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로봇고 골키퍼 하지희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합천=김현회 기자] 지난 22일 제17회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 고등부 경남로봇고와 전남광양여고의 경기가 열린 경남 합천 인조3구장. 최근 여자 U-18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린 골키퍼 하지희는 경남로봇고 골문을 틀어 막았다. 상대 공세에 여러 차례 선방을 보였지만 결국 한 골을 내주며 팀은 0-1로 무너졌다. 하지만 패배에 대한 아쉬움보다 더 큰 걱정이 생겼다. 하지희가 이 경기에서 허벅지 근육 부상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곧 있을 AFC 여자 U-19 챔피언십 대비 훈련보다도 당장 치러야 하는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 남은 두 경기가 더 걱정이었다.

당장 이틀 뒤가 문제였다. 강원화천정산고와의 중요한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허벅지를 다쳐 제대로 킥도 소화할 수 없는 몸 상태였기 때문이다. 회복에 주어진 시간은 딱 이틀이었다. 하지희는 합천에서 할 수 있는 걸 다했다. 대형 병원도 없는 합천에서 물어물어 한의원을 찾아가 치료를 받았고 동료들이 다 훈련을 하러 가면 숙소에 남아 전기 치료를 했다. 계속 얼음 찜질을 하고 스트레칭을 했다. 이틀 만에 기적적으로 회복해 동료들과 다음 경기에 나서기 위한 처절한 사투였다. 더군다나 1패를 안고 있던 경남로봇고로서는 2패면 탈락이 확정되는 위기 상황이었다. 그렇게 이틀 뒤 결전의 날이 밝았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남로봇고 조승제 감독은 고심 끝에 결국 하지희를 경기에 투입하지 않았다. 팀의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주전 골키퍼였고 팀의 유일한 대표 선수일 만큼 믿는 존재지만 완벽하지 않은 몸 상태로 경기에 내보내는 건 선수의 미래를 위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하지희는 동료들이 뛰는 모습을 벤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희가 빠진 경남로봇고는 전,후반에 각각 두 골씩 실점하며 0-4로 무너졌다. 2패로 탈락도 확정됐다. 하지희는 당시에 대해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 때문에 이렇게 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면서 “팀에 피해를 주고 말았다”고 고개를 떨궜다.

하지희에게는 다시 이틀의 시간이 주어졌다. 이미 탈락은 확정됐지만 오랜 시간 동료들과 함께 준비해온 대회를 잘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충북예성여고와의 마지막 경기를 앞둔 그녀는 다시 한의원을 찾아갔고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았다. 열악한 상황에서 대단히 좋은 치료 기술도 없었다. 허벅지 근육을 회복하기 위해 숙소에서 계속 마사지를 하고 스트레칭을 했다. 무조건 마지막 경기에서는 뛰겠다는 의지 하나로 그렇게 이틀을 더 보냈다. 하지희는 “마음이 급했다”고 했다. 그녀의 간절한 바람이 닿았기 때문일까. 하지희는 완벽히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고통을 참고 몸을 날릴 수준까지는 회복했다.

결국 조승제 감독은 이미 탈락이 확정된 상황에서도 하지희에게 마지막 기회를 줬다. 간절히 뛰고 싶은 제자를 위한 배려였다. 그런데 이날 하지희는 부상을 당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할 수 없는 선방쇼를 보여줬다. 전반에만 예성여고의 유효슈팅을 네 개나 몸을 던져 막아냈다.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도 “와, 쟤는 진짜 잘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더니 “이번에 대표팀에 뽑혔네. 역시 대표선수는 다르다”고 극찬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하지희가 부상을 안고도 간절한 마음으로 마지막 경기에 나섰다는 걸 알지는 못했다. 그만큼 아픈 티를 조금도 내지 않고 몸을 내던졌기 때문이다. 하지희는 전반을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막아냈다.

후반 들어 조승제 감독은 종료 11분을 남기고 하지희를 뺐다. 후배인 김민영을 투입하면서 하지희를 벤치로 불러 들였다. 부상으로 원 없이 뛰지 못했던 하지희에게 충분한 기회를 줬다고 판단했고 이미 탈락이 확정된 경기에서 이제 대표팀에도 가야하는 선수를 더 오래 기용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하지희는 마지막 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그라운드를 빠져 나왔다. 이 한 경기를 위해 부상을 당하고 나흘의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걸 다 했던 그녀의 이번 대회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비록 경남로봇고는 16강에 오르지 못해 이 경기를 끝으로 짐을 싸야 했지만 그래도 하지희는 어려운 여건에서 팀을 위해 헌신했다.

경기를 마친 후 만난 하지희는 “사실 너무 떨렸었다”면서 “경기 도중에도 킥을 할 때면 통증이 느껴졌다”고 했다. 하지희는 “걱정이 많았는데 동료들이 잘해줘 만족스러운 경기였다”며 “비록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지만 결과는 이래도 과정은 좋았다. 숙소에서 부상 치료한다고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러면서 동료들과 추억도 많이 쌓았다”고 웃었다. 대회를 일찌감치 마감한 하지희는 섭섭하면서도 후련한 감정이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하며 0-0으로 비겼지만 그래도 무실점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경남로봇고는 이렇게 1무 2패로 대회를 마감했다. 그녀는 “부상으로 팀에 보탬을 주지 못해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그래도 다같이 열심히 해준 과정 자체에 팀원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이제 하지희는 대표팀을 바라본다. U-18 대표팀에는 처음으로 선발됐다. 처음 본 관중도 불과 몇 분 만에 “쟤는 국가대표에 뽑힐 만하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하지희의 실력은 돋보였다. 이제 하지희는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국가대표로 향해야 한다. 하지희는 “아직 국제대회 경기에 나가 보지는 못했다. 이제 막 훈련을 같이 하는 단계다. 그런데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부상 없이 더 발전하고 싶다”는 각오를 다졌다. 하지희는 마지막으로 경남로봇고 선수다운 말을 남겼다. “이제 휴식을 취하며 병원을 좀 다닐 생각이다. 우리 학교 이름이 특이해 사람들이 로봇을 만드는 학교 아니냐고 장난삼아 묻는데 우리 학교는 정말 로봇을 만드는 학교가 맞다. 나도 로봇처럼 다치지 않고 경기에 나갔으면 좋겠다. 로봇고 선수가 다치면 안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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