 활약 중이다 ⓒ 마리보르 페이스북

한다노비치 가족에 길 열어준 ‘NK 자고르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국적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사미르 한다노비치에겐 6년 일찍 태어나 일찍 골키퍼 길을 걷기 시작한 사촌 형 야스민 한다노비치가 있다. 두 사람 모두 190cm가 넘는 큰 키를 갖고 태어난 덕에 골키퍼를 하기에 안성맞춤인 신체 조건을 가졌다. 1996년에 프로로 데뷔한 사촌 형 야스민은 프로 데뷔 후 6년간 자국 1부 리그 팀인 NK 올림피아와 NK 트리글라브 크란에서 후보 골키퍼 입지에 머물렀다. 주전 자리에 대한 갈망이 컸던 야스민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팀은 2부 리그 팀 NK 자고르예였다.

야스민 한다노비치는 2002-03 시즌 NK 자고르예에서 한 시즌 리그 30경기를 소화하며 데뷔 후 처음으로 주전 골키퍼를 맡았다. 야스민 한다노비치는 자고르예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한 시즌 만에 경쟁팀 NK 스보보다로 팀을 옮겼다. 야스민 한다노비치의 이적 탓에 주전 골키퍼가 빈 NK 자고르예는 즉시 그의 사촌 동생 사미르 한다노비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시 NK 돔잘레 1군 팀에 이제 막 올라왔던 사미르 한다노비치는 사촌 형의 친정 팀 자고르예와 임대 계약을 맺어 꾸준히 경기에 나설 소중한 기회를 잡았다.

한 시즌 전 사촌 형이 그랬던 것처럼 사촌 동생 사미르 한다노비치도 자고르예에서 맹활약을 이어갔다. 그는 임대 기간 11경기에 출전하며 2003-04 시즌 자고르예의 2부 리그 돌풍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때마침 자고르예의 경기를 지켜보던 세리에A 우디네세의 스카우터들은 사미르 한다노비치가 뛰는 모습을 본 후 흠뻑 빠져들었다. 한다노비치가 가진 잠재성에 주목한 덕에 영입 작업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결국 사미르 한다노비치는 자국 슬로베니아 프로 무대에서 한 시즌을 마치자마자 우디네세의 제의를 받아 이탈리아 세리에A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의 나이 20살 때의 일이었다.

사촌 형 야스민 한다노비치(중앙)도 슬로베니아 명문팀 마리보르에서 여전히 주전으로 활약 중이다 ⓒ 마리보르 페이스북

쉽지 않았던 '한다신'의 세리에 정착

어린 나이에 우디네세에 입성한 한다노비치는 첫 시즌 후보 골키퍼 입지에 머물며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2004년 여름에 우디네세와 계약한 한다노비치가 세리에A 데뷔전을 가진 건 다음 해 5월 15일의 일이었다. 그는 부상을 당한 모르간 데 산치스를 대신해 전반 28분 교체 투입되어 어렵게 세리에A 무대를 밟았다. 결국 우디네세의 코치진 및 관계자는 유망한 한다노비치를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전 경험이 더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린 채 2005-06 시즌부터 그를 임대 명단에 올리기 시작했다.

한다노비치는 2005년 여름 세리에A 경쟁 팀 ACD 트레비소로 임대돼 출전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개막전부터 인터밀란을 상대로 3실점을 내주며 무너졌고 3R 라치오전에서 후반 40분에 퇴장을 당하면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그의 트레비소 임대는 결국 라치오전 퇴장 하나로 꼬이고 말았다. 트레비소가 출전 기회를 준 지 세 경기 만에 큰 실망감을 느낀 탓에 이후 한다노비치에게 단 한 번의 출전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한 우디네세가 즉시 후반기 라치오로 재임대를 보냈지만 여기서도 도통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방황을 거듭했다. 그는 리그 최종전 파르마전이 되어서야 1군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세리에A 팀에 임대되는 동안 도통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한 한다노비치는 결국 하부 리그로의 진출이 불가피했다. 그는 2006-07 시즌에 세리에B의 리미니 FC로 1년간 임대됐다. 리미니 FC에서 그는 확실한 반등을 이뤘다. 대표팀에 차출돼 결장한 세 경기를 제외하고 리그 전 경기에 나서며 팀 주전 골키퍼로 확고한 신뢰를 받았다. 5위로 시즌을 마친 리미니 FC는 당시 세리에B 22팀 중 네 번째로 적은 실점을 기록했다. 주전 골키퍼 사미르 한다노비치의 빼어난 선방 능력과 안정감이 빛을 발하면서 리미니 FC가 예년과 다른 돌풍의 시즌을 보낼 수 있었다.

