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에도 웃는 ‘긍정 바이러스’ 화천정산고 김혜정


[스포츠니어스|합천=조성룡 기자] “저 선수만 보면 참 안타까워요.”

제 17회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는 합천. 화천정산고 김유미 감독은 한 선수를 지켜보며 짧게 한숨을 뱉었다. 김 감독의 시선을 따라가니 한 선수가 약간 절뚝거리며 회복훈련을 하고 있었다. 뭔가 복잡한 사연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화천정산고의 경기에 가니 그 선수는 그라운드에도 벤치에도 없었다. 관중석에 있었다.

그녀는 축구공 대신 캠코더를 손에 들고 있었다. 팀 동료들의 경기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임시 비디오분석관’인 셈이다. 촬영을 하면서도 그녀는 쾌활한 표정으로 동료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딱히 얼굴에서 그늘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잠시 촬영 대신 이야기를 부탁했다. 그녀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화천정산고 김혜정 이야기다.

순탄한 축구 인생에 찾아온 시련, 중국전
김혜정은 화천정산고의 촉망받는 선수 중 하나다. 그녀의 팀 동료도 마찬가지다. 현재 화천정산고 2학년 선수들은 약간의 과장을 섞어 ‘황금세대’라 부를 수 있었다. 언제든지 대표팀에 호출될 수 있는 자원들이기 때문이었다. 김혜정도 그랬다. 자신의 동료들이 좋은 선수들로 가득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던 그녀는 “사실 나도 대표팀에 있었다”고 말했다. 슬픈 이야기지만 과거형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약 1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2017년 9월 김혜정은 대한민국 U-16 대표팀에 승선했다. 태국 촌부리에서 열리는 AFC U-16 여자 챔피언십 본선에 출전하기 위해서였다. 이 대회는 중요했다. 챔피언십에는 2018년 11월 우루과이에서 열리는 FIFA U-17 월드컵 본선 티켓이 걸려 있었다. 대한민국이 이 대회에서 본선 티켓을 따기 위해서는 3위 안에 입성해야 했다.

대한민국은 당시 첫 경기부터 난적을 만났다. 여자축구의 강호로 꼽히는 중국이었다. 중국을 넘지 못하면 월드컵 본선 티켓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김혜정 또한 이를 악물고 뛰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녀가 패스를 받던 도중 뒤에서 중국 선수가 그녀를 눌렀다. 체중을 가득 싣고 몸싸움을 걸었다. 김혜정은 넘어졌다. 그리고 일어날 수 없었다.

그녀가 더 많이 울어야 했던 이유
“원래 경기하다가 넘어지면 바로 벌떡 일어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팀 동료들이 와서 만지면서 괜찮은지 물어봤어요. 그런데 누가 만지는 것도 싫을 정도였어요. 꽤 큰 부상임을 직감했죠.” 상대의 파울에 김혜정은 왼쪽 무릎을 다쳤다. 그녀는 직감했다. ‘파열됐구나.’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교체 아웃됐고 다음 날 태국 현지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태국 병원은 그녀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근육이나 인대 쪽에 이상이 있어 보였지만 병원은 X-레이 촬영을 했다. 당연히 뼈에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아픈데 병원에서 괜찮다고 했어요. 심지어 저희 대표팀에 박사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돈은 더 낼테니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해달라’고 요구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 병원에서는 추가적인 검사를 거절했어요.”

태국 현지 병원은 “이 선수는 더 검사할 것도 없다. 괜찮다”며 김혜정을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 결정은 김혜정에게 치명적이었다. 그녀는 빠른 복귀를 위해 조금씩 걷는 연습을 했다. 이것은 그녀의 몸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알고보니 그녀는 십자인대 파열이었다. 여기에 연골에 물이 차면서 부상이 더욱 심각해진 것이었다.

김혜정이 시련을 이기는 법, 긍정의 힘
한국에 돌아와서 그녀는 수술 이후 재활에 전념해야 했다. “수술도 힘들었지만 병원에 누워있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어요.”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팠다. 그래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재활은 생각보다 더디게 흘러갔다. “십자인대가 파열되면 재활에 약 6개월 정도 걸린다고 해요. 하지만 저는 그보다 더 오래 걸렸어요.” 재활 과정도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이겨내는 수 밖에는.

재활을 했지만 아직도 그녀의 몸은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요즘은 사타구니 근육에 문제가 생겨서 잘 뛰지 못하고 있어요.” 부상 이후 여파가 남아 컨디션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보였다. 김 감독은 그녀를 바라보며 그래도 희망을 찾고 있었다. “컨디션이 정상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선수 본인이 ‘내가 이렇게 열심히 재활 했는데 왜 안되지?’란 생각을 하게 되면 더욱 심한 좌절에 빠질 수 있다. 축구화를 벗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혜정은 그렇지 않다. ‘내가 아직 부족했다’라고 생각하며 더 열심히 노력한다. 그래서 더욱 기대되면서 지금의 상황이 안타깝다.”

현재 정상적인 경기를 소화하기 어려운 김혜정은 영상 촬영과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을 맡고 있다. 관중석에서 카메라를 들고 선수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격려한다. 김 감독은 “저런 선수만 팀에 한가득이면 지도자는 참 편할 것 같다”라고 웃었다. 하지만 김혜정은 안타까운 시간이 하루하루 흘러가고 있다. 그녀의 복귀가 늦어질 수록 우루과이 U-17 월드컵 출전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는 ‘긍정의 힘’으로 이겨내려고 한다. 그녀에게 “우루과이에 갈 대표팀 동료들에게 응원해달라”는 ‘우문’을 던지자 “아직 끝난 거 아닙니다. 저도 우루과이에 갈 가능성은 있어요”라며 ‘현답’으로 대답한다. 그러면서도 해맑게 웃으면서 “만일 제가 가지 못한다면 팀 동료들이 적어도 조별예선은 통과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김혜정의 축구 인생은 아직 한참 남았다. 중국전 부상은 당장의 큰 시련을 안겨왔을 수 있지만 오히려 성장의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 그녀 또한 그것을 아는 모양이다. 미소와 함께 “우루과이가 제 축구 인생의 전부는 아니죠”라고 말한다. 몇 년 뒤 우리는 그녀가 역경을 딛고 다시 우뚝 선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주변의 기대 섞인 시선을 자신감으로 바꾸면서 말이다.

wisdragon@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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