리미니 FC에서의 놀라운 활약상이 전해지자 원소속팀 우디네세도 유망주 사미르 한다노비치를 즉시 전력감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때마침 8년간 우디네세의 골문을 지킨 모르간 데 산치스가 팀을 떠나면서 주전 골키퍼 자리도 공석이 됐다. 한다노비치가 팀의 주전 골키퍼가 되기 위해 넘어야 했던 마지막 관문은 과거 로마, US 레체, 칼리아리에서 주전 골키퍼를 역임한 바 있는 안토니오 키멘티였다. 2007-08 시즌 첫 두 경기는 키멘티가 선발로 나왔으나 2R 나폴리전에서 5실점을 허용하면서 점수가 깎였다. 결국 3R부터 주전 기회는 한다노비치에게 넘어갔다. 이후 맹활약을 펼친 그는 한 번 잡은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고 5시즌 동안 팀의 주전 골키퍼로 이름을 올렸다.

닿을 듯 닿지 않았던 챔피언스리그 본선 무대

한다노비치가 주전 골키퍼를 맡는 동안 우디네세는 세리에A 중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2009-10 시즌엔 극심한 부진에 빠져 15위까지 순위가 내려가기도 했다. 우디네세 자체적으로 2010-11 시즌엔 반등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 결과 프란체스코 귀돌린 감독이 확고한 수비 축구를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면서 대성공을 이뤘다. 당시 세리에A 4위 팀에는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주어졌다. 1, 2차전으로 구성된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면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을 확정할 수 있었다. 시즌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돌풍을 이어간 우디네세는 끝내 4위 자리를 지키며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로 올라섰다.

그러나 하필 2011-12 UEFA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상대 팀이 당시 플레이오프 진출 팀 중 최강팀이라 불릴 만했던 아스날이었다. 대진운이 유독 좋지 않았던 우디네세는 결국 아스날을 상대로 시오 월콧, 로빈 반 페르시에게 실점을 내준 끝에 1, 2차전 합계 1-3으로 패배하며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우디네세 주전 골키퍼를 맡은 지 5시즌 만에 챔피언스리그 본선 출전을 눈앞에 둔 한다노비치도 꿈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그는 시즌이 끝난 후 인터밀란으로 팀을 옮겼지만 긴 시간 챔피언스리그와는 더욱 더 멀어지고 말았다.

사촌 형 야스민 한다노비치(중앙)도 슬로베니아 명문팀 마리보르에서 여전히 주전으로 활약 중이다 ⓒ 마리보르 페이스북

줄리우 세자르의 확실한 대체자

2007년부터 우디네세의 주전 골키퍼를 역임한 한다노비치는 당시 베테랑 모르간 데 산치스의 빈자리를 대체하며 안정적으로 팀에 정착했다. 2012년 여름 인터밀란으로 이적한 후에도 그는 긴 시간 팀을 지킨 베테랑 골키퍼의 빈 자리를 대체해야 했다. 한다노비치의 임무는 막중했다. 2005년부터 7년간 인터밀란의 골문을 지켰고 2010년 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견인하기도 했던 전설 줄리우 세자르의 빈 자리를 메워야 했다. 줄리우 세자르의 등 번호 1번을 넘겨받은 한다노비치는 곧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을 예고했다.

한다노비치는 안정적으로 팀의 골문을 지켰다. 그는 인터밀란에서의 첫 시즌 때 2012-13 세리에A 베스트 일레븐에 등극했고 세리에A 올해의 골키퍼 상을 받았다. 놀랍게도 당시 인터밀란는 리그 9위를 기록하며 극심한 부진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암흑기가 드리운 팀에서 홀로 골문을 지키는 활약이 매우 대단했기에 단번에 세리에A 최고의 골키퍼로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었다. 당시 한다노비치의 경쟁자 중 한 명이었던 유벤투스의 지안루이지 부폰은 훗날 “한다노비치가 이탈리아 세리에A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이다”며 그의 기량을 높게 평가했다.

한다노비치가 날아오를 때마다 인터밀란에 드리운 먹구름은 더 짙어져만 갔다. 팀은 연속으로 챔피언스리그 본선 복귀에 실패했고 예전과 같은 리그 상위권 진입에도 애를 먹었다. 2015-16 시즌엔 모처럼 리그 4위를 기록하긴 했지만 당시 세리에A의 챔피언스리그 진출 팀이 세 팀으로 감소한 탓에 4위였던 인터밀란은 유로파리그 본선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한다노비치의 인터밀란 소속 5번째 시즌이기도 했던 2016-17 시즌엔 새로 부임한 프랑크 데 부어 감독의 이른 경질을 시작으로 시즌 내내 감독 교체가 반복되면서 다시 험난한 시기를 보냈다. 챔피언스리그 본선 출전을 꿈꾸던 한다노비치의 나이는 어느덧 30대 중반을 향해가고 있었다.

사촌 형 야스민 한다노비치(중앙)도 슬로베니아 명문팀 마리보르에서 여전히 주전으로 활약 중이다 ⓒ 마리보르 페이스북

‘한다신’ 34세의 나이로 꿈을 이루다

2017-18 시즌 인터밀란를 향한 기대치는 크지 않았다. 직전 2016-17 시즌에 보여준 부진 탓에 이전 시즌 4위의 성적으로 잠시 생겨난 기대도 한풀 꺾이고 말았다. 그러나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인터밀란에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선 세리에A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UEFA 챔피언스리그의 대대적인 개편 덕에 이제 세리에A 4위 팀까지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바로 직행할 수 있었다. 과거 4위에 올랐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좌절을 맛봤던 우디네세의 사례를 고려하면 챔피언스리그 본선을 향한 관문이 더 양호해진 셈이었다.

인터밀란에도 새 바람이 불었다. 직전까지 로마를 이끌었던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이 인터밀란의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스팔레티는 인터밀란이 먼저 목표로 삼았던 감독 후보는 아니었지만 세리에A에서 잔뼈가 굵고 맡은 팀에서 성과를 내는 데 능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새 시즌 반등의 가능성을 심어줬다. 동시에 삼프도리아에서 잠재력을 뽐낸 95년생 신예 센터백 밀란 슈크리니아르가 영입됐다. 리그 4위에 대한 동기부여, 감독 교체, 수비진의 개편 등 대대적인 변화를 맞은 인터밀란은 리그 개막과 동시에 피오렌티나, 로마를 연달아 꺾으면서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시즌을 예고했다.

세리에A와 인터밀란에 분 새 바람은 대단히 호전적이었다. 슈크리니아르를 중심으로 개편된 수비는 이전 시즌까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인터밀란 수비의 안정감을 가져다줬다. 여기에 변함없는 한다노비치의 선방 능력이 더해지면서 인터밀란은 16R 유벤투스전까지 무패행진을 달렸다. 이 기간에 강호 나폴리, 유벤투스를 상대로도 0-0 무승부를 거뒀는데 여기에는 한다노비치 골키퍼의 선방 세례가 매우 크게 이바지를 했다. 챔피언스리그 본선에만 올라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시즌에 전반기 상위권 진입을 넘어 우승 후보로까지 꼽히는 등 인터밀란의 돌풍이 거세게 일어났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 기복이 발생하면서 승리를 못 거두는 일이 많아진 인터밀란은 자칫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마저 어려워지는 상황까지 몰렸다. 게다가 37R 사수올로를 상대로 홈에서 1-2로 패한 탓에 자칫 4위 라치오의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이 조기 확정될 뻔했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라치오가 37R 크로토네전에 역전패를 당하면서 인터밀란이 라치오와의 최종전을 승리하면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을 이룰 수 있었다. 결국 치고받는 명승부 끝에 후반 33분, 36분에 터진 연속골로 3-2 승리를 거둔 인터밀란은 6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사촌 형 야스민 한다노비치(중앙)도 슬로베니아 명문팀 마리보르에서 여전히 주전으로 활약 중이다 ⓒ 마리보르 페이스북

그들이 챔피언스리그를 맞는 법

6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오른 인터밀란은 어느 때보다도 착실하게 시즌 준비에 나서고 있다. 2선 공격진의 강화를 위해 남미 최고 유망주라 불리는 라우타로 마르티네스와 지난 시즌 사수올로의 에이스 마테오 폴리타노를 영입했고 중앙 수비에 스테판 데 브라이, 왼쪽 풀백 겸 중앙 미드필더로 콰드오 아사모아, 로마 중원의 핵심이었던 라자 나잉골란을 영입했다. 게다가 오른쪽 풀백을 포함해 아직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포지션에 일부 추가 보강을 계획 중에 있다. 지난 시즌 주축이었던 주앙 칸셀루와 하피냐의 완전 영입이 틀어진 것은 아쉬우나 보강 선수들의 면면도 만만치 않아 새 시즌 큰 기대를 모은다.

한다노비치도 생애 첫 챔피언스리그 본선 출전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7월 초 팀에 복귀한 그는 인터밀란의 친선전 네 경기 중 세 경기에 나선 후 지난 27일 첼시와의 2018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 첫 번째 경기에도 선발로 출전했다. 이날 조르지뉴의 중거리 슛을 막아내며 능력을 과시한 한다노비치는 비록 패하긴 했지만 승부차기에서 두 번 연속 키커의 방향을 읽어내는 등 기염을 토했다. 새 시즌 챔피언스리그 본선 무대를 바라보는 인터밀란과 한다노비치는 절실함이 있다. 오래 기다린 만큼 어렵게 얻어낸 진출 기회를 후회 없이 즐기겠다는 각오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인터밀란의 골문은 줄리우 세자르가 든든히 지키고 있었다. 이 시기 인터밀란은 2009-10 시즌 트레블을 달성하는 등 영광의 시기를 보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돌고 돌아 다시 인터밀란이 챔피언스리그 본선 무대에 도전한다. 이제 줄리우 세자르는 없지만 세자르 못지않은 No.1 골키퍼 사미르 한다노비치가 굳건히 골문을 방어한다. 챔피언스리그 본선 출전을 위해 긴 시간 노력을 기울였던 한다노비치는 이제 34세의 나이로 그동안의 경력 중 가장 위대한 도전에 나선다. 다시 한 번 별을 보게 된 인터밀란과 한다노비치, 그들의 2018-19 시즌은 누구보다도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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